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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유부남이 적은 클라나드 감상문
게시물ID : animation_37267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제네시스2186
추천 : 10
조회수 : 691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6/01/24 19:33:34

지금 결혼까지 하고 나이도 30대 중반을 향해가는  제가 소싯적 애니메이션을 꽤나  좋아했었다는 것을 아는 사촌 친척들,나이어린 지인들로부터 가끔 애니메이션을 추천해달라는 소릴 들을때가 있습니다. 

이런 말을 들을때마다 난감한 것이..제가 이젠 이전처럼 애니를 많이 보지도 못하는데다가, 몇번 추천해주었던 애니메이션들이 모두 그 어린 친구들로부터 "에이 이게 뭐야" 라는 소리를 들었었기 때문이죠. 

인상깊게 보았던 액션물을 추천해 달라기에"건버스터"를 추천했었고, 연애물을 추천해 달라기에 "귀를 기울이면"을 추천했었는데 돌아오는 대답이라곤 "촌스러워!" 소리였으니 흑. 

어쩌겠습니까. 제가 아는건 그러한 낡은 애니들뿐인데다, 사고방식까지 과거의 촌스러운 방식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으니... 

별로 그렇게 전 나이든 것 같지 않은데(?) 이미 제가 요즘의 어린 세대분들의 센스를 따라가긴 힘들어졌나 봅니다. 

저는 애니메이션 관련해서 아는 곳이라고는 여기 OO겟이 거의 유일한 곳이므로, 이곳에서 요즘 애니팬 분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는 것이 제가 아는 지식의 대부분이 돼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곳에서 클라나드라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그렇게 인기가 있는 애니는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정도만 하고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제가 근래 본 애니메이션중(사실 몇개 있지도 않지만) 가장 인상깊게 보고 있는 커플이 클라나드의 주인공들, 즉 오카자키 토모야 X 나기사 커플입니다. 

 

클라나드는 이 커플, 더 정확히는 오카자키 부부의 성장담입니다. 

원작이 미연시 출신인데다가, 많은 수의 미소녀들이 등장하는 관계로 어떤 뜨거운 염장성 내용이나 보는 이들을 확실하게 두근거리게 해줄 그러한 연애 이야기,또는 소위 전형적인 러브러브 하렘물을 예상하실수도 있겠습니다만, 실제로는 다릅니다. 

이 두사람은 지극히 평범한 학생입니다.  아니 평범한 정도가 아니고 이 사회가 일반적으로 내세우는 가치 기준으로 치자면 하류 인생들입니다.   

남주인공인 오카자키 토모야는 학교에서 문제학생으로 낙인찍혀 있는 녀석입니다. 

아버지는 술과 노름에 빠져있는 무능력자이고, 그런 아버지에게 당한 구타로 인해 장래가 촉망되던 농구선수였던 주인공은 신체장애로 인하여 진로를 포기하고, 그로 인한 반발심으로 아버지, 그리고 자신의 주변 상황에 대해 나태한 행동으로 일관합니다.그리고 그러한  불성실함으로 인해 학교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 명문고인 학교의 친구들로부터도 기피당하는 소년입니다. 

여주인공인 후루카와 나기사는 몸이 극도로 약합니다. 거기다가 성격은 굉장히 내성적이기까지 하죠. 

결국 건강문제로 1년 유급을 당하고, 아는 사람들도 거의 없어진 학교에서 친구들을 사귀지 못한채 학교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런 여자애입니다. 

 

클라나드는 이런 별볼일 없는 두사람이 , 우연한 어느날의 등교길에서 만나 서로를 격려하고 상처를 감싸 안으면서 하나의 당당한 학생으로서, 사회인으로서, 그리고 부부로서, 더 나아가 아버지, 어머니로서 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솔직히 저로서는 이 애니메이션이 요즘 젊은 분들에게 그렇게 인기를 끌수 있는 애니메션의 특성을 갖추었는가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하긴 힘듭니다. 제가 워낙에 요즘 분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있지 못하기때문이죠. 그렇기에 섣불리 추천을 하고 그러지는 못하겠습니다. 

게시판에서 여러분들의 글을 보면 요즘 분들께서는 등장인물들이 고민이 많거나 갈등을 겪는 인물들을 좋아하지 않는 듯 합니다. `럭셔리`하거나 `쿨`하게 나가는 케릭터들을 선호하시는 것 같더군요. 

불행히도 여기 이 주인공 두명은 그러한 쿨한 케릭터들이 되진 못합니다. 이 아이들은 쿨한 케릭터가 되기에는 너무 단점이 많은 아이들이니까요. 토모야와 나기사는 그러한 멋지고 뽀대나는 애들이 아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수 있는 평범한 아이들입니다 

 

그리고 명색이 미소녀들이 나오는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보는 분들의 가슴을 들뜨게 해줄 어떤 강력한 연애 이야기를 보여주지도 않습니다. 이 애니에서 나오는 연애 이야기들은 사실 요즘의 숱한 연애물들에 비하면 명함도 내밀지 못할겁니다.  누구와 누가 사귄다던지, 누구를 좋아해서 미췬듯이 대쉬한다던지, 구애를 한다던지, 치정싸움을 한다던지, 뜨거운 데이트를 한다던지, 염장성 대사가 남발한다던지..... 

이러한 요소는 거의 찾기가 힘듭니다. 누군가를 좋아하지만 그런 좋아한다는 감정이 애니메이션 표면으로 강하게 부각되지 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자신들의 감정을 마음속에 품고있을 뿐이죠. 

1기 클라나드는 이렇게 학원편을 다루고 있음에도 , 이러한 소년 소녀들의 사랑이야기보다는 등장 인물들 한명 한명이 가지고 있는 어려움이나 갈등을 토모야와 나기사를 중심으로 하여 풀어나가는 이야기들입니다. 

 

대책없이 그저 웃고 떠들던 시절을 함께 했던 학창 시절의 친구들.... 

동생의 사랑을 응원했지만 정작 자신도 동생이 좋아했던 사람을 사랑했던 동급생, 언니의 결혼을 위해 어떻게 해서든 애썼던 여동생, 부모님의 상실로 인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친구,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있고 싶었지만 환경이 다르다는 이유로 마음 아파하는 연인들.....그런 그들과 함께 보냈던 ...이젠 돌아갈수 없는 학창시절의 이야기. 

별다른 자극도 없고, 조금 신기한 경험을 빼면 특별하게 화젯거리로 삼을 만한 내용도 안나오고 그저 담담히 펼쳐지는...그러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들. 그리고 가족의 이야기. 

그런데 이러한 학원편이 끝나고 펼쳐지는 2기 애프터 스토리의 이야기는 그나마 1기시절에 가지고 있던 청춘 로맨스물의 요소조차 사라집니다. 2기의 이야기는 토모야와 나기사가 하나의 사회인이 된 후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사회인으로의 이야기조차 , 여타의 드라마들에서 볼수 있는 재벌 2세들의 낭만적인 이야기들, 또는 명문대를 나온 의사 등등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클라나드에 백마탄 왕자님, 잠자는 공주님...비스무리한 이야기는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애니메이션에서는 <그들이 어떻게 사귀게 되었는가>보다는 그들이 <사귀게 된 이후 어떻게 살아가는가>가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사회에 나오게 된 토모야와 나기사는 오직 서로만을 믿고 결혼을 합니다.하지만 그 결혼 생활에 순정만화같은 멋진 이야기들를 기대하신다면 오산입니다.   

이 두명은 가난합니다. 주인공은 나태한 학창시절로 인해 이렇다할 학력도, 기술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집을 나와 살아가기위해 마련한 집은 좁디 좁은 단칸방. 먹고 살기 위해 선택한 직업은 이런 류의 애니메이션으로서는 놀랍게도 전기 수리 관련 야외 노동직입니다.   

 

조금 당황스러우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류의 애니메이션에서 보여줘야 할것은 낭만과 로맨스인데 그런 분위기와는 뭔가 다른 엄한 장면들이 나오니까요. 

요즘 방영되고 있는 연애 애니메이션과 비교하면 정말로 어떤 연애물다운 낭만이나 두근거리는 전개가 상당히 적습니다. 


그렇게 이 두명은 이 사회를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가진것도 없고, 배운것도 특출난 것이 없으면서 집도 가난한.... 

힘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고, 장을 보며 설겆이를 하고 빨래를 합니다. 밥을 짓고 식사를 하며 하루 일과를 이야기하고, 잠자리에 들죠. 이러한 평범하고, 별 이야깃거리도 안되는 이야기들을 2기 애프터 클라나드는 조용히 보여줍니다. 

이런 스타일의 이야기가 요즘의 혈기왕성한 젊은 분들께 폭넓은 지지를 받을수 있을가에 대해서 저로선 자신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추천을 드리지도 못하겠고, 솔직히 지루하실겁니다. 

 

하지만 그런 궁상맞고 보잘것 없는 두명이 펼치는 보통 사람들과, 그들 주변의 친구, 가족들의 이야기가 클라나드입니다. 

딸을 위해 젊은 시절에 가졌던 모든 꿈을 미련없이 내던지고 전공이나 소질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직업을 택해 오직 하나뿐인 딸만을 위해 살아가는 부모님의 모습.그리고 그러한 소중한 딸을 즐겁게 하고 웃기기 위해 보이는 엉뚱한 행동들. 

 


그리고 여기 한 아버지가 있습니다. 

일찌기 아내를 잃고,모든것에 절망했었지만,남겨진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를 위해 살아온 한 초라한 남자의 모습 

 

전 결혼한지 수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자식을 가질 생각이 없었습니다. 

준비가 안됐다는 것이 이유이지만....솔직히 무서웠습니다. 전 아직 제 생각에 어린 시절 그때 그 아이같다고 생각하는데 벌써 아버지라니.... 

아직 이대로 있고 싶었습니다. 자식같은 것도 없이, 지금 있는 와이프하고 둘이서만 소꿉놀이 하듯이 살고, 그저 돈을 벌고, 가끔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화도 내고, 여전히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기 보다는 아빠 엄마 소리를 어쩌다 무의식적으로 하게되는 지금의 이대로... 

 

하지만 1년전 제 여동생이 쌍둥이를 낳았었습니다. 

그때 위로차 병원을 찾아간 저는 신생아 실에 있는 두명의 조카를 보았습니다. 

갓 태어나 자고 있는 아이들..제 조카들이랍니다. 

하하... 왠지 웃음이 나오더군요. 제 친조카랍니다. 제 아버지 어머니는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됐습니다. 





전 이제 외삼촌입니다. 언제까지 어린애이고 싶었고, 어린애인줄 알았던 제가.. 

그리고 전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유는 모릅니다. 그저 눈물이 나왔습니다. 





이제 전 다시는 그날로 돌아갈수 없습니다. 

별다른 걱정도 없이, 그저 부모님께 돈을 달라서 타쓰고, 공부한다면서 떙땡이도 치고, 만화를 보고, 친구들과 어울리고... 



이제 저도 아버지가 되야 할 준비를 해야합니다. 

그리고 제 부모님이 저에게 해왔던 것을 제 자식에게 해야합니다. 

그렇게 반복됩니다. 

언제까지나 아이인채로 있고 싶었지만, 그렇게 전 어른이 되었나봅니다. 


 

우연히 밤에 마주친 어린시절 죽마고우와 맥주 한잔을 나누며 하는 이야기가 어느새 세상 사는 이야기로 변해있습니다. 

여행사에 근무하던 친구녀석의 이야기는 경제이야기와 먹고 사는 이야기를 주로합니다. 

가끔은 우리보다 못사는 동남아시아의 나라들이 더 부러울때가 있다는 말까지 하면서... 

과거 서로 만나면 해대던 야구이야기...친구 이야기, 웃긴 이야기, 장난스런 행동은 어느덧 머나먼 과거 이야기같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시절때의 그런 친구들을 사귈수 있는 것일까. 

지금의 제 수첩에는 어린 시절 알고 지낸 친구들의 전화번호에 비해 몇배는 많은 번호가 적혀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과 제가 연결되어 있는 끈은 손익계산과 인맥입니다. 

누군가를 만나 안면을 익히기 위한 것도, 어린 시절 그저 친구가 좋고 사람이 좋아서 같이 웃고 떠들기 위한 그런 만남이 아닙니다. 조금이라도 나 자신에게 이득이 되기 위해, 발을 넓히고 네트워크를 쌓기위해, 일을 위해서이죠. 



그렇게 전 어른이 되었나봅니다. 

제가 가졌던 꿈은 이제 앞으로 태어날 저의 자식에게 물려질겁니다. 

 

그리고 이제  토모야와 나기사 그들의 꿈은 딸인 우시오에게 물려집니다. 



그렇게 그들도 어른이 되었습니다. 

학창시절의 유쾌함과 즐거움은 이제 다시는 돌아올수 없는 추억으로 사라지고... 

그런 이들 가족에게 앞으로 많은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현실이니까요.. 

저 역시도 마찬가일 겁니다. 

먹고 살기 위해 뛰다니면서 얼마나 많은 먹기 싫은 술을 먹어야 했고, 만나기 싫은 사람을 보았으며, 더러운 것들을 참아야 했는지 모릅니다.  그것이 "살아간다" 라는 것이겠죠. 

주인공 토모야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많은 고통을 극복하고 하나의 사회인으로서, 아들로서, 그리고 아버지로서 완성되어갑니다.그런 모습들이 지금 살고 있는 저에게, 그리고 혹여 저말고 저와같은 생각을 하고 계시는 분들에게 결코 예사롭지 않게 보여지는 애니메이션... 그것이 클라나드라고 생각합니다. 

 

이 만화가 지금의 어리신 분들께 공감을 줄수 있는 그런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못하겠습니다.  보시면서 엄청나게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그런 내용은 아닐수도 있겠습니다.  아직 꿈많으신 분들께 결코 코드가 맞는다고 보긴 힘들다고 할까요. 보시는 분들 모두가 재미있어 할 내용이라고 저는 말하기 힘들군요. 

그렇다고 무슨 수작이라느니 명작, 걸작들이 갖추어야 할 비범한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는 애니도 아닙니다. 떡밥이 난무하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설정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죠. 그냥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일뿐입니다. 

게다가 보시는 분들의 생각에 따라 상황이나 연출이 지나치게 작위적이라고 느끼실수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그러한 세세한 불평이나 까다로운 잣대를 참으실수 있으시다면.... 

특별한 자극이나 낭만적 로맨스만이 아닌, 차분하면서도 조용한 분위기...그러면서 이들 부부가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는가를 응원하면서 클라나드에서 나오게 될 많은 평범한 이야기(가끔은 좀 비현실적인 이야기도 있긴 합니다만)들을 이해하며 보시려고 마음먹는다면 클라나드 1기 2기 총 40화 조금 넘는 분량이 그렇게 길다고 느껴지지는 않으실겁니다 



주인공 토모야와 나기사 부부. 그리고 그들의 딸인 우시오. 



이들 오카자키 가족이 앞으로 펼쳐질 많은 고통을 극복하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볼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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