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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어느 귀읍의 사정
게시물ID : dungeon_62693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Fathance
추천 : 5
조회수 : 18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7/17 23:3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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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뭐라고 말했어? 아, 미안. 주변이 너무 시끄러워서. …우리 둘밖에 없는데 뭐가 시끄럽냐고? …너도 알잖아. 내가 뭘 다루는지. 뭘 보는지. 뭘 듣는지. 원래 말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닌데, 오늘은 유독 시끄럽네.

 …표정이 왜 그래? …걱정마. 나 같은 녀석들 근처에는 오지도 못하니까. 누굴 해할 힘도 없는 잡귀들뿐이야. 그 정도의 것들이 조금 바글거린다고 해봐야 뭘 하겠어? 기껏해야 어깨 좀 뻐근한 정도일걸?

 그래서 방금 뭐라고 했어? …내가 소울브링어가 된 이유? 거 참 같잖은 걸 물어보네. 그거 거의 '너 왜 모험가 됐어?' 랑 비슷한 질문 아냐? …아닌가? 아니면 말고. 그래서 그게 왜 궁금한데? …그래, 이유는 없겠지. 이유 없으면 안 말해.

 …말 안 하면 머리라도 가를 기세네. 귀찮은데. …그러니까 말이지….


──


 그날은 아주 평범한 날이었다. 누군가에게 있어선 어제와 다를 바가 없는 날이었고, 누군가에겐 그 어느 날보다도 기쁘기 그지없는 날이었다. 그리고 어느 소년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비극적인 날이었다.

 그 평범한 날, 소년은 사람은 죽였다.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을, 자신의 저주받은 손으로. 악몽과도 같은 참상을 보며, 마치 깊게 잠들었다 깨어난 듯 짓눌리는 감각 속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검붉은 귀신의 손이 소년에게 꿈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그런 현실 속에서 한낱 나약한 소년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사회에서 귀신의 손을 가진 사람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도 같은 취급을 받기에 배척당하고 미움받는다. 그것은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달라지지 않는다.

 물론 소년이 그런 것을 알 리는 없었다. 그저 소년은 눈앞의 현실을 버티지 못하고 깊이 좌절했을 뿐이었다.


 구속구가 없는 상황에서 귀신의 손은 점차 소년의 팔을 좀먹어갔다. 귀신이 폭주할 때마다 가재도구들이 산산이 부서져갔다. 그마저도 점차 기운이 빠진 건지 갈수록 날뛰기보단 아무것도 하지 않는 기간이 더욱 늘어났다.

 소년은 그 상황에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아무것도 마시지 않았다. 그저 죽은 듯 누워있다가 귀신에 의해 정신을 잃고 깨어났다 다시 잠드는 것이 소년이 하는 것의 전부였다. 시간이 얼마나 가는 지도 모른 채 소년은 가만히 누워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소년은 그대로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정신을 잃은 소년이 깨어난 곳은 전혀 모르는 숲 속이었다. 어느샌가 귀신의 팔에는 묵직한 쇠사슬이 채워져 있었고,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짐짝처럼 들려져 있었다. 당황한 소년이 버둥거리자 무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어났나? 거의 다 죽어가길래 데려왔다만."

 "누, 누, 누, 누구세요?"

 "알 거 없어. 아, 쇠사슬은 내가 채워줬다. 흔한 거니까 돈은 필요 없어."

 "왜…왜…."

 "아, 물은 기절해있는 동안 조금 먹여줬는데. 더 마셔. 자. …사람이 기껏 호의를 보이는데 무시하는 거 아니다."

 "…안 마셔요."

 "네까짓 거 물 마시게 만드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아. 네놈 손으로 직접 마시라는 거다. 목구멍에 물통 쑤셔 넣어지기 싫으면."


 그의 말에 소년은 다급히 물통 받아들었지만, 차마 입에 대진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한참을 그저 들고 있기만 하던 소년에게 왜 그러냐는 질문이 들려왔지만, 소년은 시무룩한 표정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이 마시던 거는 못 먹는 거냐? 아냐? 그럼…아, 네가 있던 집의 사람들은 양지바른 곳에 묻는다고 하더군."

 "…."

 "…그런 문제도 아닌 건가? 흠, 죽였다는 것 때문인가? 귀수의 폭주로 인한 살인은 고의성이 없어 처벌받지 않는다. 그러니 살인자라고 풀 죽을 거 없다."

 "…."

 "그것도 아냐? 이거야 원, 뭐가 문제인지 말해라. 난 독심술은 못 쓴다."


 그는 그렇게 말하곤 소년의 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소년이 확실하게 뭔갈 말해주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침울한 표정을 비춰 보이기만 했다.


 "…설마 겨우 아는 사람 좀 죽었다고 그렇게 기운이 없는 건가?"


 그의 말에 소년은 움찔거렸다. 소년은 곧 울듯한, 그리고 화가 난듯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니, 노려보았다. 그는 소년을 보곤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 사람들이 너에게 어떤 사람인진 모르지만…뭐, 대충 부모님 정도 되겠군. 하지만 죽은 시점에선 뭣도 아니지."

 "뭐, 뭐라고 하지 마! …요."

 "흥, 짧게 말해도 뭐라 안 해. 하여튼, 그 사람들은 그저 죽은 사람들이지. 뒤따라 죽으려 할 정도로 신경 쓸 필요는 없지 않나? 설령 따라 죽으려 했다 하더라도 지금은 살았으니 다시 죽으려 들 필요는 없잖아?"

 "…엄마도 아빠도 이젠 없는데…그것도 나 때문에 없는데 어떡해요…. 아저씨가 나랑 상관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상관이 없다고?"


 그는 갑자기 우악스레 소년의 입을 강제로 열어 물통의 주둥이를 욱여넣었다. 소년이 발버둥을 치더라도, 물이 줄줄 흘러내려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소년은 어찌어찌 물을 전부 삼키고 나서도 괴로워했지만, 그가 보이는 반응은 그마저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무, 뭐, 콜록콜록, 케헥, 무슨, 켁, 콜록."


 말의 반 이상이 고통스러워하는 말뿐이었지만, 소년이 하고자 하는 말은 확실했다. '무슨 짓이야!' 그는 빈 물통을 털며 소년이 원할만 한 답을 말해주었다.


 "내가 네놈을 구한 시점에서 상관없는 사이가 아니지. 솔직히 네놈이 죽든 말든 신경 안 써. 그냥 내가 네놈을 구한데 쓴 시간이 아까워서 살린 것뿐이다."

 "켑, 케헥, 콜록콜록, 콜록, 그, 그…우웨엑."


 소년은 연거푸 기침을 하다가 기어코 위로 들어간 물을 토해낸 뒤, 기운이 다 빠진 듯 축 처졌다. 그는 그걸 보곤 짜증 난다는 표정을 짓고 다시 짐짝을 들 듯이 소년을 들고 가던 길을 걸어갔다.



 소년은 그에게 반강제로 끌려다녔다. 그의 성질이 고약한 탓에 이런저런 고생이란 고생은 원치 않게 잔뜩 하게 되었다. 앞에 세워져 먹을 것이나 마실 것을 구해오거나, 몬스터를 끌고 오는 역할을 맡거나, 미끼로 내던져지는 등 온갖 일은 다 시키면서 제 곁을 떠나게는 두지 않았다. 너무 혹사를 당한 소년이 혹시 노예로 쓰기 위해 살린 게 아닐까 고민을 하게 만들 정도였다.

 그런 한량의 옆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저런 생존기술을 눈대중으로 보고 따라 해 배웠으며, 달리는 법도 어떻게 하면 더 빨리 뛸 수 있을까 스스로 깨치게 되었다. 끈질기게 질릴 만큼 졸라대어 검을 쓰는 방법도 배우게 되었다. 물론 그 이후로 더 많이 고생하게 되었지만.

 소년이 그와 함께 다니며 배운 무엇보다 가장 큰 것은 귀신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진짜 귀신 볼 수 있어?"

 "그래. 저 멀리 가면 볼 수 있을 거다."

 "엄마랑 아빠도 볼 수 있어?"

 "몰라. 보고 올 거면 보고 와라. 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쭉 가다 보면 아마 보이겠지. 네놈도 귀수가 있으니 말이지."

 "귀수가 있으면 귀신을 볼 수 있는 거야? 왜?"

 "네 놈이 직접 연구해라. 난 관심 없으니까."


 소년은 먼 곳과 그를 번갈아 보았다. 아니, 그의 팔을 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보았다. 소년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반짝이고 있었다.


 "있지, 그럼 나 언젠간 엄마랑 아빠도 볼 수 있는 거야?"

 "내가 뭘 알겠냐? 그렇게 궁금하면 볼 때까지 살던가 해라."


 귀신을 볼 수 있단 사실은 우울감으로 죽어가던 소년이 살기 위해 아둥바둥하게 된 계기였다. 그가 어린애에게 힘들법한 일을 줘도 꾸역꾸역 살아남게 만들었다.

 소년이 훗날 귀신과 소통하고 귀신을 다루는 법을 알게 되었을 땐 날뛸 듯이 기뻐했다. 구속구를 풀고 귀신을 최소한으로 억제하는 문신을 새겨 넣었을 때도 고통스러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싱글벙글 웃을 정도였다.


 물론, 날이 갈수록 귀기가 강해져 귀신을 보기는커녕 쫓아내기만 할 뿐이라는 것을 안 것은 제법 시간이 지난 뒤의 이야기다.


──


 …기억 안 나. 뭐. 왜. 뭐. 내가 기억이 안 난다는데 왜? 진짜 머리라도 가르게?

 …궁금해할 거 없어. 어차피 지독히 사소한 일일 테니까. 그래서 잊어버린 거겠지. 그런 이유 같은 건 너무 하찮고, 쓸모도 없는, 그런 이유였을 거야. 기억에 담아둘 가치도 없었겠지.

 그러니까 지금은, 이유 같은 거…없어.



귀읍(鬼泣)

중국던파의 소울브링어


안녕하세요. 흔한 아라드의 글쟁이입니다.

...오늘도 왜 이 시간이지...

아, 뭐, 밤이면 좋죠.


늦은 밤, 글 옮기기의 시작은 아라드 팬픽이군요.

그럼, 즐겁게 읽으셨길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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