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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이 뭐라고...
게시물ID : freeboard_131349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수박귀신
추천 : 1
조회수 : 48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5/12 10:25:30
어제가 내 생일이었다.
나는 원래 생일에 대해선 별 다른 감흥이 없었다.
원래 집에서도 생일을 굳이 챙기니 마니 하는 편도 아니었고.
생일 날이 된다고 해서 특별히 나한테 뭔가 다른 기분이 생기거나 하는 것도 없었다.
문득 누가 축하한다 해주면 고맙고, 선물을 얻으면 오예! 이 정도.
그냥 나랑 관련된 날짜 0511 정도가 나를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어차피 19** 라는 연도는 다신 만날 수가 없어서 19**년 5월 11일로 시간여행을 가지 않는 이상 의미가 클 순 없다, 그렇게 생각해 왔었다.
 
그리고 어제는 생일 기념으로 애인과 영화도 봤다.
당연히 집에는 늦게 들어간다 말을 했다.
굳이 집에서 내 생일을 모를 거란 생각은 안 했지만, 그렇다고 생일이라서 놀다 간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항상 굳이 그런 걸 말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갖고 싶었지만 고민만 하다 사지 못 했던 옷 하나랑 하얀 장미꽃 한 송이를 선물도 받았다.
영화도 다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애인이 낳아주셔서 고마운 어머님께도 꽃 한송이를 드려야 하는 걸 깜박했다고 했다.
그래서 시간은 늦었지만, 문이 열려 있는 꽃집을 찾아서 또 다른 장미 한 송이를 샀는데, 포장이 내가 받은 흰 장미보다 영 못 했다.
그래도 같은 장미를 선물 하는데 포장이 내 것보다 좀 못한 게 걸려 둘이서 어떻게 드릴까 고심고심하다가,
집에 가서 엄마한테 애써 번잡한 변명으로 둘러가며 엄마에게 내 것보단 좀 못나게 포장된 장미를 드렸다.
 
생일이 당사자 혼자 만의 날이냐고, 그 날 제일 고생한 사람은 그 사람의 엄마일텐데?
사실 내가 늘상 해오던 생각이었고, 그래서 생일이 되어도 내 자신의 탄생에 대한 감흥은 별로 없었다.
이 이야기를 애인에게 몇 번 말을 한 적이 있었기에, 애인도 결국에 아차 했던 것이다.
애인이 내 생일 챙겨줄 생각에만 들 떠서 미처 생각을 못 했다가, 나를 집에 데려다 주려는데 뒤늦게 생각이 나서 그래도 늦은 밤 힘들게 꽃집 찾아서 사온 꽃이다.
그래서 포장이 내 것보다 좀 덜 하다.
이렇게 애써 둘러댔다.
엄마는 갑작스런 꽃선물에 놀랐지만 안 놀란 척, 고맙다고 전해달라고 하셨다.
 
왜 놀랐는 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몇 주 전 엄마가 내 생일이 되면 해주기로 약속했던 꽃게탕.
그게 없었다.
엄마 말로는 꽃게를 아무데서도 안 팔더라. 했지만, 솔직히 꽃게야 사려면 산다.
내 생일을 잊고 계셨던 거다.
그런데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아빠도 내 동생 생일을 내 생일로 착각했었다.
그냥 정말 별 감흥이 없다.
그렇게 선물 받은 옷도 입어보고 장미도 잘 놓아두고 즐거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오늘.
출근해서 이것저것 하고 있는데, 문득 엄마한테 온 카톡을 발견 했다.
오타도 심하고 평소에 이모티콘도 잘 못 쓰는 사람인데, 꽃다발을 들고 있는 멍멍이 이모티콘이랑 같이,
생일 축하 못 해줘서 미안하다는 말이 와 있었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났다.
애초에 기다리고 있었던 말도 아니고, 어제 못 들어서 섭섭한 상태도 아니었는데.
엄마는 어제의 내 생일을 잊었던 걸 나한테 미안해하고 있다는 거다.
그럴 필요 없는데 왜 그러지?
나한테 그렇게 미안해한다는 것에 대해 오히려 내가 미안해져서 눈물이 났다.
 
내가 태어날 때 제일 고생했던 건 엄마인데.
만약에 나중에 내가 자식을 낳게 된다면, 자식 생일이 오면 내 출산의 힘든 기억이 먼저 생각날 거 같은데.
왜 엄마가 나한테 오히려 미안해 하지.
나는 어제 엄마한테 꽃을 선물함으로써 날 낳아준 고생에 대한 감사 표시를 했다는 생각에 이미 다 만족을 했는데 말이다.
그래도 엄마 입장에선 당신의 고생보단 자식의 탄생의 환희가 더 의미가 컸던 것일까.
 
하지만 아직까지는.
나에겐 내 자신의 탄생보단 그 날의 엄마의 고생이 더 의미가 있다.
아직 자식을 낳은 경험이 없는 탓이기도 할 거다.
그래서 난 어제 내 생일이 아주 만족스러웠고, 꽃게탕 이건 그냥 근시일 내에 다시 졸라보면 된다.
 
그냥 엄마가 나에게 그렇게는 많이 미안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내 생일 만큼은, 앞으로도 내 엄마의 고생에 대한 생각을 먼저하고 싶다.
단지 훗날 내 자식 생일 날, 나를 경배하라! 고 진상 부리는 악덕엄마는 되지 않기를...
 
엄마는 감성이 촉촉한데, 자식은 이렇게 메말라 삐틀어져서 미안해.
태어나게 해줘서 고마워요.
출처 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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