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소설] 아라드 미담
게시물ID : dungeon_62709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Fathance
추천 : 2
조회수 : 17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7/18 23:04:34
옵션
  • 창작글

 달빛 주점의 어느 한 테이블에 전신에서 검은 기운을 뿜어내는 사내가 홀로 쓸쓸히 앉아있었다. 평소엔 어린 소녀 한 명과 건장한 사내 둘과 함께 두런두런 앉아있는 사람이었지만, 오늘은 어쩐 일인지 홀로 앉아있었다. 사내는 침울한 표정으로 주문한 음식을 깨작깨작 입에 집어넣고 있었다.

 "오늘은 혼자인 것이오?"

 그런 사내에게 얼굴에 검은 나비 모양 가면을 쓴 쿠노이치 한 명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사내는 힘 없이 웃는 얼굴로 쿠노이치를 맞아주었다. 쿠노이치는 사내에게 어째서 혼자 있는 것이냐 물어보았다. 그에 대한 사내의 답이 걸작이었다.
 하나는 재밌어 보이는 것을 찾았다며 쪽지 하나만 덜렁 남겨두고 사라졌고, 둘은 잠시 인생을 즐길 것이라는 말만을 남기고 도박을 하러 떠났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전하며 사내는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앞은 이해해줄 수 있는데, 뒤는 정말 인생의 낭비라고 몇 번을 말해도 통 들어주질 않아요. 망해도 시간이 지나면 또 가버리고…."
 "…그것참 걱정이 많을 것 같소."
 "엄청나죠…."

 사내는 마저 음식을 깨작거리며 다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 침울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쿠노이치는 제 어깨가 다 무거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점점 분위기가 다운되어가자 쿠노이치는 이래선 안 되겠다고 느꼈는지 말을 꺼냈다.

 "그래서, 그대는 지금 그대의 동료들을 기다리는 것이오?"
 "그런 셈이에요. 어디서 뭘 하든 늘 여기로 오니까요."
 "제법 심심하겠소."
 "지금은 같이 말동무를 해주시는 분이 계시니까 괜찮아요."

 사내는 그렇게 말하며 미소 지었다. 쿠노이치는 잠깐 웃으며 사내의 맞은편에 앉아 턱을 괴고는 사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대의 동료들이 올 때까지 심심함이 오지 않도록만 하는 것은 부족하오. 그러니, 조금 더 재밌는 것을 하는 것이 어떻겠소?"

 쿠노이치의 제안에 사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쿠노이치는 그 모습을 보곤 살짝 미소 지으며 뒤에 말을 덧붙였다.

 "그대들의 방식으로 말이오. 이해했소?"

 그 말에 사내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음…누구부터 말하는 게 좋을까요? 아, 제가 먼저 말하는 게 좋아요? 네, 알았어요. 그럼 제가 먼저 얘기해드릴게요. 아, 말주변이 없으셔서…. 괜찮아요. 저희들 중에도 말주변 없는 사람이 한 명 있는데, 저희하고 잘 어울리잖아요. 그러니까 너무 부담 가지지 않으셔도 돼요.
 아, 그리고 저희가 모여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많이 하잖아요. 무서운 얘기나 황당한 얘기나…어쩔 땐 잔인한 얘기도 하고…. 오늘은 그런 얘기들 말고 제가 좋아하는 얘기를 할게요. 저는 들으면 기분이 흐뭇해지는 얘기를 좋아하거든요.
 그럼, 사담은 여기까지 하고. 얘기해드릴게요.

 제가 해드릴 얘기는 조금 옛날얘기에요. 대전이 전이니까…제법 되었죠? …아, 맞다. 흑요정이시지. 엄…흑요정 기준이라면 짧으려나요? 아무튼, 이건 그때의 이야기에요.
 대전이 전, 레미디아 바실리카가 헨돈마이어에 멀쩡하게 서 있는 시절에 매일같이 그 근처를 방황하는 할머니가 한 분 계셨어요. 정말 매일같이 오시는 분이라서 저도 여러 번 본 적이 있었어요. 매일 쪽지 한 장을 들고 레미디아 바실리카 앞을 이리로 왔다가 저리로 갔다가 하던 분이었어요.
 몇 날 며칠을 그렇게 계시다 보니 한 분이 영 눈에 밟히셨나 봐요. 그 할머님께 조심스레 다가가서 어쩐 일이냐고 여쭤봤대요. 그러자 그 할머님은 쪽지를…제 얘기냐고요? 아, 그때의 저는 지금이랑 성격이 정반대였던지라…저도 들은 이야기에요.
 아무튼, 그 할머님께선 선뜻 다가와 준 그 프리스트에게 매일같이 손에 꼭 쥐고 계시던 쪽지를 보여줬대요. 얼마나 오래 쥐었던지 꼬깃꼬깃해지고 내용도 조금 번진 상태라 완전히 알아보기 힘들었다고 해요.
 그래도 알아볼 수 있는 부분으로 내용을 조합해서 어찌어찌 알아본 내용은 이랬대요. '우리 이 앞에서 만납시다.' 언제 만나는지는 번져서 보이지 않았지만, 그런 내용이었다고 해요.
 그런데 그 만나자고 한 사람이 오지를 않아서 계속 올 때까지 몇 날 며칠을 나와서 기다리고 계셨던 거에요.

 어쩐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네요? 매일같이 나오는 게 이상하다고 느껴지시는 건가요? 아, 안 오면 직접 찾아가시는 스타일이시구나. 그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하지만 그 할머님께는 그다지 좋지 못한 방법이었어요.
 만나자고 한 사람이 사는 곳은 알았지만, 그곳이 노인 혼자서 가기엔 너무나 멀고 위험했거든요. 그래서 할머님은 매일 그 사람이 올 때까지,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레미디아 바실리카 앞에서 기다리던 거였어요.
 사정을 알게 된 프리스트는 할머님께 쪽지를 돌려드리며 자기가 도와주겠다고 나서주었어요. 할머님은 괜찮다고 했지만, 프리스트가 등을 내주며 몸을 숙이는 통에 더 거절하실 수 없었는지 결국엔 도움을 받게 되었죠.
 할머님을 등에 업은 프리스트는 안내에 따라 발걸음을 옮겼어요. 요청에 따라 가게에 들러서 만나러 갈 사람에게 줄 물건을 고르기도 하고, 중간에 식사를 하기도 하고. 조금 더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마차를 잡기도 하면서 목적지로 향해갔어요.
 그렇게 웨스트 코스트까지 도착해서 그토록 기다리던 사람과 만났다고 해요. 원래는 날짜에 맞춰서 마차를 타고 오려고 했는데 그만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다쳐서 못 오던 거였대요.

 이렇게 사정상 못 만나던 사람들이 다시 만나면서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이 나요. 그 못 만나던 사람들이 만나서 무얼 했냐고요? 그거까진 저도 들은 바가 없지만, 그 노구를 이끌고 찾아갈 마음을 가진 분이시라면 틀림없이 무얼 하던 행복한 일이 될 사이였겠죠?

──

 "어때요? 굉장히 평이한 이야기죠? 굴곡도 반전도 없고. 저희 소문의 근원지가 들으면 시시하다고 할 이야기였는데."
 "매우 평화로운 분위기였소."
 "그런 이야기를 좋아해서요."

 사내는 흐뭇해 보이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쿠노이치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그대의 취향을 존중해주겠소. 그것에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이해해주길 바라오."

──

 이런 걸 이렇게 얘기해보는 것은 처음인 터라 잘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소. 소인이 쿠노이치라는 명을 하사받고 처음 받은 임무만큼 긴장되는 것 같소. …그대가 몇 번이고 이해한다 말해도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오.
 …그래, 내 잘해낼 수 있을 것이오. 그 말이 이해한다는 말보다 수 배는 더 나은 것 같소. 그럼, 자신감을 가지고 미천한 말주변으로라도 한 번 읊어 보이겠소.

 흠…이건 늦은 밤, 새벽이라고도 칭할 수 있는 그런 시간에 있었던 일이오. 모든 이들이 잠드는 시간. 하지만 주점은 그 어떠한 시간보다 활발할 시간이라오. 하지만 같은 새벽이라고 매번 활발하지는 않은 법.
 그 날은 유난히 손님이 적은 날이었소. 조용해서 좋았지만, 주인장인 슈시아 씨는 손님이 적은 것에 대해 불만을 품은 것처럼도 보이는 날이었소. 시간도 늦어 평소라면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을 시간, 소인은 유달리 잠이 오지 않아 몸을 조금 움직이던 참이었소.
 그런데 계단 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는 것이었소. 사람도 없는 데다 시간이 많이 늦어 슈시아 씨도 장사를 접은 판이었는데 대체 누가 그 늦은 시간에 찾아온 것인가 의문이 들어 소인은 곧장 계단으로 향했소.
 어린아이였소. 그곳에는…대략 소인의 허리만큼 오는 어린 소녀가 머뭇거리며 어슬렁거리고 있었소. 이상하지 않소? 그 늦은 시간에, 장소와 어울리지도 않는 손님이 찾아온 것이?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무슨 일로 찾아온 것이냐 물어보았소. 소녀는 그 말에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양손에 제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기 시작했소. 지금 생각해봐도 상당히 어이없는 행동이기 그지없소.

 소인은 소녀를 진정시켜가며 다시 무슨 일로 온 것이냐 물어보았소. 혹시나 소인의 가면을 쓴 모습에 겁이라도 집어먹은 것이 아닐까 하여 가면까지 벗어가며 말이오.
 소녀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천천히 말을 꺼냈소. 어찌나 끅끅대던지 말을 알아듣는 것이 그야말로 암호문을 해석하는 것만 같았소. 그래도 시간은 많았기에 끈기를 가지고 들어준 끝에 소녀의 말은 완전히 이해하는 데 성공했었소.
 '소중한 물건을 잃어버렸는데 찾을 수 없다.' 그것이 소녀가 그 새벽 중에 주점을 서성거리던 이유였소. 그것이 주점에 있어서? 아니오. 그 물건은 다른 곳에 있었소. 그리고 소녀는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고 있었소.
 소녀는 소인을 잡아끌고 주점의 밖으로 나가서 멜트다운 쪽을 가리켰소. 그 안에 제 물건이 있다고 하면서 말이오.
그때 생각하나 지금 생각하나 이상하기 그지없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딱히 문제 될 것은 없었소. 소인이 그 안에 들어간다고 해서 목숨을 위협받을 일 따윈 일어나지 않으니 말이오.

 그래서 소녀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소. 어차피 잠도 오지 않던 터, 그 말도 안 되는 부탁을 위해 움직이는 것도 그다니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였소. 소인은 소녀의 안내를 받아가며 멜트다운의 안쪽으로 들어갔소.

 소녀가 이 근처에 있다며 멈추게 한 곳은 옛 헨돈마이어 터인 구 시가지의 깊은 곳이었소. 소인은 소녀를 내려주고 위험하니 얼른 찾으라 독려했고, 불이 필요하다고 하면 불도 밝혀주었고, 몰려드는 원혼들을 태워가며 소녀를 보호해주었소.
 만약 소인도 함께 찾았더라면 조금 더 빨리 찾을 수 있었겠지만, 소인은 소녀를 지켜야 했기에 소녀 혼자서 그 넓은 곳을 그 작은 손으로 뒤져야 하는 상황이었소. 누구 하나는 깨워서 데려갈 것을…하면서 내심 후회했었소.
 그렇게 한참을 뒤져서 하늘이 조금씩 푸르러갈 쯤, 소녀는 해맑은 목소리로 찾았다 외쳤소. 다 무너진 폐허 속에서 소녀가 소중하게 끌어안고 나온 것은 다 헤지다 못해 그야말로 넝마라고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는 인형이었소.
 소녀는 기쁘다는 듯이 인형을 끌어안고 한 바퀴 빙그르르 돌았고, 만족했다는 표정으로 소인에게 다가와 끌어안았소.

 "정말, 정말 고마워, 언니!"

 소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졌소. 아마도 그것은…구 시가지를 떠돌던 원혼이었을 것이라 생각하오. 그것이 찾아 헤매던 물건을 찾아내 성불하게 된 것일 것이오.
 마지막에 보여준 표정이 그렇게나 해맑았으니, 소녀는 틀림없이 잘 갔을 것이라 생각되오.

 비록 미천한 말주변이었지만, 소인의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오.

──

 "신기한 경험을 하셨네요."
 "정말이지 진기하기 짝이 없는 경험이었소. 그대가 듣기엔 어떻소? 소인의 이야기가 그대의 취향에 걸맞는 이야기였소?"
 "좋은 이야기였어요."

 사내의 답에 쿠노이치는 만족스럽다는 듯 짧게 웃어 보였다. 쿠노이치는 다시 이야기를 주고받을까 제안하려는 찰나에 계단 쪽에서 어수선한 목소리들이 들리는 것을 들었다. 어린 소녀의 목소리와 남자들의 목소리. 평소 사내와 함께하는 이들의 목소리였다.

 "그대의 동료들이 오고 있소. 그대들의 방식, 시간을 보내는 데 굉장히 좋은 것 같소."
 "아, 벌써 그렇게 되었나요?"
 "그대들의 방식 덕에 좋은 시간을 보냈소. 그러니 그대의 동료들과 좋은 시간을 또 보내시오."
 "좋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쿠노이치는 가볍게 목례를 건넨 뒤 자리에서 일어나 위로 향하는 계단 쪽으로 걸어나갔다.



미담[美談] 사람을 감동시킬 만큼 아름다운 내용을 가진 이야기


아라드 이야기 시리즈의 아라드 미담

...사전적 의미에 맞는 이야기였으면 좋겠습니다...


안녕하세요. 흔한 아라드의 글쟁이입니다.

어째 아라드 이야기 시리즈는 인기가 적은 거 같아요

...그냥 글 자체가 인기가 없는 걸까...

제가 좋아한다고 해서 남들도 다 좋아하리란 법은 없으니까요


그럼, 즐겁게 읽으셨길 빌겠습니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