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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트스트랩 패러독스
게시물ID : mystery_754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Fripsider
추천 : 2
조회수 : 2427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6/04/16 01:4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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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저녁 9, 어느새 저녁시간이다.

시간을 지켜 무언가를 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밥시간 때만큼은 맞춰 움직인다.

이 때가 되면 배고프기도 하거니와(비록 마지막에 밥을 먹은 시점은 4시간 전이지만) 엄마는 이 때즘 되면 달콤한 냄새와 함께 나에게 밥을 챙겨주기 때문이다.

평소와 같은 달콤한 냄새에 이끌린 나는 부드러운 침대에서 눈을 뜬다.

오늘은 어떤 음식이 나올지 궁금하지도, 궁금해 할 필요도 없다. 분명 오늘 음식도 나에게 있어서는 분명 맛있는 것일 테니까.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침대에서 기지개를 펴며 눈을 뜬다.

그러나 눈을 뜬 내 옆에 있는 사람은, 평소의 인자한 미소를 짓는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이였다.

불이 꺼져있어 잘 보이진 않지만 있어야 할게 없는 이 사내는 마치 며칠동안 씻지 않은듯 덥수룩한 머리를 하고 있고 수염은 여기저기 듬성듬성 나있었다. 꾀죄죄한 몰골이지만 그런 몰골과는 다르게 깔끔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고 풀려버린 듯한 눈동자는 기이한 고요함이 깃들어 있었다.

 

너무 무서운 나머지 나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본능적으로 손에 있는 이불을 움켜쥐었다.

내가 일어난걸 눈치 챈듯 풀려있던 사내의 동공이 순식간에 좁아진다.

 

'괜찮아 괜찮아. 난 내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도 아니고, 또 상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네엄마와 네아빠 모두 무사해. 난 그들에게 어떠한 해가 될만한 일도 하거나 시키지도 않았고, 또 그들을 속여서 어디로 보내 버린것도 아니야.'

 

사내는 마치 내가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던 양 눈을 뜬 내 모습에 당황하지 않고 눈을 맞춰오며 먼저 말을 건넨다.

갑작스러운 말과 당황하지 않는 사내의 모습에 더욱 당황할 수 밖에 없었던 나는, 겁먹은 눈빛말고는 아무것도 보낼 수 없었다.

그러자 사내는 내 눈빛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 그렇다면 내가 왜 여기 왔냐고? 하긴 초대하지도 않은 사람이 불쑥 나타나는건 무서운 일이지. 그것도 누구보다 보호받는다고 생각하고 또 그런 입장에 있는 사람일수록 그 무서움은 더 클 것이고.'

 

맞는 말이다. 부모님은 요며칠간 내 상태가 이상하다는것을 깨닫고 내곁을 떠나지 않았었다. 그들은 내가 소리를 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었고,

또 소리를 지르지 않더라도 내가 괜찮은지 보러 오셨고, 또 내가 괜찮다는걸 계속 확인시켜주셨었으니까.

하지만 여기 있는 사내는 그 모든걸 비웃듯 내 눈앞에 나타나 있었다.

 

'...어떻게 오신거죠.'

 

겁먹은 나는 옹알이하듯 겨우 입만 중얼거릴 수 있었다.

 

'당연히 초대를 받아서 왔다. 앞서 말했듯 나는 네 부모님 둘 다를 속여서 어디로 보낸 것도 아니고 여기에 무단으로 들어온 것도 아니다'

 

여전히 이 사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의 부모님은 그럴 리가 없다.

첫째로 애초에 부모님이 같이 어딜 나간다는 사실 자체가 그랬고,

둘째로 부모님은 절대 나를 이상한 사람과 일대일로 만나게 하지 않았으며,

셋째로 부모님이 이런 상태의 나를 두고 말도 않고 그냥 어디로 가버렸을 리가 없다.

 

혼란스러운 눈빛을 본 사내는 한숨을 푹 쉬더니 입을 열었다.

 

'. 비록 네가 몸상태가 많이 좋지 않아 보는 것과 듣는 것, 기억하는 것 모두 혼란스럽긴 하겠지만. 냄새는 여전히 기억하지? 잘 맡아봐. 나에게선 너의 부모님한테서 나던 냄새와 비슷한 냄새가 나니까. 네 부모님하고 그냥 친한 정도가 아니라 널 낳고 난 이후로도 자주 만나던 사이라고'

 

그건 사실이었다.

아니, 애초에 내가 눈을 뜨게 된 이유도 이 부모님에게서 나는 달콤한 냄새 때문이였다.

하지만 부모님은 한 번도 자신들에게 이러한 친구가 있다는 얘기를 해준 적이 없었다.

물론 집을 왔다갔다한 몇 명의 친구들은 있었지만, 그건 모두 한두 번 나를 스쳐지나가듯 본 사람들일 뿐 부모님과 같은 냄새가 나는 사람들은 아니였다.

아니, 최소한 그정도로 친한 사람이라면 내가 보거나 들은적이라도 있을것이다. 그런데 한 번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 이 사람의 부모님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하지만 적어도 이 사람이 부모님을 알고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부모님의 달콤한 냄새가 나는것도 사실이였고 또 이렇게 들어온건 사실이니까. 그렇다면 왜 여기에는 왜? 왜 나한테...?

 

'부모님께 초대를 받았다면 부모님을 만났어야겠지. 하지만 너에게 왔다는 것은.'

 

좀처럼 웃음을 지어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사내는 입술을 씰룩거리며 비틀어진 미소를 지었다.

 

'내가 초대를 받은건 부모님으로 부터가 아니라 너로부터다.'

 

 

 

난 이사람을 모른다.

한 번이라도 아니 직접적이 아니더라도 건너서라도 아는 관계라면 이렇게 당황스럽지도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친구도 많이 없는데다 친구를 초대해 본 적도 없는 나에게 초대를 받아서 왔다고?

게다가 이 사내는 비록 부모님보단 어릴지라도 나보다는 꽤 나이가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하고 내가 어디서 만나서 언제 초대를 했단 말인가!

 

두려움보다 혼란스러운 눈빛이 강해진것을 본 사내는 말했다.

 

'너의 공상이 현실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나는 어렸을때부터 공상이 많았던 아이였다. 특히 그 중에서 시간여행. 모든것이 열려있는 미래와 모든것을 닫을 수 있는 과거로 갈 수 있다면? 가능을 넘어 불가능조차 가능으로 만들 수 있다면?

항상 부모는 나를 귀찮게 만들었기 때문에 난 부모로부터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간여행을 하고 싶어했다.

당장 돈이 생기면 이 지긋지긋한 집구석을 떠야지.하곤 자주 생각했었다.

맛있는것도 먹고, 옆에 여자들도 끼고 다니고.

 

물론, 시간여행에 대한 동경은 존재했지만 그렇다고 그게 절대 현실로 이루어질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래그래, 너에게 초대받았지만 과거와 현재의 네가 아니라면 당연히 미래의 너에게 초대를 받은게 아니겠어? 미래의 네가, 과거에 너에게 나라는 초대장을 보내도록 한거라고.'

 

의문의 남자는 좀처럼 믿기 힘든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아니, 이건 믿기 힘든 말이 아니라 이상한 말이다. 시간을 거슬러 갈 수 있다면 온갖 모순이 발생하므로 말이 되지 않는다.

사건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 시간의 흐름상 원인이 발생하면 그에 따른 결과가 발생하는 순서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만약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게 되면 어떻게 될까?

결과가 발생하는 것을 본 내가 그 결과가 필연적으로 발생해야 된다고 생각해서 과거로 올라가 원인을 만들어내게 되면?

물론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는걸 전제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비록 시간여행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여기에는 큰 모순이 발생한다.

 

'부트스트랩 패러독스.'

 

남자는 비웃듯이 말했다.

 

부트스트랩 패러독스.

좋아하는 모순 중 하나이다.

 

전설적인 영웅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중 한 전설적인 영웅을 만나고 싶었던 그는, 과거로 그 영웅을 만나러 간다.

하지만 실제로 만나게된 영웅은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이였다. 그는 세상을 바꿀 야망도 능력도 없는 그냥 인간에 불과햇던 것이다.

시간여행자에게 있어 그 영웅의 존재가 허상이라건 포기할 수 없었기에, 그의 야이가기 전해질 수 있도록 그는 평범한 사람을 자신이 기억하는 이야기로 풀어내어 천천히 영웅으로 만들어간다.

영웅은 시간여행자의 도움을 받아 전해지는 이야기대로 나아가고, 승리하고, 기억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해지는건, 그렇다면 그 영웅의 이야기를 제일 처음 만들어낸 사람은 누굴까?

시간여행자가 처음으로 얻었던 영웅의 이야기는 아직 자신이 돌아가기 전에 얻은 것인데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최초에 첫 번째 과거의 결과를 미래의 나에게 보여준 것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 사람은 최초에는 누구로부터 알게되어 나를 찾아온 것인가?

 

'괜찮아. 이건 시간여행을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겪을 수 밖에 없는 함정이라고. 시간은 직선형이 아니라 원형에 가까운거라 지나가더라도 연결만 되어있다면 그 시작점이 어딘지를 알 수 없게 되는건 당연한거야. 우리가 봐야될건 이어져있는 그 결과라고, 어디서부터 시작했느냐가 아니라. 왜냐면 이미 일어나있잖아? 적어도 그 자체는 부정할 수 없는거지. 닭과 달걀 중 뭐가 먼저냐는 딱히 중요하지 않잖아? 결론적으로 우리는 닭과 달걀을 먹는다는 현실이 중요할 뿐이지.'

 

남자는 품에 있던 것을 꺼내 무릎 위에 놓으며 말을 말했다.

그것은 작고, 반짝거렸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라는 이유도 이야기 했고, 왜 너냐는 이야기도 다 했어. 그렇다면 그 다음엔 어떤 이야기를 이어 나가야될까?'

 

어떻게, 누구에게. 그렇다면 여기에서 남은 질문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왜 왔느냐?겠지 당연히.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볼까? 아니, 누구의 입장으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볼까? 지금 과거의 너? 미래의 너?'

 

'물론 지금인 과거의 너의 입장에서는 왜 왔는지를 물어볼 필요가 없지. 너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이니까. 네가 할 수 있는건 오직 짐작뿐이야. 미래의 네가 보낸 것에는 어떠한 이유가 있을 수 밖에 없다.라는 짐작. 아니, 그렇다면 오히려 의의가 있겠네. 생각해봐 미래의 네가 과연 오늘의 일로 무엇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런 만남을 성사시켰을까?'

 

말수가 적어보였던 남자는 생각보다 수다스러운 성격인듯 했다.

 

'그래,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두 가지로 줄이자. 결론은 뻔한거 아냐. 오늘의 일이 엄청나게 나쁜 일을 막게 되거나 또는 엄청나게 좋은 일을 가져다 주게 되거나 둘 중 하나겠지. 얼마나 중요하냐고? 그건 나도 잘 모르겠는데. 적어도 로또당첨보다 더 중요한일인것 같은데?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면 미래의 로또 번호를 과거의 나에게 당장 알려주면 그만일꺼 아냐! 그럼 지금의 너도 부자가 되고 미래의 나는 더더욱 부자가 되고. 만약이라도 돈이 부족하다 싶으면 또다서 과거로 가서 번호를 알려주면 되고 둘다 윈윈인 좋은 이야기만 만들면 그만인거지.'

 

남자는 무릎위에 있는 것의 손잡이를 집더니 뒷목을 긁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좋은일들은 대부분 정해져있어. 가장 간단하게 말했듯 앞서 얘기한 로또얘기가 대표적인 이야기이지. 그 외에는 다른 사람의 죽음을 피하게 만들어 주는거? 물론 가까운 사람 몇 명정도는 더 구할 수 있겠지만 사고로 급작스럽게 죽지 않는 이상은 딱히 구할 수도 없어. 직접적으로 닿는 거리에 있다면 막아주겠지만 직접적으로 닿지 않을때가 많고 실제로 그 사람들이 특정한 행위나 겪는 사건 자체를 일어나지 않도록 만드는 자체는 많이 어려우니까. 여기까지 질문?'

 

사실 지루하고도 익숙한 말이었다. 이미 시간여행 같은 이상한 것에 관심이 있었던 나는 새로운 내용들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반대의 케이스를 생각해보자. 오늘의 일이 엄청나게 나쁜 일을 막을 수 있겠지. 그런데 너는 지금 지금 어떠한 나쁜 일도 일어나지 않을것처럼 보이고, 또 그런게 딱히 일어날 일도 없어. 이렇게 침대에 얌전히 누워있는 어린아이한테 무슨 나쁜일이 일어난다는거야. 이 집에는 갑자기 불이 일어날 것도 아니고, 네가 갑자기 목이 막혀서 죽을것도 아니야. 그냥 넌 아무것도 걱정할 게 없다고!'

 

신나듯 얘기하는 남자는 혼자 점점 고양되어 가는것 같다. 아까부터 짓고있던 일그러진 미소는 더욱 이상하게 일그러져 갔으며 뒷목을 점점 더 신경질적으로 긁기 시작했다.

이 남자는 사실을 말하지만 사실의 전부를 말하는건 아니다.

물론 내가 위험해 빠질일은 극히 드물다. 적어도 내가 아는 현실 수준에서는 말이다.

 

'그래, 나같은 시간여행자가 없는 이상은 말이지'

 

남자는 손에 쥔 물체를 바로잡더니 음흉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너를 헤치러 오는 시간여행자들을 잡으면 되는건가? 마치 터미네이터처럼? 네가 사실은 존 코너처럼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라서 안좋은 일로부터 보호해 주려 미래의 네가 보낸건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 당장 도망쳐야 될 것 같은데, 떠날 준비는 되었나?'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내가? 그 영화같은 일을 내가 겪는다고?

난 아직 어린아이일 뿐인데, 벌써부터 부모님을 떠나 처음보는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야 하는건가?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은 상태인데 도망가야 하는 입장이라고?

뭘 해야할지를 모르는데 어떻게 할지를 어떻게 결정하라는거지?

아니, 그것보다 이 남자의 말을 믿는다는 자체부터가 이상한 것 아닌가?

그런데 안믿기에는 설명되지 않는 이 익숙함(그리고 냄새)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남자는 혼란스러운 내 모습을 재밌다는 듯이 지켜보았다.

그리고 잠시 뒤, 남자는 어이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요 귀여운 꼬맹이 녀석 같으니라고. 그런 어려운 결정을 왜 네가 내리게 하겠니. 만약 정말 네가 위험한 상황이라면 굳이 이렇게 너랑 토론을 벌이지도 않고 일단 도망갔겠지. 시간여행자잖아! 그럼 당장 널 데리고 위험이 없는 시간대로 도망가면 그만인걸!'

 

낄낄거리며 남자는 손에 쥔 차가운 물체를 품안에 넣더니 말을 이어갔다.

 

'걱정마. 네가 사는 세계에서 시간여행자는 나 뿐이니까. 다른 사람도 없어! 그리고 앞으로 또 생길 사람도 없고! 내가 유일한 시간여행자고 또 너만이 내가 유일하게 시간여행자라는걸 알 뿐이야! 푸하하'

 

남자는 허리가 꺾일정도로 경련하며 웃고있다.

뭐가 즐거운건지 심지어 눈에는 눈물까지 찔끔거리고 있다.

 

'유일한 시간여행자라니. 이정도면 거의 신 아니겠어? 근데 안타까운건'

 

키득키득거리던 남자는 갑자기 자세를 바로 고치고 무릎을 꿇었다.

잠깐 웃느라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던 내 눈에 눈높이를 맞춰 쳐다보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오직 너에게만 난 갈 수가 있다는게 문제겠지. 다른 곳은 갈 수도 없다는게 문제야.'

 

남자는 가볍게 머리를 내젓는다.

잠깐 손으로 머리를 짚더니 쯧하곤 가벼운 혀를 찬다.

 

'그러니까 돌려 말하자면, 별 쓸모가 없는 능력이란 얘기야. 시간여행을 할 수 있으면 뭘 해, 할 수 있는 건 고작 어린아이에게로나 돌아 오는게 전부인데.'

 

남자는 벌떡 일어나더니 창가로 걸어나갔다.

창가의 블라인드를 걷은 후, 창문을 열고 그대로 밖을 내다본다.

남자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꾸깃꾸깃한 담뱃값 안에서 오래된 듯한 담배 한 대와, 라이터를 꺼낸다.

 

'잠깐 실례할게. 뭐 어차피 네가 날 제지할 방법도 없긴 하다만'

 

담배냄새를 싫어하는 나는 이새끼를 담뱃불로 지져버리고 싶었지만, 남자가 말한대로 지금은 내가 힘이 없었기에 남자가 하는 짓을 그대로 내버려둔다.

틱틱거리는 작은 소리와 함께 잠시 후,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작은 불꽃이 생겼다.

남자는 한 모금 크게 들이마쉬더니 창밖을 향해 길게 내뱉었다.

그리고 여전히 침대에 누워있는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네 어머니는 담배피는걸 싫어하셨지. 아버지는 한 때 많이 피셨지만 지금은 끊으셨더군, 참고로 내가 처음 담배를 배운게 네 아버지로부터야.'

 

그리고 다시 두 모금.

정확히 말하자면 이 남자는 담배를 피우는게 아니였다.

빨아들인 연기는 1초도 되지 않아 그대로 입밖으로 그대로 뱉어내는 흔히말하는 겉담배만 피우고 있을 뿐이였다.

 

'하지만 난 담배를 피우지 않지. ...이상하단듯이 쳐다보지 말아. 오늘은 특별한 경우라서 피우는거니까.'

 

사실 겉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왜 피우는지 알 수가 없다.

속담배를 피우는건 실질적으로 약물이 몸에 들으니까 좋게하는 효과라도 있는건데, 그걸 굳이 애써서 안하려는 사람들은...

 

'담배를 피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 하는거지 별 의미는 없어.'

 

남자는 기세좋게 내가 품으려는 궁금증을 단칼에 잘랐다.

어느새 절반정도 타들어간 담배를 남자는 굳이 더 피우지도 않고 그대로 문질러 꺼버린 후 창 밖으로 던져버린다.

 

'담배를 왜 피우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도 할 이야기는 많지만, 오늘은 시간이 없으니 빨리 끝내야겠다. 자정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거든'

 

고개를 돌려 시간을 보려 했지만, 내 방에는 시계가 없다.

시간이란 나에게 굳이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님도 딱히 내 방에 시계를 들여놔야 할 이유를 못 느끼신듯 했다.

블라인드를 거둔 창 밖으로부터 오는 달빛을 희미하게 받으며, 남자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똑똑한 아이야. 질문을 하마.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어. 알다시피 그 3개는 모두 이어져있지. 그중 특히 과거-현재 그리고 현재-미래는 더더욱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남자는 품안에서 작고, 반짝거리고

그리고 날카로운 무언가를 창가 위에 꺼내 얹어놓는다.

 

'과거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현재의 깨달음이 필요하지, 그렇다면 현재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깨달아야 할까?'

 

그리고 잠깐의 정적.

잠깐 숨을 고르던 남자는 톡톡 하고 가볍게 창틀을 두드린 후 남자는 다시 말을 잇는다.

 

'현재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을 깨달으면 막을 수 있는게 아닐까? 그렇다면 미래를 추론하는건? 그건 다름아닌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상태 아닐까?'

 

작은 노이즈가 생긴다.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 그리고 과거로부터 시작되는 미래의 예측.

이와 같은 추론을 하는 새끼중에 제정신이 아닌놈을 난 본 적이 있다.

 

남자는 적대적인 내 눈빛을 알아차린듯 말을 이어간다

 

'좋은 눈이야. 역시 똑똑한 아이야. 그래, 사실 그 자체가 오만한거지.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누가 알아!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상태를 통해 미래를 예측한다는건, 결국 현재에서 예측한다는 얘기밖에 더 안돼! 물론, 그 확률에 있어서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적다 정도는 논할 수 있지만.'

 

난 이새끼를 알고있다.

오만하고, 독선적이고, 위험한 놈이다.

이새끼는 아는 것은 하나도 없지만, 적어도 나에 대해서는 잘 아는 놈이다.

 

남자는 조금 긴장한듯 움츠리며 창틀에 있는 물체를 집어들었다.

 

'아까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 봐봐, 만약 달걀이 먼저라면 달걀은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 부화할 수 있다는걸 알려주는거고, 닭이 먼저라는건 달걀은 품어져야 비로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거니까!'

 

이새끼는 다름아닌 나를 잡으러 왔다.

난 안다. 난 이새끼한테 미래에 위협이 된다. 아니 위협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누가봐도 뻔히 내가 알고, 그리고 다름아닌 저새끼가 알고 있었다.

 

'시간상에 있어,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연결되어 있다고 했었지. 그렇다면 그 어느고리를 자르더라도 끊기는건 같다. 그 중 내가보기에 가장 최악은 미래로 번져나가게 되는 과거의 씨앗이겠지.'

 

은색으로 반짝이는 칼의 손잡이를 잡고, 남자는 나에게 천천히 다가온다.

 

'안녕. 미래의 아이야. 너는 너무나도 오래 나를 괴롭혔어. 내가 자라오는 어느 시점부터 이미 네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난 스스로를 벗어날 수가 없게 되어버린걸.'

 

이새끼가... 이새끼가...!

나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울부짖음을 터뜨린다.

 

'이 더러운 위선자새끼. 너가 스스로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게 어째서 내가 존재하기 때문인거야! 네가 순수하게 있는건 그냥 미래의 네가 그냥 미래의 너이기 때문이잖아! 넌 그냥 내 핑계를 댈 뿐이야!'


그대로 목에 차가운 통증이 들어온다.

아직 어려서, 아니 이미 알대로 다 알아버린 나라도 경험해본 적 없는 아픔에 울부짖음을 터뜨린다.

통째로 뜯겨나가는 의식속에 남자의 중얼거림이 들려온다.

 

'그러니까 그만 두자는거다. 어차피 너와 난 태생부터가 위험하다.'

 

 

나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손에 든 젖병을 꽉 잡으며, 나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다음 뉴스입니다. 어제 새벽 한 남자가 자택에서 자살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남자의 양친은 이미 사망한지 오래되었으며, 명문대를 다닌 이 남자는, 졸업하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취직을 하지 않고 부모의 재산으로 풍족한 생활을 누려왔음이 밝혀졌습니다. 술을 자주 마시고 유흥가를 자주 들린 것으로 밝혀지자 그를 아는 주변 사람들은 그를 바르고 싹싹한 청년으로 기억한다고 대답하며, 그와 같은 비행과 자살에 대해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상 000뉴스 신민우 리포터였습니다."

 

출처 시험기간에 닥터후를 보다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 한 학생의 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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