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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배야 안녕~잘가~!
게시물ID : animal_15997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NUGABAR
추천 : 8
조회수 : 466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6/05/27 10:2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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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가 막 대학에 적응했을 무렵 쯤 어느 겨울날 밤에 우리에게 찾아왔었다.
 

독서실 총무 아르바이트를 하다, ‘쫄랑이 귀여운 강아지 두마리 출산했습니다♥’란 문자를 보고, 호기심과 기대에 차서 밤늦게 돌아왔을 때,
 

너는 어미 품에서 젖을 빠는 무려 다섯마리의 꼬물이들 사이에 끼어 있었다.
 

원래는 여섯이 태어났었다고 했었다.
 

하지만 너무 작게 태어나, 겨우 새끼손가락만 했던 작은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몇번 채 꼬물거려보지도 못하고 먼저 다리를 건넜다고 들었다.
 

너는 이름도 금방 지었었지.
 

열심히 젖을 물던 다섯 중에서, 유독 너만 다른 아이들 둘은 합쳐놓은 만큼 커다래서, 단번에 네 이름은 두배가 됐었다.
 

…알고보니 다섯 형제자매중 유일하게 너만 정상으로 태어났고 다른 아이들이 미숙아였지만…
그래서 다른 네 아이가 며칠 사이에 앞서거니 뒷서거니 무지개 다리를 건너버리고, 너 혼자 남았었지.
 

눈도 채 못 뜬 너는 귀여웠다.
 

낑낑거리며 꼬물꼬물 기어다니고, 어미인 쫄랑이가 곁에 누우면 귀신같이 품에 달려들어 젖을 찾았다.
차츰차츰 시간이 지나고 네 눈이 떠졌을 때, 왼쪽 한 눈만 파란 빛깔을 띄어서 온 가족이 신기해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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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심장이 그리 좋지 않았다.
 

이제 겨우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정도였던 아이가 숨이 차서 새파래진 혀를 내밀고 할딱거릴 땐 마음이 아팠다.
 

동물병원에서도 오래는 못 살거라며 진료카드도 만들어주지 않았던 너는, 그래도 꿋꿋하게 개구장이로 자라줬다.
 

네가 좋아하던 조그만 인형을 던져주면 조그만 앞발을 날개처럼 파닥거리며 달려가 주워 물고는,
던진 사람한테 돌아오는게 아니라 쪼르르 구석으로 도망가서 인형을 물고빨고 할 때 우리는 웃었다.
 

화장실로 정해준 베란다에서 처음으로 자기도 수컷이라고 엉거주춤 뒷다리를 들고 소변을 봤을때, 온 가족이 박장대소를 했었다.
 

간혹 명절 같은 때에 하루이틀 집을 비웠다가 돌아오면, 온 힘을 다해 꼬리를 치면서 현관까지 달려나와 반기는 너를 보면서
이런 맛에 개를 키우는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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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줄을 꺼내들고 “가자!” 한 마디만 하면 어디 숨어있다가도 우다다 소리와 함께 뛰쳐나와 너는 눈을 빛냈었지.
 

겁은 많아서, 대로 쪽에서 버스라도 지나가는 부르릉 소리가 들리면 얼음땡 놀이하듯 움츠러들고,
신나게 뛰어가다가도 금방 숨이차 주춤거렸지만 그래도 너는 산책을 좋아했었지.
 

다른 개들을 만나면 좋다고 꼬리를 치면서 다가갔다가도, 상대방이 왕! 하고 짖기라도 하면
금새 기가 죽어서 우리한테 도망쳐올 땐, 우습기도 하면서도 또 답답하기도 했었다.
 

너는 간식도 개껌도 좋아했었지만, 미안하게도 그리 자주 먹어보지는 못했었다.
피부가 좋지 않아서, 마치 눈처럼 비듬을 흘리고다니던 너에겐,
알러지 있는 개들에게 좋다던 딱 한 종류 사료 외엔 함부로 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너는 우리가 뭔가 먹는걸 보기만 하면, 쪼르르 무릎앞에 다가와선 그 반짝거리는 시선으로 달라고 졸랐었다.
무뚝뚝하셨지만 마음은 약하신 아버지 덕에, 너는 식빵 쪼가리나 군고구마 몇 입을 쉽사리 얻어먹곤 했다.
 

나이들어가면서 너는 자주 기침을 했다. 약을 지어다 먹이고 사람처럼 목에 스카프까지 둘러주고, 따뜻한 온열매트 위로 잠자리를 옮겨줘도
밤새 캥캥거리는 소리에 잠을 잘 수가 없어 짜증이 난 나머지, 때때로 구박까지 했는데도 너는 우리를 보면 늘 쪼르르 따라다녔다.
 

거실에 앉아 허벅지를 두드리며 “이리온” 하면, 너는 냉큼 무릎위로 올라 앉아서는 한참을 있곤 했다.
고양이 처럼, 골골골골 기분 좋은 소리까지 내면서.
 

어느날 어디에 그렇게 심하게 눈을 비볐는지, 네 커다란 눈망울 한 쪽에 푹 패인 생채기가 났을 땐 화도 냈다.
미용을 하고 온 날 어찌나 가슴팍을 긁어댔는지 생피가 철철 났던 날엔 싫다는 너를 붙잡고 뒷 발에 신을 신기고 몸통엔 붕대를 감아둬야 했다.
 

그리고 생채기가 났던 눈이 기어이 잘못돼서, 벌겋게 퉁퉁 부어올랐던 날엔 참 속상했다.
병원에서는 안구를 적출해야하지만, 워낙 심장과 호흡기가 안좋았던 네가 마취를 못 이겨낼지도 모른다고 했었다.
다행히도 너는 멀쩡히 집에 돌아와선 아프다는 티도 없이 첩첩 물을 마시고 밥을 달라고 졸랐다.
애꾸가 되긴 했지만, 너는 여전히 너 다웠다.
 

그리고 얼마전, 날이 더워져 미용을 하고 온 네가 또 가슴팍을 긁어 피를 냈었지.
붕대를 감고 신을 신기면서, 끙끙 앓는 소리를 내는 너를 봤을 때 까지만 해도 이번에도 미용 스트레스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앓는 소리가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바로 어젯밤.
일을 마치고 돌아와보니 너는 아버지 어머니 곁에 찰싹 붙어 앉아 온 몸으로 힘들다는 신호를 보내며 끙끙 앓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평소 좋아하던 턱 밑을 긁어줬을 때 너는 여느때처럼 쭈욱 얼굴을 들이밀고 더 쓰다듬어달라고 졸랐다.
조금은 싸늘하게 느껴졌던 네 체온이 걱정스러웠지만, 큰 탈이 나지는 않을거라고 믿었다. 믿고 싶었다.
 

오늘 아침, 어머니의 울음소리에 놀라 안방으로 달려갔을 때 너는 네가 평소 잠들던 그 자리에서 조용히 잠들어있었다.
어머니께서는 새벽녁에, 평소에 거의 짖지 않던 네가 애처롭게 세 번 작게 짖는 소리를 들으셨노라고 하셨다.
불안한 느낌이 들었지만 설마하는 생각에 나와보지는 않으셨다며, 그 때 너를 찾아 안아줬어야 했다며 어머니는 섧게 우셨다.
 

너는 정말 조용히 잠들어있었다. 한쪽 구석에 약간 지려놓은 것을 빼면, 정말 여느때와 달라보이지 않았다.
슬쩍 등을 건드리면 펄쩍 일어날 것 같은 기분에 쓰다듬어 봤지만, 너는 그저 싸늘히 굳은 채 누워 있었다. 조심스럽게 잠든 너를 안아들었다.
 

아침부터 담배를 피워 물었다. 이젠 늙어서 눈곱이 꼬질꼬질하게 낀 네 어미가 무슨 일이냐는 듯이 터벅터벅 따라나왔다.
네 어미는 스윽 주변을 둘러보더니, 한 차례 몸을 부르르 떨고는, 평소 너와 함께 나란히 누워 잠을 청하던 자리로 돌아가 웅크렸다.
아마 네 어미도 네가 떠난 것을 깨달았던 모양이다.
 

너와 함께 보낸 지난 12년간, 네가 있어서 행복했다.
처음엔 아무렇지 않은 것 같더니, 문득 ‘이렇게 거실에 앉아있으면 쪼르르 따라나와선 발치에 앉았었는데.’ 하는 생각이 드니 코가 찡해지는구나.
한동안은 계속 네 기억에 이렇게 찡할 듯 싶다. 오늘 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어떻게 할지,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보고 싶다.
 

사람이 죽어 천국에 가면 그 때 생전에 키웠던 동물이 마중나온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그저
‘그래, 오래 키워 정들면 그런 생각도 들만 하지.’하고 말았었는데, 지금은 그게 정말이었으면 싶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다시 보자. 미안하게도 금방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할수가 없구나.
집에 사람이 없으면 늘 한쪽 구석에 힘없이 웅크리고 숨는 너를 잘 알지만, 거기엔 아마 태어나고 얼마 안지나 헤어진 네 형제자매들도 있을거란다.
어쩌면 네가 좋아하는 식빵과 군고구마도 원없이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잘 참고 기다리다가, 아주 나중에 우리가 가면 그 때 부디 잊지말고 나와서 반겨주렴. 나도 기대하고 있으마.
 

잘 지내라.
 
2016-05-27 10.12.29.jpg

두배
(2004/02/??~2016/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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