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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 각시 타기의 진실 여부
게시물ID : sisa_61765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지난주의유머
추천 : 2
조회수 : 1047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10/17 16:44:35
http://todayhumor.com/?bestofbest_221009
해당 베오베 글은 백성 각시 타기에 대한 글인데요
주된 댓글은
1. 외노자 관련(아무래도 백정의 유래가 외부 민족이다보니)) 콜로세움
2. 백정 각시 타기는 고려장처럼 일제가 날조한거다
는 논지인데요..

저는 날조가 아니라 보입니다.
우선 일제가 날조했다고 주장하시는 분은
1)조선은 유교 사회여서 성에 대해 엄격한데 백주대낮에 그러겠냐
2)자료 찾아보니 최근의 것만 나온다
는 것이 그 근거이죠

1)에 대해 말하자면, 우선 유교 문화라고 해서 성의 폭력과 무관하다는 걸 꼽고싶습니. 예를 들어볼까요? 조선 유교보다 더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이슬람 문화의 경우 성폭행이 없을까요? 오히려 성폭행 당한 여자들이 명예살인으로 돌 맞아 죽습니다.

여성이 남성의 소유물로 인식되고 여성인권이 없다시피하던 전근대 시절은 동서를 막론하고 당시 어떤 사회사상이던 성폭력에 대한 제재는 없다시피 했습니다. 유럽만 하더라도 여성을 성폭행 한 경우 배우자 혹은 아버지(미혼 여성)의 '재산권'을 침해했단 이유로 가해자가 처벌 받은 거였고, 성매매 여성에 대한 성폭행은 '화대'에 대한 도둑질 정도로 여겨졌습니다.

물론 조선 시대쯤 넘어오면서 강간범에 대한 처벌이 있긴 했죠. 하지만 백성급의 차별받는 천민이라면 과연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었을까요? 게다가 인권이 향상된 오늘날에도 성폭행 피해자가 신고를 못 하는 경우도  많은데 과연 그 옛날, 여성에 대한 정조를 강요하던 시절 신고해서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을까요? 게다가 백정은 평민보다도 못 한 가축취급을 받았는데요?

그리고 유교 사상은 '여성에 대한 정조'를 강요했지 남성에 대한 정조는 없다시피 했습니다. 남편은 부인 말고 첩을 들일 수 있는데도 여자는 불가능하며, 재혼한 과부의 자식에게는 온갖 신분적 불이익이 있었죠
또한 남편이 다른 여자랑 놀아난다고 질투하거나 시기하는 것도 금기시 했고요.

게다가 평민들은 위의 계급인 양반으로부터 엄청난 착취, 하대를 받았는데 이러한 분노는 당연히 아래로 돌아가죠. 현실은 픽션보다 무섭다고, 이러한 집단적 폭력은 상상을 초월하게 잔인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집단의 구조로 인한 분노를 다른 희생양에게 푸는 경우는요.
(일본의 이지메 문화, 요즘 10대들의 잔혹한 집단 따돌림을 생각하면 쉬울 듯 해요)
게다가 인권이라는 게 없는 전근대 사회에요. 오늘보다 더 상상 이상으로 잔인해질 수 있습니다. '보복'이나 '범죄'가 아닌 국가의 공식 '처벌'도 고문 수준으로 잔인한 시대였죠. 괜히 전근대적이라는 표현이 있는게 아니죠

☞요약:유교시절이라지만 여성에게만 강요된 정조였기에 남성에게는 정조가 요구되지 않아 제지할 일이 없음/게다가 피해자에게 돌아가는 화살/사회구조적 분노의 화살을 타인에게 돌리는 경우 상상 이상으로 잔혹해짐/

2)최근 자료가 없다?
물론 백정 각시 놀이/백정 각시 타기/백정 각시 놀음 등 단어가 여러개이긴 합니다. 그래서 공통 단어인 '백정 각시'로 구글링 한 결과? 2002년 자료까지 나옵니다.

"볼 만했겄네." "그 이삔 가시나를 엎어뜨리놓고 장정들이 번갈아서 올라타고 이랴! 이놈의 소가 와 안 가노! 함시로 엉덩이를 철벅철벅 때리는 기랴요. 뿐이겄소? 목에다 새끼줄을 걸고 네 발로 기게 하고 구경꾼 앞을 돌아댕기는데, 그 에미가 소개기를 가져와서 게우 풀리났지마는 좀 안된 생각도 들고," "안되기는 머가 안됐단 말이요? 백정은 사람 아닌께, 그놈들을 오냐오냐 하고 내버려두었다가는 칼 들고 소만 잡겄소? 사람도 잡을라 들 긴데? 옴짜달싹 못하게 콱 기를 지이놔야지."   사람들은 백정의 얘기로 흥을 돋우며 술을 마신다. 더러는 주점을 나가고 새 손님이 들어오기도 한다. 토지 / 박경리 / 1993

박경리 작가의 소설 토지입니다.
물론 소설에는 허구가 들어갈 수 있지만 시대상을 나타내긴 합니다. 물론 소설 자체만으로는 근거로 부족하죠

 다음은 2002년 쓰인 글입니다.(스크랩은.2007년)
갑오경장 이후 신분적으로 평등권을 얻었으나 오랜 관습은 간단히 버려지지 않았고 사회적 천시는 여전하였다.  
社會的 賤待 
백정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사람과 짐승의 중간정도의 생활을 하였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반 천민들은 때에 따라 상민으로의 신분상승을 할 수 있었으나 태어나면서부터 물려받은 백정들의 신분은 그 굴레를 벗어 날 수 없었으며 또 다시 세습되어갔다. 돈이 많아도 옷은 비단은 물론 두루마기도 입을 수 없었으며 털모자도 금지되었다. 패랭이만 쓸 수 있었으나 상민과 구별할 수 있도록 갓끈은 짚으로 꼰 새끼줄을 맸다.  
어쩌다 동리를 지나 칠 때에는 허리를 구부리고 달음박질치듯 걸어가야 했다. 일생일대 최대의 날인 혼인을 할 때에도 말이나 가마는 탈 수 없어 소등, 널빤지 타고 시집 장가를 가야만 했다. 
백정 부녀자를 끌어내다가 치마를 벗기고 소처럼 끌고 말처럼 기게 한 다음 등에 올라타는 '백정각시 놀이'가 백정에 대한 가혹 행위였음을 보여주는 한 예이다. 이렇게 천대받던 백정은 죽어 저 세상으로 건너가면서도 상여를 탈 수 없었고, 상제들 역시 상복, 방갓, 상장(지팡이)도 착용할 수 없었다. 

즉 약 10여 년 전에도 백성각시놀이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는 거죠. 아 그리고 생각난건데 갑오개혁 이후 일제강점기에 형식적으로는 신분제가 폐지되었지만 그래도 백정의 경우 호적에 빨간 점을 찍어서 구별하는 등 여전히 차별은 있었다고 하죠

그리고 드라마 '백정의 딸' 관련 자료입니다. 이 역시 최근이 아니라 이전 것이죠. 마지막으로 학습 자료 또한 첨부합니다.(모바일이라 원하는 순서대로 올라가려나 모르겠네요)

적어도 이정도 근거라면, 무작정 일제의 날조라고 보긴 어렵다고 봅니다. 딱히 조선 사람의 성품이 악해서가 아니라 구한말, 일제 강점기의 억압 등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폭력성이 약자를 향하게 되는 보편적인 문제로 보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러한 문화를 옹호하자는 건 아닙니다. 분노를 약자에게 표출하는 것은 오늘날에도 있습니다. 단지 '일제의 날조'로 치부하며 없는 것 취급하기보단 우리 조상의 잘못을 인지하고 또 오늘날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듯 합니다

수평폭력, 갑질, 혐오범죄, 헬조선, 죽창 등등
요즘들어 많이 거칠고 또 분노로 가득한 사회입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되돌아보는게 어떨까 합니다.    
출처 http://www.parkseolim.pe.kr/%EC%A2%85%EC%8B%AC%EB%A7%8C%ED%95%84/%EB%B0%95%EC%A0%95%EB%9E%80.html
http://ebook-lib.gnedu.net/src/viewer/main.php?host=main&site=20130922_000055_10&category=1&page=39
http://m.blog.daum.net/iron0404/10816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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