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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천재 아저씨
게시물ID : humorstory_44344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리리로로
추천 : 12
조회수 : 1570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6/01/15 19: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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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동네에 한명쯤은 남들과는 조금 다른 특별한 기인이 있기 마련이다.
 
어릴적 내가 살던 동네에는 여름만 되면 나타나는 한 남자가 있었다.
이상하게도 봄이나 가을, 겨울에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사람이다.
지금와서 생각하건데 여름 빼고 나머지 계절에는 평범한 모습을 하고 다녀서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내 나이 10살 즈음.
어린 내 눈에 보기에 그 남자는 30대 초중반처럼 보였다.
구불구불한 머리카락은 어깨까지 내려왔고,
미용실에 사진을 들고가서 '이렇게 파마해주세요'하면
"어머 손님 이건 고데기에요."라고 말할법한 자연스런 웨이브였다.
 
바지는 계절에 맞게 늘 반바지 차림이었지만
위에는 두꺼운 솜자켓같은 것을 입고 있었다.
슬리퍼는 언제 샀는지도 모를만큼 낡아있었고
머리 위에는 새빨간 산타크로스 모자를 쓰고 다녔다.
 
그 차림새만으로도 특이했지만
그 남자가 더욱 비범해보였던 것은
바로 함께 다니던 거위 한마리 때문이었다.
거위 머리 위에도 작은 산타모자가 얹어있었고,
그 남자는 매일 어디를 그리 바삐 가는지
나무 막대기 하나를 손에 쥐고 거위를 몰며 열심히 어디론가 걸어갔다
 
따라가서 말을 걸어볼까 호기심도 들었으나
마땅히 할말이 없었다.
 
머리 어디서 하셨어요? 라고 물어봤자, 이건 고데기에요 라고 대답할게 뻔했고
거위가 몇살이냐 물어볼까 고민하다가도
아무래도 거위님도 당시 나보다 언니나 오빠인것같아 실례를 범할까 그만뒀다.
 
대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저 아저씨는 왜 여름에 산타클로스 모자쓰고 다녀?"
"글쎄. 집에 모자가 저거 하나인가봐. 저 모자를 좋아하던가?"
 
엄마의 대답은 명쾌했다.
그래. 모자가 하나니까 저걸 쓸 수 밖에 없구나.
그래. 좋아하는 모자니까 맨날 쓰고 싶을수도 있지.
그렇게 생각하니 굉장히 자연스러운 차림이었다.
 
"엄마 근데 저 아저씨는 왜 거위랑 같이다녀?"
"글쎄. 거위가 혼자 집에 있으면 심심할까봐?"
 
그랬구나.
엄마가 항상 나와 함께 시장을 다니듯 그것도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 이후 나는 더이상 그 아저씨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지 않았다.
그냥 평범한 사람 중 한명일뿐이었다.
 
그렇게 몇해 여름마다 그 아저씨와 거위는 꾸준히 동네를 돌아다녔고
시장에 따라갔다 삼삼오오 모여있는 아줌마들을 통해 들은 얘기로는 원래 천재였는데 공부를 너무 많이해서 조금 이상해진거라 했다.
 
"저 양반이 원래 샤울대 출신아니야~ 공부를 그렇게 잘했대."
'맞아요. 나도 들었어. 아이큐가 160이 넘는다고 그러던데?"
"그래그래! 근데 너무 공부만 하다가 머리가 좋다좋다못해서 아이큐를 뛰어넘어서 오히려 돌았다던데?"
 
충격적이었다.
공부를 너무 많이해도 돌을 수 있구나.
갑자기 무서워졌다.
 
나는 집에 달려가 부랴부랴 내 성적표를 꺼냈다.
이럴수가.
매우잘함이 무려 4개나 됐다.
이렇게 가다간 나도 위험해질 것이 뻔했다.
그 이후 나는 공부와 이별을 고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다행히 성적은 점점 내려갔고, 돌아버릴 위험이 절대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자랑할만한 업적으로 중학교 2학년 수학성적은 16점을 기록했다.
찍은 것이 아니다.
나름 열심히 풀고 난 결과였다.
 
나는 부단한 노력끝에 어렵사리
돌아이가 되어버린 비운의 천재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렇게 난
평범한 또라이가 되었다.
 
 
 
 
 
출처 지극히 평범한 나의 두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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