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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명절맞이 집안 풍경
게시물ID : freeboard_125533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무심한듯쉬크
추천 : 1
조회수 : 24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1/31 14:58:57
해마다 명절이 되면
아빠 빼고 나머지 식구들 누구도 달가와 하지 않는 큰 집을 갔다.
각자 가정을 이룬 팔남매는 하나씩 도착해 자기 식구들을 풀어 놓는데,
그 면면을 보자면..허이(판소리 추임새)
형제 보증 세워 사업 말아 먹은 큰 아버지와  선산 잽혀먹은 또 다른 큰 아버지,
빌려간 돈 갚지 않는 고모부와  사고 치고 반성못하는 막내 삼촌이 
안방에 둘러 앉아 밥을 먹다가.. 밥상을 엎었다가.. 멱살을 잡아 벽에 내다 꽂았다가..
고도리 판으로 호호하하 마무리 되는 듯했다가..술상이 들어가면 그 상을 엎으면서..
다시 싸이클이 한 바퀴도는 그런 명절날 이벤트가 시작된 것이었다.

무대의 한편
부엌에서는, 늘 뚱한 큰 엄마가 묵묵부답을 수행하시고,
처세의 달인 둘째 큰 엄마는 명절특수 말로만 번드르 무공을 펼치며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흥흥 처세의 우리 엄마
그리고, 늘 고생하는 막내작은 엄마가 
늦어지는 뺀질이 세째 큰 엄마의 빈자리를 마크하기 바쁘셨다.

삼세대가 모인 아랫방이라고 관계역학이 다르랴.
대학에 낙방한 나를 기어이 드잡이 해서 끌고 간 아빠를 자녀학대범이라고 부르고 싶었고,
고생해서 좋은 대학 붙은 사촌은 나때문에 면구스러워 했다.
부모들의 서로 받지 못했던 꿔간 돈과
부모들의 서로 팔아 먹지 못했던 선대의 전답들에 대한 배틀은
아직 어린 내 사촌들을 마루로 불러 내어 씨름을 시키고, 권투를 시키고,
노래를 시키고, 성적표를 까고..누군가는 눈물바람을 해야 마무리 되었다.

길었던 하룻밤이 지나고,
우야둥둥 뜨거운 떡국 한사발씩을
우야둥둥 엉덩이 걸쳐 마시듯 먹고
떡 몇점, 전쪼가리 몇점, 생선 몇마리를 신문지에 둘둘 말아 주면
우리 네 식구 모두 너무나 지친 표정으로
..아야..우리 차도 안 막히는 데..택시 탑시다..하며, 차에 오르고
행선지를 기사에게 알려 주면서,
우리 아빠는 늘 한마디 하셨다.
..내가..올 추석에..여기 오믄..사람새끼가 아녀..

너무도 싫었다.

그래서, 엄마가 바늘에 실을 꿰어 쓸때
실을 길게 잡으면 멀리멀리 시집간다고 한 말을 금과옥조 삼아
실 길이가 양팔을 벌려도 남을만큼 짤라 써서 
늘 중간에 헝클어지기 일쑤였다.

아빠가 결혼식장에서 니 손을 신랑손한테 넘겨 줄때까지
너는 이 집안 사람이고, 고로, 아빠 말을 들어야 한다는 말이 지겨워서
신랑신부 동시입장을 내 결혼식에 관철시켜 버렸다.

그런데, 이제 사십 찍고 오십 땡기며 달려가니,
원한 바를 이룬 이역만리 사는 딸년.

아직도 눈 마주치면 징글징글 싸우는 노인네부부
그만 쫌 하라고..빽하고 소리도 못 지르니 답답하고,
아프면 병원도 가깝고만,  답답한 소리 쫌 그만하고,
후딱후딱 챙겨 가지..
몸뚱아리 늙어 가서 기력없건만,
대체 들기로 한 철은 왜 여적지 감감한지
물정 모르는 소리 들을때 마다
속만 터지면 좋으련만
흰 머리 가득한 부모 머리를 쓰담고 싶은 맘이 드니 미칠노릇이다.

젊어.. 마음 모질 때가 좋았다.

대차게 나는 신랑신부 입장한다고 결혼식장에서 아빠한테 일방통보했을때
딸 하나인 우리 아빠는 참 당황했더랬는데..
어리고 젊었던 마음 가득했던 스크래치들이 
아직 내 생활에 기쓰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문득문득 그때 아빠표정이 생각난다.

아..ㅅㅂ..그냥 인수인계하라고..할 걸 그랬나.
내..파트는 다 하고..상처준 거만 기억나게..
그래서, 완벽하게 악역을 맡길걸..

피해자는 이래서 꼬지다.
상처를 입기만해 도 힘들고,
그 상처를 갚아도 힘드니 말이다.
.............................................

오늘 불후의 명곡의 김광석 노래를 들으면서
따신 밥먹고 쉰소리가 전문인 동생놈의 말이 생각났다.
일년에 딱 한번씩만 쓸만한 소리를 생산하는 데.
그 중 한마디가 김광석에 관한 이야기이다.

입영열차 들으며 입대하고,
이등병의 편지 들으며 쫄병생활하고..
서른 즈음에를 들으며, 
내 이십대를 시마이했는데..
이 노마가 이리 가버리면
내 사십즈음에는 어찌 준비하며
내 오십은 어떠할 지..
어찌 갸름하냐고..
노부부 이야기까지 갈라믄 아직 아직 멀었는데
그 사이는 누구의 노래로 채우냐고..

그러다, 오늘 불후의 명곡을 보고 알았다.
사십 찍고 오십 땡겨가니 감이 오고 만다.

노래가 없어도 되겠드라고.

키워 보니, 자식놈도 길고..짧고..
내 맘같이는 영 글른거.
늙켜 보니, 원망만 하믄 속이라도 편할 부모는
이제 기운 빠져 내 전투력에 쨉도 안되누만..

호의가 계속되어 둘리가 되어 버린 나는
예전엔 몰라 당했고,
이젠 알고도 당해 준다.

그러니,
공동경비구역JSA에 나온  송강호처럼
담배연기 참으로 맛깔스럽게 날리면서
김광석이나 듣는다.

...김광석이래..와..그리..일찍..죽었어...하믄서.

...난 아직도..그대를..이해하지 못 하기에..
...그대 마음에 ...이르는 길을..찾고 있어..하믄,
그들의 좋을 때에 헤불쩍 웃어 주고,

...여보..이제..안녕히..잘 가시오...하믄,
갈 수록 미워지는 특별한 재주를 지닌 남편놈에게
설마..하는 눈길도 보내주고..

나의 노래는 나의 삶..뿐이 아니라
나의 삶은 나의 노래..가 된다는 데,
고단했고, 고단하며, 앞으로도 고단할 일상에 
날 벼락같은 드립치지 말고,
우리는 이제 됐다고..
괜찮다고..
여적지도 살았고..
아직 남은 기운도 좀 있고..
그러니..
어찌되었든 한번 해 본다고..
그럼 된거라고..
전해라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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