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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집 아저씨 이야기
게시물ID : freeboard_131562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brilliant5
추천 : 3
조회수 : 24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5/19 04: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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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결혼을 하고 처음 살기시작한 빌라의 5층 주인집 아저씨는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의 나이인듯 했는데 어머니와 둘이 살고 있었다.
가끔 하수구가 막혀 고생하고 있으면 몇가지 장비들을 들고 들어와서는 이것저것 고쳐주면서 한담을 나누다가 조금씩 서로의 개인사를 물어볼 기회도 생겼다. 본성은 순한것 같지만, 뭔가 자신의 뜻과 틀어지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눈빛부터 달라지면서 정상적이지 않은 강렬한 적개심이 뿜어져나오는 듯 했다. 그사람을 마주하고나면 꼭 생각나는 영화가 있었다. '하얀전쟁' 이라는,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군인들이 현실에 적응하지못해 힘들어하는 소위 '전쟁증후군'을 다룬 영화로 기억한다. 하지만 주인집 아저씨는 베트남전에 참전했을 만큼 나이가 많지는 않았고, 군대에서의 어떤 경험도 말한 적이 없었기에 나는 막연하게 사람이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날도 하수구가 말썽이었다.
아저씨가 집에 상비해 둔 기다란 꼬챙이와 낚...싯줄 같은 기구들을 들고왔고 우리는 화장실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생각보다 길어지는 작업에 지루해진 나는 다시 이런저런 말을 꺼내기 시작했고,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무슨 이유로 군대에 대한 얘기가 나왔었던 것 같다. 마지막 방위 출신인 나도 별로 할말이 없어 어색한 침묵이 조금 지나고 있었는데, 그 아저씨 입에서 이상한 말이 튀어나왔다.
"나는...군대갔다온게 부끄러워서 살 수가 없어..."
"네? 왜요?"
 
방위출신 앞에서 군대갔다온게 부끄럽다는 사람은 또 뭘까? 하는 호기심이 잠시 일었으나, 계속된 그의 말에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아저씨는 평소 목소리의 십분의 일도 될락말락 하는 작은 소리로 한 마디를 더했다.
"내가...광주에 갔다온 군인 출신이야."
"아...."
"내가...그...챙피해서...전두환 그새끼가 준 훈장도 숨겨놨어. 그 개XX...."
 
그날 이후, 주인집 아저씨에게 갖고 있던 궁금증이 풀렸다. 광주는 시민들에게만 지울수 없는 상처를 남긴것이 아니다. 상부의 명령에 의해 투입되어 자기나라 국민을 총칼로 진압한 계엄군 중에도 저렇게 평생가는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것이 그가 국방의 의무를 충성되게 다 한 결과다.
그리고 이 나라의 정부는 그날에 바치는 노래 한 자락 가지고도 저렇게 사람들을 힘들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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