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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시리즈는 드라마인가?
게시물ID : drama_3926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야생개냥이
추천 : 3
조회수 : 651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01/21 15:21:27
편의상 반말체를 썼습니당~ 고멘나사이..(굽신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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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시리즈는 드라마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 제작진의 말을 빌려오자면..
응답하라 시리즈는 드라마가 아니다. 
예능 PD와 예능 작가로 구성된 제작자들은 
예능프로그램을 만드는 감각으로 응답하라 시리즈를 제작한다고 
이미 인터뷰를 통해 밝힌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은 이 콘텐츠를 ‘드라마’로 소비하고 있다.
그렇다면 ‘드라마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제작진의 이야기는 
비드라마에서 넘어온 이들의 단순한 겸손일까?
 
솔직히 장르의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
평가와 분석질이 습관이 된 인간으로서 
한 번쯤 이 시리즈의 정체성을 정리해 보자
응답하라를 드라마로 놓고 보았을 때,
이 시리즈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1. 미비한 서사구조

일반적으로 드라마의 서사는 주인공이 무언가를 목표로 ‘노력’하는 과정의 이야기다.
영웅으로서 위업을 이루거나, 개인적인 상처를 떨쳐 내거나,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주인공은 노력한다.
전원일기처럼 잔잔한 드라마라 하더라도, 어떤 사건을 발단으로 놓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러나 응답하라 시리즈에는 큰 위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주인공들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을 하지 않는다.
노력은 하되, 그 노력이 해당 에피소드를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가지 않고,
잠깐 도구로 사용되고 만다.
노력하지 않는 캐릭터는 시청자의 몰입을 강제하지 못한다. 
때문에 응답하라 시리즈는 서사로서의 재미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드라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재미있는 것인가?
 
 
2. 응답하라는 재연프로그램이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그 시대를 재연하는 재연 프로그램이다. 
크라운 맥주나, 싸랑해요 밀키스~ 같은 TV광고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정서를 재연하는 재연프로그램이다. 
그 재연 요소 위에 서사의 프레임을 씌워두긴 했지만,
어디까지 메인은 재연이다. 
때문에 에피소드의 참신성은 거의 없다 봐도 무방하다.
당시 실존인물의 이야기나, 
어디서 본 듯한 (특히 아다치 미츠루의) 
익숙한 에피소드를 (심지어 앵글까지) 재연한다.
공연으로 치자면 쥬크박스 뮤지컬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스트레스가 심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익숙한 것을 찾는다.
내가 아는 것, 그래서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되는 것,
응답하라에서 스트레스를 주는 유일한 요소는
남편이 누구인가? 라는... 
사실 드라마의 완성도와는 가장 관계 없는 부분이다.
그럼 왜 남편의 정체 맞추기가 
완성도와 가장 관계가 없는가?
 
 
3. 감추기 위해 감추는 정답
 
1988에서 어남류를 어남택으로 바뀐거라는 의견이 많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결말이 시청자를 설득하지 못한 것만큼은 사실이다.
남편 맞추기란 장치는 응답하라 시리즈를 마지막까지 끌고 가는 힘처럼 보이고, 
또 어느 정도 팬들의 온라인 피드백을 끌어내지만...
문제는 주어지는 힌트가 지나치게 조잡하다는 것이다.
단순히 헷갈리게 만드는 정보들을 나열할 뿐이다.
머리가 좋다거나, 주의력이 좋다고 맞출 수 있는 퀴즈가 아니다.
그렇다고 그 함정들이 반전의 묘를 제공하는가 하는 것도 아니다.
남편의 정체는 그저 감추기 위해 감춰진 정답으로, 
거의 뽑기에 가까울 정도로 의미 없는 예능적 결과물에 불과하다.
게다가 선택지가 객관식이므로, 
특별히 새롭다고 할 수 없는 결말이 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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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한 서사구조, 
드라마 보다 재연이 찍힌 방점, 
맞출 수 없는 정답...
수많은 단점을 갖고 있으면서도 
어째서 응답하라 시리즈는 성공 할 수 있었는가?
제작진의 말처럼
이 프로그램은 드라마가 아니라 예능이기 때문이다.
 
중간부터 대충 틀어놓기만 해도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 구조,
맞아 맞아 하면서 볼 수 있는 공감의 요소들,
뻔하더라도 마지막까지 쪼아주는 결말은
좋은 예능의 기본적인 구성 요소들이다.
 
때문에 응답하라는 웰메이드 드라마타이즈 예능 프로그램으로 볼 수 있다.
만약 시트콤을 예능과 드라마의 중간 지점에 둔다면,
응답하라 시리즈는 시트콤과 예능 사이 어딘가 즈음에 
자신들만의 장르를 개척했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응답하라는 자신들이 만든 
새로운 장르의 레퍼런스가 될 수 있을까?
응답하라의 영향을 받은 프로그램들이 앞으로 탄생 할 수 있을 것인가?
 
아쉽지만 힘들다고 본다.
시도는 가능하겠지만, 실패한다.
 
사실 이 시리즈의 주인공은 혜리나, 도희, 정은지도 아니고...
그 주위의 남편 후보자도 아니다.
1988년, 1994년, 1997년이라는 시대 그 자체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팍팍한 대한민국의 현실이 낳은 진통제에 가깝다.
현재가 힘들고 피곤하니, 좋았던 옛 시절에 대한 향수를 추억하는 콘텐츠.
보기 좋은 화면으로 플롯에 따라 상영되는 기록영화.
특정 분야나 상황이 아닌 보편적인 소시민의 정서와 이야기에 기반을 둔 드라마.
그것은 영화 국제시장과 큰 궤를 같이 한다.
 
이 소재는 필연적으로 빠르게 소진되는 자원이다.
 
시점을 바꿔서 특정 영역을 집중해 다루었을 때는 
다수가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 정서와 멀어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가장 뻔한 이야기를 선택한다는 공식을 갖고 있는 
이 시리즈는 사실상 변주가 대단히 어려운 형태다.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시대, 그 자체를 다루고 때문에 생기는 한계다.
 
때문에 응답하라 시리즈는 응답하라로써 존재 할 수밖에 없다. 
좋은 기획이고, 이미 헤게모니를 장악한 이상 계속 시즌을 이어가겠지만,
이것은 드라마가 아닌 좋은 예능으로 평가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출처 손꾸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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