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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해군에 관한 두서없는 짤막한 이야기 입니다. (2)
게시물ID : history_2278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Lemonade
추천 : 11
조회수 : 785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5/09/01 21: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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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영국 해군의 성장은 스페인 무적 함대를 격파한 엘리자베스 1세를 기점으로 막을 내립니다, 정확히는 튜더 왕조가 끝나고 스튜어트 왕조를 연 제임스 1세가 즉위하면서 막을 내렸지요, 

해전이라는 것이 날이 가면 갈수록 높은 투자를 요구하는 한편 높은 기술력도 요구하게 됩니다, 당연히 군함의 크기와 화력도 증가되며 인력도 많이 필요로 하게 되어 재정 부담이 막심했는데, 이때 등장한 방책이 바로 사략선단입니다, 윌터 롤리, 프란시스 드레이크 등의 사략 선단이 스페인의 상선들의 씨를 말려가며 약탈하던 것 처럼 무한 동력 기관(...)과도 같던 것이 당시의 해군입니다.

좋게 말하면 프리 랜서이고 나쁘게 말하면 파트 타임 알바와도 같던 것이 당시 해군으로 첨언을 하나 하자면 해군은 말 그대로 군선, 군함을 의미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일이 벌어지면 각 함선에 배치된 귀족님들이 알아서 선원을 모으는 것이고 이 선원들은 해군에 포함이 안된다는 말입니다. 당연히 취급은 뭐 말로 할수가 없었고 그 출신들도 전문 인력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하층민들이 입을 덜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보내거나, 술 먹고 시쳇말로 꽐라가 된 사람을 납치한다거나, 민간 상선의 선원들을 납치한다거나, 범죄자들을 고자되기...아니 선원되기로 끌어들인다거나 차용증을 들고 채무자들을 납치해온다 아니면 길가던 사람 그냥 납치한다거나 하는 수준이고 당연히 고분고분 납치 될리가 없으니 프레스 갱 press gang이라 하는 모병관들과의 유혈 충돌은 잦은 편이었지요.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제임스 1세는 매우 이상적인 평화주의자로서 모든 왕실 소유의 군선의 출항을 금지하는 한편 민간에 발급되면 사략 면허를 중단시키고, 스페인과의 국교를 회복하는 한편 그 들의 해상 안전을 보장했습니다,

당연히 의회의 반발은 거셌습니다, 비단 영국이라는 섬나라의 운명은 둘째치고 신교와 카톨릭의 이라는 절대로 공존이 불가능한 스페인과의 대립 관계를 아몰랑식 논리로 아무 이유 없이 종식 시킬려고 하니 말이나 되겠습니까, 

덕분에 바르바리를 비릇하여 이슬람 해적들과 프랑스, 네덜란드의 사략선과 해적들은 사략선도 없고 해군도 없는 영국 인근해를 휩쓸고 다녔습니다, 아니 고려말의 상황 마냥 아일랜드와 잉글랜드 본토의 항구들마저 안전을 보장할수 없었습니다, 덕분에 신이 난 것은 바로 네덜란드로 사실상 영국, 프랑스, 스페인 간의 다툼에 있어 항상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지만 꾸준한 투자는 지속되어 왔고 그러한 노력이 영국의 실책을 틈타 빛을 본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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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황은 1625년 제임스 1세의 아들 찰스 1세가 즉위하며 겨우 해결되려는 움직임을 보입니다, 자신의 지지도를 위하여 반 스페인 정서를 끌어들이는 한편 스페인과 프랑스를 견제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 당시는 Lord High Admiral 그러니까 해군 사령 장관이라 불리던 버킹엄 공작 조지 빌러어스는 그러한 상황속에서 엘리자베스 1세의 치세와 같은 해군의 영광을 꿈꾸었습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냉혹하지요, 의회에 청원을 넣은 결과 돌아온 돈은 고작 15만 파운드, 왕실 함대의 재건은 커녕 전력의 확충조차 불가능한 금액으로 그는 울며 겨자먹기로 민간 상선을 징발하여 해군을 재건했습니다, 물론 선원들에 대한 봉급 지급은 어림도 없는 상황입니다, 사실상 만성 적자를 자랑하는 영국 왕실에서 따로 지원을 해줄 여력도 없거니와 의회가 바라보는 해군은 자급 자족하는 이들이지 나라의 예산을 타먹는 이들이 아닙니다.

아무튼 어찌어찌 30만 파운드를 빌리고, 어렵사리 얻어낸 왕실 예산을 더하여 영국 해군은 스페인 카디스로의 원정을 떠나지만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일단 해군은 양적으로는 충당되었다지만 질적으로는 여전히 제임스 1세 당시의 쇠락한 모습 그대로 라는 것이지요, 덕분에 총 한번 못 쏘고 60여척의 함선이 침몰하는가 하면 5천여명의 인력이 병으로 죽고 1천여명이 술에 취한채 스페인 군에게 몰살당하는 참패를 겼습니다.

이러한 참패에 대하여 영국은 해군 사령장관 조지 빌리어스에 대한 분노에 휩싸였습니다, 더욱이 찰스 1세는 자신의 심복을 보호하기 위하여 어물쩍 상황을 넘기려 하였기에 불길은 더욱 더 타올랐고, 이 와중에 의회에서는 해군 사령 장관의 탄핵 및 해군의 통솔권을 의회로 귀속시키자는 안건이 투표에 부쳐졌는데, 찰스 1세는 의외의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네 의회를 해산시켜버린겁니다, 이게 바로 최초의 의회 해산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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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듬해에 상황을 어떻게든 타계해보자고 라 로셸 공성전에 함대를 파견하여 위그노들을 돕고자 하였는데...역시나 스페인의 카디스 공략전에서도 그랬지만 제대로 예산도 물자도 없이 편성된 계획은 어쩔수 없기에 굶주림과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괴멸하고 맙니다.

물론 소설에서처럼 달타냥과 삼총사들의 기지가 해결한 문제는 아닙니다, 인류 고금을 통틀어 변할수 없는 예산과 물자, 인력이라는 절대적 요소들의 완벽한 하모니가 빚어낸 참극이지요.;

그리고 그 해 버킹엄 공작 조지 빌리어스는 수그러들지 않는 여론의 불길속에 포츠머스에서 어느 육군 장교에게 암살당하고 맙니다, 그렇지만 의회와 찰스 1세의 갈등은 해결될 조짐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의 죽음은 책임 소재를 놓고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기만 했을따름이지요.

더욱이 찰스 1세는 해군을 운영하는데 드는 막대한 비용을 감당할수 없었습니다, 포기할수도 없을뿐더러 무작정 출항 시키다가는 생전에 조지 빌리어스가 그러했듯 문제만 야기될 따름이었고 그렇다고 의회에서 순순히 도와줄리도 없었지요, 그랬기에 그는 묘수를 짜냈는데 그 것이 바로 건함세Ship Money입니다, 

해안가의 마을과 도시들로부터 세금이나 배를 징발하는 제도인데, 문제는 이를 내륙 지방을 포함하여 전국의 모든 지역으로 확대하려 했다는 것이고 그에 따라 왕실에 대한 지지도는 곤두박칠 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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