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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압]나의 영웅, 마왕을 그리며..내 인생에서의 신해철이라는 사람은..
게시물ID : star_32559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앨리샤플로릭
추천 : 18
조회수 : 749회
댓글수 : 12개
등록시간 : 2015/10/27 00:5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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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작년 이맘때, 마왕이 가고 심란한 마음에 블로그에 올렸던 글입니다.
1주기.. 오유에도 나누고 싶어 가지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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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이 지금의 인터넷을 보고 라디오를 듣고 TV를 보면, 아마 낯간지러워 죽을려 할거다. 흑역사로 치부되어 올리기만 하면 아이디 정지형이나 아이디 삭제형을 먹던 타이거 광고가 갑자기 온 인터넷에 퍼져 나돌고, 마왕이 데뷔할 때 녹음했던 음원들이 온 라디오에서 나온다. 마왕은 5.5집을 녹음하고 난 뒤 제발 이제 이 버젼으로 듣자고 항상 이야기 했다. 옛날버젼 들으면 본인의 부족함들이 모든면에서 너무 많이 들려서 본인을 미치게 한다며ㅎㅎ... 오케스트라랑 같이 엄청나게 작업을 해놨구만 왜 옛날 미디 버젼을 듣냐며..ㅎㅎ 하지만 이걸 어째.. 옛 신해철은 추억한다며 방송에서는 대부분 옛날 버젼으로 나온다.

그리고 마왕은 슬퍼하는 팬들과 식구들을 보고 분명히 이렇게 말하고 있을거다. 그러게 있을때 잘하랬지!!!



1.jpg

............마왕 글을 쓰며 이 사진을 첨부하다니..ㅋㅋ 할수만 있다면 마왕은 내 아이디를 정지시키려 했을거야...ㅋㅋ



신해철은, 나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마왕'이다. 89년생인 나는 마왕이 데뷔하고 잘 나가던 최고의 시절에 나는 이제 갓 태어나서 응애응애 했으니까, 나에게 무한궤도나 신해철 이라는 이름은 낯설었다. 내가 마왕을 알게 된 것은 당연히 고스트네이션 덕분이었다. 라디오와 (특히 MBC FM4U) 꽤 친하던 중딩이던 나는 이소라의 음악도시 애청자였다.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아마 음도가 11시에서 1시까지 했지 않나 싶다. 커피 마시고 잠이 오지 않아 고통스러워하며 누워있는데 음도가 끝나더니 갑자기 이상한 로고송이 나왔다. We are the children of darkness.. 하는 그 로고송ㅎㅎ 뭔가.. 인디아나 존스에나 나올법한 원주민들의 노래?!!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지. 그러고 어떤 아주 낮은 목소리를 가진 남자가 나와서 라디오를 하는데, 좀 이상했다. 샤방샤방 언제나 밝고 이런저런 노래도 많이 나오는 다른 라디오와 다르게 이 라디오는 지나치게 음산하고 어두웠다. 그리고 노래도 안나오고. 처음 들었던날이 아마 수요일이었을까. 상담소를 한다더니만 갑자기 전화연결을 하더라.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전화를 건 청취자가 마왕! 하면서 반말로 막 이야기를 하고 마왕도 막 반말로 대답을 하는거다. 상담 내용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확실한건 상담을 해주는 남자가 굉장히.. 뭔가 트인 사고를 가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났다. 와 이런 이야기를 해주네? 싶었다. 아.. 새벽2시에 이상한 방송 하나가 하는데 그 DJ가 좀 좋은것 같다. 고스 첫방의 느낌이다. 기억난다. 지금도.

그러고 그 방송을 다시 듣고 싶었는데, 항상 잠에 져서 로고송만 겨우 듣고 첨 나오는 마왕 목소리 두세마디 듣다가 잠에 들어버리고 해서 잘 못들었다. 아마 이럴때 까지도 그 저음의 목소리를 가진 이상한 DJ가 신해철이라는 사람이라는걸 몰랐다. 그리고 몇 주?쯤 뒤에 인터넷을 검색해봤는데, DJ이름이나 방송 이름을 몰라서 검색을 못했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FM4U 들어가서 방영표 보고 알았다. 이소라 음도 뒤에 하는 방송은 신해철의 고스트네이션 이구나. 신해철이구나............. 근데, 신해철이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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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았다. 이걸 읽은 사람들은 아니 어떻게 신해철을 모를수가 있지? 싶은 분도 있겠만, 나는 89년생이고 그 당시 아마 난 중2? 정도였다. 2002-2003년 그정도. 열네댓살 먹은 소녀가 알 수 있을리가...

그리고 신해철이라는 사람과 또 다른 인연이 된 건  '체벌 금지 법제화 추진 모임'이라는 카페(http://cafe.daum.net/nopunish)에서 였다. 학생인권운동 쪽으로 검색하다 그 카페를 어쩌다 접하고 가입을 했는데 카페주인이 신해철이었다. 여기서도 나는 생각했다 아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어디였지?????

 

기억이 희미하고 가물가물해서 뭐가 먼저였고 그런 디테일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언젠가 아 내가 듣던 라디오의 DJ와 체벌금지모임의 카페지기가 같은 사람이라는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 왔다. 모든게 퍼즐 맞추듯 맞춰지는 순간이었다. 아마 이 깨달음 전후로 고스를 본격적으로 듣게된다.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하던 중학생으로서 나에게 새벽 1시부터 3시까지 라는 시간은 지나치게 늦은 시간이었다. 고스를 본격적으로 듣게 된 것은 내가 자동녹음 기능이 있는 MP3를 사면서부터다. 아이리버의 MP3였는데, 아마.. 용량이 512메가 뭐 이랬지싶다. 매일 밤에 자기전에 가장 녹음이 잘되는 곳에 MP3를 놓고 이어폰을 늘여뜨려 놓는다. 매일매일 그랬다. 정말 매일매일. 그리고 녹음된 고스를 매일매일 들었다. 나는 수학공부를 할 때면 뭐든지 들어도 괜찮았는데, 항상 고스를 들었다. 내일이 다른 과목 시험이라도, 나는 고스를 듣기 위해 수학공부를 해야했다. 수학공부를 많이 해야 했다면 나는 고스를 두번도, 세번도 더 들었다. 그렇게 2007년까지.. 꼬박 5년 정도를 하루도 빠짐 없이 들었다.

 

그리고 고스를 들으면서 내 인생의 가치관과 나의 생각의 방향이 정립되기 시작했다.


3.jpg



그 중에서도 책상 앞에 붙여놓고 늘 봐왔던 말이 '오늘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은 내일도 행복할 수 없다' 는 것이다. 마왕을 만나기 전까지 나의 좌우명은 '고진감래' 였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지금은 너무너무 불행하지만, 언젠가 행복할 것이기 때문에, 나는 이 불행을 감수하겠고, 나는 괜찮다. 이런 의미로 고진감래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었는데, 마왕이 오늘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과연 내일 행복할까???? 하는 이야기를 했다.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 마왕은 오늘 지금 당장 행복해져야 한다고 했다. 나의 이 오늘들이, 이 일상들이 모여서 과거가 되고 미래가 되는거라고. 그런 요지의 말을 우루루 뱉어냈다. 그 날부터 나의 인생이 달라졌다. 매일매일의 한 순간 한 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헛투로 쓰지 않아야 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현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삶은 행복해졌다.

 

마왕은 또, 여유를 가지며 살자며, 하루에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흘려버리는 시간을 10분만 갖자고 했다. (5분이었던가.. 10분이었던가... 가물가물..ㅎㅎ) 아무리 바빠도 그냥 멍하게 있는 시간 10분. 그 정도는 괜찮다며, 한번 해보자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음악에 대해서도 알려줬다. 나에게 레드제플린을 알려주었고, 비틀즈를 알려주었고, 딥퍼플을 알려주었다. '요즘 애들은 레드제플린을 모르더라' 하면서 시작한 레드제플린 특집. 내가 그 레드제플린을 모르던 요즘 애들이었다. 그리고 인디음악의 세계도 알려주었다. 진짜 자신이 하고싶어 하는 음악을 하는 가난한 인디 음악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며 많은 노래들을 들려주었다. 노브레인이 유명해지기 전에, 넬을 사람들이 모를 때, 네미시스가 정식 녹음된 음반이 아직도 없을 때 나는 고스를 통해 이들의 음악을 접했다. 페퍼톤스, 피아, 못,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내귀의 도청장치, 뷰렛.... 이런 인디밴드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중딩 때부터 아이돌은 전혀 모르면서 이런 인디밴드들은 줄줄줄 꿰고 다녔다. 서울에 사는 것도 아니고 지방의 아주 조그만한 도시에 사는 중딩 여학생이 말이다.

 

이것 뿐만 아니라, 마왕은 정말 인생 전반에 걸친 이야기를 다 해줬다. 지금 당장 기억나는건 엄마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 성교육에 관한 이야기, 고3에 대한 이야기, 뮤지션과 만화가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 등등등등... 수도 없다.

 

그리고 마왕은 본인의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때의 마음이 어땠고, 가족들이 반대를 얼마나 했고, 대학가요제 우승했던 날 밤에 어떤 반응이었고, 지금은 어떻게 변하셨고, 와이프를 처음 만났을때, 연애할때 어땠고, 어쩌다 결혼을 하게됐고, 지금은 얼마나 행복하고, 동동이와 동생에는 어떻게 태어났고 등등등.... 마왕은 정말 진심으로 라디오를 친구라 생각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일이 생기면 달려와 이야기하는 친구. 무슨 일이든 다 이야기하고 들어주고 서로 조언해주는 친구. 나도 그 중 하나였고, 나도 그를 진짜 친구라 생각했다.

 

이런것이 내가 중2-3 무렵부터 고3까지. 마왕 위키에 가니 이 시기를 고스3기 라고 부르고 있더구만. 중간에 표준FM으로 옮겨서 1시간짜리 방송이 되었던것 같다. 그 앞 타임이 아마 박경림의 심심타파 였던듯. 경림언니가 항상 마지막에 아직도 심심하세요? 하고 끝내고 잠시후에 또 We are the children of darkness~ 했었지.

 

그런데 내가 고3.. 수능을 한 한달 앞둔 시기 쯤에 고스 듣기를 그만두었다. 수능 공부에 방해가 되어서나 뭐 그런 이유는 절대로 아니었고, 마왕의 이야기가 이제 식상해지기 시작해서였다. 처음에는 마왕의 사고방식이 너무 신기하고, 나도 너무 어려서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채였는데, 4-5년쯤 매일매일 하루에 한두시간씩 이야기를 듣고, 듣고, 듣다보니 이제 마왕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에 대해서 알 것 같고, 이제 나도 꽤나 컸다고 내 생각이 정립되기 시작했다. 실제로 많은 이야기들이 반복되기도 했었고, 사연 들으며 이런 사연에서는 이런식으로 이야기 하겠군 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많이 어긋나지 않게 마왕이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고스가 이젠 식상해지기 시작했다. 친구 이야기도 너무 많이 반복해서 들으면 힘들어지는데, 뭔가 나에게 그런 시기가 왔고, 어느 시점에 아 이제 그만들어도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딱 그만들었다. 그게 어렴풋한 내 기억에 수능 한달 전이었다. 그 이후 고쓰는 인터넷으로 옮기기도하고, 방송사도 옮기기도 하고.. 그랬던걸로 알고 있는데, 수능 끝나고, 대학오며 동아리에 올인하느라 바빠서 다시 라디오를 들을 겨를이 없었던것 같다. 그리고 어느시점에서는 팟캐스트라는 새로운 매체를 접하게 된것 같고.

 

그러고 마왕은 한 번씩 방송에도 나오고 그랬다. 이런저런 방송들에 게스트로 출연하기도하고, 고민 상담소를 케이블에서 하기도 했던것 같고, 그랬다. TV랑 그닥 친하지 않은 나로서 그럴 때마다 먼 발치에서 보며 아 잘지내고 있구나 응원하고 또 보게 되면 반가워서 보고 그랬다.



4.jpg

내 싸이에 있는 '마왕과 넥스트'폴더. 사진이 백장도 넘게 있더라. 오랫만에 보다가 가슴아픈 사진 하나 발견..ㅜㅜ.. 아마 무슨 드라마같은데서 분장할일이 있었나본데, 50년 이후의 본인이라며 저렇게 마왕이 적어놨다....... 이렇게 되기를 정말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나는 그저 고스 식구이기만 했다. 넥스트 팬은 아니었다... 마왕의 노래들은 물론 엄청나게 많이 들어댔고 좋아했지만, 공연을 간다거나 한 적은 없었다... 그냥 어둠에서 암약하며 혼자 좋아하며 씩 웃는 식구였다. 그래서 나에게 마왕은 마왕일 뿐이다. 해철오빠나 해철님이나 이런 다른 호칭은 나에겐 어색하다. 그는 영원한 나의 마왕이다.

 




마왕은 언제나 갑작스러운 죽음을 가장 두려워했다. 항상 사랑하는 사람과 작별할 시간 없이 갑자기 맞게되는 죽음을 가장 안타까워했다. 그러니 그 대비로 생전에 촬영해두었던 유언장이 이슈가 되고 있지... 그런데 마왕이 그렇게 갔다. 갑작스레 쓰러져 6일을 못깨어 나고 혼수상태에 있다가 그대로 가버렸다. 그래서 슬프다. 그의 생이 너무 짧아서 슬프기도 하지만, 더 슬픈건 갑작스럽게 갔다는 것이다. 게다가 나는 그가 어떤 삶을 거쳐 지금의 행복을 얻었는지, 그의 와이프와 아이들이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너무너무 잘 알기 때문에, 이 행복을 얼마 맛보지 못하고 그렇게 갑작스럽게 갔다는 것이 가장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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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마왕의 죽음은 나에게 제3자의 죽음이 아닌, 마음을 나눈 벗의 죽음으로 다가온다. 주변 사람들도 나에게 신해철의 의미를 아는 사람들은 나에게 위로의 말을 해주었다.. 물론 가족들과 그와 실제로 가까웠던 이들이 느끼는 신해철의 죽음에 대한 슬픔은 나보다 백만배쯤 크겠지만.. 비교할 수 없겠지만.. 하지만 나도 가장 가까운 마음의 벗을 잃은 기분이다.

그래서 어제는 술 한 잔 했다. 아주 오랜만에. 아마 마왕은 원래 같았으면 본인의 죽음을 슬퍼하고 못 벗어나는 팬들을 보면 '뭐, 내가 영원히 살줄 알았냐?' 하며 많이 슬퍼하지 말라고 했을것 같다. 하지만 너무 갑작스럽게 가지 않았나. 절대 본인이 원한 방식의 최후가 아니었을 것이기에, 그를 위해 술이라도 한 잔 마셔주고 싶었고, 슬퍼해주고 싶었다.

 

 

 

 

'제일 좋아하는 연예인은 신해철이다' 라고 말하면 대게의 경우 사람들은 놀란다. 여러 타입이 있는데 일단 가장 많은게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이, "네 나이 대가 좋아할만한 연예인이 아닌데 어쩌다???"고, 가끔 동생들은 아예 "그게 누구냐?"라는 질문을 하고, "??? 그 백분토론에 이상한 옷입고 나오는 가수를??" 이라는 반응도 많았다.

내 윗세대 분들은 신해철이 얼마나 인기 있었는지 알고하니 나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 또래나 아랫세대 친구들은 나를 이해 못한다는 반응이 절대다수였고, 참 특이한 사람 좋아하는 특이한 애네 하는 취급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난 절대 특이한 취향이 아니다. 마왕? 잘생겨서 좋아한거야.

 

6.jpg

89년생△                    68년생△

이 두 사진은 비슷한 시기에 촬영된것이었던걸로 기억..ㅎㅎ...



 

히히.

하................

그가 갑작스럽게 떠나버리는 바람에 완전 전설이 되고 있는 기분이다. 100살쯤 살다 갔어도 갈 때는 전설이겠지만, 더 큰 전설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갑작스럽게 떠나는 바람에.. 더 크게 아쉽고, 더 크게 슬프다. 훨씬 더............ 하... 있을 때 잘할껄.. 있을 때 잘할걸...........

 

  

 

마왕에 관한 글을 쓰다보니 역시 마무리가 안되네.

조금 뜬금 없지만....

 

마무리는 마왕이.

 

 

 

2014. 10. 29.

작은마녀 


출처 직접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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