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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덕후 선배의 기묘한 도착증
게시물ID : wedlock_34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리리리리맇
추천 : 10
조회수 : 1004회
댓글수 : 19개
등록시간 : 2016/04/20 09:53:21
얼마전에 덕후 선배들을 간만에 만나서 술자리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 취중 대담 중에서 나왔던 덕후 동지들에게
고하는 연애 비법에 대해서 썰을 풀었는데… 생각해보니 그것보다는 더 빵터지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술마시면서 잊어버렸다 다시 생각이 났습니다. 한번 그 이야기를 적어봅니다.
 
그 선배에 대해서 말하자면 중증 덕후십니다. 오랜 시간 숙련된 덕후의 페이소스를 가지고 말투에 그런 것들이 팍팍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사회에서 격리된 양반은 아닌지라 나름 직장 생활 잘하고, 결혼도 잘하셨고, 아이들도 잘키우며
사시는 이 시대의 능덕이십니다.
 
그런데 결혼 초기에는 이 양반도 상당히 위기가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그건 바로 자신의 포기하기 힘든 취미 생활에
대한 형수님과의 타협이었습니다. 형수님은 그런 세계에 대해서는 무지하신 평범한 대한민국의 여성이셨거든요. 그래서…
연애 초기에는 전에 연애 가이드에서도 썼던 것처럼 시간을 달리는 소녀나 초속 5센티미터로 순한 것들을 같이 보면서
내성을 길러서 나름 결혼에 골인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연애와 결혼은 확실히 다르죠.
 
어쩌다 한번씩 봐서 좋은 모습만 보는 연애와는 달리 항상 얼굴 맞대고 같이 사는 결혼에서 자신의 취미를 유지하는 것은
아무리 내성이 생긴 일반인이라고 해도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더라는 모양이더군요. 뭐… 이해 못할 건 아니죠.
신혼이니 꽁냥꽁냥한 것들 하고 싶은 신부 마음과는 달리 우리들의 마음은 세이버가 엑스칼리버 날리는 화면에 가있는 것이
현실이니깐요…
 
그래서… 싸움까지는 가지는 않지만 이래저래 취미를 즐기는 것에 대해서 불편한 시간을 그 선배는 오랫동안 보냈다고 합니다.
형수님도 대놓고 뭐라고는 안해도 탐탁치는 않다는 느낌인데, 사실 그런 것이 당사자에게는 더 불편하죠. 그렇다고 사랑하는
아내를 외면하고 취미를 즐길 수는 없기에… 그 선배가 택한 방법은 간단했습니다. 그걸 즐겨도 불만이 없을 만큼 열심히 하자.
그런거더라구요.
 
그래서… 직장생활이 바쁜 와중에도 열심히 가사도 남자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형수님 대신 도맡아 하고, 태어난 아이들을
돌보는 것도 발빼지 않고 뜬눈으로 밤새며 같이 형수님이랑 고생하고, 그런 와중에 취미를 즐기는 시간도 조절해서 가급적
형수와 아이들과 무관한 늦은 시간이나 출퇴근의 짧은 여유를 활용해서 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나름 시간이 흐르면서 형수도 뭐 취미가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영역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집안이나 가족들을 외면하고
하는 것도 아니고, 딱히 남들한테 폐끼치거나 돈을 과하게 낭비하는 것도 아니니 그냥 그러려니 하게 되었답니다. 뭐… 여전히
그런 거 하고 있으면 핀잔은 주지만 그래도 그냥 하지 말라가 아니라 적당히 해라 수준? 그렇게 되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그런 변화에 더불어 그 선배에게 더 경사가 생겼으니… 근무 시프트가 바뀌는 바람에 평일 휴일을 쓰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형수님은 직장에서 연수가 있어서 몇일은 늦게 퇴근하게 되는 일상이 되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평일 휴일에 형수 출근하고 아이들 어린이집 가면 완벽하게 자신의 취미를 위한 시간이 보장되고, 일주일에 몇일 정도는
형수가 늦게 오니 자기가 애들 재우고 형수가 늦는 시간까지 홀로 눈치보지 않고 덕질 삼매에 빠질 수 있게 되었다더라구요.
 
다들 축하했습니다. 오메데토~~~ 그리고 그 선배도 함박웃음을 감추지 못하더라구요. 그때는…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만난 선배가 표정이 안좋더라구요. 그래서 물어봤더니…
 
본인 : 얼굴이 왜 그래요?
 
선배 : 몰라… 요새 이상하게 심심해. 재밌는 것이 없어.
 
본인 : ? 요새 신작들이 대박이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게임들도 형수 연수하고선 엄청 질러놓지 않았어요? 근데 왜?
       이제는 시간도 넘쳐나서 형수 눈치 안보고 신나게 할 수 있는데 뭐가 심심하다는 거예요?
 
선배 : 나도 그런 줄 알았지. 근데… 이상하게 나 혼자 있으면 뭐가 다 재미가 없어. 다 지루하고 심심해. 그래서 맨날 잠만 자.
       왜 그렇지? 나도 이제 늙었나? 이것이 말로만 듣던 탈덕의 시기인건가?
 
그런 대화가 오갔습니다. 선배가 정말로 인생이 지루하다는 무기력한 표정이더라구요. 그래서 그날은 걱정하면서 일단은
결별을 했는데… 바로 얼마전 술자리에서 그 선배에게 예상치 못한 상황을 듣게 되었습니다.
 
본인 : ? 이제 얼굴이 좀 좋아지셨네요? 뭐 재밌는거라도 발굴하셨어요?
 
선배 : 아니, 옛날 것들 그대로 그냥 하는데?
 
본인 : 근데 갑자기 왜 활력이? 전에는 이상하게 무기력해서 지루하다고 하시더니…
 
선배 : 그게 말이야… 왜 그런지 이유를 알았어. 바로 마누라 때문이었어.
 
본인 : ? 왜요? 형수가 또 다시 뭐라고 해요? 그래서 짜증나서 무기력해진 거예요?
 
선배 : 아니… 반대야. 마누라가 뭐라고 안해서 그런거였어.
 
본인 : ??????
 
선배 : 우연히 알게 됐어. 전에 마누라가 좀 늦게 연수 마치고 와서 살짝 짜증이 나서 왔거든. 그런데 마침 그날 지루해도 하던
       게임이 있어서 마누라 눈치보면서 그 스테이지만 깨고 저장하고 끄려고 했는데… 놀라울 정도로 그게 재밌는 거 있지?
       언제 마누라가 와서 나한테 짜증을 낼지도 모른다는 촉박함을 가지고 게임을 하니깐… 평소에는 현자타임 오던 플레이가
왜 이렇게 미치도록 재밌냐? 너무 재밌어서 그날 마누라 먼저 잔 다음에도 계속 해서 결국 끝판왕 깼잖아.
 
본인 : 그… 그게 뭐예요? 아니 왜 하루종일 자유롭게 하랄때는 재미없던 것이 갑자기 눈치보니깐 재미가 넘치다니? 시험 전날
대청소도 아니고…
 
선배 : 그러게 말이야. 근데 너는 이 기분 몰라. 역시 사람은 절박함이 있어야 아드레날린이 솓구치는 건가? 어떻게 하지? 더는
       마누라가 옆에 없으면 그 어떤 것도 흥미가 생기질 않는 몸이 되어버렸어.
 
뭐… 그런 어이없는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이미 상술했다시피, 형수가 그렇게 꽉 막힌 사람도 아니고, 선배가 열심히 하는 것 보고선
어느 정도 허용을 해주고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이 정신나간 놈의 선배는 가끔씩 형수나 날리는 핀잔을 하거나 유독 기분이
좋지 않아 심술 부리는 날 눈치보면서 하는 게임이나 애니 감상이 아니면 더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더라구요.
 
그래서… 요새는 형수가 집 비우는 날에는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숙면… 그리고 형수가 퇴근하면, 그 바쁜 와중에 자기도 퇴근해서
가사 돕고, 밥차리고 식사하고, 애들 재우고, 형수랑 살짝 꽁냥대다가, 형수가 먼저 자면 자기는 조금 늦게 자면서 그 얼마 안되는
짧은 시간동안 하는 것에 그토록 재미를 느낀다고 하더라구요. 그건 자기 혼자 쉬는 날 보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재미라나요?
 
최근에는 한술 더 떠서… 형수는 태양의 후예 보는 동안 자기는 그 한시간 동안 방에 들어가서 덕질을 한다는데… 언제 형수가
자신을 유시진이랑 비교하며 핀잔줄지 모르는 두근거리는 상황에서 하는 게임이 그렇게 재밌다네요. 여기 빼도 박도 못할
변태 한명 추가요!!! 너무 어둠의 세계를 많이 봐서 자신도 어둠이 된거냐?
 
그러면서, 주변에 자신과 같은 스릴 덕질… 이라고 쓰고, 마조 덕질을 열심히 전도하는 중인데, 그냥 조용히 술 마셨습니다.
이래서 기억이 안났구나… 세상은 넓고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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