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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지옥과도 같은,
게시물ID : sisa_64007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야기꾼
추천 : 0
조회수 : 11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12/28 19:5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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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날이 왔다.

 

서울 종로구 중학동에 위치한 주한(駐韓) 일본 대사관의 앞에 할머니들이 줄지어 누워 있었다.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이 할머니들의 삭신을 칼로 난자하듯 에었지만 할머니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런 할머니들 뒤에는 구릿빛 얼굴을 한 소녀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구릿빛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그 소녀는 구릿빛 의자에 앉아 오늘도 무표정한 얼굴로 조용히 일본 대사관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시민들이 있었다. 모두들 할머니와 소녀를 지키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손엔 아무것도 없었지만 건국 이래 뜻있는 의인들이 그러했듯 피를 흘리고 온 몸을 다해 앞으로 올 폭력들에게서부터 할머니와 소녀를 지키기로 마음속으로 맹세한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진을 치고 있던 군중의 앞에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경찰 제복과 군인 제복, 그리고 평상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몰려오는 기묘한 광경이었다. 그들이 끌고 온 듯 중장비 버스, 살수차의 소리가 지축을 흔들었다. 할머니와 소녀, 그리고 시민들은 긴장된 얼굴로 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윽고 두 무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대치했다.

중장비를 끌고 온 무리의 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확성기를 들고 외치기 시작했다. 자신은 경찰이고, 구릿빛 소녀를 일본 대사관에서 끌어내야 하니 협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시민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물러날 생각도 하지 않았다. 확성기를 든 남자는 할 수 없다는 듯 턱짓을 살짝 했다. 그러자 남자의 부하로 보이는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끌고 온 살수차 중 하나에 올라타 물탱크에 작은 캡슐들을 넣고 섞더니 호스에 연결해 그대로 시민들을 향해 물대포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처음 물대포를 맞은 사람들은 할머니들이었다.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와 그대로 때려내리듯 부딪힌 물들은 할머니의 약하디 약한 뼈를 순식간에 부러뜨리고 살갗에 시뻘건 흉터들을 새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할머니들은 몇 십년동안 그래왔듯이 서로 손을 맞잡으며 버틸 뿐이었다. 이 기가 막힌 광경에 분노한 시민들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이 광경을 찍고 있는 카메라를 찾기 시작했지만 그런 건 아무데서도 찾을 수 없었다. 어떤 방송사도 일본대사관에 오지 않았다. 결국 이성을 잃은 몇몇 시민들이 물대포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자 마치 그 상황을 기대했다는 듯 경찰 무리가 반으로 쫙 갈라졌다. 그리고 하얀 헬멧과 작은 방패로 단단히 차려입은 체포조가 번개같이 시민들에게 들이닥쳐 무자비하게 곤봉을 휘둘렀다. 순식간에 머리가 터지는 소리들이 들리고 핏방울과 부러진 이가 허공을 날랐다. 하지만 체포조는 멈추지 않았다. 덤벼든 시민들이 부들부들 떨다 축 쳐질 때까지 그들은 곤봉을 내리치고, 또 내리쳤다. 그들은 정의를 실행하고 있었다.

 

체포조 다음으로 나온 자들은 늙은이들이었다. 흰 머리가 희끗희끗 나고 군복을 입었지만 전혀 장교같이 보이지 않는 늙은이들은 쓰러진 할머니와 시민들을 발로 차면서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대통령님께서 다 알아서 하신 결정을 너네들이 무슨 권리로 방해하고 그러냐는 그들의 논리는 입에서 나오기보단 내리치는 뺨따귀와 고성방가로 전달이 되었다. 그러다 아직 의식이 남은 시민들에게 멱살이 잡히기라도 하면 하나같이 너 몇 살이냐는 살짝 기세가 꺾인 항의를 하곤 했다.

 

마지막으로 나오는 자들은 젊은이들이었다. 낄낄거리며 시민들을 조롱하는 젊은이들이었다. 살찐 손가락으로 자기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사인을 만들면서 저들끼리 놀고 있었던 젊은, 이들이었다. 시들은 자궁에는 씨를 뿌려줘야 한다며 아랫도리를 부여잡는 자도 있었고 일본군이 짓밟아서 죽어가는 할매들이 중심인 죽음의 집회를 중단하고 생명의 집회를 해야한다며 일장연설을 하는 자도 있었다. 그들의 정신나간 생각에 순식간에 질려버린 시민들은 할 말을 잃었고, 그것이 승리라고 잘못 생각한 그들은 오히려 더 미친 자들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그런 아수라장이 벌어지는 와중에 결국 굴삭기가 도착했다. 거대한 몸집의 굴삭기는 그 앞을 막는 시민들과 할머니들을 마치 벌레처럼 짓이겼고 늙은이들, 낄낄거리는 젊은이들도 깔아뭉개가며 전진했다. 마침내 구릿빛 소녀의 앞에 선 굴삭기는 그 커다란 팔을 하늘 높이 쳐올렸다. 순식간의 소녀의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눈은 일본 대사관을 향해 있었다. 굴삭기는 무심하게 계속 팔을 놀렸고, 결국 소녀의 조각이 길가의 돌멩이처럼 부스러져 굴삭기의 발 앞에 흩뿌려졌다. 경찰은 그제야 굴삭기의 방향을 돌려 길을 떠났고, 일본 대사관 앞에는 구리조각과 시체만이 즐비했다.

 

그리고 이 모든 광경을 높이 뻗은 일본대사관 건물은 내려다보고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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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 답답하여 써본, 짧은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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