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내 아이가 생긴다는 것
게시물ID : baby_1047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키달
추천 : 13
조회수 : 1167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5/10/07 22:01:07

스물 다섯, 미혼,
이르다면 이른 나이에 아이를 가졌다.

처음 임테기의 빨간 두 줄을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다음 날엔 붉은빛이 더 선명하더라.

아이의 아빠는 담담해서 나는 더 당혹스러웠다.
머릿속이 어지러워 멀미가 나는 것 같았지. 

'아직은 아닌데...'

결혼을 전제로 사귀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그 생각만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결혼준비는 스트레스 그 자체였고, 처음 겪는 시댁 어르신들의 입김과 간섭이 날 괴롭혔다.

일부러 격하게 움직였고, 계단을 뛰어 오르내리고, 가끔 격한 분노에 찰 때면 배를 힘껏 때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엽산은 챙겨먹고, 입덧을 이겨내려 했고, 거르던 끼니는 꼭 챙겼으며, 좋아하던 온욕도 사우나도 꾹 참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뱃속의 아이를 걱정하면서도 미워했던 그때의 감정은 지금도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게 힘든 입덧이 끝나고 
점차 배가 불러오는걸 보자 
그제서야 뒤늦게 그 존재감이 느껴졌다.

그제서야 무언가 말 못할 벅찬 감동과 함께 묘한 감정이 샘솟기 시작했다.

내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는 자랑거리가 되어 여기저기 웃음으로 알리기 시작했고, 
이따금씩 미혼에 임신했다고 손가락질 받는 것엔 
진심으로 아이 편이 되어 분노하고 떳떳하게 주장했다.

아이가 너무 궁금하고 보고싶어서 
한달에 한번 초음파 검진 갈 것을 
1주일, 2주일 핑계대며 다녀대느라 
의사가  얼굴을 보며 하는 첫마디는 
 '또 왜오셨어요?' 였다.
그럼 나는 '배가 뻐근해서요', '두통이 와서요'  
핑계거리를 만들면서 싱글싱글 웃어댔다.

배가 불룩 나와 뒤뚱거릴때 쯤에야 식을 올리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둘 수 있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야 태교다운 태교를 하며 아이를 만날 준비를 했고

그 해 가을에 12시간 진통끝에...
자연분만 실패하고 수술로 아이를 만났다.

못되먹은 엄마인 날 꼭 닮은 아들을 그렇게 만났다.


안아주면 손 탄다고 다들 말렸지만

너무 사랑스럽고 애틋한 마음에 안아주고 업어주고 항상 내 몸에 달고 다니며 키워냈다.

질질 흘려대는 침도 좋았다.
방귀 뀌는 줄 알고 방심했다가 
똥폭탄이 매트위에 터져도 웃음먼저 터졌다. 
물론 치우는 동안은 미칠 것 같았지만..

밥다오 애미야, 
모빌좀 돌려봐라 애미야, 
잠이온다 둥가둥가 해다오, 
쪽쪽이를 내놓아라,
똥쌌다, 쉬가 만땅이다, 배앓이한다, 다리 쑤신다,

수 많은 요구사항이
언제나 '빼애애앵!!!'  으로 한결같아도
찰떡같이 해석해서 키워냈다.




그렇게 키워서 지금 두돌인 아들이 내 옆에서 코골며 자고있다.

생후 6개월 된 딸내미도 있는건 자랑..ㅋ

동갑내기인 남편은 10년은 더 늙은 것 같고
44사이즈였던 내 몸이 55+뱃살괴물로 변한건 안자랑ㅠㅠ


처음 임신했을 때 뱃속 아이에게 몹쓸 짓, 몹쓸 생각따위 먹은게 너무 죄스럽다.

낳고 나니 이렇게 사랑스럽고, 와줘서 고맙다는 생각뿐인데 그때의 나를 보게된다면 아마 뺨때릴듯

찰싹찰싹!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