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요! 거기 팔에 빨간 천 묶으신 분! 드릴 말씀이 있어요!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한 사람이 앞서가던 분홍빛 머리의 사내를 다급하게 불러 세웠다. 한참을 부른 끝에 그 사내가 주위를 둘러보고는 이내 자신을 불렀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는 뒤로 돌아 누가 자신을 부른 것인지 찾기 시작했다. 그를 부른 사람은 한 손에는 작은 노트, 다른 손에는 펜을 쥔 사람이었다.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어휴, 겨우 따라잡았네. 'Adventurer Time'이라는 월간지의 기자입니다! 잠시 시간 괜찮으신가요?"
자기 자신을 기자라고 소개한 사람은 싱글벙글 웃으며 사내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사내는 잠시 얼굴을 긁적이다가 그 요청을 수락해주었다.
——
일단 시작하기에 앞서 자기소개 좀 부탁해도 되나요?
"안녕하세요. 흔한 아라드의 광호제입니다. 이름은…말 안 해도 되나요?"
네, 얼마든지요. 그런 분들 종종 있어요. 그럼 광호제 씨라고 부를게요. 알았죠? 그럼, 광호제 씨는 언제부터, 어쩌다가 모험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모험가가 된 건 몇 년 되었죠. 시작한 계기는…지금은 딱히 기억 안 나는데요. 그냥 어쩌다가 뛰쳐나와서…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 같아요."
어쩌다가 뛰쳐나온 거라면 후회라던가 있겠네요? '어쩌다 내가 이렇게 고통받으면서 살까~.' 하고 말이에요. 그, 광호제 시니까 불편한…그런 것도 있으실 테고.
"후회, 뭐, 딱히 없는데요. 제가 이쪽 길을 간 것도 제 맘이고, 아픈 거 참고 수명 깎아가면서 넨 다룬 것도 제 맘이니까요. 그냥 아프다 보니 종종 짜증이 확 치솟는 건 별로긴 하지만…아, 그러다 보니 갑자기 화낸다거나 짜증 낸다거나 그럴 수도 있으니까 미리 양해 좀 부탁해도 되나요?"
전 괜찮아요. 인터뷰하다 보면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곤 하거든요. 그럼, 후회는 별로 없는 거네요?
"굳이 후회할 거 생각해보자면…머리라도 길게 기를 걸…하는 생각?"
머리는 왜요? 긴 머리 좋아하세요?
"…그건 아닌데요. 지금도 길긴 한데…이것보다 더 길면 눈에 확 띄잖아요. 기르기 시작한 지 몇 달 정도밖에 안 됐거든요. 아, 이 정도면 눈에 많이 띄는 편인가요?"
음…그렇게 눈에 확 들어오는 편은 아닌 것 같아요. 눈에 띄는 걸 좋아하시나 봐요?
"그거 말하면 너무 사설로 들어가는데요. 제 얘기만 줄창 늘어놓으면 인터뷰가 안 되잖아요."
괜찮아요. 이번 인터뷰 주제가 '모험가의 생활'이거든요. 얼마든지 말씀해주세요!
"뭐, 그럼 얼마든지…. 제가 인상이 그렇게 강한 편은 아니라서요. 그냥 잠깐 봤다가 순식간에 잊어버릴 그럴 인상이라서 손해 본 적이 좀 있었거든요. 조금 크게 손해 봤을 때부터 기른 거예요, 이게."
아…그런 일이…. 그런 이유라면 괜히 여쭤본 것 같기도 하네요.
"아, 괜찮아요. 저는 뭐 제가 무슨 손해를 봤었는가, 말해줄 수 있거든요. 들어보실래요?"
아…괜찮으시다면 들려주세요.
"그럼, 기자 씨. 이건 간단하게 말해서 제 모험 이야기입니다. 이래저래 눈에 띄지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이겁니다."
"저는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어요. 혼자인 게 나름 편하거든요. 그래도 마냥 혼자만 다닌 건 아니에요. 만약 필요하다면 다른 사람과도 함께 모험을 하고 그랬습니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거 많이도 했죠. 보물이 있다며 강제로 보물찾기를 한다든가, 몬스터가 극성이라고 몬스터를 잡으러 가거나…보물찾기는 저들끼리 할 것이지…. 아, 이건 그냥 사소한 불평이에요. 불평.
아무튼, 그, 전에 했던 일 중에는 표류동굴에서 흑요정들…일이라거나 돕기도 했고, 여왕님 부탁도 좀 들어주고 했었죠. 그러다가 베히모스로 올라가서 로터스라는 사도도 잡는 데 끼어든 적도 있었어요. 그러다 천계까지 가서 거기 사람들을 도와줬어요. 뭐, 대충 적당히 정리하면 이 정도네요."
엄청나게 멋진 여행인데요? 사도를 잡았다니! 거기 계신 분들께 감사 인사라거나 받았겠네요? 보상이라거나 말이에요.
"보상…보상이라…."
…설마 보상을 안 줬나요?
"줬죠. 다들 받았어요. 감사 인사도 듣고. …저는 빼고요."
광호제 씨도 무슨 활약을 했을 거 아니에요? 의도적으로 누락된 건가요? 부당하게 착취당한 거예요? 빼돌려진 건가요?
"아, 그건 아니고…그냥 잊어버린 거예요. 단순하게."
어떻게 도와준 사람을 잊을 수 있는 거죠?
"꽤 됐거든요. 사람이. 별 도움도 안 되는 것들도 좀 있었지만…그 외의 사람들도 좀 됐죠. 거기 있던 사람 중에 그 4인의 웨펀마스터들도 있었으니까요."
4인의 웨펀마스터가요? 바로 그!
"베히모스에 제국도 조사차 올라와 있었는데, 그 안에 4인의 웨펀마스터 중 한 명이 있었어요. 그 사람이 불렀고요."
제국인이고…4인의 웨펀마스터 중 한 명이라면…제국의 제1 기사단장인 '반 발슈테트' 기사단장을 말씀하시는 거죠?
"아, 뭐, 그런 이름이었나…. 뭐, 기자 씨가 저보다 잘 알겠죠."
그런데 그런 유명한 사람들이 있다고 광호제 씨가 잊혀진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요? 4인의 웨펀마스터가 아닌 모험가들도 감사와 보수를 받았다고 했잖아요.
"뭐, 워낙에 눈에 안 띄고 조용하고 교류도 안 하고 사람 몰려있는 곳이 싫다고 혼자 아무도 없는 곳에 틀어박혀 있었으니 반성할 건 반성해야죠. 거기 있는 교주 아가씨가 볼 때마다 처음 본 것처럼 반응하는 것만 생각해도 말 다 했죠."
아, 그런…. 그, 보상 같은 건 어떻게 됐나요? 받았나요?
"…거기 교주가 절 처음 뵌 사람처럼 대했다고요. 거기서 뭘 더 말하겠어요? 의미 없이 말만 늘어질 텐데."
…그,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건가요?
"그런 일 없으려고 노력하는 게 이겁니다. 묶을 수 있을 정도로 긴 머리. 팔뚝에 묶은 빨간 천 쪼가리. 얼굴의 상처. 산호색 염색. 이러니까 조금은 낫더라구요. 적어도 계속해서 '뉘신지?'라는 말은 안 나오니까."
아, 저…혹시 이 인터뷰를 빌어서 광호제 씨의 이름을 알린다거나 할 생각은 없으신가요?
"…그럴 생각은 없어요. …뭔가 하소연이 된 기분이네요. 이럴 생각은 없었는데. 미안하네요, 기자 씨."
아, 아뇨. 괜찮아요. 저,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그런 이야기들이 더 있는지 여쭤봐도 되나요?
"…있죠. 있는데, 말하면 또 쓸데없는 하소연이 될 것 같으니까 안 할래요. 여기까지 해도 되나요? 제 하소연 붙들고 있는 것보다 다른 사람 붙드는 게 기자 씨에게 더 좋을 것 같은데요."
아, 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은 있나요?
"…딱히 알아주길 원하는 건 아니지만, 이런 남의 눈에 띄지 못하는 저도 일단은 모험가입니다.
뭐, 그럼…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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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민력이 너무 강해 엑스트라가 되어버린 이야기
안녕하세요, 흔한 아라드의 글쟁이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이전에 썼던 글을 옮기려 왔습니다.
오늘의 시작은 아라드 월드입니다.
그럼, 즐겁게 읽으셨길 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