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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주의] 봉신당 : 참회의 서 #1. 귀곡성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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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야설왕짐보
추천 : 19
조회수 : 2963회
댓글수 : 13개
등록시간 : 2016/06/20 09:5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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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신당_참회의서.jpg
크등장인물 최종_다음.jpg


    ※ 움짤등 다소 불쾌/혐오 사진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주의 부탁드립니다.

    ※ 포토소설로 형식상 모바일에선 다소 불편하실 수 있습니다. 되도록 PC환경에서 보시길 권합니다.



#1. 귀곡성(鬼哭聲)

 

...귀곡성(鬼哭聲)이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른 새벽, 이제 사 먼 동이 기지개를 펴며 빛을 발하지만, 누군가 손을 뻗는다. 누가 볼까 두려운 은밀함이라도 있을까? 어둠이 세상을 제 살 아래 숨기듯 두터운 커튼을 거죽 삼아 빛을 가리 운다. 격리된 공간, 내밀한 시선만이 등불 아래 소년을 주시했다. 만주 사령부 예하 병참부대 소속의 이등병 다카키, 18, 아직은 세상의 시름 따위 몰라도 좋을 나이다. 하지만 전쟁, 그 흉칙한 괴물은 여드름투성이의 소년을 학도병이란 미명하에 만주로 이끌었다. 지금, 그 소년의 얼굴이 질리다 못해 하얗게 바래져간다. 감당할 수 없는 번민과 공포가 어깨를 짓눌러 떨게하고, 그로인해 침묵의 시간은 길어져 갔다. 가토 중위의 못 마땅한 손길이 떨리는 어깨를 우악스레 붙들고힐난의 눈빛이 두려움을 누른다. 출구를 찾지 못한 다카키의 공포만이 불안한 시선과 함께 요동쳤다.

 

어서!”

 

가토 중위의 낮지만 날카로운 힐책에 다카키가 마른침을 삼켰다. 표정은 조금도 진정돼 보이지 않았지만, 보채는 음성의 신경질적인 어조가 마침내 떨리는 소년의 입술을 열었다.

 

귀곡성... 원통함에 내뱉는 죽은 이의 고... 곡소리, 그걸 들었습니다. ... 그런 게 있다는 말만 들었지, 실제로 들어본 건 처음이었는데, ... 정말이지 끔찍함 그 자체였습니다. 들어보셨어야 해요. 그 흐느낌이 그 울음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쥐어뜯고,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어 말 그대로 미치게 만듭니다!”

 

점점 거칠어지던 다카키의 어조가 마지막에 이르러 애원하듯, 통곡하듯 좁은 공간을 울린다. 그것은 얼핏 악몽을 꾼 아이가 내뱉는 투정처럼 들리기도 했으나, 쭉 째진 두 눈에 맺힌 눈물, 그리고 멈춤을 잊은 듯 떨리는 치아가 그때의 공포를 대신 말해주는 듯 했다. 다카키의 어깨가 다시금 떨려왔다. 고향집 툇마루 위라면 누구라도 나서 따듯이 보듬어 줄 테지만, 스산한 가을비가 내려앉은 차가운 땅 만주엔 그의 어머니가 되어줄 자 없었다. 다카키는 잠시 제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고민하다. 제 주변에 흐르는 불편한 공기를 의식한 듯 다시 말을 이었다.

 

통곡, 슬픔, 분노, 애원, 원망! 그냥 듣는데... 그저 듣기만 하는 데! 그런 요상한 감정들이 미친 듯이 들끓었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귓구멍을 막고, 대가리를 쳐 박고 숨어도 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막아도 들리고, 듣지 않으려 소리 쳐도 그 소리는 똑똑히 들렸습니다. 마치 제 머릿속으로 기어 들어와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내 한을 풀어다오, 내 한을 풀어다오.] 분명히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그래서 죽였나?”

 

가토가 예의 그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침묵, 멍해진 표정의 다카키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긍정도, 부정도 없다. 하지만 다카키가 숨은 낮은 침묵 위로 단호한 시선이 날아든다. 너무 커 남의 것을 빌어 입은 듯 헐렁한 그의 옷을 향한 시선이었다. 황토색의 낡은 군복 위, 군데군데 묻어 얼룩진 검붉은 흔적이 다카키의 대답을 대신 짐작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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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없으니까. 자초지정이나 빨리 얘기해!”

 

귀찮다는 듯 내뱉는 가토의 목소리가 냉랭함으로 폐부를 찌른다. 겁먹은 표정의 다카키는 그의 목소리에서 남다른 섬뜩함을 발견하고 숨죽이다 또 다시 마른침을 삼킨다. 가토, 그는 부대 내에서 가장 악명(惡名) 높은 장교였다. 그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은 다카키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결국 소년은 눈물을 삼키며 그 날의 숨막히는 기억들을 상기하기 시작했다.

 

*******

 

무리가 끼어 비가 오겠구나 싶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야간 경계 근무를 나서는데,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기분 탓이었는지... 비가 그리 많이 온 것도 아니었는데, 이상할 정도로 음습하고 또 쌀쌀했습니다. 함께 근무를 선 이치로 오장도 몹시 기분 나쁜 날씨라고 했습니다. 어찌나 축축하고 음습하던지, 빗방울이 튀어 목덜미에 조금 스쳤을 뿐인데, 이치로 오장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몇 번이고 뒤를 돌아 봤습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말입니다. 뭐랄까? 마치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조바심을 내고 있었습니다.

그가 그 귀성(鬼聲)에 홀린 것은... 어쩌면 그때부터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카키!”

하이! 이등병 다카키!”

... 내 뒤에... ... 아무것도 없지?”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만.”

그렇게 건성으로 보지 말고 똑똑히 보란 말이다!”

! 하이! ... 없습니다.”

그럴 리가... 나만 이상한건가? 왜 이리 서늘하지?”

... 비 때문이 아닐까요?”

빠가! 넌 내가 비와 이상한 것조차 구분 못하는 바보에 얼간이로 보이나? !”

! 죄송합니다.”

 

그날 밤의 이치로 오장은 분명 이상했습니다. 연신 저를 채근하며 무언가 있나!’ ‘아무것도 없나!’ 그 말을 계속 물었습니다. 그 모습이 집요했고, 또 불편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영문조차 몰랐던 전, 그저 경계 근무에만 온 신경을 집중했습니다.

 

! 저기!”

 

빗줄기가 조금 더 강해졌을 무렵, 갑자기 이치로 오장이 초소 앞의 한 지점을 가리켰습니다. 저는 급히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봤지만, 제 눈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보이는 건 그저 빗줄기뿐이요, 허허벌판뿐이었으니까요. 초소 앞은 아시다시피 사주경계(四周警戒)를 위해 모든 엄폐물을 없앱니다. 나무를 베고 풀을 태워버린 자리만 검게 드러날 뿐, 정말이지 무엇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답했습니다.

 

... 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흐흐으으... ... 있었어! 있었다고! 넌 눈을 어디다 두고 있는 거냐! 분명 저기 뭔가가 있었다고!”

 

이치로 오장의 말에 전 눈을 비비고 다시 바라봤지만 초소 앞 공터엔 정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좀 더 신경 쓰겠습니다.”

머저리 같은 자식... ... 앞만 보지 말고 내 등 뒤도 잘 봐! 기분이 안 좋아!”

! 하이!”

... 젠장! 왜 자꾸! ... 뭔가 있는 것처럼... 등줄기가... 히익!”

 

연신 잔소리를 퍼붓던 이치로 오장이 순간 외마디 비명 같은 신음성을 내질렀습니다. 얼굴은 온통 겁에 질린 표정뿐이었고, 잔뜩 얼어붙어 뻣뻣한 목으로 등 뒤를 보려 애썼습니다.

 

... 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 닥쳐! ... 뭔가가 있었단 말이다.”

 

그는 마치 무언가를 본 사람처럼 목을 홱홱 돌리며 강한 경계심을 보였습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심각하던지 저까지 긴장해 주변을 훑었습니다. 조선인 괴리부대의 기습이라도 있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됐습니다. 그때 이치로 오장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저기다!”

 

그때였습니다. 허공을 가리키는 이치로 오장의 손가락 뒤로 무언가... 무언가 희뿌연 것이 빗줄기 사이를 뚫고 날았습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빠르던지 잔상만 남았을 뿐 금세 종적을 감추었습니다. 그땐 저도 많이 놀랐지만, 딱히 무섭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동작이 너무 빨라, 들짐승이 지났을까? 아니면 산새가 비를 뚫고 날았을까? 그런 생각만 했을 뿐,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었는지 그때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그 사이 이치로 오장이 제게 바짝 다가섰습니다. 떨고 있었고 잔뜩 긴장해 있었지만, 눈동자만큼은 어디를 보는 지 알 수 없을 만큼 빠르게 교차했습니다. 때론 급히 고개 돌려 뒤를 확인 하고, 때론 아무것도 없는 초소 천장을 무섭게 노려보기도 했습니다. 연거푸 고개를 홱홱돌려대는 통에 정신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진정하십시오.”

있어... 있어!”

뭐가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흐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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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로 오장이 또 한 번 소리를 질러댔고, 이번엔 그 무언가가 저와 이치로 오장의 등 뒤를 스쳐 지났습니다. 보지는 못했지만 느낌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등을 훑으며 지나는 그 싸늘한 감촉은 분명 바람이라 하기엔 너무도 괴이했으니까요.

 

이래도 모르겠어! !”

 

이치로 오장의 목소리는 격앙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곤 급히 저를 끌어당기며 소리쳤습니다.

 

막아... 네가 막아! ... 저게 나한테 못 오게 네가 막아!”

 

마치 헛것을 본 사람처럼 두려움에 떨며 제 뒤에 숨었습니다. 때 마침 빗줄기가 더 거세지며 [우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벼락이 내리쳤습니다. 먼 곳에 떨어졌지만 그 소리와 기세가 몹시 우렁찼습니다. 이치로 오장은 놀라 그 자리에 주저앉았고, 그가 저를 잡아당기는 통에 저 까지 바닥에 넘어졌습니다. 바라보니 이치로 오장의 얼굴이 그야말로 사색이 되어 있었습니다. 넋이 나간 사람처럼 눈은 멍하고, 입술은 파래져서 떨며 달싹였습니다. 마치 무언가 말하려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혹시나 해서 제가 귀를 가져다 대니 연신 움찔거리며 떨다 가까스로 소리를 내어 말했습니다.

 

운거야? ... 네가 운거야?”

 

그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자정을 넘은 시간이었고, 근무자는 우리 둘 뿐이었습니다. 심야 시간에 영내를 돌아다닐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고, 실제로 초소 주변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헌데 운다니요. 저는 당황하여 물었습니다.

 

운다니요? 누가?”

들려... 들려... 울어! 울고 있어! 망할 것! 왜 울어! !”

 

술 취한 사람처럼 그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을 계속 해댔습니다. [운다] [울고 있다] 그 외엔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그 말만을 연신 반복했습니다. 그리고는 갑작스레 두 눈을 크게 뜨며 넋이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습니다.

 

혼령(魂靈)이다. 혼령(魂靈)! ... 벌을 주려고 악귀(惡鬼)가 되어 왔어! 그게... 그게 울고 있어...”

 

급작스런 그의 행동에 당황스러웠지만, 저도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분명 무언가 있는 것 같긴 한데, 명확한 것은 없고, 지시를 내려야 할 이치로 오장은 공황상태였습니다. 그 사이 또 한 번 벼락이 쳤고, 바람도 거세어졌습니다. 그래서 전 그저 시간이 지나기만을 바랬습니다. 교대시간이 와서 빨리 이 자리를 떠나고픈, 그런 마음뿐이었습니다.

 

죄를 지었어. 죄를 지었어. 죄를 지었어. 죄를 지었어. 죄를 지었어. 죄를 지었어. 죄를 지었어.”

이치로 오장님 괜찮으세요? 정신 좀 차리십시오!”

으으... ... 죄를 지었어! ...그래서 다 죽이러 왔어! 죽이러! ! 울고 있잖아!”

 

그는 점점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러다 정말 큰일이 나겠다 싶었던 전 다급히 이치로 오장의 몸을 흔들며 소리쳤습니다.

 

이치로 오장님! 정신 차리십시오! ?”

아아...”

 

흔들어 댄 덕분인지 이치로 오장이 갑자기 입을 다물었습니다. 전 그가 정신을 차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조금 이상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좋은데, 갑자기 메고 있던 총을 끌어당겨 장전했습니다.

 

뭐하시는 겁니까?”

죽여 버릴 거야! ... 죽이면 돼! 귀신이든... 사람이든...”

뭘 죽인단 말입니까!”

 

당황한 제가 외치자 총을 든 이치로 오장이 어둠 속 어느 한 점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기...”

히이익!”

 

저는 놀라 뒷걸음질 쳤습니다. 그가 가리킨 곳, 어두운 허공 위의 한 점, 분명 빗줄기 외에 아무것도 없어야 할 그 곳에 무언가가... 정말로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희뿌옇고, 또한 나풀거리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

 

죽어!”

 

이치로 오장이 고함을 내지르고, 이내 !’ ‘!’ ‘!’ 하는 굉음과 함께 총구가 불을 뿜었습니다. 저는 놀라 뒤로 물러섰지만 그는 계속 허공을 향해 총을 난사했습니다. 매캐한 화약 냄새가 진동하고 탄피가 사방으로 굴러다녔습니다. 그 덕이었을까요? 뿌옇고 나풀대는 무언가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습니다. 놀라 두리번거려 보았지만 어디에도 그것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치로 오장도 조금은 안도했는지 거친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없지? 죽었지? 없는 거지?”

... !”

 

이치로 오장이 물었고, 저는 대답했습니다. 무엇을 쏜 것인지, 그게 정말로 죽은 건지, 저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지만, 눈앞에선 분명 사라졌기에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마치 무언가 홀린 듯 멍했고,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당혹감에 숨죽이며 바라보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때 그것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것도 사라진 곳 보다 훨씬 더 가까운 곳에서...

그것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겁니다.

 

으아아! 오지마! 오지마!”

 

이치로 오장의 총구가 다시 한 번 불을 뿜었습니다. 몇 발을 쏘았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미친 듯이 총을 쐈습니다. 탄피가 날아들어 제 뺨을 때렸고, 저는 무서워 주저앉아 눈을 감았습니다. 하지만 얼마 안가 철컥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탄창의 총알이 다 된 겁니다. 격발음만 날 뿐 총구가 침묵하자 이치로 오장의 움직임도 멎었습니다. 저는 급히 몸을 일으켰고, 망연자실 서 있던 이치로 오장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괜찮으십니까? 그건... 그건 어디로 갔습니까?”

 

헌데, 이상했습니다. 대답 없이 서 있는 이치로 오장의 모습이 평소와 달랐습니다. 들고 있던 총을 힘없이 떨어뜨리더니 갑자기 울먹이기 시작했습니다.

 

미안해...”

뭐가 말입니까?”

... 죄를 지었으니... 벌을... 벌을 받아야지

왜 그러세요 네?”

벌을... 벌을!”

 

이치로 오장은 계속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습니다. 하지만 괜찮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사이렌이 울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연했습니다. 한 밤에 총성이... 수도 없이 울렸습니다. 비상이 걸리지 않는 게 이상한 겁니다. 만주(滿洲)군이나 조선인(朝鮮人) 괴뢰부대가 기습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곳곳에 있는 서치라이트가 일제히 켜졌고, 저 멀리에선 놀라 막사 밖으로 뛰쳐나온 부대원 몇이 보였습니다. ‘지원 병력이 올 것이다.’ ‘누군가 도우러 온다.’ 그 생각에 어찌나 마음이 놓이던지... 다행히 그 즈음엔 희뿌연 무언가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괜찮은 줄 알고 일어섰습니다. 하지만 착각이었습니다.

다 끝났다고 생각한 바로 그 순간, 제 귀에도 그게 들려왔습니다.

... 빌어먹을 귀곡성(鬼哭聲) 말입니다.

 

[흐흐흐흑... 흐흑.... 흐으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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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맺힌 누군가의 울음소리였습니다.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며 흐느끼는 곡성(哭聲)의 고저(高低)가 소름 끼치도록 애절했습니다. 아련히 맴도는 듯 하면서 또 한 순간에 다가와 가슴팍을 후벼 파는데,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이한 감정이 요동쳤습니다. 여자, 그래요 분명 여자 목소리였습니다. 어찌할 바를 몰랐던 저는, 다급히 이치로 오장을 돌아 보았는데... 터무니없는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치로 오장의 눈이... 그의 눈이...

 

[눈동자 없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온통 하얗게 변한 눈을 보신 적 있습니까? 마치 죽은 사람의 눈처럼 흰자만 가득한 눈 말입니다. 놀라 뒤로 넘어갔는지, 아니면 그 괴이한 울음소리에 홀린 것인지, 분명 이치로 오장은 눈을 부릅뜨고 있는데, 어디에도 눈동자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잘 못 본 게 아닙니다. 흰자뿐인 눈 안에 가늘게 서린 핏발들은 선명하게 보였으니까요. 저는 그가 선채로 기절한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가가 깨우려 했는데, 그 눈이... 흰자뿐인 이치로 오장의 눈이! 돌연 고개를 돌려 저를 바라봤습니다.

 

으힉!”

 

[우르릉 콰콰쾅!]

 

저를 바라보는 이치로 오장의 흰 눈, 그리고 동시에 내리친 번뜩이는 우레와 뇌성(雷聲), 놀란 저는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그것만은 분명히 보았습니다. 번뜩이는 우레의 섬광 사이로 보이는 뿌연 그것을요. 하얗게 나풀거리는 그 요상한 것이 이치로 오장의 목과 머리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꽁꽁 싸맨 채 쥐어뜯고 있었습니다. 그리곤 그가 말했습니다.

 

[흐으흐흐흑... 크흐흐으으윽... 크흑... 흐으으으윽!]

 

분명 이치로 오장의 입에서 들리는데, 마치 다른 사람의 목소리처럼 들렸습니다. 우는 것 같기도 하고, 웃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흰자 가득한 눈, 일그러진 표정, 무어간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에 충분했습니다. 순간 섬뜩한 예감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눈앞에 선 이치로 오장이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고,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은 드는데 이상하게 무기력했습니다.

헌데 그때... 그 울음소리가 또 다시 들려 왔습니다.

이상하게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몽롱하고 나른했습니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현실감이 사라졌습니다. 가위, 맞습니다. 가위에 눌린 것 같았습니다. 빗줄기는 떨어지고 온 세상이 다 느리게 움직이는데, 오직 저만이 꼼짝 할 수 없었습니다.

 

안 돼! 일어나야 돼! 무언가 이상해!’

 

불안했고 또 두려웠습니다. 한 시라도 빨리 몸을 움직이고 싶은데, 몸은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손가락 하나 제 맘대로 할 수 없었고, 숨 쉬는 것조차 편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치로 오장이 다가왔습니다.

일그러진 얼굴, 그리고 흐느끼는 목소리, 내가 아는 이치로 오장이 아닌, 그 무언가가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너무 무서워서 눈을 감고 싶었지만 그 조차 안됐습니다. 그래서 숨만 겨우 헐떡이며 바라보는데, 그가 한 걸음, 한 걸음 점점 더 다가왔습니다. ... 걸음걸이 조차 달랐습니다. 사뿐사뿐, 마치 허공에 떠 있는 듯 나풀대며 다가왔습니다. 저는 겁이 났고 또한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이치로 오장은... 그런 절 내버려둔 채 곁에 섰습니다. 다행이란 생각도 잠시... 무언가를 줍는 듯 그의 허리가 굽었습니다. [철컥] 하는 쇳소리가 들렸습니다.

 

설마! 아니야...’

... 그럴 리가!’

 

불길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사이렌 소리 너머로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저는 생각 했습니다.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이치로 오장을 막아야 한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울음소리가 이치로 오장의 입을 빌어 다시금 들려왔습니다.

 

[으흐으흐흑... 끄으윽... 크흐아으흑!]

 

이치로 오장이 말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저는 죄인입니다.”

 

그의 낮은 중얼거림, 쏟아지는 빗소리, 기이한 흐느낌,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 점차로 격해진 이치로 오장의 숨소리, 초소를 향해 모여드는 사람들의 웅성거림...

그리고...

 

[! ! 타타타타탕!]

 

격렬한 총성이 그 모든 것을 삼켰습니다. 불꽃이 뿜어지고, 탄피가 사방으로 흩날렸습니다.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누군가의 고통스런 신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그제야 알았습니다. 이치로 오장이 허리굽혀 주운 건 제 총이었고, 그가 쏘고 있는 건 총 소리를 듣고 모여든 아군이었다는 걸...

 

... 안 돼...”

 

그제야 말문이 터졌습니다. 몸도 조금씩 움직여졌습니다. 고개를 돌렸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눈동자를 잃어버린 흰 눈, 일그러진 표정, 귀곡성에 홀려 완전히 미쳐버린 이치로 오장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다 죽여야 돼! ... 그래야 용서 받을 수 있어! ! 다 죽어!”

 

그가 말했습니다. 그리곤 웃었습니다. 아군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또 미친 듯 쏘아대면서 웃고 또 웃었습니다. 총에 맞은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울려퍼지는데도, 그는 기쁜 듯 미소 지었습니다. 마치 그것이 제 소임인 양 환희에 젖어 미친 듯이 쏘아 댔습니다.

 

그만하세요!”

 

저는 온힘을 다해 몸을 일으켰고, 그에게 달려들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성급했던 탓인지 그의 손이 아닌 총신을 붙잡았습니다. 총신은 계속 된 사격으로 달궈져 있었고, 잡을 수 없을 만큼 뜨거웠습니다. 저는 놀라 손을 놓았고, 그러자 이치로 오장이 발로 저를 차 밀치며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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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도 남김없이... 씨가 마를 때까지...]

 

분명히 기억합니다. 그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건 이치로 오장의 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 이치로 오장의 목소리 위에 얇고 높은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섞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총을 들었습니다. 겁 먹은 전 뒤로 물러섰지만, 총구의 방향이 달랐습니다. 제가 아닌... 이치로 오장 자신의 입이었습니다.

 

안돼!”

 

[!]

 

놀라 달려들었지만 늦어버렸습니다. 이치로 오장의 손은 이미 방아쇠를 당겼고, 머리 위로 피가 솟구쳤습니다. 그의 몸이 축 늘어진 채 저를 덮쳤고, 함께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제가 머리를 부딪친 것도, 의식을 잃은 것도 아마 그 때였을 겁니다. 쓰러지는 순간 이치로 오장이 무어라 제 귀에 속삭였던 것 같긴 한데, 그건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아무튼 그게 제 기억의 마지막입니다.

정말입니다. 믿어주십시오.



[끝이 아니야... 이제부터야...]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봉신당티져_500.jpg


봉신당 : 참회의 서


Written by 야설왕 짐보(미/스/공)


스터리/릴러/포 괴담공작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코멘트

 

이전에 공게에 업로드했었던 '봉신당' 의 새 시리즈입니다. 시리즈물이나 이전 내용을 찾아보지 않아도 이해하시는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물론 보시고 오시면 더 좋음)

오랫동안 구상했던 작품으로 중장편분량입니다. 대부분의 유저가 단편 위주로 보시기 때문에, 거기에 쓸 데 없이 사진까지 포함되어 있어 몇 분이나 계속 보아주실지 모르겠네요. 딱히 반응이 좋을만한 작품이라 생각지 않는데다 개인적인 만족을 위해 연재하는 작품이라, 연재 주기가 타이트하지 않을 겁니다. 혹 지독한 악취미로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이 계시다면 양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혹 관심 가져주시는 분들이 계실까 하여 이전 시리즈 좌표를 남깁니다.(꼬릿말을 통해서도 확인가능)


봉신당 #1. 업은 업으로 덕은 덕으로 편 : http://todayhumor.com/?humorbest_1185578

봉신당 #2. 인면목의 저주

 - 1편 : http://todayhumor.com/?humorbest_1187163

 - 2편 : http://todayhumor.com/?humorbest_1187428

 - 3편 : http://todayhumor.com/?humorbest_1188345

 - 4편 : http://todayhumor.com/?humorbest_1189171 



출처 나, 미스공 괴담공작소(http://blog.daum.net/ozthewonder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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