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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귀경하려는데 차키가 사라졌다.
게시물ID : humorstory_44098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철전열함
추천 : 15
조회수 : 1716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5/09/30 13:35:58
나랑 28살 차이나는 막내사촌동생.
같이 어디가면 오빠로 안보고 당연하게 최소삼촌 최대아빠로 보이는 나이차.

배가 뽈록하게 나온 (나에게는 제수씨.)새언니배를 만지면서 "동생생겨? 나 동생생겨?"라고 묻길래, 
"아니. 너가 고모되는거야. 언니가 아니라 고모."라고 일러줘도,
자기가 아는 고모란 개념은 4~50대 아줌마들이라 감이 안잡히는지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지만 
새언니 손을 꼭잡고 언제 태어나? 몇밤 자면 태어나?라고 재잘거리는걸 보면, 
본부내무실에 앉아있는 신병들을 보며 "이제 걸레 안빤다!!!!!(그럼 군생활 끝나는줄 알았음)"고 두근거리던 소대 막내때 생각이 떠오른다.

그리고 외할머니와 오마니는 동생과 제수씨를 아침 일찍 친정으로 보내버린다. 
친정가서 푹 쉬라고. 가면 얼마나 좋아하시겠냐고. 이렇게 자상한 시댁이라니.
그리고 가는 길에 맛있는거 사먹으라고 용돈도 쥐어주신다. 내 지갑에서. 이렇게 잔인한 어머니라니.




그렇게 아침부터 난리가 났다.
밤새 새언니 옆에 붙어서 올 겨울에 태어날 조카 예뻐해줄거라고 재잘거리다 늦게 잠들었다가 일어난 막내.
옆에 같이 잠들었던 하이얀 새언니는 어디가고, 
웃방청소한다고 등짝맞고 자다깨서 오~이 방은 아직 이불 안치웠네?라며 기어들어온 시커먼 큰오빠가 배까고 코골며 자고 있으니 얼마나 놀랬을까.

새언니찾으며 우는건데 시커먼 오빠가 울린거라고 등짝 한대 더 맞고 아침식사전까지 애달래오라며 쫓겨났다. 
시골동네에서 애를 달랠만한건 거의 없으니 마당에서 번쩍 안아들어 비행기 돌려주니 까르륵 웃다가 30분 쯤 돌려주니 지쳐서 또 울어버린다.
그렇게 난 등짝을 또 맞았다.

어제는 새언니새언니 귀찮게 하더니, 새언니없으니까 큰오빠인 나를 귀찮게 한다.
지 친언니같이 핸드폰 던져주면 한눈 좀 팔고 하면 좋을텐데, 전자기기는 테레비도 잘 안보는 애라 한번 잡히면 몸이 피곤해진다.

오빠오빠. 노라줘. 안아줘. 비행기태워줘.
아까 오빠가 비행기 태워주니까 울었잖아. 안해. 
으애애애앵!!!!!!!
넌 또 왜 애를 울리냐?
나 암것도 안했어요ㅠ.ㅠ

그렇게 오전을 보내고 있자니 다른 이모들도 시댁 대충 정리하고 모여든다. 
오마니가 아침밥맥이자마자 설거지도 나한테 미뤄놓고 친정으로 보내버려 얼굴을 보지 못한 만삭의 제수씨이야기를 시작으로,
아직 장가 안간 형. 나에게 타겟이 돌아간다.
넌 왜 장가안가냐??? (이모닮아 못생겨서??? 찰싹.커엌) 
오빠. 힘내. 오빠가 든든하게 버텨야 우리한테 시집가라는 말이 덜 나와. (그럼 와서 좀 살려주시던가!!!)

그렇게 애한테 치이고 엄마 이모들한테 치이니 심신이 지쳐, 회사일을 핑계로 추석 당일에 도망치려고 했"었"다.
이제 뒷정리는 이모들이랑 과년한 여자사촌동생들이 할테니 후딱 떠나기로 한다.

"오빠. 왜 옷입어? 집에 가?"
"아...아니. 오빠 추워서 껴입는거야."
"그럼 오빠아~ 선풍기꺼. 선풍기꺼. 감기걸려서 아야해."
몰래 나가려다 옷갈아입는 현장을 딱 들키고는 늦가을 더위에 추워서 옷껴입는다는 개소리를 하니, 이 어린것도 속을리가 없다.
자기 언니는 그래도 초등학생이라고 학교나가면 친구들이 있는데, 아직 유치원도 안나가는 나이이고 시골동네에 또래친구들이 없어 
사촌오빠언니들이 오면 안떨어지려고 해서 항상 조용하고 은밀하게 사라져야하는데,
이제 온 다른 언니들이랑 있을거라 생각하고 방심했더니 딱 들키고 말았다. 

진짜 안간다니까~하며 일부러 철푸덕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영혼없는 명절인사들과 언제오냐 술먹자 전가져와라 그걸로 안주하자라는 노귀향파친구들의 메시지사이에 아침에 떠난 동생의 메시지가 껴있다.
"차키 잘 챙겨라."
내가 아무리 정신머리없어도 그 정도는 아니다. 이시키야. 라고 보내려다가 관두고 살살 막내눈치를 살핀다.

어제오늘 축사에 육용으로 키우는 돼지마냥 큰외손자를 먹이고먹여 살찌우시던 외할머니는 객지에서 손주 고생한다고 바리바리 음식을 싸주셨고,
올해는 반드시 냉장고청소라는걸 해서 버릴건 버리고, 이것들을 쟁여놓고 내년에 또 발굴해야지ㅋㅋㅋ하며 
막내 몰래 어른들한테 인사드리고 중학생 남자동생에게 보따리 하나 들고 따라오라고 시킨다.

"마. 형 간다. 이모랑 이모부 속쌕이지말고, 형은 공부하라고 잔소리 안할라니까 싸울거면 처맞지말고 최소한 비기고, ㅇㅂ같은거 하지마라."
"알았으니까 세뱃돈주고가~."
"추석에 뭔 세뱃돈이여. 제 정신이냐? 요즘 의무교육 수준 왜 이래??? 간다 임ㅁ...어래???"
"왜?"
"야. 나 차키두고 왔나보다. 나 들어가면 막내우니까 가서 찾아봐. 웃방 테레비 위에 뒀어."
"아...귀찮은데..."
"만원준다."
'얼른 갔다올께. 가지말고 기다려."
차키가 있어야 가지 멍청아...라는 말이 목구멍을 넘어 편도를 찍었지만, 조용히 떠나려면 저 놈의 힘이 필요해서 입다물고 기다린다.

캔디소다게임 하트를 다 쓰고도 동생이 안나오자 뭐여 이거?하고 전화를 건다.
"얌마. 차키 만들라고 회로기판만드냐? 왜 안나와?"
"형아. 안보여. 큰이모도 모르고 누나들도 모른대."
"애들한테 전파해. 찾은 사람 무조건 이만원."

하트충전해서 또 하트 다 쓰도록 소식이 없자, 포기하고 다시 외갓집으로 돌아간다.
가보니, 어쩔...80넘은 외할머니부터 초등학생 사촌동생까지 다 내 차키를 찾아헤매고 있었다.
니랑 내 사이 애들한테 전파하랬더니, 이 놈이 지 위로 다 불러재낀격이었다.
자본의 힘은 위대하구나. 2만원이라는 소자본으로 이룩한 이 세대를 초월한 수색작업을 보라지...감탄할 틈도 없이,
오마니는 넌 차키 어디다 팔아먹고 가족들한테 찾아오라마라그러냐며 꾸중을 하신다.
그렇지만 오마니도 아신다. 내가 핸드폰, 지갑, 차키. 이 3종신기만큼은 항상 눈에 보이는 곳. 거의 일정한 장소에다가 둔다는것을.
그렇게 20명에 가까운 인원들이 내 차키를 찾아헤매는데...

어디선가 막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외숙모의 호통소리와 함께.

"너 또 차키 숨겼지? 얼른 내놔."
"시러어어어어어어~ 오빠가는거 시러어어어어어어~"
범인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이 영악한 꼬마는 오빠나 언니들이 왔다가 갈것 같으면 차키를 몰래 숨김으로서 가기 전에 보물찾기도 즐기고 가게 배려해준다고 한다.
몇번 당해본 동생이 경고를 날려준거였는데, 앞뒤도 없이 저리 보내놨으니 뭔 뜻인줄 알고...

그제서야 몇번 피해를 입어본 다른 동생들이 애가 그동안 차키를 숨겼었던 장소들을 털기 시작했다. 
장난감상자, 인형의 집, 옷장안. 냉장고안, 할머니 바늘쌈지, 신발장...동생들이 터는걸 보며,
이 꼬맹이가 그동안 뭔 짓을 저지른거야??라며 새삼 놀랬다
별도로 한시간에 가깝게 진행된 외숙모의 채찍과 같은 심문과 우리 오마니와 이모들의 당근같은 달램에도 이 아이는 끝내 차키를 어디에 숨겼는지 불지않았다.
왜놈순사에게 독립운동하는 동지들의 비밀을 불지않았던 독립운동가분들이 새삼 존경스러워졌다.

보험회사부를까도 했지만, 시골동네라 오는데 시간이 꽤 걸린다고 그러고,
외숙모한테 그렇게 혼나서 눈물 쏙 빼고도 큰오빠 너 때문에 하룻밤 더 자고 갈지도 모른다니까 생글거리는 막내를 보고 
아. 예. 알겠습니다. 한번 더 찾아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라고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래도 다음날 쨘!!!하고 차키를 내놓는다니까 차키 새로맞추고 할 돈을 생각하니 그냥 있는게 낫겠다싶어 자고 가기로 했다.

그렇게 차 뒤 나무그늘에 두고왔던 음식보따리는 다시 김치냉장고안으로 들어갔고,
포상금으로 걸었던 돈에 내 돈 더 보태서 차키찾느라 진땀뺀 외갓집 식구들한테 고기를 사 꾸워 맥여야했다.
"오빠안가니까 쪼아."라는 막내랑 막내친언니를 보며 나는 기쁜데, 지갑은 슬피 울고 있었다. 
차키 새로 맞추는게 차라리 더 덜들었을거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나는 이미 고속도로 위에 있었다. 
엄마한테 막내깨기 전에 먼저 갑니다.라고 문자는 보내놓았다.

휴게소에서 전화드리니 아침에 일어났는데 너 없어졌다고 막내가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고 한다.
뭐가 급하다고 인사도 없이 갔냐. 간다고 기다리는 애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이 말에 엄마도 울고 나도 울고 하늘도 울고 땅도 울었음.)
막내한테 오빠 백밤자고 간다고 전해달라하고 전화를 끊었다.



새벽에 자다가 깨버렸다.
간밤에 외할머니의 큰손주버프를 받고 과식한 탓에 속이 더부룩해서 소화도 시킬겸 좀 걸어볼까하고, 
외갓집 내려와서 빌려입고 있던 외삼촌꺼 바람막이를 걸치고 나왔다. 
낮에는 그렇게 덥더니 새벽에는 또 굉장히 쌀쌀했다. 
쌀쌀한 새벽공기에 비염이 도져, 나이를 잊은 콧물이 주르륵 나오길래 
주머니에 휴지가 있던가?하고 바람막이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자
뜯어서 넣어놓은 휴지뭉치사이로 낯익은 감촉이 느껴진다.

그 촉감에 사이코메트리처럼 머릿속의 퍼즐이 파밧!!하고 맞춰졌다.
이 차키. 외갓집에 도착한날 밤. 차에 두고온거 가져온다고 이거 입고 나가서 주머니에 넣어두고 잊어버렸었다.
막내가 숨긴게 아니었어!!! 막내는 차키숨긴곳을 말하지 않은게 아니라, 말하지 못하는거였어!!!

후다닥 들어와 김치냉장고안에 다시 들어간 음식보따리를 꺼내들고, 
방에 들어가 내 짐들을 챙기고 조용히 문을 닫고 시동을 걸었다.
10만키로뛴 구루마의 헉헉대는 시동소리가 이토록 반가운 적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인사도 없이 떠나야했다.
나의 구루마는(정확히 말하자면 명의는 아버지이지만.) 나의 쪽팔림을 연료삼아 귀경전쟁터로 내달렸다.

이 쪽팔림이 식기전에 도착하려했건만, 전국팔도의 방향지시등의 개념을 모르는 운전자들이 점령한 고속도로는 이미 한창 전쟁중이었다.
출처 추석당일오후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펼쳐진 눈물없인 볼 수 없는 액션스릴러심리추리실화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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