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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Libera me, Domine
게시물ID : dungeon_62707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Fathance
추천 : 1
조회수 : 17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7/18 21:3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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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그 날은 해가 밝은 날이었다. 구름 한 점 없어 그 어느 날보다 맑았고 추운 겨울날임에도 따스한 햇볕에 가슴 속 깊은 곳까지 따스해지는 그런 날이었다.
 그리고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잔혹한 환청이 내 머릿속을 헤집는 날이었고,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주위에서 날아오는 비난의 속삭임이 가슴을 깊게 후벼 파는 날이었다.
 그 날은 그 어느 날보다도 어지러운 날이었고, 그 때문에 정신을 잃을 것처럼 느껴지는 날이었다.

 비난과 환청이 뒤섞여 머릿속을 뒤엎고 있었다. 그 어떤 말들보다 익숙한 소리였지만, 유난히 견디기 힘든 그런 날이었다. 더 있다간 정말 정신을 놓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레미디아 카테드랄을 빠져나가려는 참이었다.
 무슨 말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그때 들려왔던 누군가의 말에 순간 눈앞이 흐려졌었다. 일순간 머리를 헤집는 환청도, 나를 찌르는 험담도, 견디기 힘든 시선들도, 그 어떠한 것도 느낄 수 없었다.
 다시 정신을 차렸다고 생각했을 땐, 수습할 수도 없는 일을 벌인 뒤였다. 굳게 쥔 주먹 끝에는 사람을 친 감각이 엷게 떨리고 있었다. 바닥에 쓰러져 제 뺨을 부여잡은 여신도의 눈길은 마치 오물을 보는 듯했다. 이젠 고성으로 변해버린 비난은 하늘이라도 찌를 듯 높아져 갔다. 머릿속을 가득 메운 환청은 머리를 가르며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다시 정신을 잃을 것만 같이 눈앞이 아득해져 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몸이 바닥으로 무너져내렸다. 마치 바닥이 무너져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머리끝으로 올라가는 혐오감에 얼굴을 잡아 뜯듯이 쓸어내렸다.
 차마 고개를 들어 올릴 수 없었다. 비난은 거대한 돌덩이가 되어 내 몸을 짓눌렀다. 전신이 으깨질 듯한 느낌에 점점 더 몸이 무너져내렸다.
 이것이 바로 현실이라며 소리 지르는 환청에 귓바퀴를 뜯어낼 기세로 강하게 움켜쥐었지만, 그 정도로 그칠 리가 만무했다.
압박감과 혐오감과 짜증이 한 곳에 뒤섞여 알 수 없는 느낌이 되었을 때, 마음속의 무언가가 끊어진 것이 느껴졌다. 그것을 기폭제로 삼아 다신 주워담을 수도 없는 것들을 입 밖으로 토해내기 시작했다.

 "시끄러워! 시끄럽다고! 시끄러워!"

 "왜 나한테만 그러는 건데!"

 "왜 내가 그런 소리들을 들어야 하는 건데!"

 "내가 원해서 이렇게 된 것은 아니잖아!"

 "살아있는 게 죄야! 살아있는 바람에! 살아있어서!"

 "그렇게 더러워할 거라면 너희 손으로 치워!"

 "내가 살아있는 꼴이 그렇게 싫고 역겨우면 너희 손으로 죽여!"

 절규 속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나는 그 자리에서 머리를 감싸 쥐며 울어버렸다. 잠시 조용해졌던 주변은 다시 조금씩 술렁거리기 시작했지만, 토해내기 전처럼 커지지는 않았다.
 환청은 여전히 시끄러웠지만, 그조차도 빠르게 차오르는 혐오감에 파묻혀 제대로 듣지 못했다.
 나는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다리를 이끌고, 몸에 박히는 속삭임들을 뒤로 한 채 비척비척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내가 몸을 이끌고 도착한 곳은 레미디아 카테드랄 근방의 난간이었다. 그곳을 빠져나오고 멀리 가지도 못한 것이었다. 나는 난간 앞에 웅크려 앉아 열심히 마음을 추슬렀다. 울어서 발갛게 상기된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고 가만히 가만히 떠오르는 생각을 속으로 되뇌었다.

 '신이시여, 신이시여, 부디 저를 거둬주시길 간청합니다. 악마의 저주를 받고 당신을 좇는 자들에게 돌을 맞지만, 부디 당신의 품에 저를 들여주옵소서.'

 '신이시여, 저에게 당신의 빛을 비춰주소서. 저를 긍휼히 여기시어 돌을 맞는 당신의 버려진 자에게 한 줄기 빛을 내려주길 빕니다.'

 '저의 소원을 들어주소서. 악마의 저주를 받아버린 저의 죄를 사하여 주소서. 당신을 향한 길을 저버리고 말았지만, 저의 마음은 영원히 당신만을 향합니다.'

 '제 모습은 온전히 저의 탓입니다. 이 모든 게 저의 잘못입니다. 당신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되어버린 저의 죄입니다. 부디 노여워하지 말아 주소서.'

 '청컨대, 저의 고난을 거둬주소서. 신이시여, 저의 고통을 거둬주소서. 저를 향한 비난 속에서 저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신이시여, 당신을 사랑하는 만큼, 당신이 밉습니다. 저의 모든 것이 당신께 바라건만, 저의 고난은 끊이지를 않습니다. 저의 마음이 당신을 향하는 만큼, 당신이 미워지고 있습니다. 저의 모든 것이 영원히 당신만을 향하건만, 이런 마음이 끊이질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당신을 향한 이 생각, 이 죄를 사하여주지 말아 주옵소서.'

 그 날은 그 어느 날보다 따스했고 그 어느 날보다 싸늘하기 그지없는 날이었다. 차게 식어가는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줄곧 한 곳에 앉아 진정될 줄 모르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쓴 날이었다.
 머릿속을 울리는 환청은 그 어느 날보다 시끄러운 날이었고, 그 어느 날보다 마음속 깊이 좌절한 날이었다.
그리고 그 어떠한 날들보다 더욱 간절하게 신을 찾은 날이기도 했다.

 "───"

 그저 그 어디에도 닿지 못할 말만이, 그 어떠한 곳보다 낮은 곳으로 흘러내릴 뿐이었다.



Libera me, Domine

 신이시여, 저를 구원해주소서


안녕하세요, 흔한 아라드의 글쟁이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글을 옮기기위해 왔습니다.


어벤저님 애껴요...


그럼...즐겁게 읽으셨길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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