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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이야기 7.1 의료사고의 위험지대
게시물ID : readers_2314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원칙과정의
추천 : 12
조회수 : 1161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5/12/13 11:5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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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이 지면에 글을 적다 보면 아무래도 전공의 시절의 이야기를 많이 쓰게 됩니다. 가장 위중한 환자를 가장 여러 명 정신없이 보면서 동시에 가장 많이 배웠던 시절이기 때문일 겁니다. 대학병원에서 전원 온 교통사고 환자를 보다 예전에 저의 전공의 시절 모습이 떠올라 이 글을 씁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적절한 의료 전달체계의 부재와 응급의료 시스템의 한계로 많은 부작용을 앓고 있습니다. 그래서 3차 병원, 대학병원 응급실엔 언제나 환자가 많지요. 이 부작용에 의한 고통은 이미 많은 분들이 겪어보셨을 겁니다.


하지만 점점 늘어나는 환자 수에 맞지 않게 근무하는 의료인력은 항상 모자랍니다. 의료보험공단에서 수십 년간 응급실 진료에 대한 수가를 적절하게 보상하지 않으면서 문제가 적체된 이유일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근무 중인 의료인으로서는 한 환자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 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자세하게 환자 보호자께 그 결과와 향후 계획을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 같은 상황들로 인해 과거 수련받던 대학병원 응급실 현장에서
이뤄지는 진료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환자 리스트에 새로운 환자가 접수되었음을 알리는 메시지가 뜹니다. 또는 급하거나 중한 환자의 경우 실려 들어가는 상태를 보고 1,2년 차 전공의가 환자 초진을 맡습니다. 침상에 다가가 몇 가지 문진과 진찰을 하고 의심되는 질환들을 고려해 검사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근처에 빈 컴퓨터로 다가가 계획했던 바에 따라 오더를 전산 프로그램에 입력하게 되지요. 피검사와 수액,  X-ray와 필요한 경우 CT 검사까지 오더를 내고 통증 조절이나 호흡기 치료 등 필요한 응급처치를 내는 데까지 약 10여분이 걸립니다. 그럼 그 오더를 확인한 간호사가 채혈을 하고 수액을 달고 검사를 진행하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다음입니다. 이 과정이 진행되고 나면 결과가 나오는 한 시간에서 두 시간 가량은 보통 그 환자의 진행경과를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아니, 그 환자의 존재를 잊다시피 하게 됩니다. 계속 새로운 환자가 접수되고 전공의는 환자마다 같은 과정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이 3,4년 차 시니어 전공의는 급성 심근경색이나 뇌출혈 등 위급한 환자의 처치를 도맡거나 중환자실이 없어 대기하는 환자를 관찰하고 협진이 빨리 진행되지 않는 경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신없이 바쁩니다.


자기가 맡은 환자의 주치의인데 아무리 바쁘고 정신없어도 그렇지
그 존재를 한두 시간 동안이나 잊어버린다는 게 말이 되나 싶으시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습니다. 사람이 한 번에 기억할 수 있는 정보에 한계가 있을진대, 한 응급실에서 동시에 치료받고 있는 (소위 깔려있는) 환자 수가 적게는 20명에서 많게는 50명까지 있는 도떼기시장 같은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자기가 맡은 환자 수십 명을 동시에 모두 기억하고 중간중간 결과를 확인하며 몇 분마다 증상이 어떤지 확인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것입니다. 심한 경우 불과 한 시간 전에 진찰했던 환자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아 이름을 부르며 응급실을 헤집고 다니기도 합니다. (맞습니다. 제가 자주 그랬습니다.) 


그렇다 보니 앞서 설명한 진료 방법들이 어려운 가운데 나름 시스템화 된 방법이 되어버렸습니다. 수많은 환자를 동시에 진료하기 위해 처음 진료볼 때 한 번, 한 환자에 집중해서 오더를 내리고, 결과가 나오는 한두 시간 뒤에 다시 집중해서 결과를 판독하고, 증상 변화를 확인하여 미진한 부분이 있으면 처치나 오더를 추가하고, 모든 결론이 났으면 퇴원을 결정하거나 입원이 필요한 경우 해당과 전공의에 연락해 입원장을 발부하는 방식으로 응급실 진료가 진행되게 됩니다.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환자가 입원을 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근무자의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열악하고 힘들기도 하지만 사실 더 큰 문제는 환자의 안전입니다. 주치의가 신경 쓰지 못하는 한두 시간 동안 환자의 상태는 진행되기 마련이고 종종 주치의로부터 잊힌 환자에게 심각한 위험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끄럽고 가슴 아픈 기억이지만 전공의 시절에 저의 기민하지 못함으로 환자의 생명을 놓쳤던 기억을 고백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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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brunch.co.kr/@csj3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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