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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아몬드 : 농부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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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야설왕짐보
추천 : 30
조회수 : 4372회
댓글수 : 12개
등록시간 : 2016/04/18 10:4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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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편지 (1).jpg

The Almond : 농부의 편지

 

아몬드(almond) : 장미목 장미과 벚나무속 에 속한 중동 원산의 식물이다. 쌍 떡잎 식물이며 과육 껍질에는 주름이 잡혀 있다. 나무에서 나는 씨앗이 대개 사람들이 알고 있는 아몬드로 대개는 도토리와 같은 견과류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복숭아나 자두 같은 핵과에 해당 한다.]

 


[아몬드를 아십니까?]


그렇다면 나무에 열려있는 과일로서의 [아몬드]도 알고 있나요? 그 녹색의 껍질과 떫은 과육으로 둘러싸인 본 모습 말입니다. 잘 모르신다고요? 뭐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저처럼 농부가 아닌 사람들이 견과류로서의 아몬드가 아닌 열매로서의 아몬드를 안다는 건 흔한일이 아니니까요. 건조하여 섭취하는 견과류로서의 아몬드만 알고 있어도 훌륭합니다. 당신이 그토록 궁금해 하던 생(生)의 순환과 영혼의 종착지, 그 모든 진실을 이해하는데엔 단지 그거면 충분합니다.


다시 아몬드 얘기를 해 볼까요? 아몬드는 단순히 씨앗이 아닌 열매로서의 과육을 가지고 있지만, 당신들은 그것을 버리고 그 안의 씨앗만을 취합니다. 오도독 오도독 그 식감과 고소한 맛을 즐긴다고 하더군요.


아 네! 물론 그것을 트집잡고자 하는 말은 아닙니다. 아몬드는 분명 여타의 과일과 달라서, 형편없는 맛의 과육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맛없는 식재료를 즐기는 소비자는 아마 어디에도 없을 겁니다. 아몬드의 과육이 외면 받는 것도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겠죠. 

도리어 식용으로서의 가치가 형편없는 과육 대신 그 속에 숨은 씨앗을 말리고 또한 섭취하는 방법을 찾아낸 당신들 선조의 지혜에 박수를 보낼 뿐입니다.

자 그럼 본론을 이야기해 볼까요?


[저희도 그와 같습니다.]


친애하는 교황님, 당신이 갈구해온 생의 통찰과 영혼의 종착지에 대한 끝없는 고뇌에 이제야 답을 드리는 점 먼저 사과드립니다. 조금 늦었지만 지금껏 제가 설명 드린 [아몬드]야 말로 가장 완벽한 비유이며, 또한 당신이 그토록 고뇌해 온 생의 비밀을 관통하는 가장 본질적인 대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음 후의 영혼은 어디로 가는가, 내세는 있는가, 윤회란 존재하는가?]


의심하지 마세요. 

분노하지 마세요.

그리고 배신이라 부르며 통곡하지도 마세요.

잔인하고 또한 배려심 없는 말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모두 다 사실입니다.


[그저 받아들이세요.]

 

그것은 당신들이 키우는 소와 돼지들에게 너희가 키워지는 이유가 바로 그러하다. 라고 알려주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아울러, 당신들이 심은 곡식과 채소들에게 너희가 곧 너희를 심은 이들에 의해 송두리 채 잘라져 높은 온도로 조리 된 후 섭취 될 것이다.라고 구태여 알려 줄 필요를 느끼지 못함과 같습니다.

 

물론 억울한 듯 푸념하는 당신의 심경도 일견 이해는 됩니다.

 

[왜 이제야. 왜 하필 저에게... 그런...]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저에게도 나름의 사정은 있습니다.

당신들이 영유하는 시간의 개념을 기준으로 저는 수 십 억년도 넘는 시간 동안 농부였습니다. 저는 저의 본분을 잘 이해했고, 늘 충실하려 애썼습니다. 물론 긴 시간 그와 같은 질문 역시 수도 없이 많이 받아 왔었죠. 하지만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이유로 그에 대한 답을 해줄 순 없었습니다.

잔인하지만, 그것은 당신들이 최후의 최후까지 스스로를 불행하다 여기게 하지 않으려는 배려였습니다. 비겁하지만, 그것은 매 천년의 수확량을 지켜야 하는 농부의 본분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진짜 마지막이네요.

왜냐하면 농장이 곧 폐쇄 될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당신들의 세상에서 흔히 통용되는 경제적 개념과 닮아 있습니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 수요자의 기호가 바뀌었고, 보다 부드럽고 좋은 식감의 영혼이 개발되었습니다. C-43792의 외 행성지구에 건립된 다른 농장에서 시험적으로 재배되던 종자들이 일제히 발아하였죠. 한층 더 고급스런 풍미는 물론 탁월한 식감의 영혼을 가진 새로운 종 말입니다. 그것들은 이미 외우주의 영혼 소비자들의 기호를 완전히 사로잡았습니다. 결국 관리자들은 불가피한 결정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공급은 이미 수요를 넘어섰고, 기존의 재고 역시 처치곤란이었으니까요.

따라서 현재의 낡은 농장에 대한 폐쇄조치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름 저도 영혼의 병충해 방지 및 풍미 향상을 위해 당신들이 종교라 부르는 정신적 수양을 전파하려 노력해 보기도 했지만, 질투와 시기, 분노 그리고 이기심이란 이름으로 억세어 지고 또한 병든 것은 결국 당신들 스스로의 책임이니 누굴 탓하겠습니까?

 

소비는 점차 줄어들었고, 재고는 엄청나게 쌓였습니다. 이 모두가 당신들이 더 이상 시장에서 사랑받는 제품이 아니라는 방증입니다.

 

. 물론 농장의 책임자로서 저도 나름의 애정을 가지고 있던 터라, 격렬히 항의도 해 보고, 나름의 활로를 찾아보기도 하였지만, 돌아온 대답이라곤 고작 [기호식품이란 원래 그런 거야!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지 못하면 결국 도태되는 거지!]였습니다.

안타깝지만 당신들의 세상에서도 품종개량의 이유로 도태되거나 사라진 종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냥 그런 당연한 수순이니, 너무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처음부터 직접 심고 기른 저 역시 안타깝고, 마음 아픈 일입니다.

이것이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과거 당신들보다 더 성긴 영혼의 식감 탓에 일찌감치 농장에서 제거된 프로토타입의 파충류들도 아마 같은 심경이었을 겁니다.

 

그들을 밀어내고 당신들을 심었던 것처럼, 당신들도 밀어낸 후 개량된 새 종자를 심을지, 아니면 영구히 폐쇄하고 다른 혹성의 생산에 전념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정해지면 그것은 그것대로 다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에 따른 조치로, 오늘 밤 0시부터 영혼의 수확이 잠정적으로 중단 될 것임을 먼저 알려드립니다. 아마 그와 동시에 당신들이 가장 두려워하던 죽음이란 단어도 사전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될 겁니다. 그것은 관리자들의 결정이 끝날 때까지 당신들이 당신들 안에서 한시적으로 함께 할 것임을 뜻하니, 수확기가 지난 작물이 부패되어 변질되고 식욕만이 남은 상태로 곁을 지나더라도 너무 놀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신들의 시간을 기준으로 100~200년 정도 안엔 결정이 날 테니 너무 걱정은 마시구요.)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나 수확물을 고온으로 조리하는 우리 농장의 식품 저장소 이름이 마침 지옥입니다.

친숙한 단어죠? 당신들이 아는 사실과는 조금 다르지만 어쨌든 지옥은 이미 재고로 가득 차 있습니다. 따라서 언제 소진 될 지 모르는 지옥에서 마냥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이들도 분명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참고로 출하 직전의 상품이 씻긴 후 포장되는 곳의 이름도 천국이랍니다. 신기하죠?)

 

친애하는 교황님, 조금 늦었지만 당신이 공들여 수행해준 청소년 자살 방지 및 아동학대 방지 캠페인은 농부의 입장에서 정말로 고마운 일이었음을 밝힙니다. 덜 익은 영혼의 수확은 어느 농장에서나 골치 아픈 일이거든요. 그 작은 것들을 골라내어 버리는 것은 늘 마음 아프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수확실적도 떨어지고... 관리자들의 질책이 많았는데, 아프리카 기아 방지 활동과 더불어 당신의 노력이 저를 기쁘게 했습니다.

이 최초이자 마지막 답변 역시 그러한 감사의 한 방편이기도 합니다.

긴 시간 즐거웠습니다. 예전 같진 않지만 당신들은 나에게 항상 큰 기쁨이었습니다.

당신들의 삶과 수확의 즐거움을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 애석하네요.

안녕, 아름다운 나의 농장

너를 심고 가꾸며 즐거웠던 시간들을 영원히 잊지 못 할 거야.

 

 

당신들의 농부 A. Jesus Christ Budda 드림

 

 

p.s 저는 이제 더 이상 농부가 아니게 되었지만, 끝없이 추억하며 당신들의 일부를 저희 집 앞 인공행성과 교외의 주말 행성에 심었습니다. 일부는 이미 싹을 틔우며 번식을 시작했고, 또 일부는 무럭무럭 자라 몇 번의 세대를 지나왔습니다. 비록 생산되는 영혼의 수는 저희 가족들이 먹기에도 작은 양이지만, 제 손자는 그러한 수확에 기뻐하며 그 주말 행성에 이름도 지어주었습니다.

지구라나요

끝.


글쓴이의 말...

어쩌면 허무맹랑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생명의 탄생과 죽음, 사후 세계, 윤회 등에 대한 인간의 본질적 의문을 

얼토당토 않은 상상력과 결부시켜 보았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시간에도 먹으며 살고, 또 살기 위해 작물을 심고 가축을 기릅니다.

그러한 행위가 오롯이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닐때,

 우리 또한 하나의 작물이고 가축일 때... 

그 허망한 상상이 여러분들께 어떠한 감상을 전해드렸을지는 모르나

 흔하디 흔한 클리셰에 대한 조금은 다른 시각을 기특하게 여겨주시길 바래봅니다.

즐거운 하루되세요. 

미스터리/스릴러/공포소설 전문 창작자 짐보 올림

p.s 꼬릿말을 통해 저의 다른글들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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