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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최재석 명예교수-백제의 대화왜(大和倭)와 백제화 과정
게시물ID : history_2520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잠룡815
추천 : 3
조회수 : 1601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6/01/29 16:03:19
역게에서 한번도 다룬적이 없어 올려봅니다

1926년생..최교수님은 

(◆ 최재석 고려대 명예 교수 약력 1926년생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고려대 사회학과 문학박사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역임 /미국 하버드대 교환교수 /제1회 한국사회학회 학술상 수상 /제46회 3·1문화상 학술상) 

한국사회학은 물론이고 역사학 쪽에서도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기셨죠
17세기 중반 이전까지만 해도 조선사회는 아들, 딸이 균등하게 재산을 상속했다는

 그의 균분상속론은 지금은 움직일 수 없는 통설이 되어있구요

그분 이론중 백제의 대화왜(大和倭)와 백제화 과정 도 읽을만 해서 올려봅니다~

ps

백제의 이름이 오늘로 끊겼으니 조상의 묘소에 어찌 다시 갈 수 있겠는가

외치던 분들은 ...국인이라불리던 분들은 어떻게되셨을련지....




http://news.joins.com/article/2501793

『백제의 대화왜와 일본화과정』- 최재석 저




『일본의 고대국가 야마토는 일본인이 세운 나라가 아니라 백제인이 세운 나라요, 일본인이 경영한 독립국가가 아니라 백제가 지배한 직할영토였다.』

이 책의 저자 최재석 교수는 그것이 바로 일본 고대사의 진실이라고 말하면서 적어도 나라시대에 해당하는 8세기까지 일본인들은 한국 옷을 입고 한국의 음식을 먹고 한국말을 사용하고 있었다고 단언하고 있다.

사료와 고증으로 밝혀낸 「한국고대사」의 진실

최 교수의 이같은 주장은 한·일 양국의 관계사를 전환시키는 중대한 계기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일본 사학계는 과거 일제의 한국침략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이용하여 최 교수가 말하는 이른바 허위의 일본고대사를 조작하는데 총력전을 벌여왔고 그 후예들이 오늘의 일본학계를 주도하고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들이 만든 허위의 고대사란 무엇인가.

첫째 일본사는 당연히 한국사보다 길어야 한다. 
둘째 일본은 처음부터 독립국으로 출발했다고 서술하여야 한다.
셋째 일본은 옛날에도 한국을 식민지로 다스린 일이 있었다고 서술하여야 한다.

이러한 터무니없는 허구의 역사를 증명하기 위해 남의 광개토대왕 비문을 훼손한다, 가야유적을 파헤친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제멋대로 불신한다는 등의 온갖 만행(?)을 저질러왔다. 

최 교수는 그래서 『일본인에 의한 일본고대사 연구는 이미 학문이 아니다』고 단정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사실을 안 이상 그대로 버려둔 채 눈을 감을 수 없다는 것이 정년을 눈앞에 둔 최 교수의 비장한 각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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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donga.com/docs/magazine/weekly_donga/news317/wd317hh020.html

한·일 관계 몸통찾기 내게 맡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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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일본 건국설’을 좀더 치밀하게 입증한 이는 고려대 최재석 명예교수다. 최교수는 80년대 중반부터 고대 한일관계와 일본의 역사왜곡 문제를 연구했고, 1990년 발표한 논문집 ‘백제의 대화왜(大和倭)와 백제화 과정’에서 일본 고대 천황과 지배층의 원적(原籍)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그는 비류백제설을 받아들이진 않았으나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말한다. 



최교수는 우선 ‘일본서기’ 중 비다쓰 천황(30대)기 572년 10월에 백제대정(百濟大井·백제 귀족의 집단거주지)에 백제궁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백제대정은 35대 고교쿠 천황 시대까지도 존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의 1182성씨의 계보와 유래를 기록한 ‘신찬성씨록’(815년)에도 비다쓰 천황이 백제인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 ‘일본서기’ 중 덴치 천황(38대)기에는 백제의 마지막 보루인 주유성이 나당연합군에 의해 함락된 후 국인(國人)들이 이렇게 한탄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9월7일 백제의 주유성이 처음으로 당에 항복하였다. 이때 국인들이 서로 말하기를 ‘주유성이 떨어졌다.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이냐. 백제의 이름이 오늘로 끊겼으니 조상의 묘소에 어찌 다시 갈 수 있겠는가.”

여기서 ‘국인’은 누구인가. 최교수는 백제에서 건너와 일본에 왕국을 건설한 사람들이 백제가 망하자 돌아갈 고향을 잃었다고 통곡하는 대목이라고 해석했다.

 또 ‘일본서기’에는 641년 죠메이 천황(34대)이 백제궁에서 세상을 뜨자 16세의 동궁(후에 덴치 천황)이 궁 북쪽에 빈소를 설치하고 이를 ‘백제대빈’이라 했다는 기록도 있다. 

죠메이 천황이 백제인임이 확실하면 그의 아들 덴치(38대), 덴치의 동생 덴무(40대), 덴치의 둘째 딸 지토(41대) 천황까지 모두 백제인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거슬러 올라가면 게이타이 천황(26대)부터 고토쿠(36대) 천황까지 혈연관계상 모두 백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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