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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이야기 8.3 봉사는 제게 운명의 길이었습니다
게시물ID : readers_2335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원칙과정의
추천 : 2
조회수 : 85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12/27 22:4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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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원에서 진료하면서 꼭 한번 만나 뵙고 얘기 나누고 싶은 분이 있었습니다. 신경외과 고영초 교수님인데요. 요셉의원을 주제로 강의를 준비할 때 방송 영상 자료를 보면서, 환자를 편안하게 해주는 인자한 웃음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소개를 먼저 드리자면 고영초 교수님은 현재 건국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로 재직 중이십니다. 의사가 된 이래 38년간, 의사로서의 인생 전체를 봉사진료와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같은 활동을 인정받아 2012년 제2기 국민추천 포상 수상과 2014년 제11회 장기려 의도상을 수상하신 바 있습니다.


수요일에 봉사진료를 하고 계셔서 평소 월요일에 주로 봉사진료를 진행하는 저와는 직접 마주칠 기회가 없었는데, 어제 우연히 만나 뵙고 진료 후 잠시 인터뷰 형식으로 시간을 내주십사 요청 드렸습니다. 물론 흔쾌히 허락하셨고요. 이 기회를 빌어 어떻게 봉사진료를 시작하게 되셨는지,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여쭈었습니다.


방송 영상 : 헬스메디 TV 닥터스 스토리 12회 히포크라테스의 꿈 중에서

https://youtu.be/a142qMX_vSk

   



봉사진료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는 어떻게 되나요?


봉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말하자면 어렸을 적 비밀 얘기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비밀을 오늘 공개하게 생겼네요. 1960년 4월 19일, 제가 초등학생 때에요. 그때 가족들이 청량리 쪽에 살고 있었는데 하굣길에 대학생들 데모대 틈에 휩쓸려 버렸어요. 데모하는 모습 구경하면서 따라갔었던 거지요. 그렇게 따라가다 용산까지 가게 된 거예요. 그리고 그날 오후 5시, 계엄령이 선포되었어요.


집에 갈 방법을 모르니 삼각지 근방에서 울고 있었어요. 그때 한 서울대 의대 4학년 학생이 저를 데려다 하숙집에서 하루 재워줬어요. 그날 여러 사람이 죽고 다쳤기 때문에 아이가 집에 돌아오지 않으니 집안 어르신들이 난리통에 죽었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이에요. 다음날 집에 돌아가 보니 죽었던 아이가 살아 돌아왔다며 반기시던 모습이 생각나요. 그때 처음으로 의사란 이런 사람이구나 생각했던 것 같아요.


참고 자료 : 4.19 혁명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4%C2%B719_%ED%98%81%EB%AA%85


참고 자료 : 4.19 혁명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78779&cid=46626&categoryId=46626



어렸을 때 꿈은 신부님이 되는 것이었어요. 가족이 모두 천주교 신자라 아버님은 세 아들 중 하나를 신부님으로 키우는 게 어떠냐는 신부님의 제안을 듣고 저를 신부님으로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해요. 당시 저도 인자한 신부님의 모습이 좋아 신부님이 되겠다고 했고요. 1965년 중학교를 신학교로 입학했고 69년까지 다녔어요. 당시에 신학교는 일반학교와 학제가 달랐어요. 예를 들면 수학은 주 2시간만 배우고 영어, 라틴어, 체육 등을 각각 주 10시간씩 배우는 식으로 달랐어요. 아마 일찍부터 신부님이 될 준비를 시키자는 거였겠죠.


1969년 고등학교 2학년 나이 때, 처음으로 대학교 예비고사가 치러졌는데 신학교에 있던 고3 선배들이 예비고사에서 여럿 떨어지는 거예요. 당시엔 예비고사에서 합격을 해야 대학교 시험을 칠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아, 신학교 수업에 문제가 있구나, 일반학교에서 공부를 해봐야겠다.' 생각을 하고 고3 한 해 동안은 근처 새로 개교한 신일고등학교에서 편입해서 공부하게 되었어요. 그 1년간 성적이 올라서 서울대 의대를 갈 수 있었는데, 저도 그렇고 주위에서도 기적이라고 많이 했죠. 의대를 오게 된 게 하느님의 뜻이 아닌가...


본과 1학년 때인 1973년, 봉사 동아리인 가톨릭 학생회에서 처음 봉사활동을 시작했어요. 당시에는 청계천에서 살던 분들이 개발 붐으로 쫓겨나 수색, 오류동 등 각지로 흩어져 지내셨는데,  그중 성남에서 일요일마다 봉사활동을 했었어요. 2학년 때 동아리 회장을 맡게 되었고 한 곳에서 정착해서 진료를 해야 겠다 하고 고민하던 중에 난곡동에서 도시빈민운동을 하시던 사라아줌마 김혜경 씨 집에서 진료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참고 자료 : 우리들의 왕언니 김혜경 (미래에서 온 편지)

1부 http://laborzine.laborparty.kr/?p=219

2부 http://laborzine.laborparty.kr/?p=233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가 되고 부턴 금천구 시흥동에 있는 전진상의원에서 봉사진료를 시작했어요. 지금까지 계속해 왔으니 벌써 38년이 되었죠. 당시에 한림대 강남성심병원에서 진료하던 분들이 전진상의원에서 봉사를 많이 했어요. (전진상의원은 1975년 고 김수환 추기경님의 요청과 국제 가톨릭 형제회의 주관으로 설립된 무료 진료소입니다.)


참고 자료 : 전진상 복지관 홈페이지

http://www.jeonjinsang.or.kr/About/greeting.php



그럼 요셉의원과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처음 요셉의원 시작할 때부터 같이 시작했으니 여기서 진료봉사 한지도 벌써 28년이 되었네요. 전진상의원에서 정신과 진료를 볼 선생님을 찾다가 요셉의원과 연락이 닿았어요. 당시 요셉의원은 신림시장 안에 있는 허름한 건물 2층이었는데 진료실에도 병원 내 식당에서도 시장 특유의 냄새가 많이 났어요. 그런 공간에서 어려운 분들을 돌보는 모습, 또 선우경식 원장님이 워낙 호남형 인물이잖아요? 그래서 병원 식당에서 같이 대화하면서 많이 감동했죠. 그러면서 인연이 시작된 것 같아요.




전진상 의원과 요셉의원 말고 외국인 무료 진료소로 라파엘 클리닉이란 데가 있는데 여기서도 18년간 봉사진료를 하고 있어요. 라파엘 클리닉은 1997년 김수환 추기경님이 본인의 주교관을 내어주어서 거기서 서울대 가톨릭 교수회와 학생회가 주도가 되어 외국인 노동자들을 치료하던 것이 지금의 라파엘 클리닉이 되었어요. 전진상 의원과 요셉의원 시작에도 김수환 추기경님이 깊이 관여하셨고요. 그때 김수환 추기경님은 매년 후원자님들을 초대해 의료진과 함께 파티도 하고 윷놀이도 하면서 봉사자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했었어요.


이제까지 요셉의원이 고 선우경식 원장님 한 명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었던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전진상 의원과 라파엘 클리닉, 요셉의원이 모두 고 김수환 추기경님과 가톨릭 서울교구의 힘으로 시작되었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거든요. 현재 운영되고 있는 무료진료소의 모범적인 세 사례가 모두 한 명의 종교지도자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 그 한 명이 사회의 변화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선우경식 원장님이 돌아가신 게 2008년이죠? 그때 요셉의원 20주년 행사에 항암제 치료하느라 머리가 다 빠진 상태로 참석하셨던 게 생각나네요. 사실 위암을 진단한 것도 나였어요. 2008년 5월, 일요일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선우경식 원장님이 미사에 참석했다 나와서 차에 시동을 거는데 손이 말을 안 듣고 말이 안 나오더래요. 같이 있던 어머님이 요셉의원에 전화를 했고 요셉의원에서 나한테 연락이 왔어요. 그날 난 테니스 대회에 참가했다가 예선에서 떨어져서 집에 일찍 돌아와 쉬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게 오히려 다행이었던 일이죠.


연락받고 바로 병원에 뇌혈관 시술 팀을 불러 모아서 선우경식 원장을 입원시키고 혈관을 뚫어주는 시술을 했어요. 뇌경색 초기라서 시술은 잘 되었는데 다음날부터 헤모글로빈 수치가 낮아지는 거예요. 뇌경색 치료를 위해 피를 묽게 만드는 약을 쓰는 상황이라 위궤양 같은 문제가 생겼겠구나 하고 바로 다음날 내시경을 했는데 거기서 위암이 발견되었던 거죠. 그렇게 아까운 사람이 갔어요. 환자들 몸만 챙기다가 제 몸은 못 챙겼던 게지.


남 얘기가 아닌 게 나도 4년 전에 대장암 수술을 받았어요. 처음으로 했던 대장내시경에서 대장암종이 여럿 발견돼서 대장을 18cm 정도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는데, 의사들이 다 그래요. 자기 몸은 망가지는 줄을 몰라. 허허허



지금은 몸은 좀 괜찮으세요? 요즘 교수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시나요?


지금은 10년 전부터 건국대병원에서 의대 학장도 맡고 하면서 의료봉사, 사회의학 분야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어요. 의사로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길은 무엇일까 학생들과 함께 고민하기도 하면서 말이죠. 재미있어요.



봉사진료를 그토록 오래 진행하시면서 어려운 점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가장 어려운 점은 가족들의 희생이었던 것 같아요. 전에는 주중 주말 할 거 없이 일과시간 끝나면 봉사진료가 이어졌어요. 그러니 가족들 희생이 없었으면 지금처럼 오래 봉사진료를 못했죠. 지금은 주말 하루와 수요일만 봉사진료에 참여하고 있으니까 좀 괜찮아요.


다른건, 무료 진료소에서 진료하고 진단은 되었는데 비용 문제나 시설 문제로 치료를 다 마치지 못할 때. 예를 들면 뇌졸중이나 뇌종양이 확인되었는데 치료 가능한 병원에 연계가 되면 다행인데 그렇게 못할 때도 있거든요. 전에는 근무하는 병원에 모셔가서 치료해드리기도 했는데, 그럴 때가 어려울 때 같아요.



마지막으로 봉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 후배 의사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거예요.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 경험, 재물을 다른 사람과 나눈다는 것은, 그것을 잃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얻어가는 것이란 거. 매슬로우의 5단계 욕구가 있다고 하는데 가장 높은 자아실현의 욕구를 채워주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요셉의원에서 활동하는 선생님들은 대부분 오랫동안 봉사진료를 이어오신 분들입니다. 그렇다 보니 그 활동 안에는 많은 역사가 깃들어 있습니다. 특히 고영초 교수님의 역사에는 우리나라의 근현대사가 온전히 녹아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요셉의원 봉사진료 5년을 하면서도 그 속의 역사는 몰랐던 제가 부끄러운 느낌도 들었고요. 요즘의 역사 왜곡에 대한 논쟁도 생각나는 그런 인터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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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brunch.co.kr/@csj3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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