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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꽃이 피었어
게시물ID : readers_2476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주님™
추천 : 3
조회수 : 43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4/16 21:46:12
몇 주 전부터 꽃이 피었어
향기가 가득하진 않았지만
보기만 해도 향기로웠지
흰 꽃 분홍 꽃 보라 꽃 노랑 꽃 활짝 피고
디카 폰카 셀카 전문DSLR 찰칵 찍고
보기에도 좋고 찍기에도 좋고
웃기에도 좋고 함께하기에도 좋았지
비가 와도 좋았고 차가운 바람에도 좋았고
가벼운 맥주 한잔도 좋았고 번데기 한컵도 아주 좋았어
알러지 때문에 나오는 기침도 좋았고
못생기게 보이게 하는 콧물도 좋았고
살갗을 감싸주는 햇볕도 좋았고
부대끼는 사람들도 좋았고
길을 막는 사람들도 좋았어
같이 사진 찍는 것도 좋았고
같이 사진 찍는 거 구경하는 것도 좋았고
돗자리 깔고 버스킹 하는 사람도 좋았고
옆에서 기타치는 사람도 좋았고
호응 하는 사람도 좋았고
박수치는 사람도 좋았고
지나가는 사람도 좋았고
청바지도 좋았고
팔찌도 좋았고
치마도 좋았고
모자도 좋았고
가방도 좋았고
신발도 좋았고
선글라스도 좋았고
어두운 거리도 좋았고
가로등 불빛도 좋았고
물이 고인 웅덩이도 좋았고
새차게 내려가는 강물도 좋았고
깜빡이는 편의점 간판 불빛도 좋았고
길을 비추는 자동차의 하이빔도 좋았고
부러진 나뭇가지도 좋았고
동떨어진 바위도 좋았고
신호등에 서 있는 것도 좋았어
반대편 사람들과 눈 마주치는 것도 좋았고
웃는 얼굴을 보여주는 것도 좋았고
노래를 듣는 것도 좋았고
버스 지나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좋았고
커피 한잔도 좋았고
배기 가스도 좋았고
담배 연기도 좋았고
발에 채이는 돌부리도 좋았고
젖은 신발도 좋았고
샴푸향도 화장향도 알콜 향도 페브리즈도 입냄새도 좋았어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좋았어
만원버스여서 좁고 덥고 축축 했지만 불쾌하진 않았어
정류장이 얼마 남지 않았었거든
내리면 되니까
멈출테니까.
집에 와서 간단하게 씻는 것도 좋더라고
재밌었거든
그러다 묻고 싶은게 생겼어
정말 바보 같은 말이지만
거긴, 꽃이 피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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