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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으로 풀어본 손권의 정치적 실체
게시물ID : history_2617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리리리리맇
추천 : 3
조회수 : 121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5/27 09:54:26
재미로 써보는 망상 가설 시리즈가 또 왔습니다.
 
이번에는 요즘들어 상당히 저평가되는 동오의 손제리, 손권에 대해서 조금 정치적인 시각으로 삐딱하게 분석해봅니다.
 
 
- 개인적인 평가야 워낙에 다양하고 많이 알려졌으니 별도의 설명은 배제하고, 일단은 한 국가의 지도자이고 가업으로 시작한
나라를 국가로 만들고 제위에 올랐다는 점에서 결코 무능하다고 하기 힘들고, 상당히 정치적으로 교활한 사람일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시작합니다. 그래서… 첫 스타트는 그런 교활한 인물이 벌인 가장 어이없는 사건 중에 하나인 이궁의 변입니다.
 
- 일반적으로 노년에 노망난 손권이 후계자 선정에 자기 감정을 앞세워 혼란을 일으키고 신하들을 도륙한 사건으로 평가받는
이궁의 변. 한동안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가 최근 삼국전투기 등을 통해 대중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사건으로 유명한데… 이 사건에
대해서 진행 양상만 보면 그야말로 손권은 노망난 암군 그 자체입죠. 근데… 손권은 왜 그랬을까요? 단순히 늙어서 노망나서?
그렇게 해석하기에는 손권이라는 인물이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은 인물이라는 점이 많이 걸립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 있어서 저는
손권이 의외로 고도의 정치적 모략을 쓴 것이라는 음모론을 제기해봅니다.
 
-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오나라의 형세를 돌아봐야 합니다. 다른 삼국과는 달리 동오의 호족들의 협조를 통해 구성된 동오는 덕분에
가문들의 힘이 강했죠. 육손으로 대표되는 육가, 전종으로 대표되는 전가, 주환, 주연 등으로 대표되는 주가, 보즐로 대표되는 보가 등,
지역 명가들의 힘이 황실인 손가에 버금가는 봉건 영주에 가까운 국가였다는 사실을 우선 주지해야 합니다. 건국 초기야 워낙에
정신이 없으니 그런 그들을 내버려 둘 수 밖에 없었지만… 제위에 오르고 국가를 선포한 시점에서 그런 그들의 존재는 손권의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짜증이 나는 것이었을 겁니다.
 
- 흔히들 고대 국가의 가장 정상적인 계승법은 적장자 승계가 원칙으로 여겨지고, 그것을 벗어나게 되면 뭔가 큰 문제라도 되는 듯이
정국이 혼란스러워 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사실 머리 식히고 생각해보면, 국가의 입장에서는 후계자는 적장자가 아니라 제일
현명한 사람이 되는 것이 최선이고, 군주의 입장에서 보면 후계자는 자신의 의중에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최선입니다. 여기서, 항상
국가는 후계자 문제로 갈등을 빚을 수 밖에 없죠.
 
- 근데 군주의 자기가 총애하는 사람이 후계를 잇는 것을 무조건 비난할 것도 아닌 것이… 현명함의 기준이라는 것이 국가 지도자에게
상당히 모호하다는 것이죠. 실제로 유능해도 불안정한 정국 덕분에 실패가 이어지기도 하고, 한심한 놈이라도 시스템과 구조가 잘
갖추어져 있으면 확고한 권력을 쥐고 큰 사고만 치지 않으면 무난한 정치를 할 수 있는 것이 고대 절대권력을 쥔 왕정국가의 문제죠.
그런데… 그런 관점에서 보면, 어떤 의미로는 황제가 자신이 원하는 후계자를 지명하면, 그에 모든 신하들이 수긍하고 이의 없이
그대로 그 뜻을 받드는 상황이, 모호하게 유능하거나 혹은 그것도 불확실한 적장자를 세우는 것보다 더 효율적일지도 모릅니다.
 
- 손권의 입장에서 보면, 이미 언급한 과도하게 강력한 지역 명가들의 위세와 더불어, 자신의 의지가 담긴 계승이 마음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 그 자체에 불만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불편한 심정에 대해서 중신들은 그 뜻을 파악하고 주군의 심기가 심하게
화나지 않는 방향으로 정국의 유도를 했어야 하는데… 동오의 신료들은 그런 정치 감각이 부족했던 건지, 아니면 자신들의 힘을
생각해보면 그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그런 입장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 하지만 그런 이슈에서 그런 안일한 대응은 큰 참사를 부르죠. 조선시대에 있었던 예송논쟁의 예를 들어볼까요? 얼핏 들리기로는
상복을 입는 예의에 대한 병맛 논쟁으로 보이는 예송논쟁은 실제로는 현재의 왕실의 정통성이 바르냐를 둔 고도의 정치적
공방이었습니다. 이렇게 정치적 소요에 있어서 고도의 밑밥과 주군의 심기를 고려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입장을 만드는 것이 진정한
정치가들의 월급의 이유인데… 유감스럽게도 당시 동오의 관료들은 그걸 못했더군요. 무려 천년의 시간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들이 취한 행동을 보면 상당히 실망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 손권의 입장에서 보면, 어차피 후계자는 누가 되든 상관이 없었을 겁니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손권은 손견의 차남이죠. 그래서
당대의 적장자 상속의 원칙을 주장하는 것은 보편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손권의 입장에서 보면 왠지 자신이 정통성이 없다는
것처럼 들릴 수 밖에 없었겠죠. 그 원칙을 따른다면 동오의 정통성을 가진 건 손책의 아들인 손소니깐요. 그래서, 물론 신료들이
돌지는 않았으니 손소를 후계자로 밀리는 없고, 당연히 적장자 원칙에 가장 맏이인 손화가 후계자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 여겼죠.
하지만… 손권은 자신의 아들이라고 해도, 바로 그 적장자 원칙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겁니다.
 
- 절대 군주의 입장에서는 이미 언급했다시피, 원칙이고 나발이고 자기가 원하는 사람 지목하면, 신료들이 우르르 몰려가 당연하다고
말하고, 나중에 그걸 바꾸면 또 다시 우르르 달려가 그게 맞다고 동의하는 그런 상황을 바랬을 겁니다. 그런데, 자신이 손패에 대해서
다소 총애하자 그걸 보고 난리를 치는 신료들을 보면서 기분이 싸해지는 것을 느꼈겠죠. 그리고 왠지 모르게 당시 권력의 정점에
서있는 육손이 후원하는 손화가 자신의 후계자가 아닌 동오의 명가들의 꼭두각시로 보이기 시작했을 겁니다.
 
- 그래서 그는 고도의 정치적 숙청을 기획합니다. 약간 총애하던 손패에게 아예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기 시작하고, 슬그머니 전종
등의 다소 정치 감각은 떨어지면서 입은 험한 무리들이 손패 측에 붙어서 공격적으로 나오는 것을 방치하죠. 그러면서 슬슬 판을
키웁니다. 손권의 입장에서는 그 누가 이기던 상관없이, 그들 양쪽에 붙은 명가의 권신들이 서로 피를 보고, 결국 마지막에 둘다
쇠약해져서 한손에 털수 있을 만큼 약화되기를 바랬던 겁니다. 결국 이궁의 변은 마지막에 손권의 의도대로 양쪽 세력 모두가 다
엄청난 타격을 입었고 탈진하게 되죠. 그 타이밍에 손권은 전격적으로 손량을 내세워 잔존한 세력들도 숙청하게 되는 겁니다.
그야말로 데스노트에서 나오는 계획대로…
 
- 이궁의 변이 오나라에 큰 타격을 줬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왠지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손량의 즉위 이후 정권을
구성한 인물들의 면면이… 왠지 내부의 정치 싸움으로 타격먹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유능하고 젊은 인재들이 전면 포진되죠.
제갈각, 여거, 등윤, 손준, 정봉 등이 부각되는데 손홍 정도만이 조기 숙청당하기는 하지만 제갈각이 이끄는 정권은 초기 상당히
안정적인 정국을 운영하고 오나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위나라와의 승전을 거두죠. 어쩌면, 이런 젊은 인재들의 전진 배치가
가능했다는 건 이궁의 변으로 가문 빨로 직위를 차지하는 귀족들의 세력이 일소된 영향일지도 모릅니다.
 
- 그리고 제갈각이 기용되었다는 건 이궁의 변 이후의 일로서 상당히 의미심장합니다. 제갈각은 제갈근의 아들이고 출신으로
따지고 보면 오나라에서는 외지인에 불과한 집안이죠. 재능은 확실히 뛰어났지만 왠지 이궁의 변으로 명가 출신의 장군들이 상당수
제거되지 않았다면 그런 기회가 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런 당대의 분위기를 증명하듯, 제갈각은 노장인 여대에게
별거 아닌 일로 화를 내는 일화가 전해지죠. 어쩌면 이건 기존에 구 귀족 세력이 위축되고 젊은 인재들이 힘을 얻어, 기존 원로들에
대해 강하게 나오는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바로 얼마전에 장소가 꼬장 부리던 곳이 오나라라는 걸 기억하면 의미심장한 장면이죠.
 
- 그리고 제갈각 이외에도 손준을 위시한 손씨, 그러니깐 황실 사람들의 힘도 강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손준은
손노반과 애정행각을 하는데, 손노반이 손권의 딸이기 이전에 오나라의 권신 가문이던 전씨 일가의 전종의 아내였다는 걸 생각해보면
당시 상당히 오나라 호족들의 힘이 약화된 걸로 추정됩니다. 그런 상황들을 고려해보면, 손권이 벌인 이궁의 변은 어쩌면 그가 망령이
나서 저지른 후계자 장난이라기 보다는, 황실의 힘을 강화시키고 젊은 피들을 전면에 세워 오나라를 쇄신하기 위한 그의 교묘한
숙청극이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 그런 의미에서 보면 손권이 다른 신하들에게 보이는 입장도 상당히 다른 해석이 가능해집니다. 한명씩 살펴보자면… 우선 장소.
요새는 왠지 츤데레 커플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는 분위기로 흘러가는 듯 한데… 저는 왠지 손권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로 장소는
불편한 존재였으리라 생각됩니다. 원로라고는 해도 합류 시기는 손책 시기니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니고, 고고한 선비라서 바른 말만
한다고 보기에는 그도 나름 동오의 명가 출신인데다가, 조선시대에 강직한 선비처럼 벼슬에 개의치 않고 사표 쓰는 것도 아니고…
승상 자리 대놓고 노리고, 안줬다고 삐지는 사람이 과연 쓴소리 해서 불편하지만 좋은 스승 같은 느낌이었을까요? 저는 그냥
불편한 노정객 정도의 사이로 보입니다.
 
- 주유에 대해서도 아마 그리 편한 느낌은 아니었으리라 보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세상에 형 친구가 편한 남동생이 있나요? 그리고
그것도 자매를 형이랑 나눠가지고선 형이랑 동급으로 여겨지는 존재. 실제로도 군권을 다 쥐고 있는 형 친구… 제 생각에는 정상적인
군주라면 숙청 대상 1순위입니다. 그래서 저는 주유의 익주 정벌이 성사되기 어려운 탁상공론이라 생각하는 것이… 손권의 입장에서
그게 좋을리가 없어요. 익주를 먹어봤자 좋아지는 건 현지 호족들 뿐이고, 명성은 주유의 몫이죠. 저는, 이 사건에 대해서 나중에
노숙이 기각한 것이 바로 수용되고 오히려 형주를 넘겨주는 막나가는 정책이 통과된 건 그런 손권의 불편함이 한몫했다고 보입니다.
 
- 육손에 대해서도 아마 대놓고 말을 못해서 그렇지 무진장 싫어했으리라 보입니다. 명가인 육가의 리더이고 주유 이상의 군권과
명성을 가졌던 육손은 그나마 그 정도 결말이 손권이 많이 참은 결과로 보입니다. 그리고 육손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하는 말인데…
생각해보면 오의 군대는 항상 공격에 대해서 승리가 별로 없어요. 수비에 강하지… 그래서, 형주 공격도 동맹 파기에 가까운 무리수를
써서야 성공했고, 나중에 주방의 조휴를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싸우는 걸 보면 정말로… 얘네는 공격은 못하는 애들인가 싶어집니다.
 
- 그런 공격을 못하는 이유는 위에 언급한 가문들의 몸사리기가 많이 작용했으리라 보입니다. 다들 중앙군이 아니니 전략 목표에
대해서 대외적인 부분은 소극적이고, 자기 땅이 침범당하는 방어전에는 목숨을 걸고 영지 보존을 하려고 하는거죠. 그래서, 이릉대전도
사실 승산은 없었으리라 보입니다. 그래서, 위에 언급한 제갈각의 행보가 돋보이는 거죠. 실패하기는 했지만 어떤 의미로는 그런
가문들의 이권 다툼으로 소극적으로 나와 국가의 대계를 보지 못하는 현상을 탈피하고 공격을 통한 승리를 얻고자 했으니깐요. 결과가
아니어서 그렇지 의도는 확실히 좋았습니다.
 
- 노숙에 대해서는 저는 개인적으로 손권의 숨겨진 러닝메이트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발언한 것으로 유명한 두가지 말… 적벽을
앞두고 항복하자는 분위기에서 그가 말한 자신은 명가이니 항복해도 관직을 유지하지만 손권은 항복하면 그냥 개털일 뿐이라는 말.
어쩌면, 오나라에서 이렇게 당시의 문제점을 뼈저리게 지적한 말은 두번 다시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전투가 끝나고 공을
어떻게 치하하면 되겠냐는 말에 등우의 예를 따라 달라고 한 말. 등우는 광무제를 세운 명신이고, 그러니 황제가 되어 보답하라는
말이죠. 군주에게 있어… 이보다 더 자신의 마음에 드는 말을 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 그래서 저는 어떤 의미로 동오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개혁적이고, 군주의 마음을 잘 살피고, 정국을 유능하게 이끌었던, 처음이자
마지막 신료가 노숙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다른 신료들처럼 자신의 가문을 세워 봉건 영주처럼 굴지 않았고, 동오를 넘어서 천하를
보는 안목으로 국가의 청사진을 그렸고, 그것을 위해 다소 파격적인, 형주 양도나 그 후에 익양 대치, 그리고 여몽의 발탁 등을 통해
오나라의 정치적 위치를 안정적으로 이끌고 미래를 대비했죠. 어떤 의미로는 유비 사후의 제갈량보다 더 큰 업적을 동오에 쌓은
것이 노숙으로 생각됩니다. 근데… 사람들이 생각하는 노숙은 그냥 제갈량 샌드백. 안습이네요. 이것도 동오의 저주인가?
 
- 여몽에 대해서는 좀 애매한 느낌이리라 생각됩니다. 오하구아몽의 고사처럼, 저는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여몽이 노숙의 라인이라
생각합니다. 알려진 것처럼 느슨하지 않은 노숙이 후세에 남을 만큼 성장을 칭찬한 인물이 그와 무관하리라 보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여몽은 그런 노숙이 후일을 맡기기 위해 다그치며 성장하게 만든 자신의 숨겨진 후계자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출신도 다소 미미한 여몽이 순식간에 그런 위치에 오르기는 어려웠겠죠. 하지만 노숙과 손권의 기대와는 달리 요절하는 바람에…
손권의 바람과 무관하게 이후 동오의 도독은 다시 명가 출신들에게 넘어가게 됩니다. 제갈각이 성장할때까지 긴 시간을…
 
- 그런 연유들로 인해 손권의 입장에서 보면 그의 생은 어쩌면 유비나 조조보다는 국가의 발목을 붙드는 명가들과의 전쟁으로 더
긴 시간을 보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게 그가 주목한 부분이 실제로는 내부의 정쟁의 우위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들이었다고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생각해본 그의 선입견과 인간 관계에 대해 상당히 혼란이 오긴 하네요.
 
 
늘 그렇듯이 이번에도 그냥 망상 쩔어주는 개인적인 분석임을 감안하시길 바랍니다. 다음에는 또 누구를 다뤄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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