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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질주하는 치앙마이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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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하나-비
추천 : 3
조회수 : 70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6/12 16: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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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질주하는 치앙마이의 아침



 새로운 이라는 뜻의 마이Mai 와 도시, 고을이라는 뜻의 치앙Chiang을 태국식 문법으로 붙인게 치앙마이이다. 치앙마이는 북부 도시들 중 가장 큰 도시이자 북부의 문화적 고향이다. 13세기부터 북부 치앙마이를 이끌었던 란나왕조가 18세기 버마의 침략으로 약화되자 현 왕조인 짜끄리왕조가 북부를 태국으로 편입시켰다. 태국 북부 지역이 현재 태국의 영토로 확정되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생각해 보면 얼마 전 까지는 완전히 다른 나라였다는게 쉽게 믿기지 않지만 말이다. 치앙마이의 중심에는 외적을 방어하기 위한 해자와 높은 성벽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치앙마이하면 대부분 아름다운 도시, 역사의 도시, 문화의 도시 같은 이미지들이다. 태국 내에서는 느린 말투와 행동으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얼마나 느린지 태국어에 능통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돌 굴러 가 유같은 충청도 우스개 소리를 들을 정도는 되는 듯 보인다.

이제 슬슬 아침일찍 떠오르는 햇살의 신선함과 간밤에 내린 비로 촉촉해진 나뭇잎의 냄새 그리고 마르기 시작한 아스팔스의 묘한 향기가 한데 뒤엉킹 아침 분위기 때문인지, 돌연 잊어버린 조깅의 즐거움이 생각났다. 가까운 신발가게에 들러 조깅하기 편안하고 버리더라도 아깝지 않은 정도의 운동화를 하나 고르면 준비는 끝난다. 치앙마이에서는 거의 필요가 없었던 양말도 몇 켤레 같이 구입 한다. 치앙마이 대학교 캠퍼스는 자동차도로만 피한다면 조깅하기에 더없이 좋은 코스인 것이다.

 치앙마이 대학교는 태국 북부지역에 처음으로 들어선 국립대학교로 방콕이외 지방에 들어선 첫번째 국립대학교이다. 닌만해민 근처에 있는 캠퍼스는 본 캠퍼스로 학교내에 신호등과 주유소가 들어설 만큼 큰 규모를 자랑한다. 몇 개의 도서관과 대부분의 은행 지점도 들어서 있다. 학생식당과 커피숍만 수십 개에 달할 정도로 학부 생 수만 32,000명에 달한다. 치앙마이 대학교 정문에서 뒷문까지 걸어간다면 약 1시간정도 소요된다. 그래서 교내에만 돌아다니는 셔틀버스가 10분간격으로 운행되고 있다. 외곽에는 치앙마이 나이트 사파리 동물원과 멀리 도이수텝이라는 산 끝자락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주변으로는 꾀 큰 규모의 저수지도 있고 잘 가꾸어진 정원들이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오솔길 같은 좁은 길옆으로 펼쳐지는 정원들과 멀리 열대 정글의 모습은 저절로 기분좋게 만들어 주는 뭔가가 있다. 아침일찍 일어나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은 시간에 숙소를 빠져나와 치앙마이 대학쪽으로 가볍게 조깅을 했다. 오랜만에 뛰는거라 천천히 한 발짝씩 생각을 넣어가며 조용히 전진하고 있었다. 캠퍼스에 들어서자 걸음은 조금 더 느려졌지만 산책하는 기분으로 가벼운 조깅을 즐기고 있을 때쯤 뭔가가 따라오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언제 따라 붙었는지 동네 개 한 마리가 바삭 마른 마라토너의 몸을 하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달리고 있었다. 사람이 뛰니까 궁금해서 그런지 아니면 본능적 이끌림인지 같이 뛰고 싶나 보다 생각했다.



Huai_Tueng_Thao_Chiang_Mai.jpg



 저수지 외곽이 보이고 풍경이 절정이 달할 때 쯤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보다 깜짝 놀랐다. 한마리였던 개는 금새 대 여섯 마리로 늘어났고 거리는 더욱 바짝 좁혀 있었다. 개의 표정이 진지한게 처음에 봤던 여유로운 모습이 아니었다. 이때쯤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닳을 수 있었다.

, 그래서 이렇게 좋은 아침에 뛰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구나.’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리는 것을 멈추지는 못했다. 달리는 것을 멈추는 순간 개들이 덮칠 것 만 같은 분위기였고, 아무리 개를 겁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떼로 달려드는데 누가 감히 쉽게 대적할 수 있으랴.

 한 무리를 개를 이끌고 다니는 이상한 남자를 유심히 바라보는 학생들과 현지인의 호기심 어린 눈빛이 멀리서도 느껴졌다.

태국은 의외로 개에 물리는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워낙 동물을 건드리지 않고 사는 것에 익숙한 태국인의 성격 탓도 있겠지만. 아무런 관리도 하지 않고 방치하는 개들의 숫자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여행도중이나 현지 체류중일 때 개에게 물려서 고생했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2013년에는 광견병으로 6명이 태국에서 사망했다. 이런 무시무시한 개 대 여섯 마리를 이끌고 뛰는 상황인 것이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대 여섯 마리의 개들에게 쫒기는 남자가 정확할 것 같다.

 사태가 진정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제 슬슬 짖으면서 따라오기 시작했고 주변의 개들도 짖는 소리를 듣고 함께 동참하기를 꺼려하지 않았다. 이쯤 되자 운동이고 나발이고 개들에게서 벗어나는 일이 가장 급히 처리해야만 하는 일이 되었다. 달리는 순간 뒤를 몇 번 돌아보니 대 여섯에서 여 댓 마리로 늘어난 개들과 멀리서 전력질주로 달려오는 개들이 보였고 결단을 내려야 했다. 아마 그때 개를 쫒는 방법을 알았다면 큰 문제가 없었겠지만 당시로는 딱히 아는 방법도 없었고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수 밖에 없었다.

뛰기를 갑자기 멈추자 개들도 혼란스러웠는지 따라서 멈추고 슬금슬금 접근해 왔다. 다가 오는 개를 노려보자 다시 살금살금 뒷걸음치는 형국으로 진전이 없는 대치 상황이 벌어 졌다.

 태국사람들은 그냥 개를 방치하는 정도가 아니라 집 주변에 어슬렁거리는 개를 보면 밥을 주기도 하고 겨울에는 춥다고 옷까지 입혀주는 경우도 있지만, 보살핌만 받을 뿐 길에서 만나는 개들은 주인이 없다. 우리나라의 초여름 날씨 같은 태국겨울에 얼어 죽을까 걱정하는 보살핌이라면 떠돌이 개로 살아 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개들은 낮에 별 활동을 하지 않는다. 차량 통행이 많은 큰길이나 중앙선 같은 곳에서도 자리를 잡고 낮잠을 즐기는가 하면 어디 구석 구석 잘 살펴보면 털 뭉치들이 드러누워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게으르고 온순한 것이 태국의 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밤에 나와 보지 않은 사람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 나른한 개들이 밤만 되면 서로 세력다툼을 한다든지 먹이를 찾아서 떼를 지어 돌아다닌다든지 하는 만행을 서슴지 않는다. 그러다가 해가 뜨면 다시 얌전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장소를 찾아서 위선적인 표정으로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다.

얼굴을 타고 땀방울이 흘러 내렸다. 달릴 때 보다 더욱 굵고 차가운 땀방울이 볼을 타고 목을 지나 티셔츠를 적셨다. 이때 사태를 파악한 미소의 나라 사람이

아 저자식이 재미로 개떼를 몰고 다닌 것이 아니구나

라고 생각하며 나타난 것이다. 개를 쫓는 췻췻하는 소리와 나뭇가지를 높이 치켜든 모습을 본 악랄한 개떼들은 꼬리를 감추고 총총걸음을 하며 각자의 길을 떠났다. 못내 아쉬운지 자꾸만 뒤를 힐끔 거리는 눈빛에 실망감이 역력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미소의 나라 사람이 건네준 나무작대기가 내 손에 들려져 있었다. 그리고 뭐라고 말하는지 알아 듣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태국 개들이 생각보다 착해, 너무 겁먹지는 말고 앞으로는 뛰어다니지 말게라고 말한 듯 했다. 중년을 넘긴듯한 아저씨의 선행으로 지독한 광견병주사도 필요 없었고, 병원에 들락거리며 항생제를 먹느라 고생 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 경험 이후로 나는 개를 쫓는 전문가가 되었다. 이게 전세계에서 통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태국어로 짖는 개들에게는 확실하게 통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세상에는 별의별 놈들이 있는 것처럼 별의별 개도 있기 마련이다.

아무튼, 첫 번째 방법은 뭔가 길다란 물체를 머리위로 치켜들며 개를 노려보는 것이다. 이게 나무 작대기 같이 생겼다면 더욱 좋을 것이나 시골이 아닌 이상 나무작대기를 구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효과 하나는 최고다. 그래서 탄지신공을 날리는 옛날 무림에는 타구봉법을 쓰는  문파가 있었나 보다. 타구 : 개를 때리는, 봉법 : 나무작대기 무술, 이라니. 정말 교양필수 과목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과격한 액션은 오히려 개의 무의식 속에 숨어있는 도전정신을 일깨울 수 도 있으니 적당히 쫓아내는 것으로 만족하자.

 두 번째 방법으로는 돌멩이가 있다. 이게 교육의 학습효과인지 개들의 본능속에 숨겨진 유전자의 코드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래도 효과는 나름 훌륭해서 나무작대기가 없을 경우 시도해 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돌멩이를 주워 들고 머리위로 손을 올려 던질듯한 액션을 취하는 것이다. 여기에 재미있는 포인트가 있는데 돌을 실제로 들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돌을 줍는듯한 행동과 함께 던질듯한 위협만 주면 된다. 따라서 작대기도 돌멩이도 없는 곳에서도 충분히 효과를 발휘해 광견병의 위험에서 무사히 빠져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돌을 던질듯해야지 돌을 던진 시늉을 하면 개가 아 이놈이 구라를 치는구나라고 금방 깨달아 효과가 없어진다. 따라서 던지기 직전 까지만 흉내를 내자. 뻥카는 한번 속지 두 번 속지 않는다.

 조금 더 덧붙이자면 작대기 요법에서 다양한 작대기를 실험해 봤다. 사진 찍을 때 사용하는 삼각대를 조금 길게 빼서 작대기처럼 보여준 경우는 대체로 개들에게 작대기라고 인정을 받는 듯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심을 눈초리를 가진 사뭇 똑똑한 개들도 있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다음에는 셀카봉같이 생긴 모노포드가 있는데 이건 효과 만점이다. 거의 모든 개들에게 작대기로 인정 받을 수 있다.

카메라 플래시를 마구 연사 한다. 이 방법은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 그 다음 비닐봉지 같이 둥근 물체인데, 이건 완전 실패다. 오히려 먹을걸 주는 줄 알고 달려드는 경우도 있으니 조심하자.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절대 지존의 아이템이 있으니 바로 바퀴다.

 태국의 개들은 바퀴에 올라탄 사람을 건드리지 않는다. 자전거에서 자동차까지 바퀴에 올라타면 개들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아주 느리게 달리는 자전거라면 열에 한 마리 정도 반응을 보일 수 있으나 스쿠터부터는 무적이 된다고 생각해도 된다. 따라 가지도 않으며 관심도 주지 않고, 덤빌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이것이야 말로 인류 문명이 이룩한 거룩한 업적이 아닌가.

인간과 개가 있었다. 개는 빠르고 강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바퀴가 있었다. 그 후 개는 한번도 인간을 능가할 수 없었다. 이런 이야기다.

치앙마이는 내가 최선을 다해 달릴 수 있도록 해준 아름다운 도시다. 가끔씩 새벽에 운동화를 챙겨 신고 가벼운 마음으로 조깅을 떠나는 신참내기 외국인들이 보이곤 한다. 한번은 장딴지에 피를 철철 흘리며 돌아온 경우도 봤고, 이상하게도 개를 한 마리도 못 봤다는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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