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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빨간 사랑
게시물ID : panic_8530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환상괴담
추천 : 44
조회수 : 3693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5/12/27 12:49:36
혜라는 오늘도 독촉 전화에 시달리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드센 그녀도 돈 앞에선 비굴해질 수 밖에 없었다.
최대한 공손하게, 최대한 불쌍하게, 빌고 또 빌어야했다.
 
" 네, 네, 그럼요, 갚아야죠. 내일은 어렵습니다, 죄송해요, 아뇨, 그게 아니라... "
 
같은 얘기를 몇 번째 하는 걸까,
없는 돈이 땅에서 솟을리도 없는데 갚으라고 하는 마당에 못 준다는 말을 돌리고 돌려말하길 한 시간째.
슬슬 행동으로 압박이 들어올 즈음이란 걸 알기에 더욱 다급했다.
 
"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진 어떻게든 해.. 끊었네. 개새끼들! "
 
공손하던 태도는 급변했고, 두 손으로 쥐고 있던 핸드폰은 투포환 마냥 날아가 이불 속에 박혔다.
 
" 내가 왜! 이 꼬라지로 살아야되는데! "
 
씩씩대던 혜라는 방문에 반쯤 숨어 자신의 눈치를 보는 얼굴 하나에게로 다가갔다.
눈망울이 쪼그라들더니 나머지 반도 어디론가 숨어버린다.
 
" 너 어디가? "
 
" 엄마... "
 
" 뭐 잘못했어? "
 
" 아니요. "
 
" 근데 왜 내 눈치를 봤지? "
 
" ... "
 
" 왜 그랬을까? 잘못했구나? "
 
" 아니요. "
 
" 잘못했어. "
 
" 아니에요. "
 
" 나쁘다, 그치? 지금 거짓말 하고 있는거지? "
 
" 거짓말 안 했어요. "
 
" 뭘 숨기고 있는거야~? 나처럼 나쁜 사람 되려고? 나쁜 짓 숨기다가 아까 벌 받는 거 봤지? "
 
" ... 네? "
 
" 잘못했다고 말 하는 거 어렵지 않지? 나도 아까 미안하다고 막 사과하지? "
 
" 네? "
 
" 뭐 잘못했냐고. 왜 눈치 보는건데? "
 
" 아니에요, 배고픈데- 엄마 전화 하고 있어서- "
 
" 배가 고팠어? "
 
" 네... "
 
" 맛있는 거 먹고 싶어? "
 
" 네... "
 
" 아주 팔자 좋구나, 팔자 좋아. 나는 빚쟁이가 되서 죽을 판인데. 배가 고파? 괘씸하네. "
 
" 엄마... "
 
" 엄마라고 부르지 마. 나 니 엄마 아냐. "
 
" 엄마... "
 
" 엄마라고 부르지 말랬잖아, 존나 듣기 싫네 진짜! 내가 왜 니 엄마야, 내가 낳은 것도 아닌데! "
 
" 왜 그래요, 무서워요. "
 
" 무서워? 뭐가 무서워, 빚쟁이한테 아무 말도 못 하는데, 너도 내가 우스워? 아주 웃겨? 개새끼, 똑바로 서있어.
어딨어, 어딨지? "
 
" 하지마세요! "
 
" 여깄네~ 헤헤. "
 
" 엄마! 엄마! "
 
반짝이면서 길쭉한 무엇, 그건 옷을 거는 행거 막대였다.
 
" 잘못이 없다? 괘씸하네~ 혼나야겠어! 배고파서 그랬어요?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시네요오? "
 
"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안 그럴게요. "
 
부-웅! 브-우웅!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바람 가르는 소리가 요란했다.
 
" 내가 화가 아주 많이 났거든. "
 
" 배고프다고 안 할게요, 용서해주세요. "
 
" 닥쳐, 너까지 내가 우습냐 이제? 어! "
 
파이프가 움직이자 철썩대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터졌다.
 
" 엄마! 하지마세요, 잘못했어요, 네? "
 
" 개, 새, 개새, 개새끼, 씩, 씩. "
 
" 엄마! "
 
" 내가, 돈을, 안 갚은게, 어, 뭐, 있어야 갚지 "
 
" 엄마, 하지마세요! "
 
철썩, 철썩, 쇳몽둥이가 뼈와 살집을 내리치는 소리가 뒹굴거린다.
비명이 핏물처럼 흘러와 섞인다, 고통의 반죽이 치대지고 있다.
 
" 내가! 있어야 갚지! 개새끼들아! "
 
"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엄마! 엄마아아! "
 
" 너! 너 때문에! 너가 쳐먹고! 쳐입고! 쳐싸고! 거기 돈 다 들어가서! 내가 이 모양! 이 꼴로!
나 너 때문에 옷 못 사고, 놀러 못 가고, 빌린 돈! 다 어디가고! "
 
" 헙, 엄, 으, 어, 머마, 엄마-악, 악-.. 므아, 어업! "
 
" 일어서. "
 
새빨갛게 달아오른 허벅지와 부어오르기 시작한 무릎이 말을 듣지 않는 모양인지 어린 것은 뻗어버렸다.
 
" 일어서라고, 쇼하지말고. "
 
어린 것은 겨우 찾아온 그 정적이 달콤하여, 일어나면 찾아올 먹구름이 무섭기도 하여, 그저 눈을 질끈 감은 채 누워있다.
떠올렸겠지, 곰을 만나서 죽은 척을 했더니 곰이 지나가더라는 동화 속 내용을-... 그래, 곰을 피하려 하는구나.
 
" 씨팔, 일어나라고 했지, 너 병원 가면 또 병원비 나온다고! 씨바, 안 그래도 돈 없어서 죽겠는데! 일어나! "
 
어린 것은 귀가 떨어질 것 같은 고통을 느끼자 말을 듣지 않던 다리가 움직였다,
다리가 휘청하고 풀렸지만 완력이 귀를 잡아당겨 억지로 일어서게 했다. 귀가 조금 찢어진 듯 아팠지만
다리가 더 아팠으니 그정도 고통은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 아프냐? 아프냐고! "
 
" 아, 아, 아니요. "
 
" 근데 왜 안 일어서? "
 
" 어, 어, 그게, 잠 들었나봐요. "
 
" 그렇지? 그래. 좋아. 배고프다고 했으니까 먹을 걸 줘야지. 착하게 기다리고 있어. 말썽 부리지 말고. 죽여버리고 싶으니까. "
 
" 죄송... "
 
" 닥쳐! "
 
냉장고를 연 혜라는 아주 새빨간 무언가를 잔뜩 꺼내어 도마도 없이 손으로 짓이겼다.
사방으로 노란 점들이 튀어올랐다. 그걸 노려보는 혜라의 눈도 빨갛고 노랗게 점멸하고 있었다.
 
" 이히히히, 맛없다고 뱉기만 해봐. "
 
퉁퉁 부어오르기 시작한 다리로 간신히 서있는 어린 것은 그 모습을 보며 두려움에 떨고 있다,
다리가 쓰라렸다. 온통 생채기로 얼룩진 다리에서 흐르는 빨간 방울들은 혜라가 들고 오는 한 움큼의 색깔과 비슷했다.
 
" 아~ "
 
" 엄..마아.. "
 
차마 거절하지 못한 채 벌린 어린 것의 입에 빨간 토막이 들어갔다.
 
" 꼭꼭 씹어. "
 
" ... 윽-.. "
 
" 입 밖으로 쓸데없는 소리 나오기만 해봐. 내 요리가 맛 없어? "
 
" ... !! "
 
어린 것은 입을 꾹 다문 채 콧물과 침을 질질 흘린다, 청양고추다, 빨간 색만큼이나 빨갛게 매운.
 
" 맛있지? "
 
전혀 그렇지 못 하지만 그동안의 학습은 어린 것의 고개를 아주 쉽게 끄덕이게 했다.
 
" 자, 더 있어, 입 벌려. "
 
아- 하고 연 입 속이 붉다.
 
" 빨리 다 안 삼켜? 더 달라며. "
 
어린 것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진다, 다리만큼이나 얼굴도 붉어진다.
그 눈물은 고통의 강이다,
그래, 고통의 강이 흐른다, 흘러적신다, 그 어린 세상이 젖었다,
얼룩졌다,
그 강에선 누구도 손을 씻을 수 없다,
아주 새빨간 강이 되버렸으니까.
 
몇 번에 걸친 붉은 만찬이 끝난 파티장에 마침내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 으에엑, 으엑! "
 
" 아, 미친! 어디 토하는거야! "
 
펑펑, 불꽃놀이에요, 여러분. 와서 구경하시죠. 아주 붉고 노오란 불꽃이 터지고 있으니!
 
다시 귀를 잡아당깁니다,
일번말, 일번말이 이번말을 끌고 어디론가 달려갑니다,
두구두구두구, 이 레이스의 승리자는 누가 될 것인가, 우리의 다크호스 일번말,
일번말이 향하는 곳은 욕실입니다, 이번말, 따라붙습니다, 아니 거의 끌려갑니다,
일번말이 이번말의 귀를 잡아끌고 있습니다,
치열한 승부, 네, 마침내 일번말이 골인합니다!
이번말이 아쉽게도 이등으로 도착하며 마침내 욕실의 문이 닫깁니다~
 
" 얼굴도 빨갛고 입도 빨갛고 무릎하고 발까지 빨갛네~ 뽀득뽀득 씻어야 하얘지겠어~ "
 
" 아... 으... "
 
" 룰룰루~ "
 
쏴아아, 샤워기를 틀자 물줄기가 시원하게 뿜어져나왔다.
혜라는 손으로 물 온도를 쟀다. 적당한 온도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아직 덜 차갑군, 아직이야, 아직, 차가워, 조금 더, 이히, 이거야, 이제 춥겠다.
 
" 자, 씻자! "
 
" 으우웃, 우우, 엄마, 살려주세요. "
 
" 씻겨주는건데 무슨 소리야? 너 혼날래? 아니면 또 먹을래? "
 
"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
 
얼음 같이 차가운 물줄기를 맞으며 비틀거리는 몸뚱이는 상처를 벌어지게 만들었다,
핏물이 되어 흐른다, 조금 붉은 색의 물이 배수구로 왈칵왈칵 흘러들어간다.
 
" 밥 먹이고~ 씻겼으니까~ 이제 재우면 되겠다~ "
 
" ... "
 
어린 것이 작은 움직임조차 하지 않는다.
혜라는 눈도 꿈뻑하지 않는다, 그녀의 눈에 어린 것이 어떤 위험에 처해있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녀가 처한 갑갑한 하루하루가 증오스러울 뿐.

ㅡ ...
 
 
이 이야기는 실화입니다.
소설이라고 믿고 싶지만 실화입니다.
아이는 30분을 넘도록 구타 당했고, 10분이 넘도록 찬물을 맞았습니다.
아이는 다음 날 오후 4시 병원에서 사망했습니다.
키 82cm 몸무게 12kg에 불과한 아이는 양손을 비비며 잘못했다고 말했었다고 합니다.
딸은 사망 당시 전체 혈액의 5분의 1 이상을 잃은 상태였으며 심장 속에도 피가 거의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딸의 입양모는 살인 혐의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이 소설의 끝을 소설이 아닌 설명으로 마무리 짓는 것은,
우리 주변에 일어나고 있을 가정 폭력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주시기를 부탁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읽히기 위해, 추천을 받기 위해 글을 쓰는 아마추어 작가입니다만,
이 글을 쓰면서 너무도 큰 심적인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의 창작을 중단하고 작가이기 전에 한 명의 사람으로서 이렇게 마무리를 짓습니다.
우리가 막을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삶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순 없어도,
불행으로부터 구해줄 수는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이 읽으신 소설은,
아니, 여러분이 읽으신 실제로 있었을 저 이야기는,
바로 우리가 구해주지 못 했던,
우리가 관심 없었던,
우리 옆집에서 있었던,
 
실화이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출처 이 내용은 실화를 각색한 것이며, 극도로 혐오스러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잔인한 내용에 익숙하지 않은 분이라면 읽기를 권장해드리지 않으며,
"어떤 교훈"도 담고있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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