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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아라드 괴담
게시물ID : dungeon_62693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Fathance
추천 : 1
조회수 : 18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7/18 00: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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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아라드는 정체되어 있었다. 심한 폭풍이 대륙을 강타한 와중에 함부로 밖에 나설 간 큰 사람은 한 명도 없기 때문이었다. 시궁창은 밀려오는 물 때문에 이 사람, 저 사람 할 것도 없이 정신이 없었다. 입구를 모래주머니로 열심히 틀어막아도 임시방편밖에 되어주지 않았기에 시궁창의 주민들은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매서운 바람 소리는 달빛 주점의 안쪽에서도 희미하게 들려왔다. 주점의 밖은 소란스러웠지만, 잠깐 들렀다가 졸지에 고립되어버린 사람들에겐 별로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아아, 진짜! 여기에 괜히 와서 이게 뭐야아! 이젠 싫어! 나가고 싶어!"
 "네가 여기를 골랐으면서 뭔 불평 질이야. 나가고 싶으면 그 김에 폭풍에 날아가라."
 "난 오랫동안 슈시아 볼 수 있어서 좋은데? 여왕님 보는 것도 좋고. 늘 보는 게 워스트 바디의 꼬마라서 별로였는데."
 "죽어, 폐암 열차."

 달빛 주점에는 세 명의 모험가가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전형적인 폭풍우로 고립되어버린 모험가들이었다.
 지니위즈는 탁자에 힘없이 엎드렸다. 소녀가 입을 열었다 하면 며칠 동안 주점에 틀어박힌 것에 관한 불평들이 쏟아져 나왔다. 검신이 소녀에게 밖의 일을 도우러 나갈 것을 추천했지만, 지니위즈는 아무것도 못 들었다는 듯 처음부터 불평을 쏟아냈다.
 말소리만이 가득한 주점의 입구 쪽에서부터 끼익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습을 드러낸 것은 우의를 입은 덩치가 큰 사내였다. 그들은 반갑게 그 사내를 맞이했다.

 "아재 왔네, 아재 왔어."
 "아저씨! 얼른 와서 앉아!"
 "잘 있었나요?"
 "고작 몇 시간 만에 상황이 바뀌진 않지."

 이모탈은 우의를 벗으며 자리에 앉았다. 레이븐은 그에게 고생했다며 담배를 권했지만, 그 담배는 매우 정중하게 거절당했다.
 일행이 돌아와 그들 사이에 아주 잠깐 활기가 돌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분위기는 금세 이모탈이 돌아오기 직전으로 돌아갔다.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한 지니위즈는 끝내 폭발한 것인지 바닥에 쓰러져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지루해! 지루해애! 몬스터라도 패 잡고 싶어! 이거 이제 싫어어!"
 "이 년이 진짜! 난동 부릴 거면 아무도 없는 곳에서 부려!"
 "오, 분홍 리본."
 "이, 일어나요! 주변에 민폐…아니 그것보다 지금 치마! 치마!"

 이모탈은 급하게 지니위즈를 일으켜 세웠다. 난동을 부렸어도 영 풀리지 않았던 것인지 소녀는 이모탈의 무릎에 앉아서도 계속해서 칭얼대었다. 그는 열심히 소녀를 달래보았지만, 진정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지니위즈의 칭얼거림이 극에 달하자 소녀는 탁자를 강하게 내리쳤다.

 "이대로는 안 돼! 뭔가 해야 해!"
 "나가서 일해. 아저씨랑 2교대로."
 "그거 말고, 이 근육 대가리야! 칼 휘두르다가 뇌까지 근육으로 됐냐? 내 말은 우리 식으로 이 지루함을 떨쳐내야 한다는 거야!"

 지니위즈는 이모탈의 무릎에서 내려와 그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름은 무더위! 무더위는 괴담! 지금부터 즉석 괴담 열전을 펼치도록 한다! 어디 사는 근육 대가리 씨는 말이 어렵다면 얼마든지 문의 바람!"
 "아, 왜 시빈데."

 지니위즈가 제안한 규칙은 간단했다. 하나는 무서운 이야기일 것. 하나는 굳이 귀신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 마지막 하나는 제일 무서운 이야기를 한 사람이 승리한다는 것이었다.
 레이븐은 재밌어 보인다며 소녀의 제안에 즐겁게 응했다. 그를 시작으로 다른 사람들도 소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지니위즈는 기대된다는 표정으로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런데 심사는 누가 봐?"
 "응? 음…아!"

 지니위즈는 그들의 탁자에서 조금 멀찍이 떨어져 있던 가면을 쓴 사내를 불렀다. 소녀는 그를 의자에 앉힌 뒤 당당하게 그를 심사위원으로 임명했다. 그들은 심사위원을 뒤에 두고 저마다의 무서운 이야기를 생각해내기 시작했다.

——

 어…첫 타는 나인가? 난 말주변 없는 거 잘 알잖아. 아, 그래서 첫 번째라고? 그거 납득이 확 되네. 그럼 뭐, 적당히 말하고 끝내야지. 난 뭐 그런 거에 관심이 없어서 아는 것도 별로 없거든.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당장 떠올리라고 해도 기억나는 게 없어.
 야이씨, 별수 없잖아. 팔에 귀신 들린 뒤에 눈에 채일 정도로 보인 게 귀신인데 그런 이야기에 흥미가 가겠냐? 뭐, 지금은 한 마리도 안 보이지만. 아, 그래. 이거 말하면 되겠네. 내가 말할 것들은 내 팔에 귀수가 생긴 뒤로 본 것들이야.

 귀수가 생긴 사람들은 귀신을 볼 수 있어. 어떻게 보는 건지는 뭐, 내 알 바도 아니고 알 수도 없어. 그냥 보여. 그 귀신이 보이는 게 귀수가 생긴 사람을 반쯤 미칠 지경으로 몰아버리는 것 같아. 내가 봤던 것들을 아마 매일 보면 아마 반 이상은 미칠걸.
 그 왜, 이런 이야기에서는 뭐더라…개연성? 뭐, 그런 걸 중요하게 여긴다고 하잖아. 아니면 말고. 아무튼, 그런 거 중요하게 여기지? 난 그딴 거 전부 뻥 구라라고 생각해. 귀신에 뭔 개연성을 부여해? 모든 귀신이 그런 건 아니겠지만…적어도 내가 본 것들에게 개연성이고 자시고 아무것도 없었어.
 어떻게 생겼냐고? 일단 생각 좀 하고…. 아, 뭘 야유를 날리고 앉았어? 내가 레귤레이터를 팔에 채운 지 몇 년이 지났는데 그걸 여직 기억에 담고 있겠냐? 아, 생각났다.

 귀신은 대충 나누면 2개로 나뉘어. 많이 보이는 게 그냥 사람 같은 것인데 그건 그냥 갑자기 튀어나와서 지나가던 사람 괜히 놀라게만 해. 그 부류는 별로 안 무서우니 넘기고. 그 종종 보이는 것들은 좀…징그러운 것들이야. 징그럽고, 기괴하고.
 자세히 말해달라고? …싫어. 막상 생각해보니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모양새라서 말이지. 하여튼 그것들은 그냥 사람 같은 것들과는 차원이 달라.

 그냥 길을 걷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뒤를 봤더니 그것이 고개를 쳐들고 바닥에서부터 천천히 올라와. 그러더니 사라져. 다른 놈은 대뜸 멀쩡한 사람에게 달려들다가 팍! 하고 사라져. 한 사람의 등 위에 수십 마리가 바글바글하게 몰려있는 걸 볼 날에는 무의식적으로 내 등도 보게 만들었다니까? 참 징글징글하더라.
 내가 봤던 것 중에서 제일 뭐가 뭔지 알 수 없던 게 있어. 그 날은 유난히 그런 것들이 잘 안 보이던 날이었어. 그런데 저 멀리에 희뿌옇게 뭔가가 있는 거야. 둥그런 게 몇 개가 쌓여있는 게 돌탑같이 보이기도 했어. 뭐, 어차피 가던 길이기도 해서 그냥 가다 보면 뭔지 알겠거니 했어. 걸으면 걸을수록 이상했단 게 그 둥그런 탑이 가까워져서 잘 보여야 했는데 계속 희뿌옇더라고. 계속 멀어지는 느낌? 그쯤 되니까 그게 뭐지 하고 신경이 쓰이더라.
 그래서 달렸어. 달리니까 그것도 달리는 건지 가까워지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았어. 그래도 속도는 내가 더 빨라서 열심히 달렸어. 그리고 어느 정도 달려서 뭔지 보일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내가 본 게 뭐냐면…머리였어. 사람 머리 여러 개가 탑처럼 쌓여서 어딘가로 움직이고 있었어.
 그냥 '아, 귀신이구나' 하고 지나가면 되는데 그게 좀 힘들었어. 그 머리통 중 하나랑 눈이 마주쳤거든. 내가 놀라서 움찔하니까 그 머리통 탑이 움직임을 멈췄어. 그리고는 내 쪽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기 시작했어. 나도 내가 오던 길 쪽으로 미친 듯이 도망갔고.
 야, 웃지 마. 그건 겁이 많고 없고를 떠나서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반응이란 말이야. 차라리 몬스터떼한테 쫓기는 게 낫지. 응? 쫓겨서 어떻게 됐냐고? 그게…그땐 워낙에 정신이 없었는데…. 기억나는 대로 말해볼게.

 일단은 미친 듯이 달렸어. 눈에 뵈는 것도 없이 달리고 또 달렸어. 뒤를 돌아서 아직도 쫓아오는지 확인을 할 겨를도 없었어. 그 머리통들이 기괴하게 낄낄대면서 우르르 쫓아오는데 그딴 생각이 들 리가 없잖아.
 하여튼, 잘 달리다가 뭔가에 발이 걸려서 넘어졌어. 땅에 면상이 갈리는데도 멈출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어. 그제서야 나는 뒤를 돌아봤어. 돌아보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기분 나쁜 면상들이, 바로 뒤에서 웃고 있었어. 뺨이든 팔이든 가리지 않고 피가 철철 나는데, 아픈 줄도 모르고 미친 듯이 사람이 있는 곳까지 도망쳤지.

 사람이 있는 곳까지 가니까 그제야 안 보이더라. 진짜 최악이었어. 뭐, 그 뒤로 얼마 안 있어서 레귤레이터 얻어서 그딴 것들 더 볼일도 없었지만. 끝이야.

——

 "이야, 실제 경험담 쩔어주네. 예쁜 여자 귀신은 없었냐?"
 "기억 안 나, 인마. 난 끝났는데 다음 누가 할 거야?"
 "나나나나! 내가 할래!"

 검신의 말이 나오기가 레이븐이 부산스럽게 손을 들어댔다. 그는 한 번 담배 연기를 뿜은 뒤 헛기침을 하며 그의 이야기를 할 준비를 했다.

——

 다음은 내 차례네. 아아, 난 무서운 얘기보다 재밌는 게 더 좋은데. 그래도 무서운 걸 싫어하는 건 아냐. 분위기 잘 잡혔을 때 듣는 무서운 이야기만큼 재밌는 것도 없거든. 그래서 나는 무슨 얘기를 하나…아! 해상열차 이야기나 해볼까? 응? 유령열차? 에이, 유령열차 얘기 아니야. 이런 데에서 그런 거 말하면 완전 반칙이지!
 으흠, 해상열차에서 유령열차를 빼면 무슨 얘기가 가능할까나….

 일반적인 열차만 가지고 생각하자면 떠오르는 게 많이 없을지도 몰라. 그런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해상열차가 바다 위를 달리는 열차라서 그런지 은근히 그런 얘기가 어마무지하게 많아. 그 왜 바다에 빠져 죽은 원혼들이라거나 뭐 그런 거. 바다라서 좀 스산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그거 관련해서 얘기해야지.

 해상열차도 마지막 열차가 있어. 기관사도 쉬어야 하니까 당연한 거야. 그리고 적긴 하지만 그 마지막 열차로 오르는 사람들도 있어. 그 때문에 차장은 밤늦게까지 고생이지. 이건 그 마지막 열차 위에서 차장이 겪은 일이라고 해. 그것도 한둘이 겪은 일이 아니래.
 그 밤은 유난히 어두운 날이었대. 평소에는 등대가 바다를 밝혀주지 않을 때도 머리 위의 달과 별이 바다를 훤히 비춰주었는데 유난히 빛이 적었다는 거야. 차장은 피곤하기도 해서 얼른 승객들의 표검사를 마치고 기차 한켠에서 쉬려고 했대.
 한 칸, 두 칸…늦기도 엄청 늦은 터라 승객도 별로 없어서 금세 마지막 한 칸만 남기고 있었어. 차장은 얼른 끝내려고 마지막 칸에 들어갔어. 그렇게 들어선 마지막 한 칸은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고 해.
 일단 불빛이 약했대. 꼭 금방이라도 꺼져버릴 것처럼. 차장은 전등을 보며 별생각이 없었어. 그냥 전등을 갈아야겠거니-하는 생각만 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차장은 기차표를 검사하기 위해 차 안으로 발을 옮겼어.

 끼이이이익….

 바닥을 밟자마자 바닥의 나무판자는 소름이 끼치는 소리를 냈어. 차장은 바닥을 보면서 의아해했어. 신식 열차라곤 못하더라도 그런 소리가 나올 정도로 오래된 열차는 아니었거든.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닥은 계속 끼익 거리면서 비명을 질러댔어. 차장은 얼른 끝내버리자 생각하면서 차 안을 둘러봤어.
 이게 웬걸? 차의 마지막 칸에는 사람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거야. 완전 낭패였지. 안 그래도 빛 한점 비치지 않는 스산한 날이었는데 마지막 칸은 분위기도 최악이었어. 차장은 문득 소름 끼치는 느낌에 주변을 두리번거렸어. 무서운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별수 없었어. 차표를 검사하는 게 차장의 일이었거든. 차장은 모자를 고쳐 쓴 뒤 손님들의 차표를 검사하러 돌아다녔어.

 '실례하겠습니다. 표를 검사하겠습니다.'

 손님들은 천천히 무언가를 꺼내들었어. 그런데 꺼내는 것마다 전부 이상한 물건들뿐이지 뭐야? 사진, 편지, 옷가지, 심지어 그릇까지 차표랍시고 꺼내놓았대. 차표를 달라고 해도 제대로 차표를 꺼내는 사람이 없었어. 피곤하기도 했고 무섭기도 해서 차장은 적당히 확인했다고 하면서 마지막 손님을 향해 발을 옮겼어.
 차장은 마지막 손님에게도 표를 보여달라 부탁했어. 마지막 손님은 그래도 표를 꺼내줬어. 그래서 차장은 찬찬히 표를 확인했어.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한 거야. 일단 표가 너무 낡았어. 그리고 연도도 이상해. 십수 년도 더 된 옛날 표를 가지고 있었더래. 그것도 이튼 공업지대로 가는 열차에서 히링제도로 가는 표를 냈다고 해.

 차장은 그 차표를 보고 손님의 얼굴을 본 뒤에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쳤어.

 차장은 부기관사를 끌고 그 기이한 차량으로 갔어. 자신이 본 것을 말해도 도통 믿어주질 않았으니까 답답했을 거야. 그렇게 마지막 칸에 도착했지만, 차장이 본 그 칸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뒤였다고 해.

——

 "내 이야기는 끝! 다음은 누구야? 네가 할래?"

 레이븐은 지니위즈를 가리키며 말했다. 지니위즈는 대답 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그럼 제가 먼저 할게요. 괜찮죠?"
 "암, 얼마든지."

——

 이런 얘기는 별로 안 좋아하는데…그래도 최선을 다해볼게요. 사실 그렇게 잘 아는 것도 아닌데…그래도 노력해야죠. 두 분 모두 멋진 얘기 해주셨으니까요. 두 분 얘기 들으면서 무슨 얘기를 할까 생각해봤어요. 좋은 얘기일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주제에 맞는 얘기가 하나 있었어요.

 대부분의 프리스트들은 레미디아 바실리카에 속해있어요. 알고 계시죠? 지금은 언더풋의 레미디아 카테드랄로 새롭게 일어났지만, 전에는 레미디아 바실리카였죠. 이건 그때의 이야기에요. 그냥 전해 들려오는 그런 건데요. 그때 그곳에는 이단 심문관들이 아주 비밀스럽게 활동했다고 해요.
 이단 심문관들이 하는 일은 간단했대요. 레미디아 바실리카 소속이면서 변절해버린 자들을 색출해내는 일이 주 업무라고 했어요. 변절자의 기준은 여러 개라고 해요. 신에게 거짓된 맹세를 올리는 자. 공공연하게 악을 행하는 자. 신의 이름을 걸고 물건을 파는 자. 그리고 악에 빠진 자가 그들에게 있어서 변절자래요.
 이단 심문관은 아주 독실한 사람들로 이뤄졌다고 해요. 그야말로 신을 위해 기꺼이 죽을 수도, 죽일 수도 있는 그런 사람들. 변절자는 절대적인 악을 저지른 자들이라는 신념으로 손수 변절자들을 처형했다고 해요.

 아, 제 이야기는 별로 안 무서운 건가요? 그래도 이미 시작했으니까 끝까지 들어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이단 심문관들이 변절자들을 처형하는 것은 마치 신성한 의식과 같았다는 얘기가 있어요. 그들은 일단 변절자를 붙잡은 뒤 총본산과는 멀리 떨어진 심문실로 변절자를 끌고 갔대요.
 심문실로 무사히 끌고 왔다면, 먼저 제단에 기절시킨 변절자를 바르게 뉘이고 성수를 뿌렸다고 해요. 변절자를 뒤덮은 부정을 말끔히 씻어내는 의식이었던 걸까요…전신에 꼼꼼하게 성수를 뿌리고, 변절자가 중간에 깨어나 도망가려고 하면 도망치지 못하게 단단히 붙들고 뿌려준 뒤, 신에게 기도를 올렸대요.
 네. 기도문을 적은 종이를 보며 모두가 입을 모아 기도를 올렸대요. 기도를 끝까지 다 외면 양초에 기도문을 태운 뒤 남은 재를 모아 변절자의 몸에 뿌려주었대요. …왜 그랬는지는 묻지 말아 주세요. 저도 모르겠어요.
 그다음은…심문을 주도하는 자가 변절자의 죄를 크게 말한다고 했나…. 그러면서 그 죄를 시인하느냐고 물어본대요. 거기서 변절자가 그 죄를 시인하든 시인하지 않든 바뀌는 것은 없었다고 해요. 시인하면 그 죄를 씻어내야 한다며 다음으로 넘어갔고, 시인하지 않으면 진실된 눈을 갖지 못했다면서 다음으로 넘어갔대요.

 그다음은…변절자를 묶고 마치 관처럼 생긴 제단에 뉘여 놓는대요. 그리고 그 안에 물을 붓는다고 해요. 깨끗하게 다시 태어나라고. 진실된 눈으로 세상을 보라고…. 떠오르지 못하게 무거운 것을 변절자의 위에 올려두고…제단을 가득 채우면 미리 준비해준 기도문과 꽃을 태운 재를 섞어 물에 천천히 뿌렸다고 해요….
 그리고 제단을 둘러싸고…얼마 정도의 시간 동안 기도를 올렸다고…. …그동안 변절자는 익사한다고 해요.

 네? 아, 제가 지금 안색이 안 좋나요? 괜찮아요. 그냥 조금 거북해서 그래요. 아, 시체는 어떻게 처리했냐고요? 그…변절자가 신께 닿지 못했다고 슬퍼하면서 불태웠다고…해요.
 지금은 그런 건…아니, 공식적으로 그런 건 처음부터 없었어요. 그냥 소문일 뿐이죠. 그럼, 들어주셔서 고마워요.

——

 "아저씨, 고생했어! 어휴, 얼굴 새하얘진 거 봐. 내 이야기 들으면서 쉬고 있어."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지니위즈는 이제야 자신의 차례가 돌아왔음을 알리며 이야기를 꺼낼 채비를 마쳤다.

——

 자! 드디어 마지막이다! 후후후, 원래 주인공은 맨 마지막에 등장해서 멋들어지게 파팍! 하고 해치우잖아. 그러니까 제일 마지막에 말하는 내가 이 대결의 주인공이지! 그래서 나도 무써운 이야기를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 왜, 불만 있어? 불만 있으면 이야기로 날 이겨보던가!
 음, 잡설은 여기까지. 잡설이 너무 길면 흥이 떨어지거든. 그럼 내 무써운 이야기 시작한다? 뭐야아, 왜 호응이 이 정도야? 김빠지게. 자, 더 호응해봐, 더.

 …으흠! 자, 이제 진짜 시작할게. 아저씨랑 너희들은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뭐라고 생각해? 뭐, 사람마다 그건 다 다르겠지만. 일단 보편적으로 제일 무섭다고들 하는 것은 정말 무섭게 생긴 것들이잖아. 척 봐도 기겁할 정도로 무섭거나 거부감이 드는 것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내가 생각하는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바로 사람이야.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사람은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일을 거리낌 없이 저지르거든. 내가 할 이야기도 그런 것에 관한 이야기야.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인데, 사람 중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어딘가에 미쳐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미쳐있는 만큼 무언갈 하는 데 거리낌이…아, 넌 또 왜 시빈데? 내가 미친 사람이면, 너도 미친 사람이다. 아무튼, 내가 들은 이야기 중에서 정말 최고라고 할 수 있는 미치광이가 있어. 이 이야기는 그 미치광이의 이야기야.
 그 미치광이…이름은 모르지만, 그 미치광이는 마도학 계에서 유명한 미치광이야. 곱게 미쳤으면 장인이라 불렸겠지만, 그 미치광이는 그런 쪽이 아니었거든. 정말 말 그대로 미친 녀석이야. 한 행동들이 너무 비현실적이라서 학회에서 이러면 안 된다는 의미로 만든 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미치광이가 저지른 업적이 뭐냐면, 일단 무단으로 호문클루스를 만들었어. 이게 뭐가 미치광이냐고? 하긴, 호문클루스 만드는 거 자체가 잘못으로 정해져 있기는 하네. 하지만 적어도 살아있는 사람으로 만들지는 않거든? 살아있는 생물도 이해를 받을까 말까인데 산 사람으로 만들다니, 완전히 미친 거지.
 그리고 첫 번째 업적이랑 이어지는 두 번째 업적. 호문클루스를 제작할 때 대량의 재료를 쏟아부었다고 해. 그러니까, 한둘을 잡은 게 아니라는 거야.
 그렇게 탄생한 호문클루스는 엄청나게 징그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대. 몸을 움직이기엔 몸통은 지나치게 컸고 팔과 다리는 지나치게 가늘었다고 해. 또 불필요하게 많이 달려있었고. 더군다나 지능이 있기는 한 건지 그저 제자리에서 꾸물거리는 게 그 호문클루스가 할 수 있는 전부였대.
 그러는 동안에 학회에서는 뭘 했냐고? 당연히 잡으러 다녔지! 그런데 그 미치광이가 또 도망가는 재주 하나는 기가 막히게 엄청나서 잡으러 갈 때마다 그 기괴한 호문클루스만 마법진 위에 덩그러니 있더라는 거야. 학회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인 거지.

 그렇게 속만 타들어 가던 중에 학회의 유망한 마도학자가 사라졌어. 천재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마도학자라고 했는데, 그런 사람이 없어진 거야. 그것도 멀쩡히 학회 건물 안에 있던 사람이.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그걸 눈치를 채서 사람들이 걱정하고 그랬는데 건물 안에서 그게 발견이 된 거야. 그 사람의 신발 한 짝이.
 그걸 딱 발견하고 나서 발칵 뒤집어졌다고 했나? 빼도 박도 못하게 납치당한 거니까. 찾으러 가기에는 단서도 없고 너무 늦었다 싶어서 적어도 그 시체라도 찾으려고 필사적으로 그 미치광이를 찾아다녔대.
 그리고 한참 뒤에, 며칠 뒤에? 미치광이의 비밀 연구소를 발견했대. 임시 거처라고 해야 하나…아무튼 그런 곳이었어. 낡은 책상과 여러 장의 종이들, 마법진, 호문클루스. 수색대는 처음 보는 모습에 할 말을 잃어버렸대.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천재는 살아있었다고 해. 조금…넋이 나간 그런 모습이었지만, 어쨌든 간에 살아있었대. 그리고 항상 보이던 그 기괴한 살덩어리 호문클루스는 어디에도 없고 불에 새까맣게 탄 어린아이 정도 되는 크기의 숯덩이가 마법진 위에 놓여져 있었대. 미치광이는 이번에도 어디에도 없었고.
 학회 사람들은 넋이 나간 천재와 숯덩이를 가지고 돌아갔어. 천재가 다시 정신을 차릴 때까지 숯덩이를 분석했다는데, 그 결과는 아주 놀라웠대. 그 숯덩이가 바로 호문클루스였거든. 결과가 알려지고 나서 사람들은 미치광이의 실험이 성공한 거냐면서 술렁거렸어. 그리고 타이밍 좋게 딱 천재가 정신을 차린 거야.

 사람들은 천재에게 가서 물었어. 그곳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천재는 그 질문에 답해주지 않았대. 그저 말없이 허공을 응시하기만 했대. 얼마나 그대로 있었을까, 천재는 간신히 그 무거운 입을 열었어.

 '나는 이 길의 끝을 보았다. 절대 도달해선 안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만 말하곤 천재는 다시 입을 굳게 닫았고, 며칠 뒤에 스스로 숨을 끊어버렸대.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미치광이도 더 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않게 되었다고 해.
 이 이야기를 아는 사람들은 천재가 말한 게 무슨 의미일까, 미치광이는 왜 갑자기 사라진 걸까 생각하곤 하지만, 그걸 아는 건 아마 천재 본인밖에 없을 거야. 그럼 내 이야기도 끝이야.

——

 "어땠어? 내 이야기 어땠어?"
 "그냥 평소랑 다를 거 없이 기괴한 이야기잖아."
 "시끄러. 판단은 네가 하는 게 아니잖아. 심사위원님! 누구의 얘기가 제일 재밌었어요?"

 지니위즈는 해맑게 웃으며 가면을 쓴 사내에게 평가를 부탁했다. 가면을 쓴 사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웃으며 대답했다.

 "모두 다 재밌었어. 진짜야."
 "잠깐, 괴담인데 재밌으면 안 되잖아! 뭐가 제일 무서웠어!"
 "심사를 좀 더 대국적으로 하쇼, 형씨! 하나만 골라야지, 하나만!"
 "이런 자리에선 '전부 다 재밌었어.' 라는 말은 통용되지 않지."
 "지, 진짜 다 재밌었어!"

 그들은 무엇이 더 재밌었는지 고르라며 성화를 내었다. 가면을 쓴 사내가 대답을 피하며 도망가려 하자 지니위즈는 사내를 잡으라 소리쳤다. 그 말에 검신과 레이븐은 사내를 붙잡기 위해 달려나갔다.

 아라드는 폭풍으로 정체되어 조용했지만, 주점은 오늘도 시끌벅적했다.



작년에 쓴 여름특집 아라드 이야기 시리즈, 아라드 괴담입니다.

그런데 쓰다보니 그냥 기이한 이야기가 된 듯하기도 하고...


안녕하세요. 흔한 아라드의 글쟁이입니다.

사실 12시 정각에 올리고 싶었는데 멍때리다보니 12시가 지나버렸습니다...


그나저나 역시 무서운 이야기를 직접 쓰는 건 힘드네요.


그럼, 오늘도 즐겁게 읽으셨길 빌면서

오늘도 어김없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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