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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스포] 백엔의 사랑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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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한유적
추천 : 2
조회수 : 44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7/09 21: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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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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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코는, 굳이 표현하자면, 실패한 삶을 살고 있었다. 서른이 넘어서까지 일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부모님의 도시락 가게를 돕지도 않는다. 그저 부모님 집에 얹혀살며 팔자 좋게 먹고 자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의 일상은 영화 초반에 나왔던, 그녀가 자전거를 타는 모습과 흡사하다. 불빛이 거의 없는 밤의 골목에서 남의 자전거 (처럼 보이는 아버지의 자전거) 를 타고 편의점에 간다. 화면은 불안하게 흔들리고 자전거는 언제 넘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듯이 위태위태하다. 이치코 본인은 그다지 불안하지 않은 것 같지만 운이 좋아 넘어지지 않을 뿐이다.

결국 그런 이치코의 생활을 보다 못한 그녀의 여동생과 그녀는 크게 싸우고, 이치코는 독립을 결심하게 된다. 부모님의 원조를 받아서 방을 구하고, 매일 가던 편의점의 야간 알바로 들어가 돈을 벌기 시작한다.

모든 게 서툴기만 한 그녀는 번번이 얻어맞고 넘어진다. 동생에게는 대놓고 무시당하고, 아르바이트 동료에게는 강간당하고, 남자친구라 생각했던 동거남에게는 배신당한다. 어눌한 말투, 구부정한 자세, 사회성 제로. 세상은 그런 그녀에게 시련을 주고 싶은 건지 잔인하리만치 날카롭게 두들겨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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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코는 권투를 시작하면서 눈에 띄게 변화하기 시작한다. 우연히 본 권투 시합에서 매력을 느낀 그녀는 시합에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에 권투 체육관에 등록한다. 자세도 어색하고, 줄넘기도 제대로 못 하고,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다. 하지만 꾸준히, 열심히 연습한다. 동거남이었던 카노에게 차인 이후에는 그 악을 토해내기라도 하듯 훈련한다. 훈련을 하면 할수록 그녀는 제법 권투선수다워질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의 자세와 말투도 올곧고 당당해진다.

어차피 저는 백 엔짜리 여자니까요.

그녀는 결국, 체육관 관장의 만류에도 링에 오른다. 그리고 두들겨 맞는다. 엄청나게 두들겨 맞는다. 그녀는 3라운드까지 처절하게 버티고 버티다가 상대 선수에게 한 방 먹이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직후 크게 얻어맞으면서 쓰러지고 패배한다.

그녀는 줄곧 링에 오르는 걸 회피하고 있었다. 세상이 두려워서 얻어맞는 것이 두려워서 지는 것이 두려워서. 외면하고, 부모의 등 뒤에 숨어 살았다. 그런 그녀가 당당히 링 위에 올랐다. 얻어맞을 것이 뻔하고, 자신의 펀치가 통하지 않을지도 모르고, 질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녀는 도망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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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나 시놉시스 등을 접했을 때는, 막장 인생이 스포츠를 통해 갱생되는 유쾌한 영화를 기대했다. 하지만 영화의 초중반은 생각보다 어둡고 칙칙하다. 처음에는 영화를 잘못 골랐나 싶었다. 활력을 얻고 싶어서 고른 영화였는데 되려 빼앗기고 갈 것만 같아서. 다행히 중후반 전개가 그렇지는 않았다. 이치코가 권투 선수다워지면 질수록 영화는 경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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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 배우인 안도 사쿠라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영화 초중반의 이치코의 찌질함을 말투와 자세, 몸짓을 통해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원래 저런 성격이나 성향의 배우인 건가 싶을 정도로. 만약에 영화 후반에 이치코가 달라지지 않았다면, 그게 배우 본연의 모습이라고 믿을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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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라운드 TKO 패. 그녀는 졌다. 하지만 그 시합은 앞으로 닥쳐올 수많은 시합 중 하나였을 뿐이다. 시합이란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 패배했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중요한 것은 그녀가 링 위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파, 아파, 아파, 아파. 하지만 살고 싶어, 살고 싶어, 살고 싶어, 살고 싶어.
- 엔딩곡 '백팔 엔의 사랑'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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