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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끝에서 흘린 소면
게시물ID : humorstory_44398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인취취
추천 : 4
조회수 : 1546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6/02/13 12:5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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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가끔 오던 선남선녀 커플이 불금을 맞아 가게를 찾았다. 큰 키에, 슬림한 몸, 훤칠한 외모의 남자. 성형 티는 나지만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한 여자.  

그 커플은 <골뱅이소면>에 소주를 시켜놓고 오늘도 어김없이 싱글벙글 웃으며 다정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어마무시한 사건이 터지기 전 까지는 말이다.  

골뱅이와 소면은 물론 야채의 흔적 하나 없이 양배추 찌꺼기 몇조각만 남고, 접시의 바닥이 훤히 드러났을 때..  털(같이 일하는 동생)이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털 : "접시 치워 드릴까요?" 
여 : "아뇨. 소면 하나 주세요."  
자신의 귀를 의심한 털이는 분명 본인이 잘못 들었을거라 생각했다. 

 털 : "아~소주 한병 드려요?" 
여 : "아뇨. 소면사리 주세요." 
털 : ".......네."  

당황한 털이는 주방으로 와 나에게 그 사실을 전했고, 나는 '더이상 비빌것도 없는데 왜 소면을 시킬까?' 하며 의아했다.  소면을 삶으면서 문득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에이 설마..소면만 시켜놓고 양념장 더 달라고 하진 않겠지?'

하긴 그렇다고 해도 놀라운 일도 아니다. 오뎅탕 먹다가 꼬치오뎅 몇개만 더 달라고 했던 손님. 제육김치 먹고서 김치만 좀 더 볶아 달라고 했던 손님. 김치찌개 거의 다 먹고 짜니까 육수달라, 육수 주니까 싱겁다고 김치 좀 달라, 김치 주니까 안 맵다고 고춧가루 달라고 했던 xx.  

이게 바로 헬조선 손님들의 민낯이다.  

쨌든 불안한 마음을 애써 위로하며 소면을 삶았다. 털이가 소면이 담긴 그릇을 들고 그 테이블에 가서 그릇을 놓자마자, 그 남자는 동물적인 반사신경을 발휘하며 그릇을 통째로 뒤집어 턱!! 하고 쏟아냈다. 

대참사!!!!  

당장 설거지를 해야 될 만한 빈 접시에 소면을 몽땅 엎어버린 것. 그리고 그 순간 여자의 울부짖음이 시작됐다. 

"악!! 그걸 왜 한번에 다 넣어!!" 

주방에 있던 나는 여자의 비명에 무슨일이 생긴줄 알고, 바로 홀쪽을 쳐다봤다.  그 많은 손님들이 일순간 침묵했다. 북적이던 가게엔 적막이 흘렀다.  

여자는 계속해서 남자를 쏘아 붙였고, 민망해진 털이는 결국 그들에게 협상안을 내밀었다. 

 털 : "저기..양념장 좀 더 갖다 드릴까요?" 
남 :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 "아..그래도 되나요?" 
털 : "네~ 갖다 드릴게요." 

 그 때 였다.  생각치도 못한 여자의 뜬금포 뻔뻔 드립이 나온것이..  

여 : "야채도 좀 더 주시면 안돼요?" 
털 : (당황한 표정) "아..죄송한데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아요."  

만약 야채도 더 준다고 했으면, 곧이어 골뱅이도 좀 더 달라고 했을 뻔뻔함 이었다.  소면사리에 양념장까지 주는것도 단돈 1,000원에 비빔국수를 주는것과 같은, 장사꾼으로서는 호구로 취급받을 수 있는 모욕적인 행위이거늘..  

뭐라니.. 
고라니.. 
야채라니.. 
심지어 야채라니.. 
게다가 야채라니.. 
기필코 야채라니..  

무튼 우리는 한 커플의 싸움과 이별을 막았다는 뿌듯함에 양념장을 흐뭇하게 내주었다.  그러나..  그 싸움은 우리의 예상과 달리 쉽게 끝나지 않았으며, 여자의 울부짖음은 그저 서막에 불과했다.  

궁금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자꾸 그 테이블 쪽으로 눈길이 갔다.

예쁜 여자는 없어졌다. 대신 무서운 여자가 앉아있다.  분노,경멸,복수,정색,멸시,증오 등등등등.. 안좋은 표정은 모두 담고 있는 그 여자의 얼굴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바로 앞 남자를 분노의 눈길로 죽일듯이 노려보면서, 선인장처럼 가시 돋힌 말로 계속해서 따지고 꾸짖었다. 남자는 소심한 젓가락질로 애꿎은 소면만 만지작 거리거나,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이럴수가. 저럴수가. 저렇게 무서운 얼굴로 변신이 되다니.  

여자는 집요한 푸드파이터인가.. 
아니면 음흉한 소면성애자인가..  
내 생각엔 그냥 식탐 많은 싸이코패스 같더라.  

시간이 지날수록 여자보다 남자가 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여자가 아무리 예쁘고 많이 사랑한다고 해도, 어떻게 저 말도 안되는 x같은 상황을 말 없이 참고 있을 수 있는가?  도대체 그깟 골뱅이랑 소면이 뭐라고..  그렇게 한 20여분간 둘은 냉전 상태로 말이 없었다.  

드디어 숨 막히는 정적을 깨고 둘은 일어났다.  남자가 계산을 하고 여자는 문을 열고 나갔다. 창문으로 보고 있었다. 비가 오는데 여자는 나가자마자 우산도 없이 전력질주를 하며 달렸다. 그리고 계산을 마치고 나간 남자는 우산을 쓰고 여자가 달려간 방향으로 힘 없이 터벅터벅 걸어갔다.  마치 나라를 잃은 패잔병의 모습과 같았다.  

털이와 나는 조심스레 전쟁터의 잔해를 치우러 갔고, 전쟁터의 광경을 보고 또 한 번 할 말을 잃었다.  

아무리 비벼도 변할 수 없었던 무모한 도전을 하고 난 후, 힘 없이 흩어진 소면과 새빨간 빛깔을 자랑하며 그들을 화해시키기 위해 투입 된, 손도 대지 않은 양념장 만이 삭막하고 처참했던 당시의 상황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렇다. 그 여자의 어마어마 하고 무시무시한 기에 눌려, 그 남자는 전쟁터에 투입 된 양념장을 사용할 용기조차 나지 않았던 것 이었다.  

그렇게 금요일의 밤은 깊어만 갔고, 하늘끝에서 흘린 소면이 비가 되어 내렸다.
출처 나의 백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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