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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 선택지형)그와 좀비와 당신. 14
게시물ID : panic_8906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어떤것
추천 : 12
조회수 : 1003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6/07/07 18: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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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까 그 냄새가 조금 신경쓰이는데. 어차피 누운 김에 생각이나 좀 해보자. 익숙한 냄새라... 향수는 아닌 것 같은데?(1번 7표, 2번 2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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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들어가는 와중에도 머릿속을 지배하는 것은 아까 그 냄새에 관한 기억이다.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그런 냄새를 자주 맡은 기억은 없는데... 그때 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은 A의 얼굴이었다. A가 왜 떠오르지...

염료공장의 페인트 냄새.

그래, 그거였다.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냄새는 바로 오늘 오전에 맡았던 페인트의 독특한 냄새였다. 알콜의 강한 냄새 사이에 풍겨져나오는 녹인 플라스틱 같은 냄새. 설마.

나는 손 소독제를 수건 하나에 발라 문대고 한번 덮어 입과 코를 막았다. 소리를 내지 않게 주의하며 밖으로 나가 건물 전체를 보자 이 건물도 지은지 얼마 안되는 신축 건물로 보였다. 천천히 수건을 떼고 코를 기울여 냄새를 맡아봤다. 희미하지만 확실히 느껴지는 그 냄새... 좀비사태의 원인은 바로 이 페인트 였던 건가. 나는 황급히 다시 코를 막고 짐을 챙겨 나왔다. 신도시 쪽에서 처음 발생했던 점, 그 이후에도 좀비들이 차례로 발생한 지역이 이 근처였던 점, 눈에 보이는 외상이나 특징이 없는 전염.

비강을 이용한 전염이었구나. 공기감염. 계엄령 선포때는 이 지역을 제외한 다른 곳에선 대피령이 떨어지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즉 그 페인트를 많이 사용했을 법한 이런 신도시에서 가장 먼저 발생했을 거라는 소리다. 보통의 구 시가지는 비교적 그나마 안전할 가능성이 있지만, 문제는 이 페인트를 사용한 곳이 한두군데는 아니리라는 점이다. 인터넷의 불통, 전기공사의 정지등을 생각해보면 그런쪽의 회사들도... 생각해볼만한 부분은 끝도없이 많다. 공단지역이나 페인트 제조공장에서의 감염확장, 새로 도장한 건물과 유통업체에서의 전염 등 좀비발생 의심지가 너무 많다.

예상컨데 한국은 이미 꽤 많이 침식됬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 시골이나 섬지역 등 아예 이런류의 전파가 낮은쪽이 아니라면 대다수가 좀비자연발생 예정지라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능한한 대도시는 피해야겠구나. 도로위의 생활을 계속해야 하나. 나는 한밤중의 길 위에서 한참을 방황했다. 페인트에 무슨 짓을 해놨길래 사람을 좀비로 만든걸까. 아니 임상실험 같은 것도 없었나. 아니면 그 냄새에 노출되더라도 일정 기간 이상 맡아야만 변이되는 걸까.

머릿속은 복잡했지만 그렇다고 그냥 머뭇거리고만 있을 수는 없다. 찬공기를 등에 업고 이동을 시작했다. 밤의 도시는 쌀쌀하고 농밀하다. 태어나 단 한번도 이만큼이나 어두운 도시를 헤메어 본 일이 없는 까닭에 지극히 적은 광량뿐인 도시는 종래의 것과는 아주 다른 곳 같았다. 편의점도 365현금 인출기도, 한밤중에도 불이 들어와 있던 곳들이 하나같이 어둠에 먹힌 모습은 참 기묘했다. 그동안 내가 겪었던 밤은 아주 가벼운 거였구나. 어둠이 이토록 무겁다니.

뭔가에 쫒기지도 않는데 한참이나 걸은듯이 다리가 무겁다. 시계도 구해야겠구나. 내일은 거점을 잡고나면 꼭 등산용품점을 찾아야지. 생존용품을 구하기엔 거기만한 곳이 없으니까. 생각하다말고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콧물을 훌쩍거리면 주변의 좀비를 자극할까봐 마스크를 내리고 티슈 몇장으로 코를 꾹 눌렀다. 그래도 아까까지는 희망적이었는데. 간신히 A를 뿌리치고 사람을 찾아볼 수 있겠구나 했는데. 이제 전국이 좀비 발생 예정지라니. 엉엉 울고싶은 기분인데 울 수도 없다. 길거리에 사람 모양을 한 것은 이렇게 많은데 마음 있는 것은 딱 하나 뿐이었다. 지독한 고독감 때문에 온 몸이 휘청거렸다.

결국 날이 밝을 때까지 걸었던 나는 간신히 신 시가지 구간을 벗어날 수 있었다. 찬 공기 사이를 울면서 걸었더니 눈시울이 부어 오르는게 느껴진다. 일단 주변을 훑어보니 대규모 아파트 단지 근처여서 그런지 상가만 한 두군데 있을 뿐이다. 다행히 피시방의 문은 열려있다. 가게 내부를 한번 수색한 뒤 가방은 매대 아랫쪽에 숨겨두고 쿠키 하나를 먹었다. 좀비가 난리치는 와중에 피시방에 온 사람은 없었나보다. 부어서 빨개진 눈에 물티슈를 얹어두고 피시방 제일 구석에 있는 의자를 뒤로 눕혀 잠을 잤다.

잠에서 깨자 창 밖으로 빛이 들어오고 있다. 다행히 저녁까지 잠이 들지는 않은 것 같다. 의외로 피시방에도 식량이 제법 있네. 나는 내부 냉장고와 창고를 뒤졌다. 긴 어육 소세지 30개들이 두 통 정도를 제외하면 내부 냉장고 물품은 별게 없었다. 냉동식품쪽은 전멸이다. 그래도 라면류는 컵과 봉지로 많이 쌓여있고 과자나 음료류는 한쪽 벽면에 죽 전시되어있다. 내부 창고에도 한 두 박스정도는 넉넉하게 더 있다.

평수도 큰데다 위치도 2층. 좀비들이 소리를 듣고 오지 않는 한 자연적으로 모여들지는 않을 것이다. 컴퓨터는 조작해봤지만 반응은 없다. 그러나 운좋게도 핸드폰을 얻었다. 분실물을 보관해두는 통이었는데 충전까지 해둔 채로 몇개인가의 스마트폰을 넣어둔 것이다. 첫번째로 켠 스마트 폰으로 부모님이 가 계신 친척집에 전화를 걸어봤지만 전화국도 맛이 간 듯하다. 통화 연결음만 들릴 뿐 아무 의미도 없다. 데이터를 이용해 인터넷에 접근해보려 해도 포털사이트 접속 연결화면에서 요지부동이다. 나머지 두대도 인터넷이나 전화는 먹통이다. 충전량이 완충상태인건 반가웠다. 처음 것을 제외한 두대는 전원을 꺼서 가방 겉면주머니에 넣어뒀다.

굳이 따지자면 사람이 안오는 휴게소나 대형 마트 따위에 거점을 잡을 예정이었지만 생각외로 이 곳도 머물기에 나쁜 조건은 아니다. A는 대도시지역으로 이동한다고 했지만 이쪽은 따지자면 시외권에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는 외곽지역. 여기서 두시간 정도만 걸으면 고속도로로 나갈 수 있는 한산한 지대다. 거기다 거의 자지도 않고 한나절을 쭉 걸어서 이동한 셈이니 거리상으로도 출혈량이 클 A가 단숨에 따라붙을 만한 수준도 아니다. 어떻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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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품 : 의류 세벌, 양말 네켤레, 챙겨나온 식료품 1인기준 4일치, 설탕/소금 1kg, 후추 새 것 한통, 각종 생활용품 약간, 실 한타래, 과도 및 포크수저 한자루, 알콜 소독젤(1/9), 비상약품 일습.(+피시방 식품군)

1. 그래. 한동안이라도 여기서 조금 쉬자. 이젠 어디를 가도 이런 상황이란 걸 알았잖아. 체념까진 아니지만 다른 어딘가를 찾아야할 필요성도 못느끼겠어.

2. 이 곳은 너무 폐쇄적이야... 하다못해 도서관이 근처에 있었으면 해. 날짜가 지나간 신문들을 어느정도 보관해뒀을테니 뭐라도 찾아볼 수 있겠지.

3. A라면 제 목에 박힌 열쇠를 뽑아서라도 쫒아올 거야. 그만한 미친자식 이라는 걸 세상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안다. 지방쪽으로 이동하자. 차를 구해 도망쳐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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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냄새는 지난번 글에서 이미 예측한 분이 계셨듯이 좀비화냄새 였습니다!

신도시라고 몇번씩 강조하던 것도 이거때문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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