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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취업과 이민 경험담과 현재
게시물ID : emigration_47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드레스덴가이
추천 : 28
조회수 : 2773회
댓글수 : 79개
등록시간 : 2015/09/22 02: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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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전 대학생때 호주 뉴질랜드 어학연수를 계기로 영어권 국가에서 처음살아봤습니다. 자연환경 및 여유로워 보이는 사람들 종종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하고, 현지 대학을 다니는 대학생들을 보며 아... 나도 유학하고 싶다라는 동경만 했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영어점수도없었고, 유학할 돈도없었고요.

한국으로 복귀 후 학부를 졸업뒤 나름 언어센스가 있기에 그나마 되는 영어회화로 외국계회사를 취직했습니다. 그리고 본사미국으로 트레이닝을 가게되었는데, 문화적 쇼크를 받았습니다. 우와... 이건 상상도 못할 높이의 파티션과 우리나라 패스트푸드점에서나 보는 콜라 사이다 머신이 사무실에 있는겁니다.... 전 처음에 목이타서 오피스어드민에게 이거 얼마주고 마셔냐되나요? 물어봤더니...
웃으며 ,feel free to drink as you want. 이러는겁니다. 오오 공짜 음료수 공짜커피 공짜간식.... 게다가 다섯시땡치고 주변에 뭣좀 물어보려고 파티션뒤로 돌아갔죠. 파티션이 너무높아 아무도 출퇴근하는거나 자리에 있는거 모릅니다. 그냥 알아서 출퇴근하네요. 아무도 없어서, 뻘쭘하게저혼자 있었어요. 게다가 금요일에는 소풍모드입니다. 대부분 캠핑이나 취미생활을해야되서 금요일은 오전만 있다가 다들 해브어나이스위켄드 하고 사라집니다. 
그리고, 결정적인건 우리나라 연봉 대부분 삼사천 받을겁니다. 그런데 미국애들 이렇게 일하면서 연봉 팔만 구만 받더라구요. 화가났어요. 일은 절반으로하고 연봉은 더블로받고....

한국돌아오고나서 화도나고 나도 연봉 십만받아야겠다는 생각에 여자친구에게 물어봤습니다. 미국가서 살래? 그랫더니 오케이하길래 그때부터 회사일은 뒷전으로 하고 영어만 팠습니다. 일년동안 토플과 쥐알이를 준비했고, 쥐알이는 컴퓨터로 치는시험이 일본에밖에없었기에 두번이나 가면서 점수를 받았습니다.

자... 이제 다됏구나 싶어 가격싸고 아웃풋좋은 명문주립대 위주로 석사지원을했죠. 나름 이정도 경력에 이정도 어학점수면 알아서모셔가겠지 하는 자만심을 갖고 지원을 했습니다. 
대학원 어드미션에는 보통 추천서 세통, 학부성적, 토플 구십또는 백점이상 점수, 쥐알이, 에세이 등등이 포함됩니다.
첫 도전에서 주립대 열개정도대학을 썻지만, 올킬을 당하고 좌절을 했어요. 그때 전 아 나는 어차피 비싼학비낼 돈도없고 한국서살아야되는 팔자인가보다 하고 접었었죠.

그후 여친과결혼도 하고, 국내대기업으로 이직까지하고 집도사서 나름 안정기 모드에 들어갔었습니다. 하지만, 그 뭔가모를 국내대기업에서 느껴지는 불합리한점 좀비같은 직장동료선배후배들.... 그안에서만 자란 동료들은 문제점을 모르더군요. 우리가 왜 이렇게 힘들고 욕먹고 살아야하는지.... 어느순간 이건 아니다싶었습니다. 회식하고 소주한잔 걸치고 집에 오는데, 이런식으로 아무의미없이 하루하루 보내고 내일이 십년뒤었으면 좋겠다라고 하소연하는 선배의말을 듣고... 난 이리살기 싫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꼴불견 아첨쟁이들이 상사택시문 열어주고, 식당예약 상사가먹고싶은거 주문해놓으며 인정받는 그런 불합리한점들 일 열심히하고 바른소리하는 능력자들이 외면당하는게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와이프 몰래 다시 준비했어요.
그결과 나름 명문주립대에 합격을 받았죠. 너무 기뻤습니다. 하지만 또다시 현실의 벽에 부딪히더군요. 일단 양가부모님 설득부터 일년에 일억이나되는 학비생활비.... 
그 결과 버는 아파트 팔고 공부하겠다라는 강수를두고 아파트팔고 부모님들 설득하고 결국 학교를 진학했습니다.

유학생활역시 쉽지는 않더군요. 이게 단순히 회화만 한다고 아카데믹 전공을 영어로 공부해야되는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숙제와 프로젝트 팀프로젝트의 양이 국내대학에 비해 상상을 초월하게 많습니다. 한글로 에세이 쓰는것도 힘든데, 영어로 엣세이를 매주 써야되니 거의 매일 도서관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부양가족이 있으니 취업의 부담도 상당했습니다. 학기시작하자마자 열리는 커리어페어에 이력서 수십장들고 면접관에게 어필하려고 발에 땀나도록 뛰어다녔습니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우린 취업비자 스폰안해준다라는 대답이었습니다. 미국도 자국민 우선이라 특출난 외국인이 아니면 취직이 힘듭니다. 게다가 그들이 보기에 영어로 어버버거리며 말하는 외국인을 채용해야 될 이유가 없는거죠. 첫번째 커리어페어에서도 올킬당했어요. 물먹고나니 참 씁쓸하더군요. 그후로 학교다니면서 이력서만 천통정도 넣은거같네요. 전화인터뷰도 수십번 봤구요. 하지만, 온사이트불러주는 곳은 두서군데 밖에없었어요. 다행히 한국에서의 경력과 맞는 회사에서 절 불러주고 전 온사이트 면접을 보러갔습니다. 그런데 학기중에 가는거라 시험을 하나 못보게되더군요. 그과목을 c를 맞았는데... 이게 학교마다다르지만 저희학교는 학기평점이 3.0/4.0 미만이면 프로베이션... 그러니 학사경고를 줍니다. 두번연속 학사경고면 제적당하구요.
어휴 ... 학사경고 받고 너무 우울했는데. 다행히도 온사이트면접본 회사에서 오퍼를 줬습니다. 너무도 기뻤죠.

그리고 현재는 제가 바라는데로 연봉 십만불에 미국에서 정착을 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 이민법에 관련된 시련이 또다시 닥치더군요.

이 이야기는 들으시려는 분들이 많으면 2화로 이어나가겠습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유학이나 이민준비하는 분들 절대 좌절하지마시고 희망을 갖고 도전하세요. 도전뒤엔 많은추억이 남고 눈물과 기쁨이 공존합니다. 의미없이 쳇바퀴돌아가는 10,20년동안 특별한 기억없이 지난추억없이 보내는 삶은 너무 불행해요. 전 힘들었고 기뻤고 지금도 힘들지만, 가족들과 함께한 좋은 추억들이 있어나이 더먹은뒤엔 이야기거리가 아주 많을것 같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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