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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동자
게시물ID : panic_8718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neptunuse
추천 : 15
조회수 : 1549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6/04/10 18: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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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아저씨 정신 차려보세요.”
 

젊은 남자의 목소리에 난 고개를 흔들며 눈을 떴다.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파왔다.
 

다행히 정신이 드셨네요. 다친 곳은 없으세요?”
 

고개를 드니 눈이 붙어 엉망이 된 등산복 차림의 젊은 남자가 보였다.
 

분명 등산동호회에 처음 들어온 젊은 신입 회원 이었다.
 

좋지 않은 날씨에 동호회 사람들과 설산 등반을 시작한 것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는 마치 이글루처럼 사방이 눈으로 막힌 작은 공간에 있었다.
 

두리번거리는 내 모습을 보곤 젊은 남자가 말했다.
 

눈사태에 휩쓸렸어요. 다른 사람들은 다행히 잘 피한 것 같네요.
 

그래도 눈에 완전히 파묻힐 뻔 했는데 운 좋게 이런 공간이 생겨서 살았어요.”
 

아마도 눈사태에 휩쓸려 구덩이에 빠진 상태에서 커다란 눈 덩이가 위를 덮어버린 모양이다.
 

눈으로 사방이 막힌 탓인지 이곳은 제법 따뜻했다.
 

쌓인 눈이 무너지지만 않는다면 구조대가 올 때 까지 얼마간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구조대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무료함과 두려움을 달래려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 친구의 이름은 이지훈.
 

사실 등산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마음에 둔 누나를 따라서 등산모임에 가입을 했다고 했다.
 

등산 마치고 내려와서 데이트신청이라도 하려고 했는데 일이 이상하게 되어버렸네요.”
 

그렇게 말하고는 기가 차다는 듯 웃는다.
 

나 역시 작게 미소지은 후에 입을 열었다.
 

무사히 나가서 데이트 신청 하도록 해.
 

난 여길 나가면 말이야. 제일 먼저 아내에게 사과해야겠어.
 

아침에 나오면서 별것도 아닌 걸로 화를 냈거든.
 

아내 잘못도 아닌데 말이야.
 

게다가 울고 있는 우리 공주님도 본체 만채 그냥 나와 버렸지.
 

내 전부나 마찬가지인 가족들인데 말이야....”
 

나와 그 친구는 서로를 다독이며 구조대가 빨리 도착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일은 우리의 희망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제법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구조대가 올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체온은 조금씩 떨어져갔고 허기가 몰려왔다.
 

손톱을 물어뜯던 지훈이 말했다.
 

눈을 파서 위로 올라가 보는게 어떨까요?”
 

난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너무 위험해. 눈이 그대로 무너져서 묻혀 버릴 수도 있어.”
 

하지만 구조대가 언제 올지 모르잖아요.
 

마냥 기다리기만 하다가 눈이 얼어버리면 꼼짝없이 여기 갇히는....”
 

 

 

 

 

지훈은 무심코 벽을 손으로 짚으며 말하다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그리곤 미친 듯이 벽을 더듬거리고는 절망적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딱딱해졌어........”
 

아무래도 이미 눈이 다 얼어버린 모양이다.
 

딱딱해졌어! 딱딱해 졌다고! 물도 식량도 없는데 여기 갇혀버렸어!”
 

지훈은 바위처럼 단단해진 얼음벽을 맨손으로 두들겨 댔다.
 

살려줘!! 살려줘!! 여기서 꺼내줘!!”
 

난 다급히 일어나 지훈의 손을 잡고 말렸다.
 

하지만 이미 지훈의 손은 골절되고 살이 찢겨 엉망이 된 상태였다.
 

 

 

정신 차려. 여기서 흥분하면 진짜 다 죽어. 우선 침착해.”
 

내말에 지훈은 벽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았다.
 

나 역시 지훈의 옆에 주저앉아 그의 다친 손을 살피며 말했다.
 

침착해야해. 흥분해서 날뛰다간 산소까지 거덜 나고 말거야.
 

희망을 가져야지.”
 

추위도 허기도 문제였지만 역시나 이대로 가다간 정말 산소가 떨어질지도 모른다.
 

벌써부터 숨이 가빠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구조대가 오기 전까지 과연 버틸 수 있을까?
 

나 역시 두려움이 몰려왔다.
 

 

다시 몇 시간이 흘렀다.
 

이제 확연하게 숨을 쉬기 힘들어 졌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얼마 버티질 못한다.
 

지훈은 아까부터 마치 정신이 나간사람처럼 행동했다.
 

완전히 패닉에 빠진 듯 꼼짝도 없이 앉아서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뭔가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뾰족한 등산 스틱을 집어 들었다.
 

엉망이 된 손으로 힘겹게 스틱을 집어든 지훈이 말했다.
 

뾰족하네요... 이거면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요...”
 

 

 

지훈은 그대로 꽁꽁 언 얼음벽으로 걸어갔다.
 

이걸로 구멍을 뚫으면... 공기도 들어오고 어쩌면 나갈 길을 뚫을 수도...”
 

난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쳤다.
 

안돼! 잘못하다간 전체가 무너진다고. 지금 당장 죽을 셈이야?”
 

지훈은 이미 내말이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눈이 풀린채 등산스틱을 높게 들고 벽을 내리치려던 그 순간
 

난 기합을 내지르며 몸으로 지훈을 밀쳤다.
 

지훈은 힘없이 스틱을 놓치고 얼음벽에 강하게 부딪혔다.
 

그리고 다시 움직이지 못했다.
 

 

 

 

 

다시 몇시간이 흘렀다.
 

혼자 남았다는 두려움.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
 

점차 희망도 사라져가고 있었다.
 

혼자 남아서인지 산소가 부족한 느낌은 없었지만
 

진짜 문제는 지독한 허기 때문에 생기는 끔찍한 생각 이었다.
 

정말 너무나 배가 고팠다.
 

그럴 때마다 한켠에 쓰러져 있는 지훈의 시신으로 눈이 갔다.
 

지훈의 눈빛은 마치 나를 원망하는 것처럼 보였다.
 

몇 번이나 망설인 끝에 난 조용히 일어나 지훈의 시신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미안하다... 미안해.. 미안합니다....
 

하지만... 난 살아야 해... 살아서 아내를 만나야 한다고... 용서해라...”
 

그리곤 지훈의 너덜거리는 손을 입에 가져갔다.
 

짓이겨진 손가락은 생각보다 먹기 편했다.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맛있었다.
 

비릿한 피 냄새와 질긴 살점마저 황홀하게 느껴졌다.
 

난 마치 미친 사람처럼 허겁지겁 살점을 뜯어 삼켰다.
 

 

입을 대충 닦고 벽에 기대어 앉았다.
 

포만감이 드니 조금 살 것 같았다.
 

이대로 한숨 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그때 가까운 곳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의 말소리. 그리고 눈을 파헤치는 소리.
 

내가 어떻게 반응하기도 전에 벽의 한쪽이 무너지며 구조대 인 듯한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뒤쪽에는 같은 등산모임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눈물이 날것같았다. 이제 살았다.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다. 이제 아내를 만날 수 있다.
 

 

 

구조대의 부축을 받아 밖으로 나가며 뒤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벽에 기대어 있는 지훈의 시신.
 

다시금 죄책감과 혐오감이 들었다.
 

미안하다. 살기위해선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사죄하마. 부디 좋은 곳으로 가길....’
 

그때 구조대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 모두 살아있습니다!”
 

난 목이 부러질 듯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약하지만 맥이 살아있습니다. 들것 좀 들여보내 주세요.
 

중추를 다쳐서 못 움직이는 것 같은데 아직 의식은 있어요. 눈동자가 움직입니다.
 

그리고 팔이... 짐승한테 뜯어 먹힌 것 같습니다.”
 

 

 

 

 

바쁘게 움직이는 구조대원들 사이로 날 정확히 바라보는 지훈의 원망어린 눈이 보였다.
 

 

 
 
 

  by. neptunuse 

출처 원작 : 동명의 단편 만화 (루리웹 - 가재맘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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