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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의 국어시간
게시물ID : lovestory_3169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오메가
추천 : 6
조회수 : 1138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0/10/28 21:19:23
식민지의 국어시간 



내가 아홉 살이었을 때 
20리를 걸어서 다니던 소학교 
나는 국어 시간에 
우리말 아닌 일본말, 
우리 조상이 아닌 천황을 배웠다. 

신사참배를 가던 날 
신작로 위에 무슨 바람이 불었던가, 
일본말을 배워야 출세한다고 
일본놈에게 붙어야 잘 산다고 
누가 내 귀에 속삭였던가. 

조상도 조국도 몰랐던 우리, 
말도 글도 성까지도 죄다 빼앗겼던 우리, 
히노마루 앞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말 앞에서 
조센징의 새끼는 항상 기타나이가 되었다. 
어쩌다 조선말을 쓴 날 
호되게 뺨을 맞은 
나는 더러운 조센징, 
뺨을 때린 하야시 센세이는 
왜 나더러 일본놈이 되라고 했을까. 

다시 찾은 국어 시간, 
그날의 억울한 눈물은 마르지 않았는데 
다시 나는 영어를 배웠다 
혀가 꼬부라지고 헛김이 새는 나의 발음 
영어를 배워야 출세한다고 
누가 내 귀에 속삭였던가. 

스물다섯 살이었을 때 
나는 국어 선생이 되었다. 
세계에서 제일 간다는 한글, 
배우기 쉽고 쓰기 쉽다는 좋은 글, 
나는 배고픈 언문 선생이 되었다. 
지금은 하야시 센세이도 없고 
뺨 맞은 조센징 새끼의 눈물도 없는데 
윤동주를 외우며 이육사를 외우며 

나는 또 무엇을 슬퍼해야 하는가.



어릴적 알아들을 수 없었던 일본말,
그날의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았는데
다시 내 곁에 앉아 있는 일본어선생,
내 곁에 뽐내고 앉아 있는 영어선생,
어찌하여 나는 좀 부끄러워야 하는가.


누군가 영어를 배워야 출세한다고
내 귀에 가만히 속삭이는데
까아만 칠판에 써놓은 윤동주의 서시,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는
글자마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오 슬픈 국어시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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