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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중일 리더쉽의 재발견
게시물ID : baseball_10388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인생을즐
추천 : 12
조회수 : 1306회
댓글수 : 31개
등록시간 : 2015/10/08 21: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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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가 통합4연패의 위업에 이어 정규시즌 5연패라는 대기록을 달성하고, 이제 한국시리즈 결전만을 남겨둔 시점입니다.

리그를 호령했던 여러 왕조들, 압도적인 포스를 자랑했던 강자들도 이뤄내지 못한 성과를 달성했음에도 그 수장인 류중일 감독에 대한 평가만큼은 이상하리만치 박한 편이죠. 그나마 이전 '선동열 감독의 유산을 물려받아 숟가락만 얹었다'는 악평은 많이 없어진 편이지만 류감독 특유의 믿음 야구 스타일과 카리스마 없이 털털해 보이는 아저씨 인상 때문인지 '하는게 별로 없다', '좋은 선수층 덕분이다' 이런식의 평가절하는 아직도 많은 편이죠. 오죽하면 프로야구팀 감독에게 으레 하나씩 붙게 마련인 별명조차도 덕아웃에 앉아 관중처럼 구경만 한다는 뜻의 '류관중'이니까요.(심지어 어느 무개념 기자가 방송 중 이런 별명을 부르는 말실수를 해서 큰 난리가 나기도 했죠)

물론 삼성의 리그 정규시즌 5연패와 한국시리즈 4연패의 대단한 기록은 류감독 혼자만의 공은 아닙니다. 훌륭한 1군 선수들이 즐비하고 꾸준히 특급 신인들이 뽑혀 나오는 2~3군, 부상선수를 관리하고 재활해주는 능력이 탁월한 재활군+용인트레이닝센터, 그리고 현장의 운영에 간섭하지 않으면서 뒤에서 묵묵히 지원해주는 훌륭한 프런트까지 모든 요소들이 조화를 잘 이룬 덕분이죠. 그러나 류감독의 조용한듯 강단있는 리더쉽이 없었다면 아무리 좋은 자원과 지원을 받았더라도 5번 연속 시즌 우승은 불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강력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면 1~2차례의 연속 우승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러나 3~4번 이상의 연속된 우승, 그것도 단기전이 아닌 기나긴 페넌트레이스 우승은 단순히 강한 전력만 가지고 이뤄낼 수 없는 부분이죠. KBO 역사상 리그를 호령했던 왕조들도 1~2번의 연속 우승 후에는 그 후유증을 반드시 겪어왔습니다. 우승을 향해 전력질주해온 선수들이 크고 작은 부상과 부진에 시달리며 성적이 하락하고, 그 기간 동안 우승멤버들을 엔트리에서 뺄 이유가 없었으니 새로운 얼굴 발굴의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죠. 사실 지금의 삼성을 보면 이전 무시무시했던 왕조들에 비해 압도적인 포스 자체는 부족해 보입니다. 한국시리즈에서 단 한번도 우승을 놓친적 없는 타이거즈 왕조나, 경악스런 투수력을 자랑했던 현대 왕조, 끈적끈적 승리를 위한 집념이 무시무시했던 SK왕조들에 비해 2010년대 삼성 왕조는 어떤 한분야의 특출난 장점 없이 고루고루 잘하는, 승리의 과정도 상대를 압살하는게 아니라 겨우겨우 아슬아슬 1위를 지켜내는 그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죠. 그럼에도 몇년째, 다른 왕조들이 이뤄내지 못한 페넌트레이스 연속 우승 기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전 왕조들과 지금의 삼성은 무엇이 다른 걸까요?

'류중일식 야구'의 특징을 꼽으라면 믿음의 야구, 소통의 야구, 선수들에게 믿고 맡긴채 긴 운영을 하는 야구, 삼성에 특화된 야구를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끔은 긴 슬럼프에 빠진 선수에게 답답할 정도로 믿고 밀어줘서 팬들의 원망을 들을 때도 있을 정도죠.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러한 믿음 야구에도 류중일 감독 스스로 세워둔 원칙이 보입니다.

첫째로, 몇년간 꾸준한 활약을 보여왔던 선수의 슬럼프에는 믿음과 지원을 해줍니다. 이름값 있는 선수라고 무작정 밀어주는거 아니냐는 비판도 있긴 하지만, 몇년간의 오랜 활약을 보인 클래스가 있는 선수라면 다시 올라올 확률이 높은 편이죠. 코치진과 선수를 믿고 그 자존심을 세워주면서 꾸준히 출전시켜 컨디션을 회복시키는 방책을 주로 사용합니다. 이런 방식의 장점이라면, 아직 보여준거 없는 신인급을 무턱대고 중용하는 것 보다는 확실히 확률적으로 더 높은 성공률을 가지고 있단 점입니다. 야구는 통계와 데이터의 스포츠이고, 꾸준한 활약을 보여온 선수가 갑자기 자신의 커리어보다 못한 성적을 낸다면 이 선수가 다시 평균치까지 올라올 확률을 기대하는게 아직 아무것도 보여준거 없는 신진급 선수의 로또 폭발보다 가능성 더 높은 도박이긴 하죠. 그러나 이 방법의 단점 역시 큽니다. 선수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이런 방식이 잘 작용했을때엔 선수 스스로 분발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지만 잘못 어긋나면 베테랑 선수 특유의 거만함과 나태함을 불러 일으키죠. 또한 그 선수의 부진이 노화로 인한 자연스러운 결과인지, 단순 일시적 슬럼프인지 판단하는 것 역시 코치진의 몫입니다. 결국 이 방법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감독과 코치진이 얼마나 선수단을 제대로 장악하고 있느냐, 제대로 파악하고 있느냐에 달려있는 것이죠. 류중일 감독이 이런 '베테랑 무한 신뢰 야구'를 할수 있는 이유는, 류감독 스스로가 삼성에서 선수-코치 생활을 거치며 선수들의 큰형님, 대선배 입장이며 선수단 구석구석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마냥 사람좋아보이는 털털한 웃음 뒤로 선수단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통제하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승엽 선수가 8년간의 일본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복귀할때 가장 환영하며 공을 들였던 사람이 바로 류중일 감독입니다. 그때 이런 말을 했죠. "이승엽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선수단에서 후배들이 보고 배울점이 많다" 이 말은 이후 류감독이 이승엽 선수에 관해 이야기할때 항상 빼먹지 않는 말이 됩니다. 리그를 대표하는 최고 스타 중 한명이자 팀 최고참인 이승엽의 바른생활은 이미 많이 알려진 바 그대로입니다. 언제나 제일 먼저 나와 연습하고 항상 스스로에 대해 안주하지 않고 노력하죠. 임창용 선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중고참인 윤성환 선수 역시 라면, 탄산음료 조차 입에 대지 않을 정도로 자기관리에 탁월한 선수이구요. 류중일 감독은 이러한 최고참급 선수들을 이용해 팀을 장악합니다.(최고참 선수들에게도 류중일 감독은 직속선배이니까요) 물론 단순히 이승엽, 임창용 같은 성실한 최고참 선수들을 가진 류감독이 인복이 많다거나 좋은 선수단 분위기를 잘 만나 운이 좋았던 거라고 볼수도 있겠지만 이승엽, 임창용 선수 영입에 류감독이 적극적으로 공을 들였던 점, 그리고 그들을 영입했을때 '이들이 선수단에 미칠 좋은 영향'을 빼먹지 않고 언급했던 점을 봤을때 류감독이 5년간 사용해온 '베테랑에 대한 무한신뢰' 전략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것인지, 어떤 계산하에 이뤄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고참급 선수들을 통해 선수단 전체를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기에 그 전략을 쓸 수 있다는 거죠.

두번째로, 이러한 베테랑/주전 무한 신뢰 방식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신인들의 성장을 방해해 세대교체를 느리게 만들고 맙니다. 류중일 감독이 이것을 만회하며 꾸준히 세대교체를 이뤄낼 수 있던 배경은 어디에 있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베테랑 선수들, 주전급 선수들이 부진한 경우에는 웬만하면 믿고 계속 중용해주는 편이지만, 부상의 경우에는 여지없이 엔트리에서 제외시킵니다. 류감독이 늘 하는 말이 있죠. '하루 이틀 쉬면 될 부상을 억지로 출전시켰다가 한달 두달 쉬는 부상으로 만든다'는 말이요. 이 원칙에 따라 웬만한 상황에선 주전급 선수들이 조금만 다쳐도 경기에서 빼줍니다. 그리고 철저한 검진을 거쳐 정도에 따라 몇경기를 더 빼주거나, 아예 1군에서 제외시켜 재활을 하게 하거나, 경미한 경우에는 계속 출전시키며 경과를 보다가 여유있는 시기에 휴식을 보장해주는 방법을 택하죠. 그리고 주전들이 자리를 비우는 이때가 2군과 신인급 선수들에게는 기회가 됩니다. 주전이나 베테랑급 선수에 비해 류감독이 후보군 선수들을 평가하는 잣대는 무척이나 엄격합니다. 기회를 잡은 후보군 중 좋은 활약을 보이는 선수가 있더라도 절대로 그 선수에게만 기회를 주지는 않습니다. 거의 항상 꼭 다른 선수 하나를 붙여 경쟁을 시킵니다. 팬들 입장에선 답답하죠. "아니 OOO선수가 주전 공백 커버하며 한두경기 맹활약을 했는데 왜 이번 경기엔 태연하게 XXX선수를 내지??" 삼팬이라면 이런 황당함을 자주 겪어봤을 겁니다. 심지어 OOO에 비해 XXX가 죽을 쑤는 수준인데도 꼭 둘 이상 경쟁을 시킵니다. 맨날 너털웃음 지으며 베테랑 주전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류중일 아저씨가 후보군 선수들에게 기회를 줄때엔 무척이나 잔인하고 냉정해집니다. 게다가 저런 1:2, 1:3의 경쟁을 뚫고 올라온 선수도 원래의 주전이 돌아오면 1군 벤치에 대주자/대타감으로 묵혀두죠. 그리곤 매우 천천히 느릿느릿 키웁니다. 사실 이런식의 신인 육성법이 옳은 것인지, 정답이 뭔지는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어쨌거나 류감독은 몇년간 이 방식을 통해 매년 수준급의 히트 선수를 배출해냈죠. 베테랑을 믿어주며 주전급을 중용해 당장의 성적을 거두면서도 작은 부상이라도 발생하면 후보군 선수에게 기회를 주되 절대로 한명에게 기회를 몰아주는게 아니라 여럿을 경쟁시키는 이 방법을 통해 호성적과 세대교체라는 두마리 토끼를 다 잡고 있는 겁니다. 물론 이 방법은 베테랑 주전급들의 부상관리에도 큰 도움이 되죠.

세번째로, 류중일 감독은 언제나 순리대로, 원칙대로의 야구를 고수합니다. 가끔보면 정말 갑갑할 때도 있어요. 순위경쟁 라이벌팀과의 중요 맞대결에서 상대가 에이스 원투펀치를 등판시키는데도 류감독은 선발 로테이션을 그냥 지킵니다. 4,5선발이라도 상관없이 그냥 내보냅니다. 12년 시즌 후반기 두산과의 3연전때, 삼성에게 특히나 강했던 투수들을 포함한 김선우-니퍼트-이용찬이 차례로 등판하며 순위가 뒤바뀔 위기였을때도 류감독은 딱히 선발 로테이션 조절을 하지 않았습니다. 올시즌 NC의 후반기 매서운 추격에 쫓기면서도 마지막 중요한 몇차례 대결에서 그냥 평범한 로테 순서 고수를 했죠. 천만다행으로 이런 중요한 승부처 고비에서 매번 승리를 따내긴 했으나 한순간에 순위가 바뀔수 있는 시즌 최대 위기상황에서 원칙대로 묵묵히 밀고 나가는건 웬만한 강심장으로는 못할 일이라 봅니다. 이번 시즌에도 여러차례 이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NC와의 맞대결때 마지막 순간 믿을맨들이 다 무너져 동점을 허용한 연장 경기에서 뜬금없이 정인욱을 낸다거나(그간 부진했던 정인욱이지만 시즌 후반/포스트시즌과 내년 시즌 이후를 생각하면 반드시 키워 내야 했던 선수였죠. 사실상 필승조가 무너진 상황에서 연장을 갔으면 롱릴리프를 내는게 맞긴 한데, 극도로 부진한 모습을 보여왔음에도 '롱릴리프 역할은 어쨌건 무조건 니가 해야함'하고 그 중요한 경기에 정인욱 밀어붙인 류감독 패기는 정말...) 시즌 우승의 향방을 가를 143번째 경기 8회에 안지만 대신 심창민-안지만 순서를 고집했던 점, 그리고 그 경기 9회에서 전경기 부진했던 임창용 대신 안지만으로 끝낼수도 있었음에도 팀 마무리의 자존심+컨디션 회복을 위해 임창용을 끝끝내 한타자 승부 시킨 점 등등 중요한 경기 중요한 순간에 투수 역할 분담을 고집하는 모습을 보여줬죠. 시즌 최종전에서도 장원삼 선수의 10승과 류감독 본인의 최소경기 400승 기록이 달려 있음에도 경기 중반이 넘어가자 무리하지 않고 주전 야수들을 빼주기 시작했습니다. 투수진 운용만 장원삼/차우찬 두 선수를 배려해줬을 뿐 기록에 집착하지 않고 순리대로 무리하지 않는 경기를 운영했죠.

이렇듯 류중일 감독은 얼핏보면 별 하는 일 없이 덕아웃에서 경기 관전만(....) 하고 있는것 처럼 보이지만, 본인이 세운 원칙하에 철저한 관리야구를 해나가고 있습니다. 최고참급 선수들을 통해 선수단을 완벽히 장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주전급 선수들의 슬럼프에는 믿음과 신뢰를 통해 스스로 해결하게 유도합니다. 그러나 주전들의 부상이 발생하면 그 부상 정도에 따라 조금은 과해보일 정도로 대처하며 휴식을 제공하죠. 그리고 그 공백을 후보군 선수들의 기회의 장으로 활용합니다. 그러면서도 절대 한명의 후보군 선수에게만 기회를 주지는 않습니다. 작년 배영섭의 군입대로 생긴 공백에는 박해민, 이영욱, 정-금지어- 등을 강제 경쟁시켰고(정-금지어-놈은 극도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음에도 계속 일정 출전기회를 주며 경쟁을 유도했음) 올해 역시 구자욱, 박해민, 박찬도를 경쟁시켰죠. 그렇게 성적을 내면서도 세대교체를 진행하고 이를 통해 선수단의 피로도를 낮춰 장기 집권을 가능케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원칙과 전략의 고수가 여태까지 계속 성공해오고 있다는 점이 바로 류중일 감독의 능력에 대한 방증이죠.

또한 류중일 감독은 전통적 명감독 스타일인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승부처에서 신묘한 전술로 상황을 뒤집는' 성격의 감독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마냥 순해보이고 결단력 없이 우유부단해 보이기까지 했죠. 그러나 그가 치뤄온 5시즌의 면면을 살펴보면 확실히 기존 스타일의 감독들과는 다른 새로운 리더쉽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위기의 순간, 승부처가 왔을때 조차 원칙을 철저히 고수하며 흔들리지 않는 용기, 류중일 감독이 가진 리더쉽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뭐 결과론적으로 어쨌거나 패넌트레이스 5연패의 위업을 달성해 냈으니 대충 오글거리는 해석을 붙이는거 아니냐고 보실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그의 전략과 리더쉽이 그런 성공을 만들어낸 것은 사실이니까요.

물론 류감독이라고 해서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국제대회에서 대표팀을 이끌었을때 보여준 (많이) 아쉬운 성적이라거나, 류감독이 다른 팀으로 옮겼을때 거기서도 잘 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는 저 역시도 그닥 긍정적 답을 내놓지는 못하겠습니다. 삼성이란 팀에 특화된 감독이며 삼성 선수단, 프런트와 맞물려 서로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키는 감독인건 분명합니다. 그러나 어쨌거나, 원리원칙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세상에서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재해와 재난을 겪는 시절을 살면서 그저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 한명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막연한 리더쉽만 모두가 갈망하고 있는 와중에, 오히려 위기의 순간 원칙을 고수하며 정면돌파할 줄 아는 뚝심과 용기를 가진 류중일식 리더쉽을 재조명 해보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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