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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panic_8821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없는닉넴
추천 : 4
조회수 : 901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6/05/31 13:4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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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까똑~ 까똑~ 까똑~

골치 아픈 내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경쾌한 메시지 알림음과 동시에 휴대폰에 전원 켜진다.

 

오빠... 나 오늘 병원 갔다 왔는데... 임신이래

 

하아... 타이밍 한 번 진짜 죽이는구만..”

사실 진즉부터 그녀와 나의 보금자리인 집 앞에서 한 시간째 들어가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었지만, 그녀의 임신했다는 메세지를 확인한 뒤 더욱 더 그녀의 얼굴을 마주 할 자신이 없어졌다.

그녀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들어가는 대신 술이나 깨고 들어가자는 자기 합리화로 스스로를 정당화 시키며, 발걸음을 돌려 어두운 밤 거리의 동네를 배회했다.

몸은 잔뜩 취해 비틀거렸지만, 복잡한 생각 탓인지 정신은 멀쩡한 것 같아 마음이 더 괴로웠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좁디 좁은 골목들 사이로 발걸음을 옮기다가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어 힘 없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그제서야 주변을 둘러보고 내가 알던 익숙한 동네의 풍경이 아닌 낯선 곳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황량한 공터에 허름하게 생긴 건물만이 하나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었고.. 그 건물마저도 불이 꺼져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우리 동네에 이런 곳도 있었나...”

 

그때였다.

홀로 서있던 건물의 간판이 파지직 전기 마찰음 소리를 내며 몇 번 깜박이더니 이내 알록달록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B.A.R’ 라는 글씨를 확인 한 나는 이미 잔뜩 취해버린 내 상태도 잊을 만큼 무언가에 이끌려 그 건물로 들어갔다.

 

짤랑~짤랑~

문을 잡아당기자 문 위에 달려있던 종소리가 흔들리며 나를 반겼다.

 

어서오세요. 오늘 첫 손님이시네요.”

... .. 안녕하세요.”

! 이곳이 처음이시군요. 이곳으로 와서 앉으시죠. 전 이 가게의 마스터입니다.”

 

그에 말에 따라 그가 안내한 의자에 앉은 후, 주변을 살폈다.

내부의 모습은 밖에서 보던 것 보다 꽤나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곳곳에 전시된 술병과 장식품들에서 풍기는 분위기와 말끔한 정장에 나비넥타이를 한 채 미소 짓고 있는 젠틀한 사내의 이미지가 어울려 마치 한 폭의 유화 그림처럼 신비로운 느낌마저 감돌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가구라고 불릴 만 한 것은 마스터란 사내와 마주보고 앉을 수 있는 의자와 테이블 하나를 제외하고는 전혀 없었으며, 그마저도 내가 차지하고 있어 더 이상 손님이 오더라도 앉을 수 있는 자리는 없었다.

 

가게주인이 취미로 운영하는 곳인가? 하긴.. 내가 사는 달동네 같은 마을에 이렇게 럭셔리한 가게가 있는 것 자체가 미스터리지.. .. 그럼 생각보다 가격이 비쌀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그냥 나가야겠다....’

 

.. 죄송하지만 다음번에.....”

! 저희 가게에 처음이신 분이니까 혹시나 해서 말씀 드리는 건데.. 가격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그 말이 무슨 이야기이신지...”

 

그가 소리 없이 눈으로 웃은 후 말을 이어나갔다.

 

저희 가게는 돈을 받지 않습니다. 그저.. 당신의 이야기를 조금 들려주시면 됩니다. 그와 더불어 당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무언가도 제공해 드리죠. 우선 술이 좀 취하신 것 같은데.. 여기 냉수라도 먼저 한잔 하시죠

 

뭐지? 이거.. 신종 사기수법인가?’

그런 생각이 속으로 들며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커졌으나, 이상하게도 앞에 있는 묘한 분위기의 남자의 얼굴을 보니 왠지 모를 신뢰감이 들어 그런 의심은 차차 희미해졌다.

갑자기 긴장해서인지 목이 타 그가 건낸 냉수잔을 나도 모르게 집어 들었지만,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에 목을 축이는 시늉만 하며 다시 컵을 내려놓았다.

 

뭔가 굉장히 고민이 많은 듯 보이시네요.”

.. 제가 그렇게 보이나요?”

 

긴장감으로 인해 잠시나마 잊고 있었던 내 상황이 떠올라 다시 머리가 복잡해지면서 절로 한 숨부터 나왔다.

 

복잡한 고민이 있는 것 같은데.. 제게 말씀해보시죠. 혹시 모르지 않나요? 전혀 의외인 곳에서 그 해답을 찾을지도?”

... 이유는 모르겠지만... 당신은 참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네요. 마치...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다 이해해줄 것만 같은 기분이에요.”

 

그는 말없이 눈으로 웃으며 내 차분히 내가 말할 때까지 기다렸다.

난 한번 크게 심호흡을 하고 그에게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저는 어려서부터 부모 없이 고아원에서 자랐습니다. 때문에 순탄치 않았던 유년과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험난한 세상에서 절망하는 일이 정말 많았습니다. 세상에게 배신당해 지칠 때마다 제게 힘이 되었던 건 같은 고아원 출신의 한 여자였죠. 지금의 제 여자 친구이기도 하고요. 그녀의 헌신과 뒷바라지 덕에 비로소 제가 세상에서 조금이나마 기지개를 펴고 살아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 손안에 드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입사를 하게 되었고, 분에 넘치게도 능력을 인정받아 최연소 팀장이 되었죠. 저도 열심히 노력했지만 여자친구가 없었다면 절대 이 자리에까지 오지 못했겠죠.”

 

어느 새 긴장이 풀려버린 나는 그가 좀 전에 건내었던 냉수을 한 모금 마신 뒤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제가 입사했을 때, 최연소 팀장으로 승진하게 되었을 때, 그녀가 정말 기뻐하며 축하해주던 기억이 나네요.. 저희는 지금까지도 달동네에 판자촌 같은 벗어나지 못했지만 머지않아 결혼을 약속하며 행복한 미래를 꿈꿨습니다. 제게 또 다른 여자가 나타나기 전 까지는요...”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그의 작은 호응에 괜히 상기되어 그 누구에게도 말 하지 못 했었던 이야기를 오늘 처음 만난 남자에게 털어놓는 나 자신이 스스로 신기했지만.. 이미 입구가 개방되어 분출되기 시작한 활화산처럼 내 이야기는 멈출 줄을 몰랐다.

 

전 다른 여자에게 오늘 프로포즈를 받았어요... 그 여자는 제가 다니는 기업의 오너 딸이자 제가 속한 부서의 본부장이었죠. 그녀는 누가 봐도 아름다운 여자였어요. 그녀의 배경도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죠. 우연히 그녀와 단 둘이 하게 된 식사자리에서 그녀가 제게 물었었죠... 만나는 여자가 있냐고... 저도 모르게 진지하게 만나는 사이의 여자는 없다고 대답해버렸어요. 그때부터 그녀는 노골적으로 저에게 대쉬를 했고.. 그녀를 마냥 밀어 낼 수 없다는 핑계로 저도 모르게 제 여자친구와 그녀를 저울질 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오늘 그녀에게서 자신과 결혼하자며 프로포즈를 받았고.. 저는 일단 답변을 미뤘습니다. 그리고 복잡한 마음에 술을 한 잔하고 여자친구가 있는 집으로 가는 길에... 여자친구의 임신소식을 들었습니다... ... 제 말을 믿으실지는 몰라도.. 그래도 전 여자친구를 정말 사랑합니다. 비록 외모는 평범하지만 제게 심적으로 큰 힘이 되어준 사람이었죠.. 그러나 솔직히 욕망 앞에서는 저도 흔들립니다. 기업 오너의 딸이라는 배경은 어쩌면 저를 단번에 지긋지긋한 시궁창인생에서 꺼내 상류사회로 나갈 수 있게 해 줄수도 있지 않을까란 생각... 어쩌면 앞으로 여자 친구보다 제게 큰 힘이 되어줄 것만 같아 전 어찌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내 이야기를 흥미로운 표정으로 듣던 그는 다시 한 번 내게 눈웃음을 짓더니 말 없이 뒤 돌아 위스키 두 잔을 채운 후 내게 내밀었다.

 

제가 당신의 고민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했었죠? 부디 이 속에 해답이 있길 바랍니다. 당신은 지금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전 당신이 고민하는 두 가지 선택중 하나의 미래를 보여드리겠습니다. 후후 아마 바로 믿기 어려우시겠죠.”

“.... 솔직히 말하면 저를 두고 장난을 치시는 것 같군요.”

... 그럼 이렇게 말씀드리죠. 당신의 여자친구 이름은 서미혜.. 그리고 사장 딸이자 당신의 상사라는 그 여자의 이름은 유연주 맞죠?”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황급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뒤로 물러서는 내게 그의 말의 계속 되었다.

 

.. 아직 당황하기에는 이릅니다. 사실 당신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부터 당신 고민을 비롯해 당신에 대한 모든 것을 모두 알고 있었어요. 당신이 있었던 고아원은 부산에 위치한 한 고아원이었고, 서미혜라는 당신 여자친구는 왼쪽 엉덩이에 별모양 점이 있는 것도... 평소 출근하기 전에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항상 두 번 고쳐 매는 미신을 믿는 다는 것도.. 삼일 뒤 사장 딸이라는 사람과 중국 출장이 예정 되어있다는 것도 알고 있죠.”

 

당혹감에 더해 갑자기 취기까지 올라와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당신... 대체 누구야? 누군데 도대체...”

많이 어지러워 보이시는데... 자리에 다시 앉으시죠. 차분히 설명 해드리겠습니다. 제가 굳이 당신의 이야기를 다 듣고 있었던 것은... 제게 진실만을 말하는지 궁금해서였죠. 가끔 즐기는 저만의 소박한 유희라고 할까요? 후후 사실 당신 정도면 꽤 솔직한 편에 속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진실이 아닌 자기 입장대로 왜곡하여 타인에게 이야기 하곤 하거든요.”

.. 그래서 제게 원하는 게 뭔가요? .. 전 아까 말했다시피 돈 없는 달동네 판자촌 인생입니다.”

오해 하지 마세요, 전 어디까지나 당신에게 도움을 주려는 겁니다. . 이 두 잔의 위스키가 있습니다. 하나는 빨간색 하나는 파란색... 당신은 이 두 잔의 위스키중 하나만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에 따라 각기 다른 미래를 당신에게 미리 경험할 수 있게 해주죠. 빨간색의 위스키는 여자친구인 서미혜라는 여자와 함께 하는 미래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파란색의 위스키는 당신이 여자친구가 아닌 대기업 오너의 딸을 선택한 인생의 미래를 보여주죠. 그리고 당신은 선택한 미래를 경험 한 이후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될 것 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두 잔의 위스키중 단 하나만을 선택 가능합니다. 당신을 어떤 것을 택하시겠습니까?”

 

난 그의 이야기를 그대로 믿을 수가 없어.. 한참이나 그에게 질문 던졌다. 내가 회사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 이름과 내용, 내 맞은 편 자리에 앉는 직원의 이름과 나이, 버릇, 성적취향 심지어 내 신체의 비밀.. 지금 입고 있는 속옷의 색깔까지.. 그는 내가 묻는 질문에 막힘이 없었다.

 

... 믿기 어렵지만... 도저히 믿지 않을 수가 없군요. 당신은.. 혹시 악마라고 불리는 존재인가요?”

 

조심스럽게 던진 내 질문에 그는 한결같은 그의 눈웃음을 보이며 대답했다.

 

제가 누군지 어디서 왔는지는 지금 당신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에게 중요한 건 두 잔 위스키 중 어떤 것을 택해 어떤 미래를 경험하게 될 것인가가 중요하죠. 당신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충분히 생각 할 시간을 가지신 뒤 하나를 선택하시면 됩니다. 전 당신이 현실로 돌아왔을 때 다시 뵙죠. 그럼 즐거운 여행이 되시기를..”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주방으로 통하는 것처럼 보이는 작은 문으로 검은 색 커텐을 걷으며 이동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 까... 생각을 정리한 나는 내가 선택한 색깔의 위스키 잔을 집어 들고 단숨에 들이켰다.

과연.. 어떠한 미래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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