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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 선택지형)그와 좀비와 당신. 20
게시물ID : panic_8920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어떤것
추천 : 13
조회수 : 870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6/07/13 19: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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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떠나자. 이 도시는 끔찍해. 내가 거기에서 보고, 돌아오는 길 치어 날린 좀비들의 숫자만 수백단위는 될 것이다. 외로움 이전에, 너무나 많은 인간에 대한 모독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엠뷸런스는 전에 내가 몰던 중형 suv보다 힘이 더 좋은 것 같았다. 한밤중의 도로는 너무나 어둡다. 폭우까지 쏟아지는 마당이다. 쉴새없이 차창을 두드리는 빗줄기는 얇아질 줄을 모르고 와이퍼가 지나가도 금새 물로 뒤덮이는 앞유리, 라이트로 비추곤 있지만 가로등 불빛 하나도 없는 도로는 깜깜했다.

결국 채 삼십분도 못가서 갓길에 차를 대고 시동을 꺼야했다. 침침해지는 눈을 꾹꾹 눌러봤지만 눈은 회복되지 않는다. 피곤함과 더불어 좁고 어두운 시야가 피로를 가중시킨 것 같다. 여름이 되가는 길목임에도 빗속이라 그런지 공기가 찼다. 손발이 차갑게 저려와서 몸을 꾹꾹 주무른다. 너무 굳은 근육은 마치 성마른 찰흙같다. 비죽이 눈물이 나올 것 같다. 다행히 억지로 삼킬 필요없이 금새 감정이 가라앉는다.

엠뷸런스의 내부등을 끄고 차 문을 잠그고 의자를 뒤로 젖혔다. 레버를 뒤로 당기고 짐을 뒤져 간단히 식사를 마쳤다. 모래알을 씹는 듯한 기분이다. 어쩌겠나, 컨디션이 이 모양인걸. 예전에 한창 젊을 때야 절벽에 메달려 비박을 해도 몸상태는 쌩쌩했지만 - 그것이 불과 삼년 전 - 이젠 영 예전같지 않은 것이다. 텁텁한 혀 밑을 물로 행궈 창 밖으로 뱉고는 다시 몇모금 삼킨다. 목구멍이 부은듯이 물을 넘기는게 조금 힘들다. 정말이지, 최악의 상태다.

다행히 잠이 들기 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지나친 피로 끝에 맞이한 수면에서 당연하달지 나는 꿈을 꾸게 되었다. 아까 그 좀비 비의 재현이었다. 수없이 내리 꽂히는 좀비들은 순식간에 면면들을 부모님, 친구들, 전 남자친구, 그리고 A로 차례로 얼굴을 바꾸더니 철벅철벅 하는 소리와 함께 땅에 몸을 내던진 후엔 나의 얼굴로 바뀌어있었다. 꿈에서 조차 별로 슬프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이런게 자각몽인걸까. 나는 그저 멍하니 그 광경을 구경하고 있었을 뿐.

 잠에서 깼을때 비는 많이 줄어있었다. 아침은 아닌 듯 멀리 어스름이 터오는 정도였지만 잠은 이미 달아났다. 다시 시동을 걸었다. 아무도 없는 도로... 내가 어디로 가는걸까. 네비게이션은 켜져있지만 경로검색을 걸어둬도 로딩만 무한히 길어질 뿐 연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내 위치가 동대문으로 찍혀있었다. 나는 배터리를 아낄 요량으로 네비를 껐다.

얼마나 갔을까. 거의 40분쯤 이동한 뒤였다. 도로 옆에 자그마한 휴게소가 눈에 띄었다. 흔한 편의점 하나 없이 낚시물품 판매 스티커가 붙어있는 슈퍼뿐인 아주 작은 휴게소. 차를 제일 안쪽에 대놓고 천천히 휴게소 안으로 이동했다.

후다닥-

뭐지? 나는 들고나온 야구배트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뭔가 재빠르게 움직이는 기미가 보였다. 발소리를 죽이고 자세를 낮춰 소리가 난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쪽에는 주방 쪽문이 있었다. 낡은 나무로 만든 문이 살짝 열린채 흔들거리고 있었다. 방금 누군가가 지나간 듯이. 야구배트 끄트머리로 문을 슬쩍 눌러보니... 거기엔 어린 여자아이 한명과 바닥에 주저 앉아있는 성인 여자 한명이 있었다.

어린 여자아이는 양팔을 쭉 뻗어 뒤에있는 여자를 가리려고 하고 있었고 여자는 겁먹은 눈으로나마 여자아이를 양팔로 감싸 뒤로 보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누구세요?"

뱉어놓고도 어처구니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상황에서 이름이라도 댈 셈인가. 여자는 그 말을 듣더니 외려 더 겁을 먹은 듯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우리 엄마 괴롭히지 마!"

여자애가 겁도 없이 소리를 빽 질렀다. 여자는 아이의 입을 막으며 확 끌어당겨 안더니 옆에 뒀던 칼 한자루를 들어 내 쪽을 겨눴다.

"아니... 저기 제가 나쁜 사람은 아닌데요."

내 표정이 안좋은가 싶어 얼굴을 한차례 더듬어 보고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어 말했다. 한동안 말은 커녕 소리를 내본 일도 드물었던 지라 쇳소리에 가까운 말이 나왔지만 일단 효과는 있었던 듯 하다.

"혼쟈 에요?"

"혼쟈? 아, 일행 없어요. 저 혼잡니다."

"정말?"

"네 정말로요."

어딘지 어눌하고 새는 발음. 유심히 살펴보니 여자는 동남아인 특유의 크고 맑은 눈이다. 비교적 희어 보이는 피부에 얇은 이목구비 탓인지 신경쓰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눈치채고 보니 확실히 한국인은 아니라는게 느껴졌다. 여자 아이도 그 얼굴을 물려받았는지 새초롬한 표정에 한국어가 능숙한데도 이국적인 모양새가 눈에 띄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여자는 칼을 천천히 내려놓더니 양손을 펴 귀 옆까지 들어올렸다. 해칠 생각은 없다는 뜻인가. 나도 천천히 야구배트를 바닥에 내려놓고 똑같이 손을 들었다. 그제사 여자가 베시시 웃었다.

여자가 놓아주자 아이는 재빨리 달려 주방을 빠져나가더니 휴게소 밖, 내 차가 있는 곳으로 갔다. 일행이 있나 보는 건가.

"앉자요."

여자의 말에 고개를 돌려보자 그녀는 팔을 개수대에 걸친채 힘을 주어 옆에 기대놓은 간이 의자에 엉덩이를 올리고 있었다. 다리에 전혀 힘을 주지 않는 방식. 한평생 그리 살아온 사람 특유의 익숙하고 담담한 방식이었다. 그녀가 뒤에서 꺼내준 접이식 의자를 펴 문을 가로막지 않게끔 자리를 잡았다.

"엄마, 아무도 없어."

"쟐했어 마리야. 디에 가서 앉쟈."

여자애는 내쪽을 경계를 풀지 않고 보면서 몸을 틀어 주방 안쪽에 보이는 조그마한 쪽방 문턱에 쪼그려 앉았다. 무릎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괴더니 내쪽을 호기심 반, 경계심 반으로 쳐다본다.

"마 도터, 마리야. 앤 암 세씰리아."

"아... 전 J에요. 두 사람만 여기 살아요?"

"응. 여기 우리 밖에 없어요. 단 사람들 멀리 갔어."

그녀는 손을 휘저어 먼 곳을 제스쳐로 표현해보인다.

"여기 사람들도 좀비 때문에...?"

그녀는 좀비 소리를 듣더니 단박에 불안한 표정이 되어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름대로 단정하고 아름다운 얼굴이 고통으로 물들었다.

"사람들, 사타나스 됬어. 다 멀리 멀리 갔어. 나, 다리 안되요. 못 가."

나는 한참이나 미안해서 몇번이고 사과했다. 그녀는 금새 자신을 추스르고는 괜찮다며 손을 잡아 주었다. 추적추적 비가 오는 와중에도 따듯하고 뽀송뽀송한 손바닥은 큰 안정감이 되었다. 요 근래 사람을 본 적도, 이렇게 손을 잡아본 적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 금새 눈물이 고였다. 그녀는 자기한테 미안해서 그런다고 생각했는지 호들갑스럽게 나를 달래었다.

"당신, 땍시 뜨라이버?"

"아뇨. 저거 엠뷸런스."

"아... 나 못봤다. 아쁜사람 있어?"

"그냥 차만 구해서 탄거에요. 아무도 없어요."

그녀는 다행이라는 듯이 씩 웃고는 어쩐지 말을 고르는 것 처럼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고개를 숙여 괜히 내 손을 몇번이나 쓰다듬으면서. 나도 새삼 사람과 이러고 있는게 좋아 별달리 말도 꺼내지 않고 조용히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마침내 그녀는 결심이 선 듯 미간에 힘을 주고 내 눈을 마주봤다.

"여기, 밥 못 구해. 사람 없어. 마 도터, 데려가요."

대번에 여자애가 소리를 질렀다.

"엄마!!"

눈에 불을 켜고 달려온 여자아이는 제 어미의 허벅지를 짝소리가 나도록 내려치더니 절대 안된다는 듯이 아랫입술을 쭉 내밀고 씨근대었다. 그러나 그녀도 결심을 단단히 한 듯이 딸을 보지도 않고 내게 다시 한번 부탁했다.

"마 도터, 일 쟐해요. 데려가면, 여기 밥 줄게. 응? 데려가요."

간절한 눈이 습기를 머금었다. 악을 쓰는 딸의 입을 손으로 막으면서도 그녀는 내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녀가 가리킨 방향을 보자 채 몇 킬로도 되지 않아보이는 조그마한 쌀자루가 보였다. 아마도 둘 모두의 마지막 식량일 거였다.

"저기..."

"데려가? 데려가요?"

화색이 도는 얼굴로 내게 묻는 그녀에게, 나는 조금 난처한 대답을 하기로 했다.

"엠뷸런스라서 뒷 공간이 충분하긴 하지만, 그리 여유가 있진 않아요."

딸애는 여보란 듯이 흥 소리를 내고 세실리아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나는 바로 말을 이었다.

"그녀를 태우고 가는게 아니라, 내가 여기 살면 안될까요?"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보는 그녀에게 덧붙인다.

"나 먹을 거 많아요. 차 뒤에 엄청 많아요. 우리 셋이면 한참은 먹을 거에요. 대신 나 여기서 살게 해주세요."

"응. 난 엄청 좋아! 근데 괜찮타?"

희색이 만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녀는 내게 괜찮냐 한다. 괜찮다며 마주 웃어보이고는 식량을 나를테니 창고를 열어달라고 했다. 여자아이, 마리아는 제 엄마가 밝아진 것이 신나는지 쪽방에서 열쇠를 들고는 나도 제치고 달려가 식당 한쪽 구석에 있는 조그마한 창고문을 열었다. 다행히 그새 비가 거의 그쳤다. 나는 차를 움직여 문 가까이에 후진주차를 해놓고 뒷문을 열어 먹을 것들을 나르기 시작했다.

힘을 주어 다 나를 때쯤 날이 완전히 맑아지고 한낮의 태양이 밝게 빛났다. 마리아는 세실리아 대신인지 어린 몸에 버겁다 싶을 정도로 이것저것 물건들을 들어날랐다. 세실리아는 그새 인스턴트 커피를 한잔 진하게 타서 가져다 주었다. 얼마 안가 창고가 눈에 띄게 그득해졌다.

"나 밥 못해요. 요리는 세실리아가 해주세요."

세실리아가 환하게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아는 내가 다 마신 컵을 가져다 싱크대에 갖다놓는 등 어쩐지 부산스럽게 돌아다녔다. 부끄럽고 낯설어서 그런걸까. 세실리아가 마리아를 불렀다.

"마리야, 고맙슴니다, 해이지."

"아니에요 그럴 필요 없어요!"

나도 거처를 얻었으니 됬다고 한사코 사절했으나 세실리아도 마리아도 한참동안 내게 고개를 숙여 고맙다는 말을 했다. 어쩐지 가슴이 따듯해졌다. 낮이 되자 세실리아는 마리아를 시켜 창고에서 몇가지 재료를 가져다가 요리를 시작했다. 주방 뒤쪽의 대형 가스통이 아직 다 되지 않았는지 가스레인지에 쉽게 불이 붙었다. 혹시 몰라 버너와 가스까지 들고왔지만 괜찮을 것 같다.

막상 쌀이나 반찬류의 재료가 없을 뿐이지 조미료들은 나름대로 구색을 갖춰있었다. 달콤 짭짜름한 간장 소스를 곁들인 햄구이와 김치였다. 알고보니 뒤편 마당에 김치독을 뭍었다고 했다. 오랜만에 구운 햄따위가 아니라 제대로 요리라고 부를만한 것을 먹자 기운이 솟고 마음이 편해진다. 아직 컨디션이 난조인지 혀끝이 꺼끌꺼끌 했지만 밥 한그릇쯤은 문제없었다. 마리아가 잽싸게 그릇을 챙겨가 설거지를 했다. 내가 도우려하자 그녀는 고개를 저어 거절했다.

"앉아있어요 언니. 이건 내가 할께요."

"앉자요, J. 편히 쉬아요. 응?"

세실리아도 나서서 내 소매를 잡아 끌었다. 그날은 서로 살아온 얘기 따위를 하며 저녁 늦도록 담소를 나누었다. 과자도 한봉 뜯었다. 평화로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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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품 : 의류 두벌, 양말 네켤레, 식료품 1인기준 20일치, 각종 조미료, 생활용품 약간, 과도 및 포크수저 한자루, 비상약품 일습, 각종 부식류 20끼분, 물 1.5L 여섯개 들이 세박스, 쌀 20kg짜리 세 포대.

1. 주변지역 정찰을 나간다. 나름 소리가 컸는데 좀비가 하나도 안보이다니. 특이한 일이다. 주변에 뭔가 일이 있나...? 일단 정찰도 겸해서 식량도 구해보자.

2. 일단 하루 더 쉰다. 농어촌에선 국제결혼이 보편화 됬다지만 필리핀 모녀 두명만 살기엔 여긴 너무 쌩뚱맞은 곳이야. 대화를 좀 더해봐야지.

3. 엠뷸런스를 숨기고 와야겠어. 휴게소와 구급차? 너무 어색한 조합이야. 누가봐도 수상히 여길 것이다. 막상 싸울 사람은 나뿐이니, 안전이 최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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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편 전후에 끝맺으리라 생각했는데 택도 없었군여!

이번에도 배드엔딩, 데드엔딩, 연명루트가 하나씩 있습니다. 

늘 많은 추천과 참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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