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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단편 2부작) 삼인의 부름 2편
게시물ID : readers_2159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귤을까요아주
추천 : 2
조회수 : 23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8/31 16:06:28
"이이에게는 제가 아직 말하지 않았어요."

아내의 말에 젊은이들의 매서운 눈길이 내게로 부터 떠나갔다.

노인은 그러면 그렇지라는 표정을 짓더니 입을 열었다.

"내 그렇지 않아도 아까 들어올때 부터 선생께서 어정쩡하게 서 계시기에 집안에 무슨 일이 있으신가 했습니다."

노인의 농담에 웃는 젊은이들의 소리에 떠들썩해진 분위기.
허나 내게는 그저 두통을 증가시키는 소음에 불과했다 이들이 오늘 여기에 온 이유가 무엇인지를 빨리 알아내야만 한다.

"어르신"

내가 힘겹게 입을 열자 웃고 떠들던 사람들이 조용해 졌다.
한결 소음이 가라 앉자 마음이 편해지고 입을 열기도 나아진것 같았다.

'지금 물어 보아야 한다...아내가 허튼 일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내게 말하지 않고 이런 사람들을 집안으로 부른 이유가 있겠지'

마음속에 결심이 서자 입이 저절로 움직였다.

"그렇다면, 오늘 저희 집에 모이신 연유를 여쭤도 될까요?"

내말에 노인은 입을 꾹 다물더니 내 관상이라도 보듯 내 얼굴을 찬찬히 살펴 보았다.
시원스레 뻣은 눈썹과 얼굴의 주름들이 노인이 살아온 인생을 대변하는듯 했다.

"제수씨로 부터 먼저 다 이야기를 들으신줄 알고 왔습니다만, 오히려 이렇게 직접 말씀드리는게 더 좋을수도 있겠습니다."

곧이어 이어지는 노인의 말

"저희는 만주로 함께갈 독립군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아아....'

예상은 했지만 막상들으니 머리만 더 어지러워 질 뿐이었다.
원망스레 아내를 쳐다 보았지만 아내의 맑은 눈은 그 어느때 보다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노인이 말을 이어나갔다.

"대충 아셨겠지만 지금 이 자리에 함께한 사람들 모두가 저희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예,제수씨도 우리와 뜻을 함께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선생께서 준비만 되신다면 출발하시기로 말입니다."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이 귀에 날아들어왔다.

'만주로 간다니? 경성에서의 삶은 어찌한단 말인가 아내는 나 몰래 이런 엄청난 일을 계획하고 있었던 것인가...'

쉽게 납득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뭔가 잘못아시는 것 같습니다. 여기 계신 청년들은 모르겠지만 저는 만주벌판에서 싸울만한 그런 용사가 아닙니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 내가 힘겹게 입을 열자 노인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잘 알고 있습니다. 아마 그 점은 선생을 오늘 처음 본 이 청년들도 알 수 있을 겁니다."

'이와중에 농을 한단 말인가'  노인의 분위기에 질리다 못해 이제 짜증날 정도였다.
하지만 노인은 내 표정을 보고도 개의치 않다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선생부부는 만주에 갔다가 상하이에 동지들과 함께 하도록 계획 되어있습니다. 제수씨께 이야기를 듣고 선생에 대해서 여러가지 조사를 해보았는데
요즘 찾아보기 어려운 인재시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상하이에 있는 동지들은 싸우기 보다는 독립을 위해 여러가지 사무적인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선생같은 분들이 간절히 필요합니다."

'상하이?'
들어 본적 있다... 히데키를 만난지 얼마안되 총독부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던중 간부들이 김구라는 조선인이 상하이로 도망갔다며 수근거리던 모습..

"오늘 바로 결정을 내리라는 것은 무리한 부탁임을 저도 잘 압니다. 잘 생각해 보시고 모쪼록 좋은 방향으로 결정내리시는게 제 바람입니다."

그 뒤로 얼이 빠져 그 뒤부터 노인이 한 말이나 청년들이 왁자지껄 떠들던 모습이 스쳐지나 갈뿐 어느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모임이 끝나 집을 나서기전 노인이 내 손을 꼭더니 '다음주 월요일까지 결단을 내려달라는' 부탁과 그외에 호국 충정이니 어쩌니 하는 일장연설을
한것이 기억날 뿐이었다.
아내가 겸언쩍은듯 내 눈치를 보며 상을 치우는 모습에 화가 치밀기도 했지만 그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해 지기만 했다.

"여보"

밤이되어 자리에 누워서까지 내가 말 한마디 없이 있자 아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내가 아무말없이 아내를 쳐다보기만 하자 아내는 아까 그 독립단체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가기 시작했다.
친구로 부터 우연히 소개 받아 독립 운동에 대해 알게되었으며 만세운동에도 그들이 관여되 있다는 이야기, 아까 그 노인이 독립군 중에서도 
상당히 요직에 있으며 
자기로 부터 내 이야기를 듣고 오늘 이자리까지 직접 행차했다는 이야기...
아내는 한참 이야기 하다가 내가 아무런 반응도 없자 제 풀에 지쳐 잘 결정 할 거라고 믿는다며 자리에 누웠다.

'이를 어찌한다'

얼마안가 아내는 잠든듯 했지만 나는 잠들수  없었다.
일이 이렇게 됬으니 히데키의 말을 따랏다간 독립군들이 내가 그들을 배신하고 일제에 붙었다며 
아내와 내게 무슨 보복을 할지 모르고,그렇다고 이 독립군들에게 붙으면 그 약삭빠른 히데키가 이상한 낌새라도 채는 날에는
형무소에 아내와 내가 끌려가는 것은 불현듯 뻔한 일이 이었다.

'아아....'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아무리 아내를 사랑한다고 해도 이 엄청난 일을 나와는 아무런 상의도 없이 저지른 아내를 보면 두통만 더 심해질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떠 서재로 자리를 옮겼다.
오늘 일을 잊기 위해 무엇가에 집중을 해야했다.
책상을 뒤적거리다 보니 붉은 글씨가 적힌 작은 나무패 하나가 보였다.
박경수가 주고 간것이었다.

3일전.

중국으로가 사업을 해보겠다던 박경수가 개성으로 갈테니 한번 보자는 편지를 보내와 집에서 만나게 되었다.
코흘리개 적부터 알던 녀석이라도 반갑기도 했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녀석의 얼굴에서는 알게 모르게 이질감이 느껴졌다.
오래만에 보니 얼굴이 달라졌다며 농으로 말하긴 했지만 녀석의 그전에 사람착하던 눈빛이 확 달라졌음을 알 수 있었다.
고향 얘기나 본인의 사업얘기를 한참 하더니 대뜸 내게 나무패를 건네며 혹시 자신과 함께 밖으로 나가 볼 생각이 있냐며 물었다.
처음에는 농인줄 알았지만 녀석의 얼굴은 사뭇 진지했다.
무슨일로 나가야 하나며 묻자 사업 얘기나 할 줄 알았던 녀석의 입에서 뜻밖에 이야기가 나왔다.

"나 사실 빨치산이 됬다."

어이가 없어 벙쪄있는 내 모습을 보더니 자기가 이야기 해놓고도 웃긴지 사람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하기를
중국에가서 사업을 했는데 생각 보다 잘 풀리지 않아 고민하던중 만주에서 활동하는 빨치산들에게 물품을 보급하는 사업을 잡았단다.
처음에는 순수하게 이익만 보고 달려들었는데 그게 아니더라며 이제 자기도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 여느 잡부가 아니며 경성과 중국을 오가며
만주에 보급품을 나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 뒤로 스탈린이니 레닌이니 하는 사상이야기를 한바탕 쏟아 부었지만 나는 눈앞에 있는 박경수가 내가 아는 박경수가 맞나 하는 생각 뿐이었다.
내가 알던 박경수는 소잡는 날에 소 눈망울을 보더니 소가 불쌍하다며 잡지말라고 울며불며 쌩때를 쓰던 아이었고 시골에서 부모님 밑에서
농사나 지으며 살면 족하다던 녀석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사업을 하겠다며 나가더니 이제는 내게 사상교육을 하고 있으니 나로서는 내 눈앞에 박경수가 너무나도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밖에없었다.
자기로 인해 뜨악해진 내 얼굴 표정을 알고 있기는 한건지 녀석은 한참을 더 인민이니 혁명이니하는 이야기를 쏟아내곤 자신은 다음주 월요일에
중국으로 가는 배를 탄다며 생각이 있다면 그날 와서 이 나무패를 제시하란다.
녀석은 그렇게 떠나갔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오늘일과 연관되어 내 머리를 아프게 만들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고향친구는 빨치산에, 아내는 독립군들과 어울렸는데 정작 우리집에는 총독부 사람이 들락거린다니'

어이가 없어 허탈한 웃음만이 나왔다.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아침.

아내의 소개로 아직 만주로 가지 독립군들과 어제 만난 노인을 만날 수 있었다.
어제 만난 청년들은 모임이 끝난 뒤 곧바로 만주로 출발 했다고 한다.
그 모임이 일종의 송별회였던 것이다.
그전에는 막연하게 생각만 했던 독립군들과 직접 만나다 보니 제발이 저려 그전에는 봐도 별 감흥이 없던 일본 순사만 봐도 괜시리 가슴이 쿵쾅대고
길에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할때에도 혹시 주변에 날 알고있는 총독부 사람은 없는지 주변을 휘휘둘러본뒤 이야기 하곤 했다.
매일을 집에서만 보내던 일상에서 벗어나 이런일을 겪다보니 다리가 풀려버리기도 했지만 내가 이전에도 나라를 위해 
이렇게 가슴뛰는 일을 한적이 있던가 하며 괜시리 뿌듯해 지기도 했다.
하루 하루 독립군들과 만나며 아내의 설득에 나도 모르게 넘어가고 있었고 나라를 위해 내 한 몸쯤 어떠랴 하는 생각도 들게되었다.
그동안 만나왔던 지식인들, 특히 친일성향이 강했던 사람들과의 교류도 끊어 버렸고 이제 만주로 떠나기 위해 계획을 차근차근 세워 나가고 있었다.
월요일까지 대답을 연기 할 것 없이 만주로 가겠다고 아내에게 말하였고 아내도 독립군들에게 우리부부의 의중을 전하여 일이 빠르게 진행되어갔다.
하루라도 빨리가도록 우리부부의 기차시간이 월요일로 정해졌고 어느새 시간은 흘러 일요일 밤이 되었다.
모든 준비는 끝났고 이제 이 집에서, 경성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었다.
지금껏 내린 결정들이 너무 물흐르듯이 진행되어 이것이 꿈인지 아닌지 생각하느라 멍하니 자리에 누워있었다.

"잠이 안와요?"

아내 또한 잠들지 않은 듯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말했다.

"그럼 안오지,몇일 전까지만 해도 총독부의 제안을 받을까 말까 고민하던 차였는데 이제는 상하이로가서 독립군 생활을 하게 되다니"

"잘 결정한 거라고 난 믿어요."

아내는 당차고 지혜로운 여자였다.
그 모습에 반해 결혼하게 되었고, 사실 독립군 제의를 처음 받았을때도 맘 같아서는 단칼에 거절하고 싶었지만
아내의 기대를 져버리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고민한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 아내와 함께 무슨 일이 벌어 질지 모르는 타국으로 사실상 망명에 가까운 생활을 앞두고 있다.
머리가 다시 지끈 거려왔다.

"그만 생각하고 이만 자요, 내일 할 일이 많아요"

아내의 말이 맞았다.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아 보았지만 마음속 한켠의 불안감이 계속 서렸다.

'내가 그 속에서 아내를 잘 지킬수 있을까...'


새벽은 깊어만 갔다.


아침.

기차에 타기 위해 일찍 일어나서서 그런 것인지 햇살이 마치 떠나지 말라는듯 너무나도 밝았다.
대부분의 짐은 이미 먼저 보냈고 들고 갈 수있는 소규모의 짐만 챙겨
언제 돌아 올지 모르는 집을 한번씩 더 확인하며 집을 나섰다.
오늘 따라 경성의 아침이 눈부셨다.
한번이라도 더 보고 기억하기 위해 길을 걸어가며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다니다 보니 뭔가 이상했다.
길을 가다보면 한두번쯤 보게 되는 거지 아이들은 커녕 거리에 나와있는 사람들도 무언가 긴장한듯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나?'

그때

한 무리의 순사들이 건너편에서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아니겠지'

나도 모르게 짐을 쥔 내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내와 걸음을 재촉했다.

"거기 앞에 조선인 둘! 걸음을 멈춰라!"

순사의 외침에 그 자리에 박힌듯 몸이 굳어 버렸다.

다리에 힘이 풀리며 목뒤로 땀이 타 흘렀다.

눈을 질끈 감고 뒤돌아선 내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총칼을 든 순사들과  잘 차려입은 양복차림의 일본인이었다.


히데키였다.


"무슨.... 일 이십니까?"

힘겹게 입을 열었다.

냉소적인 히데키의 눈초리, 그리고 이어지는 말

"무슨 일? 하! 이 더러운 조센징들을 당장 잡아들여!"




           -삼인의 부름-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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