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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와 공허의 신
게시물ID : science_5761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뇌를썰어
추천 : 0
조회수 : 59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3/11 00:19:41
1편 : 알파고와 영구평화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phil&no=13508&s_no=13508&page=1

아직 오유 뉴비라 게시판 속성을 몰라 여기저기 떠돌며 글을 남기고 있는 뉴비입니다. 앞으로 알파고와 이세돌의 5국을 하나하나 저의 주관적인 해석으로 의의를 부여해보려 합니다. 5편까지의 연재물로 기획하고 있고요, 게시판의 주제와 약간은 어긋날 수 있지만 주제가 인공지능이다보니 과학게시판에 저의 2번째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2번째 대국은 저는 개인적으로 승부 결과에는 의의를 두지 않게 되었습니다. 1편에서도 언급했다시피 1패의 존재만으로도 이미 앞으로의 모든 승부의 속성이 결정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승부의 주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대상은 바로 '해설자'입니다.
오늘 2국의 끝내기 국면에서 알파고는 중대한 실수같아보이는 실수를 합니다. 우상단 귀를 백에게 내주고 자신은 중앙을 먼저 굳힌겁니다. 해설자들은 마치 기계의 오류를 찾아냈다는 듯 모두가 격앙 되어있었고 기계의 오류성을 증명한 듯 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라면 중앙을 굳히는 것 보다 귀에 집을 짓는 것이 더 크다는 걸 배웠으니까요. 그러나, 단 10분도 지나지 않아 그 실수는 실수가 아니었음을 깨닫습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바둑은 1집이라도 많으면 이기는 게임이기 때문이고, 철저한 집 계산 결과 6집과 끝내기 국면의 선수를 확보해 얻는 확실한 승리를 알파고는 교환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해설진들 모두 경악합니다. 자신들이 수십년간 갈고 닦은 결과 체득했던 묘수풀이와 사활문제가 부정된 것 입니다. 5000년간 무시되어오던 악수가 사실은 신의 수였던 것입니다. 악수와 신의수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순간이 온 것입니다.

5천년간 바둑의 고수들은 세간을 그리고 스스로를 기만한겁니다. 그들은 인간의 한계라는 선을 상상하지 못한 채, 이 방법만이 바둑을 이기는 절대적인 길이라고 자기네들끼리 증명했지만 사실은 이기는 방법이 아닌 속이는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알파고는 파괴자일까요? 창조자일까요?

알파고는 목적이 없습니다. 
인간인 이세돌은 바둑이라는 수단으로 슬픔,기쁨,승리감,패배감을 맛보려는 목적을 가지고 임하지만 알파고는 그냥 알고리즘에 따라 계산 할 뿐 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세돌과 이세돌은 여전히 바둑을 둘 것 입니다. 하지만 인공지능과 인공지능은 스스로 놔두면 바둑을 두지 않을 것 입니다. 알파고가 이세돌보다 더 잘 둠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 세상에 인간만 있다면 바둑은 있지만 이 세상에 인공지능만 있다면 바둑은 없습니다. 왜냐면 바둑을 둬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알파고의 딥러닝도 과학자가 명령했기에 스스로 바둑 기보를 연구할 뿐이지 딥러닝이 필요성을 느껴서 스스로 바둑은 연구한건 아닙니다.

만약, 알파고가 인지능력이 있다면 사람들의 반응을 해석하지 못할 겁니다.
그저 돌 백여개 깔았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아무 의도가 없지만 인간은 모든 사물에서 스스로 패터닝을 하듯 거기에도 패터닝을 한 것입니다.
그것의 눈은 초점 없고 목적이 없지만 오히려 인간을 가르쳤습니다. 아니, 인간이 스스로 깨달은 겁니다. 
마치 물이 반컵 들은 물컵은 가만히 있을 뿐인데 인간이 스스로 물이 반이나 남았네 혹은 물이 반밖에 없네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거기에 '성악설, 성선설'같은 개념을 붙여 나갔을 것입니다. 
거기에 대고 인공지능이 '이봐, 물이 컵의 50%가 있을 뿐이야'라는 말에 자신의 도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처럼 말입니다.

기계는 이미 음악과 미술작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들은 분명 인간보다 더 잘 만들 것입니다. 하지만 기계는 기계를 위해 음악을 연주하고 그림을 그리고 바둑을 두지 않을 것입니다. 현재까지 그들은 인간의 경계를 공허로 보내는 공허의 신일 뿐입니다. 그것은 만년짜리 관습과 도덕의 경계이든 100억명의 거대담론의 경계이든 가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깼다고 해서 그들은 또 무언가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저 공허한 눈으로 '그럴뿐이다'라고 싱겁게 마무리 지을 것입니다.

'해설자'들은 사실 '해설자'가 아니라 '관찰자'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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