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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주의] 봉신당 : 참회의 서 #2. 숙명_2
게시물ID : panic_8866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야설왕짐보
추천 : 14
조회수 : 1079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6/06/20 20:2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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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움짤등 다소 불쾌/혐오 사진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주의 부탁드립니다.

    ※ 포토소설로 형식상 모바일에선 다소 불편하실 수 있습니다. 되도록 PC환경에서 보시길 권합니다.


시리즈 홍보를 위해 전편들의 링크를 남겨봅니다. (순서대로 보시면 됩니다.)

봉신당 : 참회의 서 #1. 귀곡성-1 : http://todayhumor.com/?panic_88655

봉신당 : 참회의 서 #1. 귀곡성-2 : http://todayhumor.com/?panic_88656

봉신당 : 참회의 서 #2. 숙   명-1 : http://todayhumor.com/?panic_88663



*******

 ... 죽여라!”

 

말을 마친 후 힘없이 무너지는 사치코, 그녀를 따라 설 산을 붙잡고 있던 네 명의 사내도 사방으로 나자빠졌다. 커다란 덩치가 무색할 정도였다. 그야말로 추풍낙엽(秋風落葉), 비로소 홀가분해진 설 산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다 되신 게지요?”

 

사치코가 대답 없이 고개를 떨구자 설 산은 주저 없이 돌아섰다. 멀찌감치 앉아있던 청연 역시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먼발치의 누군가가 박수를 치며 다가왔다. 녹록치 않은 인상의 중년 사내였다. 거동이 불편한 듯 전동 휠체어를 타고 있었는데, 일행으로 보이는 덩치 큰 사내 몇이 그를 보좌하며 다가왔다.

 

역사와 전통! 그리고 명성이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더니... 감탄했소! 봉신당 당주 설 산군!”

 

무지막지한 네 명의 거한조차 물리친 설 산이 그가 다가오자 갑작스레 긴장하며 돌아섰다. 상대는 고작 휠체어를 탄 중년 사내, 누가 봐도 긴장할 이유 따윈 없었다. 외견상의 우위 역시 젊은 설 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겨오는 분위기가 종전과는 사뭇 달라졌다. 휠체어의 사내는 느물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한껏 여유로운 반면, 설 산은 날카로이 긴장한 채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회장님!”

회장님!”

스기야마 님!”

 

그가 오자 민망한 모습으로 나자빠져있던 사내들이 황급히 일어나 예를 갖춘다. 표정과 태도, 모든 부분에서 그에 대한 두려움이 묻어났다. 무리 중 제법 위세롭던 사치코 또한 흡사 죄인이라도 된 양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조아린다. 만만치 않은 존재감이다. 스기야마, 누구도 그의 입지와 위상을 설명한 적은 없었지만, 보이는 것만으로도 능히 상당한 거물임을 미루어 짐작케 했다. 아니나 다를까? 지척까지 다가온 스기야마, 그에게선 막강한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떨어져 있을 때는 미처 감지하지 못했던 압도적인 위압감이다. 매 순간 그와 눈을 마주친 행인들이 강렬하다 못해 아찔하기까지 한 그의 시선을 감당하지 못하고 물러선다. 개중에 몇은 그 시선과 마주치자 무언가에 쫓기듯 황급히 자리를 피한다. 질끈 눈을 감고 헐떡이는 사람, 식은땀을 흘리며 돌아서는 사람, 반응은 제각각이지만 이유는 같았다. 본능(本能), 포식자를 맞닥뜨렸을 때 비로소 깨닫는 생존에 대한 동물적 감각이다. 그것이 수많은 행인들을 마치 썰물처럼 훑고 지났다. 삽시간에 고요해진 빌딩 앞, 오직 단 한 사람... 스기야마의 위압감에 휘둘리지 않은 그가 나섰다.

 

아 진짜 회장님! 부탁한다고 하시더니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아 놔... 아까 넘어져서 팔꿈치 까진 거 봐! 아으... 저 정말 경찰에 신고하려다가 몇 번이나 참았습니다! 휠체어 타고 다닌다고 제가 불쌍하게 생각할거란 보셨다면 실수하신 겁니다! 저 기자예요 기자! 기자 건드리면 어찌되는지 모르세요?”

! 저 놈이 감히!”

 

용감한 건지... 아니면 그냥 생각이 없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라는 속담마냥 청연이 특유의 용맹함(?)을 발휘해 따져 물었다. 한껏 찡그린 미간이 평소답지 않게 제법 진지하다. 그 당돌하다 못해 무례하기까지 한 행동에 사치코를 위시한 검은 정장 사내들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잔뜩 부풀어 오른 풍선마냥 부풀어 툭 치면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기세다.

 

하하하하! 이거 결례를 범했군요. 이청연 기자님, 어찌 된 게냐 사치코!”

하잇! 죄송합니다 회장님.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어렵지 않아보였고, 제 능력을 너무 과신했습니다.”

 

스기야마의 질책에 재빨리 달려 나온 사치코가 무릎을 꿇으며 답했다. 하지만 스기야마의 낯빛이 몹시 어두웠다. 그는 잠시 언짢은 표정으로 사치코를 훑어 본 뒤 물었다.

 

사치코, 네가... 나와 함께 한 게 몇 해지?”

“15년입니다.”

한 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내가 너의 변명을 듣고자 한 적이 있던가?”

 

스기야마의 의미심장한 힐난에 사치코의 표정이 차갑게 굳는다.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녀는 사람들이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급히 바닥에 엎드리며 절을 하듯 머리를 조아렸다.

 

! 하잇... 스미마셍, 스미마셍... ...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 용서해주...십시오.”

말로 하는 사죄는 의미가 없지! 안 그런가?”

하잇!”

 

사치코의 외침, 그것은 일종의 의식과도 같은 것이었을까? 돌연 사치코가 제 이마로 단단한 돌바닥을 들이 받으며 죄송합니다.’를 외치기 시작했다. ‘’ ‘’ ‘고통스러움이 사과의 목소리와 뒤섞였다. 곧 찢어지고 또한 피가 흘렀다. 하얗던 그녀의 이마와 안면이 온통 붉게 물들었다. 허나 스기야마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침묵했고, 사치코는 당연하다는 듯 멈추지 않고 같은 행위를 반복한다. ‘’ ‘’ ‘지켜보는 것조차 불편한 듯, 그나마 남은 구경꾼들이 뿔뿔이 흩어진다. 숨이 넘어갈 듯 반복되는 자해(自害)의 사죄, 하지만 무리 중 누구도 말리거나 끼어들지 않는다. 아니 그러지 못 한다. 안색은 물론 시선조차 흔들림이 없었다. 그들에겐 그것이 마치 자연스러운 일상의 한 부분인 듯 무감각해 보였다. 어느새 흘러내린 핏물이 목덜미를 지나 옷을 물들인다. 싸늘히 바라보던 설 산마저 눈살을 찌푸리자, 참다못한 하룻강아지가 달려들었다. 아니 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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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해요. 그만! 이러다 죽겠네! 저기요 사치코씨! 그만하라고요! 예쁜 얼굴 다 상하겠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청연이 달려들어 제지해보지만 사치코의 속죄는 멈추지 않는다. 외려 더 강한 힘으로 제 이마를 깰 듯 내리친다. 당황한 청연이 어쩔 줄 몰라 하며 휠체어를 바라보자. 스기야마는 그제야 슬며시 미소 짓는다.

 

이 정도면 결례에 대한 사죄가 되었을지?”

 

정중함을 가장한 겁박의 말, ‘아니오라 하기에는 눈 앞의 일이 너무도 참혹하다. 청연이 머뭇거리자, 그 사이 사치코의 이마가 또 한 번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내던져진다.

 

죄송합니다!”

사죄고 뭐고! 됐으니까 그만 하시라고요!”

죄송합니다!”

회장님! 제가 빌께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발 그만 하라고 좀 해주세요! ?”

그만!”

 

그제야 들려온 스기야마의 목소리, 비로소 심장 박동처럼 쿵쿵대던 소리가 멈췄다. 이마와 얼굴 그리고 목까지, 상체가 온통 피범벅이 됐지만. 자리에서 일어 난 사치코는 감격스러운 듯 허리를 굽힌다. 허나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일까? 갑작스레 휘청 인다. 곁에 선 청연이 다급히 붙잡아 보지만 그녀의 몸이 축 늘어졌다. 혼절해 버린 것이다.

 

“119! 119 좀 불러요! 사람이 다쳤잖아요!”

 

청연이 다급히 외쳤지만 무리 중 누구하나 꼼짝하지 않았다. 동료가 쓰러졌는데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다니, 당황한 청연의 시선이 해답을 쫓아 움직인다. 이 모든 광경을 느긋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사람, 하찮은 볼거리에 지루함마저 느끼는 사람, 청연 역시 곧 깨닫는다. 휠체어 위에 앉은 문제의 해답을...

 

... 병원 좀 보내주세요. ? 회장님... ... 부탁드립니다.”

 

간절한 부탁, 청연이 고개를 숙이며 빌자, 스기야마는 그제야 못 이긴 척 손가락을 끄덕인다. 사내 두 어 명이 나섰다. 그들이 시체처럼 축 늘어진 사치코를 부축해 차에 실었다. 그리곤 자신들끼리 무언가를 간단히 이야기 한 후 떠났다. 그 사이, 멀어지는 사치코를 바라보며 청연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회장님.”

아닐세... 그 정도야 뭐... 흐흐흐흣

 

무언가 뒤바뀐 기이한 광경이었다. 광분하여 달려들던 하룻강아지는 유순해지고, 사과의 대상이 역전됐다. 극적인 입장의 전환이다. ‘불만고마움으로, ‘거짓 미안함억지 아량으로, 바라보는 설 산의 눈초리가 매서워졌다. 반면 상황의 반전을 이뤄 낸 스기야마는 웃는다. 세상의 모든 이를 깔아 보는 듯, 높은 곳의 웃음이다.

하지만 세상사(世上事), 사람이 이리도 많은데, 어찌 하나로만 재단(裁斷)할까? 천하의 스기야마라도 미처 파악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그가 범상치 않은 호랑이인 것처럼, 그의 눈앞에 선 보잘 것 없는 하룻강아지역시 보통의 개들과는 다르다는 점이었다. 그것이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사치코를 실은 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이 배덕한(?) 하룻강아지는 용건을 마쳤다는 듯, 하릴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마치 동네 마실 나온 동네 아낙 같은 행보다.

 

아우 보냈네! 우리도 이제 가자! 아우 배고파... 뱀파이어도 아닌데 피를 보니까 왜 이렇게 허기가 지냐! 산아! 우리 선짓국이나 먹으러 갈까? 내가 기똥 차는 집 하나 알아 놨는데!”

이봐 이 기자!”

 

청연의 등 뒤로 스기야마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하지만 그러거나말거나 이미 '선짓국'에 꽂혀버린 청연이다. 뒤에서 누가 떠들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제 관심사만을 피력하느라 바쁘다.

 

에이 그러지 말고 살짝 출출한데, 한 그릇 때리자! 동생 것도 하나 포장하고! 어때? ? 내가 쏜다!”

이청연 기자!”

아우 그 집 선지 아주 끝내줘! 뽀송뽀송한게, 먹으면 바로 원기 회복! 힘이 삐용 삐요~! 잠을 못자요~!”

이청연 기자!”

 

스기야마가 붉어진 얼굴로 연신 청연을 불러보지만, 정작 청연은 선짓국에 정신이 팔려 원기회복을 외치느라 여념이 없다. 그리곤 한 술 더 떠 외설스레 제 하체를 들이미는 요상한 춤까지 춘다. 순간적 기억 상실? 아니면 극단적 긍정주의? 그게 뭐든, 콧노래를 부르며 떠들어대는 청연의 무심한 뒷모습은 스기야마의 심기(心氣)를 거스르기에 충분했다. 스기야마의 이마가 예기치 않은 불손함에 꿈틀댄다. 그로선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미지의 반응이었다. 청연의 춤을 본 사내들의 입에서 피식하는 미소가 쏟아지고, 철옹성 같던 스기야마의 카리스마가 개똥밭에 미끄러진다. 청순한 뇌와 얼토당토한 천진난만함, 그 미로와도 같은 기이한 정신세계에 스기야마의 위압감이 갈 곳을 잃고 헤매인다.

선짓국의 뽀송뽀송함에 오만 정신을 다 팔아 먹고 어느새 앞선 상황은 모두 잊은 청연, 그가 동네 마실 나온 사람마냥 사내들 사이를 빠져나가려 하자 격노한 스기야마 소리쳤다.

 

저 것들 막아! 어서!”

! ! 뭐야?”

 

스기야마의 한 마디에 달려든 다수의 사내, 그들이 설 산과 청연의 앞을 단단히 에워쌌다. 내내 불편한 얼굴의 설 산과 달리 시종일관 평화로운 청연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휠체어 아저씨! 우리 얘기 끝난 거 아니에요?”

! 무엄하다! 스기야마 회장님께 휘... 휠체어 아저씨라니!”

 

청연의 천진난만한 질문이 기분 나빴을까? 아니면 휠체어 아저씨란 단어가 그들에겐 금기(禁忌)라도 되는 걸까? 스기야마의 심복 하나가 청연을 향해 불같은 얼굴로 소리쳤다. 하지만 상황파악이 안 되는 것도 일종의 능력이라면 능력, 청연이 실실 웃으며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아저씨! 군대 안 갔다 왔죠?”

... 그게... 우리 일본은... 모병제...”

아 일본사람이구나? 그럼 모를 수도 있겠네, 에이... 그치만 그래도 알 건 알아야지... 쯧쯧

 

안타까운 표정으로 이젠 숫제 혀까지 차는 청연, 외려 당황한 스기야마의 심복이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

군대에서도 타 부대면 그냥 다 아저씨에요. 이 바닥이 원래 다 그런 거 아녜요? 한 다리 두 다리 건너면 다 아저씨지! 휠체어 아저씨가 우리 회사 회장님도 아닌데... 무슨 회장!”

! 뭐야!”

모르는 사람은... 대통령이 와도 아줌마, 박씨 아줌마 몰라요? 휠체어 아저씨 앞이라고 오바는... 키키킥, 아저씨도 없을 때는 이 새끼 저 새끼 하잖아요. 저도 우리 편집장님 없을 때는 대머리 아저씨라고 하거든요. 오바하긴! 크크크 그치 산아? 그런 의미에서 우리 간만에 오바이트 쏠리게 반주로 소주 각 이병씩 오케? 히히힛

... 저런!!”

 

무심히 돌아서는 청연, 당황한 스기야마의 심복이 뒤늦게 강한 적개심을 불태워 보지만 도무지 난공불락이다. 외려 앞을 가로막은 사내들을 바라보며 장난이라도 치듯 좌우로 게걸음을 걷는다. 황당한 그의 행동에 어쩔 줄 몰라 하는 검은 정장의 사내들, 보다 못한 스기야마가 버럭 소리쳤다.

 

설 산, 봉신당의 18대 당주! 내가 가진 신물(神物)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나?”

 

신물(神物), 그 의미심장한 한 마디에 설 산의 발이 멈춘다. 차분히 돌아보는 시선, 하지만 청연의 천진난만함은 혹 전염성이라도 있는 걸까? 내내 무심한 표정이었던 설 산이 살며시 비웃으며 말했다.

 

안 궁금합니다. 휠체어 아저씨!”

! 이것들이 정말!”

 

스기야마의 심복이 황당한 듯 소리쳤다. 무언가 일이 자신들의 생각대로 되지 않는 듯 낭패한 얼굴이다. 허나 돌아 선 설 산의 등 뒤로 나직하면서도 강렬한 스기야마의 외침이 들려왔다.

 

, 그것이... 봉신당의 잃어버린 신물, 신경이라도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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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시선, 멈춘 두 발, 설 산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 스기야마 웃었다. 껄껄대며 큰 소리로 웃지만, 비열함이 그득 묻어나 불편하기 이를 데 없었다. 다시 돌아 선 설 산, 바라보는 스기야마, 두 사람의 시선이 뜨겁게 맞부딪쳤다. 그 강렬한 맞닥뜨림에 주변의 공기마저 뜨겁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 이제야 구미가 좀 당기는가?”

당신이 어떻게 그걸... 그럼 설마! 이 음산한 요기의 정체가 바로!”

눈치가 빠르군... 그럼 이제 좀 이야기가 되겠는 걸? 자 날 따라 오게! 수십년째 행방불명됐던 봉신당의 신물(神物) 참회의 거울을 만나게 해주지! 흐흐흐흣

 

스기야마의 웃음소리가 악마의 그것처럼 울려퍼졌다. 어느새 그의 등 뒤엔 두 명의 사내가 달려가 건물의 스카이라운지로 연결된 전용 엘리베이터의 문을 연다.

 

어서! 어서 와! 내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흐흐흐하하하핫!”

 

무엇이 그리 기쁜지 연신 터져 나오는 스기야마의 미소, 하지만 이내 싸늘해진 얼굴의 설 산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관심 없습니다.”

뭐 뭣이!!”

 

거듭된 설 산의 외면에 당황한 듯 스기야마의 표정이 변했다. 내내 유지하고 있던 평정심마저 깨진 듯 그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하길 거듭하다 이내 흥분한 표정으로 외쳤다.

 

! ... 신경이란 말이야! 봉신당의 일어버린 보물! 인간의 힘을 뛰어넘은 저주받은 요물! .. 헌데 구... 궁금하지 않단 말인가! ! 왜지?”

 

격분하여 소리치는 스기야마, 일행들조차 그의 그런 표정을 처음 보는 듯 우려 섞인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한 없이 차분해진 표정의 설 산이 말했다.

 

()은 덕()으로 업()은 업()으로... 인연이 있다면 만날 것이고, 또한 인연이 아니라면 애써 탐내도 내 것이 될 수 없으니, 어찌 신()을 모신 자로서 티끌만한 연()을 이유로 사사로이 물욕(物慾)에 빠지겠습니까! 그것은 이미 봉신당과의 인연이 다한 듯 하니, 부디 덕을 쌓으십시오.”

! 안 돼! 멈춰! 빠가야로! 이 빌어먹을 것들!”

 

이제는 숫제 욕설까지 내뱉는 스기야마, 그는 이미 이성을 잃은 듯 타고 있던 휠체어를 들썩이며 소리쳤다.

 

뭐 더 하실 말씀이라도 남으셨는지요?”

흐흐흐... 흐흐흐...”

 

설 산이 단호한 목소리로 묻자, 스기야마는 돌연 실성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그 웃음소리는 점차로 커지더니 급기야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말했다.

 

자네... ... 호랑이를 잡아 본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신을 모시는 자는 무의미한 살생을 하지 않습니다.”

흐흐흣, 잡았지, 중국 국경에서... 내가 스물이 되던 해야, 커다란 시베리아 호랑이, 보통은 크기가 4미터 정도 하지만 그 놈은 6미터도 족히 넘었지, 그야말로 괴물이었어! 어찌나 크고 빠른지 총을 겨눌 새도 없더군, 그래서 조선족들은 놈을 산신(山神)이라 불렀어. 소리 없이 숨어있다 느닷없이 울부짖으며 나타나, 참 많이도 죽었지, 누구건 놈의 포효를 들었을 땐 이미 늦은 뒤였거든, 며칠이고 기다렸어 하지만 안 돼, 맞추기도 어렵지만 설사 우연히 맞았다 해도, 그 정도 크기면 총알 한 두 방에 쉽사리 죽지 않지. 한층 더 흉폭해질뿐... 헌데 내가 그걸 잡았어! 어찌했을 것 같나?”

 

스기야마의 물음, 그와 설 산 사이에 잠시 냉랭한 침묵이 흘렀고, 이야기를 거듭하며 점차로 흥분해 있던 스기야마가 잔혹한 표정을 드러내며 답했다.

 

새끼야...”

 

순간 굳어지는 설 산의 표정, 그것을 놓치지 않은 스기야마가 계속 말을 이었다.

 

새끼... 그래! 어린 호랑이 새끼! 작은 굴에서 그것들을 먼저 잡았지... 그리곤 미리 준비해둔 함정으로 그것들을 데려갔어! 총을 맞아도 울지 않던 놈이 그땐 정말 미친 듯이 포효하더군! 마치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그리곤 곧 새끼들의 냄새를 따라왔어, 그 곳이... 자신의 묘 자리가 될 거란 걸 알면서도 말이야! 참 아름답지 않나? 그 숭고한 희생 말일세... 흐흐흐...”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당신!”

서른 발을 쐈지, 골통부터 배, 다리, 어디 한 군데 성한 곳이 없을 만큼 뚫리고 터져나갔어! 그런데도 도망치질 않아 외려 꼭 부둥켜 안더군... 내가 정말 감탄했던 건, 어미는 그렇게 만신창이가 됐는데, 새끼들은 멀쩡했다는 거야! 그렇게 보지 마! 나도 그렇게 비정한 인간은 아니야! 어미는 취하고, 새끼는 살려줬지... 몇 년 뒤, 다시 찾아서 죽였지만 말야 크흐흐흣! 자네도 갈 테면 가게... 하지만 새끼는 두고 가야 할 게야!”

 

의미심장한 스기야마의 말에 다급히 두리번거리는 설 산의 시선, 아니나 다를까 어느새 청연이 스기야마의 부하에게 제압당한 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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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핫! 산아! 이 분들 되게 빠르시네! 아우... 내가 몸이 예전 같지 않나봐? 아 살살 잡아요! 아프다고! 나는 신경쓰지 마 산아! 내가 뿌리칠 수... 아아! 아파요! ... 살살 잡아요! !”

 

너스레를 떨며 웃던 청연의 두 다리가 바람 속 마른 가지냥 흔들린다. 덩치 큰 사내가 그의 목을 조른 것도 있지만, 요는 다른 하나가 위협하려 들이 댄 칼 때문이었다. 내내 청순하던 그의 청연의 뇌도 최소한 칼에는 반응을 하는 걸까? 나름 절체절명의 상황이라 느꼈는지, 표정이 잔뜩 굳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설정은 포기할 수 없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 아저씨... ... 근데 이 칼 지... 진짜예요? 누르면 안으로 쏙 들어가는 마술용 아니에요? 크으으으아아악!”

 

물음에 답 하듯 사내가 손에 든 칼로 청연의 목을 훑는다. 아주 살짝 스쳤을 뿐인데, 날카로운 은회색의 칼날 위로 핏물이 맺혔다. 그리고 그 시큰한 통증은 청연의 청순한 머릿속을 하얗게 지워버리기에 충분했다.

 

... 살려주세요! ... 살려 주세요! ... 휠체어 회장님 사... 살려주세요! 으허헉! ... 사람 살려! 엄마아!”

 

사색이 되어 바르르 떠는 청연, 허나 스기야마의 뒤에 선 심복은 그의 말에 한층 더 격노하여 외친다.

 

! 휠체어 회장이라니! 감히 누구한테! ! 죽고 싶나! 칙쇼! 저런 빠가야로! ...”

잘 못했어요! 잘 못했습니다. .. 산아 뭐해! ... 빨리 빌어! 그리고 빨리 가서 회장님이랑 얘기도 나누고 거울도 보고 그러자! ? 어서! 빨리... 냉큼! 내 안에 너 있다. 아니! 내 목에 지금 칼 있어... 엉엉!”

들었나? 아끼는 사람을 잃고 싶진 않겠지?”

 

청연이 울먹이며 채근하고, 스기야마 역시 결단을 요구했다. 하지만 설 산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당혹감도 잠시 그의 얼굴이 지극히 평온하다. 마치 대수롭지 않은 일인 듯 무심한 얼굴이었다. 그리곤 예의 그 냉랭하고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거... 번지수가 틀리셨네요.”

뭐야? 그게 무슨 소리지?”

딱히... 아끼진 않습니다만?”

... 그런!”

 

의외의 대답, 그리고 그것이 전해 온 당혹감, 이내 스기야마의 진영이 시끄럽다. 매끄럽지 않은 상황의 진행에 플랜B를 논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나 그것도 잠시, 무언가가 폭발했다. 내내 청순하기만 하던, 그야말로 천진난만의 결정체였던 청연의 뇌가 끓어오르는 배신감에 폭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야아아! ! 썰싼이! 이 개.새.끼야! 니가 은혜를 원수로 갚냐! 으허허헝! 지 배고프다 뭐하다 할 때 내가 밥도 다 사주고 힝... 내가 친 형처럼 선배처럼 얼마나 알뜰히 살뜰히 보살펴 줬는데! 야 이 나쁜 새끼야! 냉혈한(冷血漢)! 피도 눈물도 없는 새끼! 니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흐하항... 난 저 새끼가 언젠가 한 번은 배신 때릴 줄 알았어... 엄마... 우아아앙

 

그야말로 폭풍오열, 어찌나 시끄러웠던지 칼을 들이 댄 사내는 물론 조금 떨어진 스기야마 진영의 사내들조차 귀를 틀어막는다. 눈물, 콧물이 뒤범벅 된 얼굴도 가관이었지만, 내 던지는 말 하나 하나가 죄다 예술이었다.

 

쎅쑤! 세엑수우우우... ... 내가... 그것도 한 번 못해 보고! ... 죽다니! 엄마... 흐아앙! 죽기 전에 섹스는 원 없이 하고 죽을라 했는데... 흐흑! 어영부영 하다 보니 총각 귀신이구나! ! 맞다! 어떡해! 내 야동! 컴퓨터에 야동 겁나 많이 깔아 놨는데! 나 죽고 난 다음에 엄마가 그걸 보면... ! 안 돼!!! ... 장르별로 콜렉션 해놨단 말이야! 누가 그거 보면 나 쪽팔려서 안 돼! 죽으면 안돼애애~ 엉엉엉!”

 

해괴망측한 통곡에 아련히 바라보던 설 산마저 외면하여 고개 돌린다. 허나 안타까움보단 짜증스러움이 묻어 났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내지는 이 인간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가?’같은 한심함이 대부분이다. 그 사이 전열을 재정비한 스기야마의 진영에서 한 사내가 다가온다. 내내 스기야마의 등 뒤에 서서 목소리를 내던 심복이다. 스기야마도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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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건 어떤가?”

 

휴대폰을 건네받은 설 산, 액정 화면 속의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마지못한 듯 그것을 귀에 가져다 댄 것도 잠시, 그의 낯빛이 검게 물들었다. 살의(殺意)가 담겼다 할 만큼 매서운 시선이 번뜩이고, 체념한 표정으로 눈을 감으며 그가 말했다.

 

비겁한 인간... 연약한 아녀자를 인질로 삼다니!”

으하하하하핫! 지인과의 연이야 무시한다쳐도 동생까지 내버릴 순 없나보지? 크하하핫 사치코가 말하지 않던가! 울지 않으면... 울게 만들어라! 그게 날세! 스기야마 토오루! 뭣들하고 있나 안으로 모시지 않고! 이야기가 길어질 게야! 하하하핫!”

 

스기야마의 득의양양한 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사내 몇이 다가와 설 산의 손목을 무언가로 묶고 끌고 간다. 심복 하나가 다가와 물었다.

 

회장님! 저 얼빠진 놈은 어찌 할까요?”

누구? ... 저 얼간이 녀석? 마음 같아선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 버리고 싶지만, 대업(大業)을 완수하려면 신중해야지! 아직은 이용 가치가 있어! 함께 끌고 가!”

하잇!”

 

사내 하나가 다가와 등을 밀자 청연이 애처로운 표정으로 외친다.

 

... 살려주세요! 회장님! 사람 살려! 거기 누가 저 좀 살려주세요! 납치야! 사람 살려어어!”

 

덩치 좋은 거한들의 매서운 눈빛에 외면하는 행인들, 허망한 목소리만이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살려조오오오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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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신당 : 참회의 서


  Written by 야설왕 짐보(미/스/공)


 (스터리/릴러/포 괴담공작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코멘트


#1-1, #1-2다행히 베스트는 갔네요. 기쁩니다. 봉신당 이전 시리즈도 대 흥행 참패였던지라... ㅎ

찾아주시는 분들은 적지만, 글의 재미와 상관없이 열과 성을 다해 쓰고 있습니다.

뭐... 쓰다보면 재밌는 글도 쓰겠지요. 애매하고 긴 글에 소중한 추천을 행사해주신 분들...

복받을 거야. ㅎ


*******

혹 관심있으실 분들을 위한 이전 시리즈 좌표.

봉신당 #1. 업은 업으로 덕은 덕으로 편 : http://todayhumor.com/?humorbest_1185578

봉신당 #2. 인면목의 저주

 - 1편 : http://todayhumor.com/?humorbest_1187163

 - 2편 : http://todayhumor.com/?humorbest_1187428

 - 3편 : http://todayhumor.com/?humorbest_1188345

 - 4편 : http://todayhumor.com/?humorbest_1189171 




출처 나, 미스공 괴담공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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