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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봉신당 : 참회의 서 #6. 적응-1
게시물ID : panic_8883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야설왕짐보
추천 : 11
조회수 : 899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6/06/28 09: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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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움짤등 다소 불쾌/혐오 사진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주의 부탁드립니다.
     ※ 포토소설로 형식상 모바일에선 다소 불편하실 수 있습니다. 되도록 PC환경에서 보시길 권합니다.

  중·장편 분량의 코믹/공포/스릴러 소설입니다. 챕터 #1 부터 보셔요. (순서대로 보시면 됩니다.)

  봉신당 : 참회의 서 #1. 귀곡성-1 : http://todayhumor.com/?panic_88655
  봉신당 : 참회의 서 #1. 귀곡성-2 : http://todayhumor.com/?panic_88656

  봉신당 : 참회의 서 #2. 숙  명-1 : http://todayhumor.com/?panic_88663
  봉신당 : 참회의 서 #2. 숙  명-2 : http://todayhumor.com/?panic_88664

  봉신당 : 참회의 서 #3. 대  결-1 : http://todayhumor.com/?panic_88677
  봉신당 : 참회의 서 #3. 대  결-2 : http://todayhumor.com/?panic_88678
  봉신당 : 참회의 서 #3. 대  결-3 : http://todayhumor.com/?panic_88682

  봉신당 : 참회의 서 #4. 대  면-1 : http://todayhumor.com/?panic_88700
  봉신당 : 참회의 서 #4. 대  면-2 : http://todayhumor.com/?panic_88701
 
  봉신당 : 참회의 서 #5. 악몽의 밤-1 : http://todayhumor.com/?panic_88717
  봉신당 : 참회의 서 #5. 악몽의 밤-2 : http://todayhumor.com/?panic_88739
  봉신당 : 참회의 서 #5. 악몽의 밤-3 : http://todayhumor.com/?panic_88745
  봉신당 : 참회의 서 #5. 악몽의 밤-4 : http://todayhumor.com/?panic_88801
  봉신당 : 참회의 서 #5. 악몽의 밤-5 : http://todayhumor.com/?panic_88803



********* 



#6. 적응(適應)

 

동이 터올 무렵, 아련히 발하던 빛줄기가 어느새 아침을 알리며 거센 시선으로 산허리를 끊어낸다. 푸른 새벽은 이제 사 붉은 기지개를 펴지만 흙길 사이 노안의 농부는 일찍부터 나와 달구지를 끈다. 수확을 끝낸 늦가을의 밭, 쉼 없이 달려온 계절의 막바지에도 삶은 멈추지 않았다. 쟁기와 호미, 고무레를 싣고 가는 길이다. 풍년이라 좋은 것은 마음 뿐, 순사 몇을 대동한 군인들이 공출량을 늘렸다. 황국의 신민이 되는 길은 고달프고, 쌀독은 다시 비었다. 밭을 갈아엎고 보리를 심어야 한다. 한 겨울 엄동설한 숨이라도 넘기려면 그 수 밖에 없다. 그 마저 3할은 손에 쥘까 걱정되나 나랏님 수탈이야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 그저 순응하고 사는 것이 그가 가진 삶의 유일한 방편이었다. 묵묵히, 바뀌는 것 없어도 그저 버티는 것, 좋은 세상이야 진즉부터 바라 본 적 없다. 다만 바라건대, 징용 간 늦둥이 막내 몸 성히 돌아오는 것이 하나뿐인 소원이다. 그 아이 돌아왔을 제, 흰 쌀밥은 아니어도 보리밥이나마 실컷 먹이고픈 아비의 마음이다.

 

비켜! 비켜!”

 

그 마음 담은 달구지 뒤로 화물트럭의 시끄러운 크락션 소리가 들려왔다. 낡은 트럭이건만 군용 트럭을 본 아비의 마음이 동한다. 행여나 제 아들 내릴까? 전쟁이 끝났을까? 허튼 기대감이 달구지를 길 가로 내몬다. 설까? 지날까? 애먼 기대는 여지없다. 흙먼지만 내뿜으며 트럭은 저 만치로 가버리고, 아비는 또 고개를 떨궜다. 덜컹대는 소리와 함께 트럭은 작아져만 가고, 애꿎은 물음만이 남는다. 무에 급한 일이 있어 이 새벽을 달릴까? 우리 아이 나가있는 전쟁터에 변고라도 생긴 겔까? 아비는 한시도 쉼 없이 그저 아들 걱정뿐이다. 북간도의 지평선 너머, 뿌연 흙먼지만이 애잔하게 흩날렸다.

 

어우... 머리 아파...”

 

덜컹대며 쉼 없이 달리는 트럭 안, 사내 하나가 뒤편의 짐칸 사이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황토색의 흙먼지가 나부끼고 저 멀리 헐벗은 숲과 나무가 보인다. 콘크리트 가득한 도심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들, 눈앞에 펼쳐진 모습들이 생경한지 고개를 갸우뚱한다. 딴에는 안경까지 벗어가며 눈을 비비지만 의아함은 가시지 않는다. 머리를 긁적이며 골똘한 생각에 잠길 제, 하필 트럭이 울퉁불퉁한 흙길 위 움푹 페인 곳을 지난다.

 

아이쿠! 이게 뭐야! 승차감이 개판이네! 아 놔! 그나저나 여기 어디야... ?”

 

짐칸이 크게 요동치며 들썩이자 그도 별수 없이 앞으로 고꾸라지며 소리친다. 하지만 나자빠진 것에 대한 불쾌함도 잠시, 등 뒤에서 기다리던 어색한 조우가 그를 당혹케 한다. 트럭 안쪽의 깊은 곳, 볓도 잘 들지 않을 뒤엉킨 짐들 사이, 서로를 부둥켜안은 두 개의 시선이 그를 마주했다. 청년과 애 띈 소녀, 딱히 묻지 않아도 남매 또는 혈연관계를 물을 만큼 닮았다. 눈처럼 하얀 얼굴, 오뚝한 콧날 그리고 유달리 싸늘한 눈매가 닮았다. 하지만 그는 낯선 것들 속의 익숙함이라도 찾은 듯 반색하며 말했다.

 

산이? 아닌가? 산이 아냐? 아 산이 같은데...”

 

확신 없는 물음에 청년은 대답대신 한층 날 선 적개심을 쏘아냈다. 난데없이 나타난 불청객을 대하는 표정이었다. 그러자 청년 대신 곁에 앉은 애 띈 소녀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정신이 좀 드셨습니까?”

누구야... 설희? ! 설희구나 맞다. 내가 기억력 하난 확실하지! 그래! 맨날 봉신당 그 골방에 안에 숨어 있던 설희! 캬캬캬! 오빠야! 청연이 오빠! 알지? 선짓국 자주 배달시켜준 그 기자 오빠! 근데 산이 너 임마! 왜 갑자기 표정 싹 바꾸고 대답도 안하고 그래... 나 섭섭하게!”

 

청연이 잘 아는 지인을 대하듯 친근한 말투로 인사를 건네지만, 청년의 표정은 과히 좋지 않았다. 경계심은 더 짙어진 듯 했고, 눈빛 또한 매서웠다. 그러자 소녀는 황급히 보따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젯밤, 달이 가득 찰 자시(子時 : 23~01) 무렵, 뇌성이 울리며 급작스레 거울의 기운이 발했습니다. 연유는 알 수 없으나 그 기운을 잠재우려 애쓰다 혼절한 뒤 깨어보니 저 분이 계셨습니다.”

거울? 신물이 스스로 깨어났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그럴 리가 없다. 신물은 스스로 인정하는 자와만 소통한다. ()내에서도 그것이 가능한 건 무녀인 너와 나 뿐... 헌데 저자가 신경의 기운을 받아 이곳에 있다? 얼토당토않은 일이다.”

하지만 사실입니다. 차는 밤 새 멈춘 일이 없고, 내내 보자기 속 신경의 기운이 요동쳤던 것은 오라버니도 느끼지 않으셨습니까? 신경이 스스로 빛을 발하다. 그렇다면 이건 필시...”

아니! 난 믿을 수 없다. 저자의 몰골을 보거라. 해괴한 옷차림 하며, 상투조차 틀지 않은 저 번들거리는 머리! 믿음이 가는 자가 아니다.”

 

긴 대화가 이어졌다. 하지만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 한 듯 남매는 상이한 표정을 지으며 열 띤 논의를 이어갔다. 그냥 두었다면 꽤 길어질 법한 논의였건만 아쉽게도 불청객은 그다지 참을성이 없는 편이었다. 게다가 특유의 오지랖까지 발휘해 대화중인 두 사람 사이에 난입, 다정스레 청년의 어깨까지 끌어안으며 말했다.

 

야 썰 산! 시끄럽고, 이 트럭 어디 가는 거냐?”

이 손 치우시지요! 그리고 제 이름은 설 산이 아닙니다. 저는 설 휘라 합니다.”

! 장난치지 마! 재미없어. 연예인도 아닌 게 왜 예명을 써! 어라? 근데 너네 왜 다 묶여 있냐?”

 

그제야 남매의 손과 발을 확인한 청연이 의아한 듯 물었다. 허나 청년은 그런 의아한 시선을 외면하고 역시나 동생으로 보이는 소녀가 대신 답했다.

 

나라도 없어진 몸, 줄에 묶여 있다 하여 무에 달라지겠습니까. 모두가 나라 잃은 설움이지요.”

? 이번엔 또 무슨 컨셉이야. 나라를 잃어? 무슨 일제 강점기 독립투사 컨셉이라도 하냐? 하여튼 니네 남매는 진짜 신기하다니까!”

어허! 말조심 하십시오. 일제 강점기라뇨. 틀린 말은 아니나 군인들이 들으면 치도곤이 납니다.”

 

내내 입을 다물고 있던 청년이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말한다. 그 뿐인가 소녀도 나서서 거든다.

 

이 나라 금수강산이 왜놈들 손에 들어 간 것이 어디 하루 이틀 일이겠습니까? 이 분께서도 그 울분을 삭히지 못해 이리 말씀하시는 거니 오라버니 너무 노여워 마십시오.”

뭐어? 군인? 금수강산? 이게 무슨 소리야? 빙빙 돌리지 말고 설명 좀 해봐! ?”

 

남매의 이야기를 들은 청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이 입은 저고리, 영화 소품을 연상케 하는 트럭 안의 재래식 군용 물품들, 그리고 민속촌에서나 볼 법한 초가집의 군락들이 아련히 스쳐 지난다.

 

! 말도 안 돼!”

 

 

*******

 

 

열 여섯...”

 

미자가 제 손가락을 연거푸 꼽아 보이며 말했다.

 

여섯? 아니지 여섯 살은 말도 안 되지 열 여섯? 그치? 열 여섯 맞지? 나는 스물 하나, 자 이렇게 열 개씩 두 번, 그 다음에 하나! 알겠지? 스물 하나!”

 

우치다가 손가락을 꼽아 보이며 말하자 그제야 미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우치다의 얼굴에 씁쓸함이 번졌다. 고향에 두고 온 막내 여동생이 열일곱이다. 제 동생보다도 한 살이 더 어린 것이다. 지금쯤 고등학교에 입학 했을 막내 동생, 우치다는 교복을 입고 양 갈래로 머리를 땋은 동생의 모습을 떠올렸다. 반면 제 눈앞의 미자는 헐벗은 채 낡은 군용 담요를 덮고 있다. 같은 또래의 두 여자아이지만 너무도 상반된 모습이었다. 미자에 대한 뜻 모를 동정심이 물밀 듯이 쏟아지고 우치다는 제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

 

미코, 보급은 잘 나와?”

 

일본어를 모르는 미자는 대답대신 황소 같은 두 눈만 꿈뻑거렸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우치다는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자신의 배를 가리키며 재차 물었다.

 

! 배고프진 않냐고! ! 배 말이야!”

 

이상했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이 정도 동작이면 충분히 알아들어야 했다. 쉽사리 제 의사를 전달하리라 믿었던 우치다의 생각과 달리 미자는 입을 다물었다. 눈빛엔 어느새 근심이 한 가득이다. 의아해진 우치다가 조심스레 채근하니 울상이 된 얼굴로 겨우 입을 열었다.

 

임신 안했어요. 나는 배 안에 아이 없어요.”

 

미자는 제 배 한 번 가리키고, 두 손을 들어 크게 손사래 쳤다. ‘그리고 아니다.’, ‘없다.’ 어렵지 않은 표현이었다. 그 후 무엇이 두려운지 제 배를 팔로 감싸 안으며 돌아앉는다. 자세한 내막이야 알 수 없지만, 그녀의 말을 지레 짐작한 우치다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 배고프다구? 보급이 잘 안 나와서 배가 고프다! 맞지? 잘 됐다. 다음에 올 때, 내가 먹을 것을 조금 가져올게... 무슨 말인지 알겠어? 먹을 것! 그래! 응 입으로 이렇게 먹는 거, 그걸 내가, 너한테 가져다, 줄 게... 감자, 옥수수 뭐 그런 거

 

우치다가 손끝으로 원을 그린 후 그걸 제 입에 넣는 시늉을 해보였다. ‘감자’, ‘먹는 것그리곤 미자를 가리켰다. ‘너에게 주겠다.’ 우치다로선 그런 뜻이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어긋나버린 그들의 대화는 종잡을 수 없는 곳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안 그래도 울상인 얼굴을 더 찌푸린 미자마치 사정하듯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빌며 말했다.

 

약 안 먹어도 돼요. 저 임신 안했어요. 병도 없어요. 전 약 안 먹을래요. 그 약 먹은 언니들 다 아파요. 약 너무 독해서 아파요. 그러니 제발 약 주지 마세요. 저 괜찮아요.”

 

손사래를 치고, 풀어헤친 머리를 도리질 친다. ‘싫다.’, ‘주지 말아 달라.’, ‘필요 없다.’ 누가 봐도 명확한 의사표현이었다. 하지만 미자에게 도움을 주고픈 우치다의 호의는 그 뜻을 곡해했다. ‘괜찮다.’, ‘신경 쓰지 말아 달라.’, ‘필요 없다.’ 일본인 특유의 겸양(謙讓, 양보 또는 사양)탓이었다. 이미 미자에게 몸 달아 있던 우치다는 한층 더 밝은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울상인 미자와는 정반대의 표정이었다.

 

괜찮아. 사양 안 해도 돼. 다음에 올 때, 내가 먹을 것, 미코가 좋아할 만한 맛있는 것, 가져다 줄 게. 미코한테, 내가 약속해...”

제발... 약 먹으면 속이 안 좋아요. 부탁해요. 약 주지 말아주세요.”

고마워 할 것 없어. 괜찮아! 우리는 병참부대라 보급이 잘 나와. 그리고 나 약속은 지켜, , 우치다는 신의가 있는 사람이야. 믿어줘. 꼭 먹을 것, 미코가 좋아할 만한 것, 가지고 온다. , 우치다가 미코에게 약속, 알았지?”

 

우치다는 어쩔 줄 몰라 하는 미자를 향해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약속의 의미였다. 하지만 그런 우치다의 의중을 알 리 없는 미자는 불편한 표정으로 머뭇거렸다. 위안소에 보급되는 약들은 엉터리였다. 대게가 성병 또는 피임과 관련된 약이었지만 인체실험을 거치지 않았거나 실험중인 약들이 대부분이었다. 약을 먹은 위안부들은 대부분 설사를 하거나 복통을 호소했다. 더러는 죽는 경우도 많았다. 거적 대기에 싸여 강에 버려진 언니들, 태워 사라진 언니들, 미자의 눈앞에 그녀들의 슬픈 얼굴이 아른 거렸다. ‘또르륵눈물 한 방울도 떨어졌다.

 

에이! 진짜야 자 약속! 그렇게 고마워? 울기는...”

 

미자가 계속 주저하자 우치다는 그녀의 작은 손을 잡아다 제 손가락에 걸었다. 그제야 직성이 풀린 듯 우치다는 환한 얼굴로 웃어보였고 미자는 촉촉이 젖은 두 볼을 떨구었다.

 

왜 그래... 속상한 일이라도 떠오른 거야?”

 

우치다가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눈물을 닦아줄 요량이었다. 웃음기 사라진 얼굴 위로 미안함 반, 안쓰러움이 반, 복잡한 심경이 느껴졌다. ‘’ ‘고향그 두개의 단어는 말이 통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일개 일등병에 불과한 그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고작 감자 몇 개, 옥수수 몇 개를 구해주는 것 뿐, 현실적인 무력감이 찾아왔다. 우치다가 고개를 숙이고, 미자도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누군가 쿵쿵대며 문을 두드렸다. 불만에 가득찬 외침도 들려왔다.

 

안에 누구야? 날 샐 거야? 대체 언제 나오냐고! 뒷사람도 생각을 좀 해야지!”

젠장! 사사키 병장님이다. 무토 병장님이랑 창고에 숨어서 낮잠을 잔다고 했는데... 으아 큰일이네!”

 

익히 아는 이의 목소리인지 우치다가 허겁지겁 옷을 챙겨 입었다. 단추를 채우고 줄을 묶고, 그야말로 전광석화와도 같은 움직임이었다. 한바탕의 소동 뒤, 닫혀있던 문이 조심스레 열렸다. 겸연쩍은 표정의 우치다가 그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아니나 다를까? 목소리의 주인공인 사사키가 팔짱을 낀 채 잔뜩 화가 난 얼굴로 그를 본다. 기다렸다는 듯 잔소리도 늘어놓았다. 공중도덕과 상호간에 지켜야 할 예의에 관한 뻔한 트집이었다. 갑작스런 일장 연설에 우치다는 곤욕스런 표정을 짓고, 열려진 문틈 사이로 빛이 조금 새어 들어갔다. 그제야 미자는 황급히 저고리를 고쳐 맸다. 바닥의 모포를 펼쳐 몸을 꽁꽁 싸맨다. 그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행위인지는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매번 그렇게 했다.

간이 위안소의 가장 왼편, 17호에 덜컹!’ 문소리가 들렸다. 몸 달은 욕망은 입구에서부터 상의를 벗어재끼고, 채 닫히지 않은 문 틈 사이, 이제 막 소년의 기색을 벗어던진 젊은이 하나가 떠나지 못해 서성인다. 망설이는 시선에 차는 것은 노을, 붉은 빛이 얼굴을 물들인다.

 

 

약속할게... 다음에 올 땐, 이 우치다가 미코에게 먹을 것 꼭 가져다준다. 정말이야. 약속해... 그나저나 오늘 근무... 무토병장님이랑 함께인데... 괜찮겠지?”

 

우치다가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섰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 뒤, 곳곳에서 소녀들의 고통스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저 멀리... 하나, 둘 몰려들기 시작한 짙은 회색의 구름들과 함께...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마지막것.jpg

봉신당 : 참회의 서

Written by 야설왕짐보(미스공 괴담공작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코멘트

최초 등장인물 설정시에는 미자의 분량이 거의 없다시피했고, 큰 비중이 없었는데, 쓰다보니 자꾸만 비중이 커집니다.

어떤 역사적인 죄의식 같은 것 때문은 아닐까하고 이유를 찾아봅니다. 

모쪼록 위안부 피해자분들께 누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미자, 미코, 미자... 제가 쓰고도 괜히 슬프네요.


*******

혹 관심있으실 분들을 위한 이전 시리즈 좌표.
봉신당 #1. 업은 업으로 덕은 덕으로 편 : http://todayhumor.com/?humorbest_1185578
봉신당 #2. 인면목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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