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비가오면 생각나는, 고등학생때 그 소녀.
게시물ID : love_593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철전열함
추천 : 14
조회수 : 992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07/06 09:05:28
때는 고2 여름방학때였다.

저같은 돌대가리. 학교에 앉혀놔봐야 엉덩이에 땀띠나 생기지 성적이 오르지 않습니다!!!라며, 
방학(도대체 어디가???)자율학습을 빠지려다, 담임한테 시원하게 혼나고 매일 아침 7시반 출근. 18시에 퇴근하던 때였다.

"이야~비온다."
"야. 오늘 비온댔냐?"
"우산없는데 어쩌지?"

나는 당당히 우산을 폈다.
이 우산은 내가 준비성이 철저해서가 아니라...

저번에 아침부터 햇빛만 쨍쨍하던 날.
무슨 정신머리인지 장우산을 들고 학교가시다가...
야, 오늘 비온대? 왜 우산가져왔냐?
뭔 우산???...히익!!! 이게 뭐야??? 나 이거 왜 들고있냐???
며...하루종일 놀림당하고 쪽팔려서 학교에 두고갔던 우산이었다.

수백명 전교생 중에 접이식삼단우산 가방에 들고 댕기던 준비성있는 애들 틈에서...나 혼자 뚠뚠한 장우산을 펼치니,
합승이요 합승이요 합승이요.하듯이, 행선지가 비슷한 놈들...평소 같이 하교하던 놈들이 우산 밑으로 머리를 들이민다.

아우썅!!!! 꺼져!!!! 저번에 졸라 놀리던 놈들만 딱 모였네!!! 염치가 없어!!!!
에헤헤. 선생님. 그때는 쇤네들이 선생님의 선견지명을 몰라봤습죠. 
가다가 중간에 저희 집 앞까지만 가주시면 됩니다요. 그러니...쫌만 더 들어가봐!!!!



축축한 장마철의 남자고등학교.
선풍기회전바람이 잠깐만 안스쳐가도 땀내쉰내암내가 뿜어져올라오는 사내놈들 8명이 그 우산 하나로 몰려들었고...
쓰나마나한 짓거리가 되었다. 

그때 분명 어우!!!산성비!!! 머리 빠질라!!!라며 머리라도 지키려했던것 같은데...
요즘 보면 다들 이마가 호남평야 김해평야급이다. 거기다 사막화까지 진행되고 있다.




그렇게 가운데에서 우산들고있는 나까지 비 다 맞아 젖어가는 멍청이짓을 하며 집으로 이동중인데...

저~기. 앞에서 웬 여학생 하나가 걸어오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까까지는 가방뒤집어쓰고 고개 팍 숙이고 스페인 투우소마냥 뛰어오다가,
잠깐 고개들었을때 사내놈 여럿이 우산 하나에 우르르 오는거보고 움찔!!!하더니, 우아한 소녀인양 걸어오고 있는거였다. 
다른 애들은 우산 속에 머리 들이미느라 못 봤지만, 가운데에서 우산들고 있던 나는 다 보았다.

여름방학에 교복입은거보니 역시나 방학자율학습갔다가 집에 가는 여고생이었고,
그 교복은 버스타고 댕겨야하는 좀 거리가 있는 여고의 교복이었다.

그 여자애가 스치고 지나가자, 땀내쉰내암내.만 맡고있던 우리들 코에 다른 향기가 스치고 지나갔다.
뭐야뭐냐뭐야. 그 낯선 향기에 우산 속의 사내놈들은 고개를 들고 주위를 살폈다.

여자애네? 
야이씨. 전방에 여자가 나타나면 알려줘야 이 꼬라지를 안보이지!!! 
워~혼자 가오잡냐??? 
그래서 예쁘냐???




나는 그대로 우산들고 그 여고생에게 뛰어갔다..
야!!!! 우산!!!! 내 머리!!!! 야임마!!!!
뒤에서 뭐라고 하는지 들리지도 않았다.




"저기요!!!!"
그 여고생이 움찔!!!하며 방어자세를 취하길래 살짝 상처받았다.
야...안 물어...걱정마...

"저...저요???"
"이거 쓰고 가세요. 감기걸려요. 안돌려줘도 되니까 그냥 쓰세요."




대답도 듣지않고 그냥 그 여고생 손에 우산을 들려주고 다시 가던 방향으로 뛰어갔다.

근처 남의 집 대문처마밑에서 나의 행동을 보고 있던 친구놈들은 

아주 성인군자신사납셨네!!! 갈 길이 구역만리인데 이제 어쩔거야???
야!!!! 어디가서 박스라도 주워와!!! 그거라도 뒤집어쓰고가게!!!
아주 여자라면 환장을 하는구나!!! 아니 왜 택시태워보내지 우산가지고 되겠냐!!!

등등의...비난을 쏟아내지도 못했다.


내가 학교에서 충동적인 짓을 잘하는 또라이이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내놈들 사이에서나 그럴뿐,
길거리에 내놓으면 외형상 흔해빠진 공부안하는 남자고등학생15 정도의 포지션이었는데,
여고생에게 쓰고가라고 우산을 건네주다니...
상상도 못할 나의 행동에 그냥 다들 할 말을 잃어버린거였다.




나도 저질러놓고 어라?했다.
사실, (비에 안경이 젖어 사실 잘 보이지도 않아서 얼굴따질 것도 없었고...)
여자애가 이 폭우를 맞고가는건 아니지 싶어 애들한테 묻지도 않고 우산주러 간거였는데...
내가 건네준 우산을 든 그 여자애는 생각보다 예뻤다.

그리고 출발전에 우산사용료로 닭꼬치얻어먹어서, 입냄새 졸라 날건데...라고 생각하니까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리고 나는 집에 다 왔음. 길만 건너가서 조금만 더 뛰면 우리집. 
그놈들은 아직 한참 남았고. 
(우산빌려줄려고 했는데 다들 나의 돌발행동에 경황이 없어서 그냥 가버렸다)





다음 날, 여기 친구를 버리고 처음보는 여자를 선택한 놈이 있다고 공개처형을 당했다-_-
어제 장맛비에 채 덜마른 교복입고 온놈들도 있어서 그 땀내쉰내암내가 더 심한 와중에 몰려다니느라 죽을뻔 봤다.




"여자가 그리 좋더냐???"
"시끄러."
"이 쉐키 첨보는 여자가 돈빌려주라고 하면 집문서를 내 줄 놈이었엌ㅋㅋㅋㅋㅋ."
"시끄러."
"아니 왜 집까지 데려다주지. 그 와중에 우리 생각나서 돌아왔니???"
"야. 아이스크림 다 원상복구시켜놔. 입다물라고 하드사먹였더니 소용이 없네!!!!"

그렇게 하교길에까지 어제의 목격자놈들에게 시달리며 가는 중이었다.
어제 미안하다고 아이스크림까지 사줬는데, 계산이 끝나자마자 돌변하여 나를 까댔다.

그때 그렇게 같이 집으로 가던 멤버가 8명이었는데, 인도가 좁아서 한번에 못가고 앞뒤로 두 팀으로 나뉘어서 갔었고

그 날은 나와 집요하기가 찰거머리같은 놈들 셋이 선두였는데,
"야!!! 잠깐만!!!"
하고 뒤에서 오던 애들이 우리를 불렀다.

뭐? 왜? 어?
어제 그 여고생이 내 우산을 들고 수줍게 서있었다.





그 애도 어제 폭우에 안경이 젖어 우산 준 놈을 제대로 못봐서 누군가싶어서 교복만 보고 
혹시 이 우산 주인이냐고 물어봤는데, 다행히 한방에 "아. 이거 저놈거네요. 잠깐만요."하고 찾은거였다.





안 돌려줘도 되는데...
아...아뇨...어제 잘 썻습니다...

그 아이는 그럴 필요없다는데 우리 8명 아이스크림을 사줬다. 먹으면서 왔다는데도 굳이 사주더라.
니 얼굴보고 실망해서 완전히 떨궈버릴려고 사주는거니까 받아먹게.(핡짝)라는 친구의 귓속말을 듣고 ㅇㅇ.하고 제일 싼걸로 8개 들고왔다.

그렇게 그 아이와 빠이빠이 할 줄 알았다.




그렇지만 하교길에 계속 얼굴을 보게되니 인사를 나누게 되었고,
이름도 아니, 당시 학생들의 페이스북...다모임에서도 보고...
하교길에서 다모임에서 보던 애, 주말에 학교일찍끝나는 날 동네 오락실근처에서 보고,
알고보니 그 아이 집은 그 우산준곳에서 코너돌면 나오는 아파트....
그렇게 등교할때 시간맞춰 나가서 만나고...

누가 먼저 사귀자.할것도 없이, 
정신차리고 보니 손잡고 있었고,
어느 겨울 밤. 학원끝나고 만나던 놀이터에서 
(나는 진짜 처음이었고...그 애도 거짓말 한게 아니면) 
첫키스를 하고 있었다.

처음보는 여자한테 주저없이 쓰고가라고 우산주는 만화같은 상황에 심쿵했단다.
안경닦고보고도 그래보였다길래 안경 새로해야겠다.라고 했다가 옆구리를 맞았다.
명치안때려줘서 고마웠다.






어??? 뭡니까??? 이 달달하고 풋풋한 고등학생의 사랑이야기는???

내 나이 30대. 어언 10여년이 훌쩍 넘은 이야기다.

그 첫키스 후, 어째 서먹서먹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그 날 닭꼬치먹었던가???
ㄴㄴ. 우리는 고3이 되었다.

야. 대학교 그거 초중고 12년동안 개근상받으면 가는거여.라며 어떻게 인문계는 갔나싶던 나와 달리, 그 아이는 성실한 학구파였다. 
(솔직히 중학교때까지는 공부했음...고등학교때 장편소설읽는데 재미를 들려버려서...이게 다 퇴마록때문임...)

수II??? 이과였어??? 어우...이 수식들 봐라...읽으면 디아블로도 소환하겠네...라며 당황해하는 내가 귀엽다던 그 애는,
우리 공부해야지. 그만 만나자. 라며 헤어지자고 했다.

야, 너네 집이랑 우리 집 버스로 한정거장도 안되는데 오다가다 다 볼건데 무슨ㅋㅋㅋㅋㅋㅋ
아니. 나 기숙사 들어가. 핸드폰도 해지했어. 너도 공부 열심히해서 좋은 대학가서 좋은 여자만나. 그럼. 하고 가버렸다.




충격받을 틈도 없었다. 
고3 담임이, 5년전 전교꼴등 찍으며 전문대 추가모집 갔을 애를 1년간 잡아족쳐 SKY 바로 아랫등급 대학교로 보낸 사람이라...
뭐 다른 생각 들 틈도 없이 숨막히는 수험생활을 해야했다.

이 호랑이담임 밑에서 1년간 공부한 결과...
기적은 쉽게 일어나지 않으니까 기적임을 몸소 깨달았다.

마지막 모의고사때 400점만점에 (수포자로서는) 기적과 같은 376점을 찍어 담임선생님이 잘했다고 짜장면도 사줬는데...

본수능에서 드라마틱하게 -126점을 찍으며 나락으로 떨어졌다.
나만 망한 줄 알았는데, 내 학번은 다같이 수능망했던 해였다. 
내 옆에놈은 -220점찍고 재수함. (그리고 지금은 검사님.)






어찌어찌 수학성적은 안보는 어느 지방대 인문대에 합격을 했다.
나 외롭지않게 같이 수능망한 1학년때 같은 반 친구놈도 같은 과에 합격했다ㅋ

그렇게 (사실 안가도 상관없는) 입학식에 갔는데,
"야. 저기 자연대 쪽에 있는 여자애...어디서 봤는데..."
"남중남고만 나왔는데 우리가 아는 여자애가 어딨냐??? 어디? 누구?...어??????"

어잌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랑 헤어지고 열공해서 인서울할거라던 그 애였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도 수능망했구낰ㅋㅋㅋㅋㅋㅋㅋ
언제 가서 어??? 너가 이런 지방대에 오다니???하고 졸라게 놀리잨ㅋㅋㅋㅋㅋㅋㅋ
며 나보다 친구가 더 통쾌해했다.




그렇게 얼마 뒤, 선배들에게 끌려다니며 술마시다 정신을 차리고는
고등학교 동창놈 보러가자는 핑계로 한참을 걸어가야하는 자연대로 갔고...
그 애가 나보다 훨씬 키크고 얼굴도 하얗고 차도 있는 딱봐도 복학생삘 오빠랑 팔짱끼고 가는걸 봤다. 나랑 눈도 마주침.




우산씌어주고 사귄 여자친구라고 전교에 소문이 다 났었던 터라,
그날 급하게 재수학원에 있던 애들까지 (내 핑계로) 이 먼데까지 넘어와서는 동창회가 열렸고, 
돈 한푼 안내고 술을 얻어먹었다.




친구들은 (지금은 안그렇지만)당시에는 좀 순수했던 관계로 퍽 걱정해주었다.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ㅋ 
집에두면 오마니한테 들킬것 같고 기숙사에 두고있자니 짐 밖에 안되던,
그 애랑 주고받았던 교환일기, 편지, 같이 찍은 스티커사진만 기숙사소각장에 내다버렸을뿐. 

난 진짜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우!!!! 과장님!!!! 우리 저기 버스정거장까지 태워주세요!!!!!"

공장에 들렀다가 퇴근하는데 이제 고3되고 실습으로 여기 공장에 출근하는 경리직원 둘이 내 우산 밑으로 뛰어든다.
경계심들이 없어. 내 우산얻어쓰고 나한테 첫 눈에 반한 사람도 있었어.라니까, 에이~설마요~하며 뒷좌석에서 꺄르륵 웃는다.

이래가나 저래가나 기름값드는건 똑같고 비많이오니까 집까지 태워다줄께.라며 와~감사합니다!!!라며 신나한다,
과장님. 잠깐만요!!!라며 편의점에서 차 좀 세워달라더니,
밤에 커피먹으면 잠안온다고, 공장사무실가면 남들 다 커피타먹거나 쥬스마실때 나만 냉장고에서 빼먹는 쮸쮸바를 사서 준다.

그 날, 그 슈퍼에서 제일 싼 아이스크림은 빠X코. 그 쮸쮸바였다.

"AA씨랑 BB씨. 19살이던가?"
"네에~."
"다시 생각해도 완전 애기들이네."
"아니예요. 우리 어른이예요."
"술담배 못사면 애기지 뭔...ㅋ"
"그래서 과장님은 우리한테 술 안사주시는구나?"
"나한테 술얻어먹고 싶으면 운전면허증 1종대형으로 따와. 그럼 사줄께ㅋ"
"1종 대형이래ㅋㅋㅋㅋ 과장님농담 이제 완전 C팀장님같아요. 아재야 아재. 꺄르르르르륵!!!!"
(뭠마???)




그 둘을 내려주고, 다 녹아버린 쮸쮸바를 입에 문다.
다 녹은 쮸쮸바 이빨로 끊었더니 손에 주르륵 흘렀지만 뭐 대수랴.

너 저번에 이거 골랐잖아. 생각나서 너는 이거 사왔어.라던 그 아이였다.
사실 이상하게꼬였네 사과맛딸기맛 아이스크림을 더 좋아했는데, 사주니까 그냥 얌전히 먹었던 그 쮸쮸바.




비가 와서 센치해지긴...그럴리가 있나.
오늘 보안경껴야해서 안경안쓰고 렌즈꼈더니 눈이 건조해져서 눈물이 주르륵 떨어진다.
어...인공눈물 식염수 다 공장사무실에 두고 왔네...갈 길이 먼디...;;;;





비많이오고 19살 소녀들이 사준 쮸쮸바얻어먹었더니,

그 여름. 너한테 그 날 우산주길 잘했지.라며, 크득거렸던 고등학생때 기억이 떠오른다.

이런 날에는 담배 괜히 끊었다는 후회가 가끔 들게 된다.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