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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닭을 쫓다
게시물ID : readers_2556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적바림
추천 : 1
조회수 : 32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6/26 23:5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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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태초에 달걀이 있었다.
세상천지 4평방미터 닭장 안 수많은 달걀 중 하나라. 별 생각 없이 닭장 맨 귀퉁이 둥지에 앉았던 달걀은 뭔가를 보았다.
뭔가 구멍 같은 게 있었는데 거기서 저 같은 달걀이 떨어져나오는 거라, 옆에 오래 묵은 달걀에게 물으니 저건 닭 똥구멍이라는 건데 이 세상의 기원인거라, 하였다. 또 그제사 주위를 둘러보니 과연 모든 달걀들이 닭 똥구멍을 숭배하고 있었다. 이에 달걀은 궁금증이 뒤끓었고, 글뛴 맘을 진정할 길이 없어 저 구멍을 찾아 들어가고자 했다. 허나 그건 닭의 것이라, 닭은 날개가 있으니, 닭은 홰치며 파다닥, 이 횃대 저 횃대로 돌아쳤다. 구멍도 덩달아 나돌았고 달걀은 주저앉고야 말았다.
 
 이때 멀리 모서리 꼭지 한 둥지서 뭔가 굴러오는데 껍덕은 가스라지고, 똥으로 범벅이며 무언인가 구린내를 풍기었다. 그 똥내달걀이 하는 말이 나는 지금 여기 모든 알보다 오래 묵었는데, 이는 내 운명을 벗어나기 위한 고행이라, 나를 나로 건재키 위한 신열이 들끓어 급기야는 곯아버렸으니 이른바 곤달걀이다. 세상 모든 달걀의 운명은 정해져있고 운명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면 그 달걀은 무조건 곯는 거라 했다. 곯음은 썩음이요 이는 달걀이 아니라, 주위 모든 달걀에 천대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이 네모진 닭장에는 넷의 곤달걀이 있는데 이는 곧 운명을 깨달은 현란으로 자기가 그 중 첫째 현란이라고 했다.
 
곤달걀에게
-댁이란 달걀이 말하는 운명이란 뭐요?
 하니, 곤달걀이
-거 신삥 관등성명이 뭐요?
 했다.
-관등성명이 뭐요?
하고 되물으니 댁은 누구요 하는 것이라, 어쩄거나 그 운명이란 건 깨달음이다 했다. 무얼 깨닫는가 말이요? 그건 스스로 알아야 하는 바.
그리곤 다가와 숨구멍이 위로 가도록 뒤집으니 과연 팔초한 것이 여타 달걀들과는 분리되어 보였다. 무언가 용기를 얻은 달걀은 깨달음을 찾아 떠났다.
 
 달걀은 하루를 굴러 반대 모서리에 닿았다. 거기엔 또 다른 현란이 있었다. 이는 뜨거운 물에서 고행하여 운명에 부합케 되었는데, 사실 그 조차 훗날에 올 현란의 초석일 뿐이라, 그를 기념하려 이 닭장에 태어났으며 또 그를 위해서 살아남아 널리 알려야 했으니, 운명을 위해 운명을 거슬러 곤달걀이 되었다고 한다. 관등성명이 뭐요 하니 삶은 달걀 이라고 했다. 우리 운명이 뭐요 하니 본래는 세상의 거름이 되는 것이라 했다.
 -죽는단 말이오?
-그러하다.
-죽고 싶지 않소.
-죽지 않으려면 곯아라.
-곯기도 싫소.
하니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바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물 부어줌 뿐이라 하였다. 그리하여 달걀은 얼마간의 물을 뒤집어 촉촉한 채로 닭 똥구멍을 찾아 떠났다. 운명이니 깨달음이니 다 필요 없고 그저 닭 똥구멍을 확인하고만 싶었다.
 
   달걀은 하루를 더 굴러 다음 모서리에 닿았다. 그곳에는 달걀은 도저히 설 수 없는 세상의 반석 위에서 고행한 현란이 있으니 스스로 이른바 맥반석 달걀이라. 그는 이미 죽었으되 죽지 않고 새로이 태어났다 했다.
-그럼 곯은 것이오?
하니 죽어야하는 운명의 달걀로써 죽고 대신 새로운 운명을 타고 난 달걀이 되었다고 했다.
-무슨 운명이오?
하니 닭똥구멍을 널리 알리는 것이라 하여 놀라 물었다.
-닭 똥구멍은 무어요, 어디가면 볼 수 있소?
 물으니 왈, 너는 닭의 똥구멍에서 나왔고 이에 본디 너는 똥과 진배없는 것이라. 허나 운명에 있어 똥과 달걀은 분명 다른 것이니 그것은 본질의 깨달음 차이라 했다.
-본질은 무어요? 닭똥구멍은 대체 무어요?
하니 그것은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바, 닭장의 마지막 끝에는 사막이 있으니 거기서 고행하라 일렀다.
 
 하루를 더 굴러가니 과연 닭털 하나 없는 모래무지가 있어 달걀은 홀로 모래 한 복판서 고행하였다. 이때 멀리 횃대에 앉았던 암탉 한 마리가 이 쓸쓸한 달걀을 품었다. 그리고 사흗날, 달걀은 죽어 새끼 닭이 되니 이는 닭똥구멍의 뜻이라 새끼 닭은 고만 기적같이 울고 말았다.
모든 달걀이 숭배하던 달걀의 기원은 달걀이었더랬다.
출처 자작. 블로그 정리하다가 예전에 쓴 글 하나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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