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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권 회수와 관련된 현리, 청천강 떡밥에 관한 글입니다.
게시물ID : military_6247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Lemonade
추천 : 3
조회수 : 1241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6/04/29 09: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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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글솜씨가 미욱하나 참 끊이지 않고 그렇다 카더라 아님 말고로 올라오는 이 떡밥에 관하여 몇 글자 답글과 기타 주제를 모아 적어볼까 합니다, 

1. 중공군의 상황

중공군의 문제점은 공군과 해군이 전무하여 지상 전력에 의존할수 밖에 없었으며, 그 지상 전력은 차량화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기갑전력이 전무하였고 미군 1개 사단과 비교시 군단이 열세에 처할정도로 지원화력이 저렴했으며 그 화력마저 구 일본 제국군과 소련군등 다양한 출처를 통하여 편제된 탓에 통일화가 이루어지지 못해 지속력이 매우 떨어졌습니다, 쉽게 말해서 포탄이 없었습니다, 덧붙이자면 통신장비나 기타 시설, 장비 모두 사단과 비교를 해도 떨어지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유엔군이 가진 최악의 약점인 넒은 전선에 대비하여 부족한 전력 즉 얆은 전선을 이용하여 기동전과 포위전을 펼쳐 큰 전과를 거두었습니다


2. 현리 전투

아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가용 병력은 2개 사단이고 상부에서는 그 2개 사단을 예비대도 없이 최전선에 얇게 도포하다 시피 배치시켜 놓고 유일한 퇴로 및 보급로를 확보해 놨더니 그나마도 상부에서 중재를 빌미로 차단시켜버렸습니다,

무슨 말 인가 하면 오마치 고개는 3군단의 관할 지역으로 거의 유일한 제대로 된 보급로이자 작계상 퇴각로로 지정되어 3군단에서 예비 병력을 일부를 쪼개어 사수하고 있었습니다만 인접한 10군단에게 관할 지역이 넘어가면서 이를 두고 갈등이 벌어지자 8군에서 중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데 결국 10군단에서 경계 병력의 주둔을 거부해버리고 자기들도 무주공산으로 내버려 뒀습니다.

그러한 요충지의 공백을 중공군이 그 특기인 기동 섬멸전을 십분 활용하여 벌어진 것이 현리 전투이고 그러한 상황속에서 어떻게든 휘하의 병력을 이용하여 전황을 타개해 보겠답시고 유재흥 장군은 연락기를 타고 고립된 현리에 돌아와 그 지역을 사수하던 3사단 및 9사단장과 작전 회의를 거쳐 오마치 고개를 통한 포위망 돌파를 결정하고 복귀한바 이게 유재흥 장군 적전 도주설의 실체입니다.; 

물론 문제가 여기에서 그치는건 아닙니다, 증언을 교차 검증해보자면 좁은 지역에 많은 물자와 장비, 인력이 밀집한 상태에서 적의 포위망 돌파에 실패하자 9사단의 붕괴를 시작으로 3사단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혼란 속에 집단 탈주가 시작됩니다, 네 군단이 붕괴했지요.

붕괴한건 물론 부정할수 없는 사실이고 비좁은 전선에 제대로 된 지원 화력 조차 배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2개 사단을 밀어넣은건 문제입니다만 이게 일본군 육사 출신이라는 배경을 문제삼아 한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시킬 일이 될수나 있을지요.

사실 따지고 보자면 굉장히 여러 문제가 얽혀있습니다, 전형적인 정치 군인으로서 낙하산이나 다를바 없이 과중한 이권을 보장받았고 그 이권을 지키기 위하여 상관인 맥아더 장군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춘 10군단장 에드워드 알몬드라던가 동경 사령부의 가신들과 함께 현장에서 시산 혈해를 이뤄가며 지옥도를 펼치는 것을 아랑곳 하지 않은채 오합지졸 중공군과 패잔병 북한군만을 상정한체 핑크빛 전망과 자신의 이력에 큰 자랑이 될 '그림'을 만들기에 급급하셨던 맥아더 장군 등 오히려 전작권 회수와 관련된 이 떡밥에서 무시하고 넘어가는 문제는 너무나 많습니다.

당장 여기에서 비판받는 유재흥 장군만 보더라도 낙동강 방어선의 최후를 결정짓는 것이나 다를바 없는 영천 전투에서 승리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세웠고 중공군 1차 공세때 아군의 전선이 붕괴되는 것을 필사적으로 틀어 막아냈으며 군우리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바 제 8군이 청천강 이북에서 붕괴되는 것을 막아낸바 있습니다, 단순한 무능 단 한 단어로 치부될 분일까요?

3. 청천간 전투

진짜 맥아더 장군을 비판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정말 이 걸 설명하려면 그 이야기가 안 나올수 없는데 인천 상륙 작전 이후 사실 인천 상륙 작전도 현실적인 여러 문제로 군 사령부측에서 완강히 반대를 하는걸 정치력으로 땜방치고 실행시키신것이기는 한데 아무튼 그 이후에 완전히 그림을 잘못 그리셨습니다, 북한군의 섬멸 대신 수도 점령이라는 그림에 집착하시어 북한군 주력 섬멸에 실패하신 한편 3만의 패잔병과 김일성을 처리할수 있다며 실행하신 숙천 공수 작전은 고작 1개 연대만을 지우는데 그쳤습니다.

그러한 상황속에서 물론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라 하나 기존에 평양 - 원산으로 국한되었던 공세 한계선을 임의로 틀어 고치셔서 선천 - 창산장시 - 고인동 - 평원 - 성진 까지 끌어 올리셨습니다, 그리고 당시 그러니까 50년 10월에 11월 23일 추수감사절까지 모든 작전을 끝내고 돌아갈수 있다며 추수감사절 공세를 펼치셨지요.

네 이쯤에서 혹시나 파악하신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두 배 이상 넒어진 전선에 제대로 된 지원 화력이라고는 미국에 기대야 하는 현실에서 그 미국 역시 낙관론에 따라 병력 감축이 이루어졌고, 카츄사가 귀국하는 한편 기존에 미달되었던 편제그대로 유지되던 까닭에 30%나 정원이 미달되었던 상황속에 얇게 병력을 흐트려 놓다 시피 한겁니다.

가령 낭림 산맥을 기준으로 좌 우로 배비된 유엔군의 당시 전력을 보면 좌측 그러니까 서쪽은 제 8군이 담당한바 이는 한국군 4개 사단과 홍콩에서 급파된 영국군 1개 여단, 미군 4개 사단으로 구성되는데 이때 서부 전선을 담당하는 건 중공군 5개 군단과 북한군 1개 군단입니다, 덧붙여 빠른 진격을 강조한 결과 유엔군 후방과 도처에는 패잔병들과 잔존 병력들이 산재해 있었지요.

더 우울한 사실은 홍콩에서 급파된 27여단은 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군과 일본군을 상대로 전과를 올린 역전의 예비군들과 다수의 장교, 현역병들로 이루어졌으나 지원대는 전무하여 미 24사단에 배비되어 운용되었으며 한국군은 미군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낮은 숙련도를 보유하고 있었고 역시 상대적으로 낮은 지원 전력을 운용하고 있었습니다만 제 8군의 좌 우측에서 전선을 지탱하는 한편 예비대로서 운용되고 있었습니다.

무슨말인가 하면 중공군이 노릴 것은 자기들 군단이 미국의 사단과 비교해야 되는 현실이 아니라 그나마 상대가 되는 한국군인데 문제는 한국군이 전선의 외곽에서 진격하고 있었기에 돌파, 포위, 섬멸을 통하여 8군의 진격 자체가 틀어막히는 상황이 된다는 겁니다,

비단 서부전선만 그런것도 아니나 아무튼 그러한 상황속에서도 맥아더 장군께서는 참 긍정적 이셨습니다, 많은 전작권 회수 반대를 기반으로 하는 카더라 글들에서는 한국군이 중공군과 처음 전투를 벌인건 청천강 전투라 하나 이미 추수 감사절 대공세 첫날에 교전을 통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보고까지 올렸습니다만 아무 것도 달라진게 없습니다.

맥아더 장군 께서 상정하신 생각하고 계신 결과는 남방작전 이래 각 섬에 고립되어 구 일본 제국군보다 못한 북한군 패잔병들과 오합지졸의 몇 안되는 중공군들이었으니 말이지요,

아무튼 그 전투의 내막을 보면 더한게 본디 중공군의 작계는 한국군 제 2군단을 미 제 1군단과 분리 강계- 회천 - 구장동 - 개천 방향으로 전력을 전개 포위 섬멸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만 이 공세 당시 제 8군의 우측 낭림 산맥과 개마 고원 일대의 수십 킬로 미터를 사수하고 또한 조직적인 반격을 통하여 결국 그 목적을 분쇄한건 누구일까요?

2개 사단이 사라질때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네 어쩌네 하시지만 정작 각종 공수 보급과 항공 전력 지원 후퇴하고 보니 거기도 적이 있고 돌던지면 모두가 적이던 겹겹이 쌓인 인의 장막을 돌파하려던 수많은 시도들은 그럼 뭐라고 봐야 할까요? 정말 우리가 미군이 아니었으면 아무것도 못하던 모르던 무능아들의 집합소였을까요?

이러한 교훈을 무시하고 결국 전선을 확대하다 장진호를 시작으로 각지에서 붕괴시킨건 누구였을까요?

시간상 글을 길게 쓰기가 어렵습니다만 아무튼 그렇습니다, 한국 전쟁 당시의 문제들을 단순한 한국군의 문제로, 친일파라서 라는 말로 땜빵칠수는 없는게 사실이고 맥아더 장군이 대단한 분이셨던 것도 사실입니다만 그가 벌인 수많은 문제들을 무시할수도 없는 노릇이며 이러한 사실들을 전작권 회수 반대라는 목적아래에 아님 말고 식의 카더라 글로 조작하고 양산하는것도 문제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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