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사진주의] 봉신당 : 참회의 서 #5. 악몽의 밤
게시물ID : panic_8871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야설왕짐보
추천 : 12
조회수 : 1457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6/06/23 08:14:58
옵션
  • 창작글
  • 외부펌금지
봉신당_참회의서.jpg
크등장인물_최종_다음.jpg

※ 움짤등 다소 불쾌/혐오 사진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주의 부탁드립니다.
     ※ 포토소설로 형식상 모바일에선 다소 불편하실 수 있습니다. 되도록 PC환경에서 보시길 권합니다.

  중·장편 분량의 코믹/공포/스릴러 소설입니다. 챕터 #1 부터 보셔요. (순서대로 보시면 됩니다.)

  봉신당 : 참회의 서 #1. 귀곡성-1 : http://todayhumor.com/?panic_88655
  봉신당 : 참회의 서 #1. 귀곡성-2 : http://todayhumor.com/?panic_88656

  봉신당 : 참회의 서 #2. 숙  명-1 : http://todayhumor.com/?panic_88663
  봉신당 : 참회의 서 #2. 숙  명-2 : http://todayhumor.com/?panic_88664

  봉신당 : 참회의 서 #3. 대  결-1 : http://todayhumor.com/?panic_88677
  봉신당 : 참회의 서 #3. 대  결-2 : http://todayhumor.com/?panic_88678
  봉신당 : 참회의 서 #3. 대  결-3 : http://todayhumor.com/?panic_88682

  봉신당 : 참회의 서 #4. 대  면-1 : http://todayhumor.com/?panic_88700
  봉신당 : 참회의 서 #4. 대  면-2 : http://todayhumor.com/?panic_88701


********* 

 

#5. 대결(對決)

 

을답게 종일 청명하던 날씨였다. 모처럼의 햇살이 따듯하여 노곤함에 조는 이들까지 보였다. 그 화창하던 날씨가 무색해진 것은 저녁 무렵 부터였다. 갑작스레 몰려든 먹구름에 하늘은 검게 물들고, 햇살의 빈 자리엔 스산한 바람만이 불어왔다. 구태여 신경통을 앓는 노인이 아니더라도 미루어 짐작 할 그런 날씨였다. 아니나 다를까, 해가 지자 메마른 지면 위로 빗방울이 하나 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꽤 오랜만의 비였다. 몇 주째 계속된 가을의 긴 가뭄을 해갈해 줄 고마운 비이기도 했다. 마땅히 반기고 기뻐하는 농부들과 달리 연병장 앞, 동그랗게 모여 선 군인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굳게 다문 입술과 찌푸린 미간, 긴장감을 넘어 비장함마저 느끼게 했다. 약간의 침묵 뒤, 앞에 선 조장(상사 계급) 히라타가 작은 나뭇가지들을 모아 쥔 손을 내밀자 그 비장함은 극에 달했다.

 

제비뽑기 밖에 별 수 있나?”

 

담담한 목소리였지만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차마 지시하고 싶지 않은 일을 정 할 때 풍겨질만한 미안함의 발로(發露)였다. 대답이 없음은 무언의 승낙, 모두가 하나둘 앞으로 나와 히라타의 손에 든 나뭇가지를 뽑았다. 누군가는 환호하듯 주먹을 불끈 쥐고, 또 누군가는 울상이 된 표정으로 돌아섰다. 갑자기 빗줄기가 거세졌고 웃는 이들은 서둘러 막사 안으로 달려갔지만 찡그린 얼굴 둘은 남았다. 짧은 나뭇가지를 초소 너머로 내던지며 병장인 무토가 말했다.

 

빌어먹을! 이봐 우치다!”

하이! 일등병 우치다!”

편하게 해... 젠장... 내일 아침 어찌 될 지도 모르는데... 하필 오늘이냐... 보름...”

흐흑... 그러게 말입니다.”

 

스물 한 살, 일등병 우치다의 애 띤 얼굴엔 빗물마냥 눈물이 고여 있었다. 몇 달째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부대를 떠들썩하게 만든 괴담 때문이었다.

 

서쪽 초소의 망루에서 귀성이 들리고, 그 귀성을 듣는 자 원혼의 저주를 받아 혼백을 잃는다.’

 

대게의 뜬소문이 그렇듯 퍼지면 퍼질수록 살이 붙어 급기야 괴물처럼 커진다지만, 현재까지 총 11명의 사상자를 낸 이 괴담은 명확한 수치만으로도 공포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진짜일까요?”

그럼! 죽은 9명과 병신이 되어 후송 조치된 2명은 가짜냐?”

... 죄송합니다.”

 

무토의 다분히 감정 섞인 핀잔에 우치다가 급히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숙연해진 것은 무토도 마찬가지였다. 대동아전쟁(大東亞戰爭)이란 미명(美名)하에 먼 고향을 떠나 이곳까지 왔다. 혁혁한 무훈(武勳)을 세우는 것 까진 바라지 않았으나 최소한 개죽음만은 하지 말자 다짐했다. 헌데 늦저녁의 제비뽑기 한 번이 그의 다짐을 흔들어 놓았다. 타는 듯 한 불안감은 빗줄기만으론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저 멀리 조장 히라타가 어서 오라 손짓하고 나서야 우치다와 무토는 걸음을 옮겼다. 빗물에 섞여 끈적해진 황토색 토양만이 그들의 걸음을 잡아끌고 무토가 말했다.

 

괜찮을 거야... 괜찮아...”

 

*******

 

흙탕이 된 흙길 위로 차량 한 대가 달렸다. 빗줄기가 거셌지만 남달리 유려한 외관의 고급 승용차가 다가서니 부대 입구에 선 보초병이 큰 소리로 경례를 붙였다. 차단 봉이 열리고 유유히 부대 안으로 들어가는 차량 내부, 뒷좌석에 앉은 미모의 중년 여인이 손을 들어 화답했다. 스기야마 메구미, 753부대의 부대장 스기야마 하지메의 아내이자 유력한 명문가 고노에가의 막내딸답게 고생이라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고운 얼굴이었다. 차가 멈춰 서자 곧 장교 하나가 커다란 검정색 우산을 들고 나타났다. 날카로운 눈매와 짙은 눈썹, 가토 중위였다.

 

오셨습니까. 사모님.”

 

가토가 허리를 숙이며 깍듯이 인사하자 메구미 역시 웃으며 말했다.

 

만주의 가을은 날씨가 좋다고 했는데, 오자마자 비네요. 이름이?”

혼마 가토, 가토 중위입니다. 대좌께선 현안업무 때문에 집무실에 계십니다.”

그래? 다른 년이랑 놀아나고 있느라 나와 보지도 않는 건 아니고?”

... 그럴리가요... 내내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바닥엔 이미 그녀의 방문을 예상 한 듯 두터운 천이 흙길을 덮었고, 운전자가 돌아 나와 문을 열자 가토가 우산으로 그녀의 머리 위를 가렸다.

 

가토 중위, 뵙는 건 처음이지만... 충성심이 대단한 장교시라 들었어요.”

과찬이십니다.”

 

곁에 서 우산을 들고 있다곤 하나 메구미의 얼굴이 과도하게 다가오자 가토의 표정에도 불편함이 묻어났다. 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는 듯 가토의 귓가에 제 얼굴을 가져다대며 속삭이듯 말했다.

 

남자들의 충성은 재밌어. 그 충성, 방향만 조금 바꾸면 앞길이 열릴 텐데...


5-1-1.jpg

... ... ...”

 

천하의 가토도 농익은 중년 여인의 장난엔 맥을 못 추는 듯 어색한 얼굴로 더듬거렸다.

 

농담이에요. 긴장하시긴... 천황의 명을 받들어 대동아전쟁에 매진중인 남편한테 아녀자가 질투 같은 걸 해서야 되나요? 어차피 내가 온단 얘길 듣고 다 치워버렸을 테니... 꼬리를 잡긴 힘들겠지... 그쵸?”

... 아닙니다. 대좌님은 충직한 군인이십니다. 오로지 천황의 역사(力士)로 팔굉일우코자 하루하루 매진중이십니다. ... 계집이라니요.”

좋아요. 그렇다고 칩시다. ... 거짓말을 잘하는 남자는 매력 있어. 여자들은 그 달콤함에 녹지... 하지만 끝까지 잘 속여! 거짓말을 안 순간... 여자는 돌변하니까!”

... 아니... ... 그게...”

 

가토의 얼굴에 난처한 표정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외려 그러한 상황을 즐기는 듯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가토의 안내를 받아 본부대 막사의 내실로 향했다.

 

오오! 메구미! 어찌 당신이 이 먼 만주 땅까지 왔을까! 오는 길이 힘들진 않았소?”

그다지요. 길은 멀지만... 남편이 이리 고생하는데, 아녀자가 집에만 있을 수 있나요? 아이들은 저희 집에 맡겼어요. 아버지가 게이샤 하나와 놀아나는 통에 어머니가 적적해 하시거든요.”

... ... 그래?”

 

메구미의 가시 돋친 말에 스기야마의 얼굴이 붉어졌다. 제 치부를 드러내는 듯 하지만 불편함의 대상은 듣는 이다.

 

하하핫 장인께서는 내각의 일도 바쁘실 텐데... 아직 젊게 사시는구만! 건강은 어떠신가?”

 

스기야마가 황급히 말을 돌렸다. 그도 군부의 명망 높은 가문의 일원이지만 아내의 배경을 무시할 순 없었다. 아내의 아버지, 즉 장인인 고노에 후미마루는 내각의 실세로 차기 내각대신이 유력한 인물이었다.

 

주책맞은 짓 빼곤 무탈하시답니다. 그나저나 피곤하네요. 숙소는 어디죠?”

! 그래! 먼 길 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가토!”

하이!”

메구미를 관사로 모시도록, 그리고 내일은 사람을 붙여 가볍게 부대 내부를 좀 구경시켜주도록 하고!”

걱정마십시오.”

이따 봐요.”

 

모처럼 만에 마주한 남편이건만 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서는 메구미, 부부는 닮는다고 했던가? 그녀의 얼굴에서도 강한 소유욕이 느껴졌다. 돌아선 그녀가 걸음을 옮기고, 흐린 백열등 아래 풍만한 둔부와 매끄럽게 뻗은 두 다리가 조금씩 멀어졌다. 그제야 문을 닫고 의자에 걸터앉는 스기야마, 돌연 짜증스런 표정으로 일어서 발밑의 의자를 걷어찬다. 요란스레 나동그라진 의자가 옷장에 부딪히고, 미세한 흐느낌이 들려왔다.

 

망할 년... 내가 죽는다면 분명 저 년 때문일 거야. 사람 피를 말리는 요망한 년...”

 

스기야마가 성난 표정으로 옷장을 열어젖혔다. 잘 다려진 군복들 사이, 미세한 살색의 떨림, 스기야마가 손을 뻗었다. 가려진 옷들을 좌우로 벌리고 헝클어진 머리칼을 움켜쥔다. 군데군데 멍이 들고 입술이 찢겨 피가 났지만 앳된 얼굴의 소녀가 고통스런 얼굴로 고개를 내민다.

 

내 기분이 말이 아니야... 네가 좀 풀어주련?”


5-1-2.jpg

바짓단이 풀리고, 스기야마의 바지가 무릎에 걸렸다.

 

*******

 

은 밤, 당직실의 무전기가 연신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울렸다. 하지만 당직사관인 조장 히라타는 짜증스레 볼륨을 줄일 뿐 응답은 하지 않았다. 모두가 기피하는 서쪽초소의 망루, 마음으론 이해하지만 벌써 10분도 넘게 들려오는 똑같은 질문에 대한 응대는 그의 인내심 밖의 일이었다.

 

치지직... 치직... 교대자는 아직 입니까? 치지직...’

근무자에게 괜히 무전기를 줬어...”

 

히라타의 손에 들린 펜이 신경질적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시간은 아직 2150, 근무 교대까지는 10분이나 남아 있었다. 보통은 5분에서 10분가량 일찍 교대해주는 것이 관례이나 오늘은 보름달이 뜨는 날이다. 정시교대라도 해준다면 그것으로 감지덕지인 것이다. 9명의 사망자와 2명의 중상자, 11명의 사상자를 낸 서쪽 초소는 그만큼 악명이 높았다. 비록 그 안엔 들어가지 못 했지만 근무자중 유일한 생존자 다카키도 즉결심판을 당했다. 사실상 10명의 생목숨을 앗아간 사지(死地)인 것이다. 사병들의 근무 조를 편성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지만 이쯤 되니 사망명부(死亡名簿)를 적는 저승사자라도 된 기분이었다. 초조함의 시간은 계속되고 째깍대는 초침만이 남의 속도 모르고 달렸다. ‘삐걱작은 문소리에 놀란 히라타가 벌떡 일어서자, 근무복장으로 환복 한 무토와 우치다가 우비를 입고 들어섰다.

 

근무... 다녀오겠습니다.”

힘들 내! 별 일 없을 거야. 오늘은 비가 와서 달도 뜨질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괜찮을 거야

하이!”

 

위로하는 자의 목소리가 측은하니 듣는 자의 표정도 좋지만은 않다. 애써 웃어 보이는 무토는 벌써 3년째 히라타와 함께했다. 최전방의 전투부대는 아니지만 나름의 끈끈한 전우애가 히라타의 이마에 굵은 주름을 만들었다.

 

무토! 이거...”

 

돌아서려는 무토를 불러 세우며 히라타가 품 안에서 작은 헝겊더미를 꺼내어 내밀었다. 안에는 노란 종이가 돌돌 말려 있고 헝겊으로 그것을 한 번 더 기운 듯 했다.

 

뭡니까 이게?”

고향의 어머니가 주셨던 부적이다. 유명한 신사에서 받은 거라니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전쟁터에서 죽지 말란 의미라지만... 후방이긴 하지만 여기도 전쟁터다. 개죽음은 하지말자

감사합니다. 조장님.”

 

뜻밖의 배려에 무토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지만 딱히 내보이고 싶진 않은지 재빨리 돌아 선다.

 

별 일 없어야 할 텐데...”

 

초소를 향해 떠나는 한 밤의 근무자를 바라보며 히라타가 중얼거렸다. 때마침 무전기가 다시 울렸다.

 

치지직... 아직 멀었습니까? 아직?’

간다 가! 이 망할 자식들아!”

 

텅 빈 당직실 안, 히라타의 울분 섞인 목소리가 빗소리와 함께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의 근심을 풀어주기엔 한 밤의 비가 너무도 거셌다.

마치 누군가의 한 서린 눈물처럼....

 

누구냐!”

벤또! 암구호를 물어야 할 거 아닙니까!”

... 무토? 미안해 조금 긴장을 했나봐! 근무교대지?”

무전기로 그렇게 애타게 찾아대는데 안 올 재간이 있겠수?”

비꼬지 마, 너도 이제부터 근무 서보면 알거야. 여기가 얼마나 음산한지... 오줌이 찔끔 나온다고! 올라와 어서!”

 

무토와 우치다가 다가서자 앞선 근무자들이 황급히 망루 위로 올라오라 손짓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이 죽어 나간자리, 사람을 죽인 자리, 비록 치열한 최전방은 아니라지만 죽음은 누구에게나 두려움의 존재다. 또 그 대상이 물리력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상대라면 그 두려움은 배가 될 것이다. 무토는 쓴 웃음을 지으며 사다리를 타고 올랐다.

 

오느라 수고했다. 우린 이만 간다!”

 

우치다까지 망루 위로 오르자 다급한 작별인사가 먼저 던져졌다.

 

뭐 인수인계할 것은 없습니까?”

없어. 조용해 아무것도 없어!”

거 참 되게 성의 없네... 그렇게 겁이 납니까? 아무 것도 없다면서... 참 조심하슈 아래쪽에 웬 여자가 반갑다고 웃고 있네

? 히이익!”

 

무토의 말에 사다리를 잡고 내려가던 병사 하나가 놀라 나자빠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다른 병사 하나도 겁을 집어 먹었는지 황급히 내려간다. 하지만 빨리 자리를 피하려는 마음만 앞선 나머지 넘어진 병사의 손을 밟고, 연거푸 두 번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손을 밟힌 자의 고통스런 비명과 손을 밟은 자의 겁에 질린 음성이다. ‘껄껄걸웃어대는 무토에게 일등병 우치다가 물었다.

 

... 진짭니까? ... 여자가 있어요? 어디?”

 

급히 아래를 훑어보는 우치다의 젖은 옷깃을 잡아끌며 무토가 답했다.

 

여자는 개뿔... 우리는 사지에 몰아넣고 지들은 내빼려는 꼴을 보니 심술이 나서 장난친 것 뿐이야.”

휴우... 다행입니다. 저는 또... 혹시나

잘 들어 우치다. 귀신, 원혼 같은 건 없다.”

?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다 마음이 약해져서 그런 거야. 전에 내가 다니던 절의 스님이 그랬어.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귀신이 함부로 사람을 해할 수 없다고.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일단은 알겠습니다만... ... 그게... ...”

 

순간 무토가 우치다의 멱살을 움켜쥐며 말했다.

 

다시 한 번 말한다. 귀신은 없어. 동요하지 마라... 의심하지도 말고... 그래야 산다. 너랑 나... 우리 둘

... 하잇...”

 

힘없는 우치다의 대답, 무토는 그제야 우치다의 옷깃을 놓아주었다. 이리 다짐을 받는다 한들 달라지는 게 없을 거란 건 무토 역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결의를 다지지 않으면 스멀스멀 밀려오는 공포감에 스스로 매몰될 것이란 게 무토의 생각이었다. 두 사람 사이를 지나는 어색함의 기류가 짙어지고, 빗줄기도 따라 굵어졌다. 비옷은 입었으나 찝찝하리만치 흥건한 몸은 단순히 비 때문만은 아니었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서늘한 기운이 두 사람의 등골을 간지럽혔다. 제발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과 무언가 나올 테면 빨리 나오라는 이율배반적인 바람이 공존했다.

적어도 벼락이 치기 전까지는...

 

으아아앗!”

 

번뜩이는 불빛과 함께 우치다가 비명을 내질렀다. 황급히 망루 벽에 등을 붙이며 물러섰다. 놀란 무토가 바라보지만 벼락이 찢어 놓은 하늘은 다시금 고요하다. 잠시 후 우르릉 거리는 우레의 포효가 들려오고 우치다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정신 차려 이 얼간아! 천둥이 친 것 뿐이잖아!”

... 죄송합니다. 순간 놀라는 바람에...”

내가 한 말 잊었나? 너 때문에 나까지 놀라잖아!”

... 하잇!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

 

순간 우치다가 바닥에 나자빠졌다. 무토가 갑작스레 가슴팍에 주먹을 내지른 탓이었다. 고통도 잊은 채 다급히 얼어서는 우치다. 무토가 말했다.

 

정신 똑바로 차려! 또 얼간이 짓을 하면 또 이렇게 맞게 될 거다. 알았나?”

하이!”

그리고 만약...”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말끝을 흐린 무토는 우치다가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그제야 다음 말을 입에 올렸다.

 

나도 그런 얼간이 짓을 하거든... 나를 쳐라... 인정사정 보지 말고! 알았나?”

하이!”

 

무토가 내보인 결의 탓일까? 우치다의 표정이 조금은 평온해졌다.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는 초소의 망루, 묘한 고요만이 불길함의 기색을 감춘 채 조용히 피어났다.

 

치지직... 이봐! 별일 없나?’

 

고요를 깨뜨린 것은 당직사관 히라타의 무전이었다. 심약한 우치다는 무전기 소리에도 움찔하여 무토의 눈총을 샀지만 재빨리 응답하여 주먹세례를 피한다.

 

일등병 우치다입니다. 현재 상황 이상무, 시계(視界)는 좋지 않으나 현재까지는 별 문제 없습니다.”

치이익 호오 우치다군? 꽤하는데? 지금쯤 넌 울면서 벌벌 떨고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하하핫!’

 

긴장을 풀어주고픈 히라타의 장난스런 핀잔에 무토도 모처럼 미소지었다. 그리곤 덥썩우치다가 든 무전기를 빼앗아 들고는 조금은 허세어린 말투로 이야기했다.

 

무토입니다. 안 그래도 울 것 같길래 한 방 먹여줬습니다. 그나저나 앞 번 근무자는 어땠습니까? 거기도 교대하자마자 허둥대던데... 막사는 잘 찾아갔습니까?”

치직, 아 그놈들? 안 그래도 사사키는 밟힌 손가락이 부러진 거 같다며 엄살 좀 떨다 돌아갔지 히히히!’

멍청한 놈들 헤헤헤 어엇!”

치이이직...치직... 왜 그래 무토! 무슨 일이야?’

 

갑작스런 무토의 반응에 걱정이 된 히라타가 물었다. 하지만 잠시 머뭇거리던 무토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태연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니요. 잠깐 벼락이 쳤는지 눈앞이 하얗게 번뜩여서 조금 놀랐나봅니다.”


5-1-3.jpg

 

무토의 대답, 그 뒤 갑작스레 늘어진 히라타의 침묵, 무토의 표정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당연히 이어질 줄 알았던 히라타의 무전이 들리지 않아서였다. ‘뜻하지 않은 부대장의 야간 순시라도 있었을까?’ 눈치 빠른 무토가 침묵하는 사이 무전기의 치직거리는 잡음이 다시금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제야 반가움에 무전기를 제 귀 가까이 가져다 댄 무토, 히라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치지지직, 치직... 장난치지 마 무토... 치지지직... 언제 벼락이 쳤다는 거야? 치지직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봉신당티져.jpg

코멘트

다시 과거 시점입니다. 청연은 해당 신 이후부터 재 등장합니다.

*******

혹 관심있으실 분들을 위한 이전 시리즈 좌표.
봉신당 #1. 업은 업으로 덕은 덕으로 편 : http://todayhumor.com/?humorbest_1185578
봉신당 #2. 인면목의 저주
- 1편 : http://todayhumor.com/?humorbest_1187163
- 2편 : http://todayhumor.com/?humorbest_1187428
- 3편 : http://todayhumor.com/?humorbest_1188345

- 4편 : http://todayhumor.com/?humorbest_1189171





출처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