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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전거를 훔쳤다
게시물ID : readers_2217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라바
추천 : 5
조회수 : 37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10/16 12: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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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훔친 자전거를 타고 내달리던 내 친구는 등을 보며 뒤따라 달리던 나를 돌아보며 소리치듯 말했다.
 그리고 나도 소리치며 무언가 답을 했고 우리는 내내 웃고있었다. 16년 전의 기억이다.

그 때 무슨 말을 주고 받았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공업도시를 관통하는 강을 가로지른 다리를 건너면서 세차게 페달을 밟던 내 숨소리, 빠르게 지나가는 매케한 매연의 냄새, 친구의 등 너머로 모든것을 붉게 만드는 초저녁의 노을은, 왜인지 아주 그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날의 우리가 왜 돈이 필요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16년전의 우리는 스무살이었는데 돈 몇만원이 필요한 눈앞에 닥친 일이 있었던 것 같다. 그룹사운드 동아리 선배가 일일 전단지 아르바이트 자리를 소개시켜 줬고 무조건 할게요 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럴 필요도 없었는데 고마워요 형, 하면서 굽신댔다. 자전거를 지참해야 하는 일임을 알았고 그 날의 우리는 자전거가 없었다.

 당시 그 대학가에는 훔친 자전거들이 락카범벅이 되어 골목사이에 상당히 많이 세워져 있었다. 기어가 훌륭하지 않은 보급형 자전거는 좀도둑들과 자전거방 주인들의 흥미를 끌 수 없었는지, 아무렇게나 체인없이 널부러져 있었고 그것은 마치 만화방 무협지가 마구잡이로 꼿혀있는 책꼿이를 연상케 했다.
 자정쯤 절단기를 들고 만난 우리는 누가 봐도 훔친 자전거입네 하는 은색 락카범벅의 자전거를 두 대 훔쳤고 무안하게도 절단기 조차 필요없었다. 그 순간부터 다음날 저녁 일이 끝날때 까지 나는 소풍전날의 어린이 처럼 들뜬 기분이었던 것 같다. 이른아침 전단지 사무실에서 전단지를 수령후, 수십채의 아파트를 오르락 내리락 하며 온 몸이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되었고 아디다스 로고가 새겨진 하얀 티셔츠에 더러운 얼굴자국과 손자국이 덕지덕지 뭍어가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 다음 해에 군에 입대하게 되었는데 훈련소의 마지막 행군때 그 기분과 분위기, 전단지 냄새와 팔꿈치아래로 떨어지던 땀의 기억이 마치 어떤 영혼이 내 몸안에 들어오듯 훅 하고 느껴졌던 것 같다.

 자정부터 저녁까지의 그 특별했던 시간동안 기억에 남는것은 이상하게도, 전단지 일을 마치고 보수 4만원이 들어있는 흰 봉투를 주머니에 구겨넣고 페달을 밟으며 우리 동네로 향하던 시간이다. 왜 그 때의 장면이 십수년이 지난 지금 아련하게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 때 노을이 빛나던 우리가 정말 우리였는지, 혹시 소설이나 영화처럼 가공된, 기억을 미화하는 불순한 무언가가 섞인건 아닌지 싶기도 하다.

 자전거는 도로 가져다 놓지 않았다. 자전거방에 되 팔아 이윤을 챙길 용기도 없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 해보면 웃기지만 일당 보다 더 많이 받을수 있을거라 생각도 했었지만 무서웠나보다.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강변으로 내려가 비탈에 세워두고 도망치듯 뛰어 올라갔다. 모든 양심의 무게를 내팽겨친 뒤의 가책보다 더 큰 해방감에 소년처럼 경쾌한 뜀박질이었다.
 그 다리를 건널 때 페달을 밟으며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 기억 나진 않지만 불혹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지금의 나에게는 그 때가 내 인생의 가장 뜨거웠던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지친 몸과는 반대로 넘칠듯 생동하던 무언가가 온몸에 출렁이고 신이 나 있던 시절이다.

 그리고 몇주 뒤 친구는 하사관 지원으로 군 입대를 했고 그 후의 내 생활은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가 다시 만난것은 2005년 내가 군 제대를 하고 한참 뒤 다른 도시에서였다. 친구는 중사로 진급 해 있었고 나는 주간에는 성인게임장에서 90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일을 하고, 밤에는 부업으로 스타킹을 다방과 미용학원같은 곳이 방문판매를 하고 있었다. 이후 다시 10여년이 지난 지금 친구와는 더이상 연락되지 않는다.


 이 기억은 멍청한 2인조의 도둑질이 대한 고백이요 감추고 싶은 치부이겠지만 나에게는 이런 것이다.
 스물한살의 내가 훈련소에서 행군할 때, 스물다섯의 내가 방문판매를 하며 노곤해진 다리를 쉬게 하며 음료한캔을 했을 때, 스물일곱의 내가 타국의 허허벌판 위 차량에서 별을 보며 잠들 때, 서른의 내가 제대로 된 직장에 취직후 고향의 부모님집의 내 오래된 침대에 오랜만에 누웠을 때.
 그럴 때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도망치듯 다리를 건너던 우리의 뒷 모습이 훅 하고 떠올려지는. 아련하고 아주 뜨거운, 그리고 더러운 땀냄새와 노을 빛이 뒤섞인 그 기억이 가끔은 아주 그리울 때가 있다. 단단한 유리벽 넘어 그 기억이 있어서, 볼 수는 있지만 더 이상 만질수도 느낄수도 없고 그저 그 기억이 때때로 나를 찾아온다. 그리고 무대의 관객같은 하루를 사는 지금 그 때의 기분을 다시 느끼기 힘들것이라는 생각에 콧등이 시린다.
 더 이상 그 시절처럼 무책임해서도 안되고 무엇보다, 페달을 저어 붉은 노을속으로 죽을듯이 날갯짓을 할 수도 없다는 생각도 든다. 슬프게도 지금의 나는 유리벽 속의 그 소년과 다른 사람이다.

 아마도 친구가 했던 말은 존나힘드네, 끝이 안보이네 정도의 말들이었던것 같고 그때의 우리는 아주 활짝 웃고 있었던것은 확실히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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