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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사람이 되지 못하는 자들
게시물ID : dungeon_62712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Fathance
추천 : 2
조회수 : 16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7/19 00:3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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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자유를 얻은 날에는, 그저 순수하게 기뻤다. 그 자유가 괴물의, 아는 사람의, 모르는 사람의 사체를 쌓아 올려 얻은 것이었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아마 그런 것조차 떠올리지 못할 정도로, 떠올리지 않을 정도로 기뻐서 그랬던 것이겠지.
 숲 속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마차 소리를 들으며, 땅을 두 발로 밟으며, 어찌나 감격에 차오르던지…. 지금 생각해봐도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한동안 몸의 떨림이 멎지 않았던 게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이 삶의 시작은, 솔직하게 말하자면 기억나지 않는다. 지독할 정도로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이라곤 오직, 인간이 아니게 살아온 것. 인간임을 버리도록 배워온 것. 자기 자신을 위해 남을 짓밟는 것. 살아남기 위해 죽이는 것.
 그런 것들은, 자유를 얻은 뒤로는 끝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이 아니게 되었다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돌아갈 곳이 없다고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하잘것없는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죽을 듯이 훈련할 일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안일하기 짝이 없는 생각인데….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사람의 세상에 겁도 없이 뛰어들었다.


 그렇게 사람의 세상 속에서 잘 살아갔느냐 한다면 딱 잘라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세상에서 처음으로 뼈저리도록 깨달은 것은, 세상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에게 그리 친절하지 않다는 것이었으니까. 부당한 취급. 착취하고 착취당하는 관계. 내가 겪은 것들은, 그런 것들이었다.
 선의로 다가오는 이는 없다.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 뒤편에는 검게 물든 속내밖에 없다. 환하게 웃는 얼굴로, 아무것도 모르는 자의 등에 보이지 않는 칼을 쑤셔 박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사람들의 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곤 없었다. 믿고 싶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고통과 짓밟힌 신뢰밖에.
 …좋은 사람? 글쎄. 그런 게 있다고는 지금도 확신을 못 하겠는데.
 뭐가 어찌 되었든 그런 상황에서 내가 믿고 기댄 것은 다른 무언가가 아닌, 먼저 자유를 얻은, 사람이 아닌 자였다.

 자유를 얻은 자들을 알아보는 일은 쉽지. 안 그래? 남에겐 무엇보다 이질적이면서 무서운 느낌. 하지만 내겐 익숙하기 그지없는 그런 느낌을 쫓아가기만 하면 되니까. 나는 그런 자들을 만날 때마다 동행을 요청했다. 그런 요청은 개인의 사정으로 거절당하기도 하고, 무덤덤하게 승낙되기도 했다.
 그때부터 나는 나와 같은 자들과 함께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저 단순한 동행이었지만, 등에 보이지 않는 칼을 박아넣는 자는 없었다. 그래도 그거면 충분했다. 충분하고도 넘치지. 아무렴.
 그렇게 나와 같은 자들과 함께하며 나는 다시 한 번 안일하고, 단순하게 확신한 것이 있었다. 사람은 더는 믿을 수 없게 되었지만, 사람이 아닌 자들은 믿을 수 있다고. 그렇게 굳게 믿으며 점차 안정적이게 사람의 세상에서 살아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을까, 어김없이 나와 같은 자와 함께하던 중이었다. 지금도 확실히 기억나. 자신의 힘을 유난히 싫어하는 자였지. 간혹 싫어하는 것을 넘어 증오하는 것처럼도 보이던 자였으니까. 그러면서도 강했다. 순수한 자신의 힘만으로 그런 강함을 내는 자였어.
 그와 함께 다니며 그는 끊임없이 내게 제 생각을 말했었다. 마치 나도 그와 같은 길을 걸어나가길 원한다는 듯이. 나는 거기에 딱히 긍정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부정하지도 않으며 그를 따라다녔었지.
 그런 자가 어느 한쪽을 가리키며 그곳에 서 있던 자를 공격하자고 제안을 해왔다. 그곳에 있던 자 역시 나와 같은 자였다. 어째서 공격을 해야 하느냐 물었더니 그는 간단하게.

 "역겨워서."

 라고 답했다. 나는 그 대답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격하려 드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기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겁먹은 것이냐 물었지만, 그것은 겁을 내는 것이 아니야. 그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니까. 단순히 역겹다는 이유로 같은 처지였던 자를 죽인다니?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는 일이다. 그때도. 지금도. 앞으로도.
 그는 답이 없는 나를 잠시 보더니 무어라 중얼거리고는 뭐라 말릴 새도 없이 홀로 마창에 매료된 자에게 달려들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아마 '실망'이었을지도….


 길 한복판에 쓰러진, 나와 같았던 자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나는 생각했다. 그때 분명히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선명하고, 어지럽고, 복잡하게.
 【그때 동행했던 자도, 그자가 가리켰던 자도 같은 처지였지만, 단순하고 사소한 이유로 목숨이 엇갈렸다.】
 【그렇다면 나도 단순하고 사소한 이유로 언제든 길 한복판에서 식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생각하자니 옛날과 지금을 비교해도 딱히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렇다는 건, 나 외엔 전부 적이라는 것. 믿을 수 있는 자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
 【그렇다면 순수하게 믿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와 내 힘뿐이라는 것.】

 생각이 멎자 창을 쥔 손이 떨리고 있었다. 떨리는 손을 붙들어도 떨림은 쉽게 멎지를 않았다. …무서웠다. 믿을 수 있는 것이 '나'밖에 없어지자, 급격하게 공포가 밀려 들어왔다. 등 뒤에 꽂히는 알 수 없는 한기에 주위를 둘러봤지만, 지나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불안감은 그치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지만, 불안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불안했다. 언제, 어디에서 내 등을 향해 칼이 날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멎지를 않았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믿을 수 있는 자도 없다. 안심할 수가 없다.
 이런 무섭고도 불안하기 짝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대체 어떻게?

 그 순간 머리를 스치며 지나간 생각이 한가지 있었다. 그때 내가 떠올린 것은, 내가 살아왔던 방식.
 살고자 한다면 남을 짓밟아라. 살고자 한다면 먼저 죽여라. 살고자 한다면 무엇이든 해라.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앞으로 해야 할 일은 참으로 단순해졌지. 강해지는 것. 언제 어디에서 어떤 공격이 들어와도 쉽게 짓밟을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있어야 했다. 그것을 넘어 내게 위협이 되는 것들을 없애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강해져야만 한다. 멸시받고 두려움 받는 힘에 기대서든. 무엇을 해서든 말이지.

──

 처음으로 자유를 얻은 청년은 의외로 무덤덤했다. 기쁨도, 슬픔도, 아무것도 내보이지 않으며 그저 마차에서 내린 곳에 한참 동안 서 있었다. 그의 시선은 어디에도 가있지 않았다. 어딜 향해야 할지 모른다는 듯이.
 그가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처음으로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의 끝에 도달했을 때, 그는 굳어있던 다리를 움직여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을 향해 걸었다.
 청년이 한 행동은 단순했다. 걷고 또 걸었다. 배가 고파지면 먹었다. 목이 말라오면 마셨다. 피로가 쌓이면 쉬었다. 그 단순한 행동들을 반복한 끝에 도착한 곳은 사람이 북적이는 곳이었다.

 그는 그곳을 무작정 돌아다녔다. 그러다 순수하게 창을 사용하는 자를 보면 그 앞을 막아섰다. 그다음에 이어지는 것은 결투신청. 호쾌하게 승낙하는 자도 있었고, 매몰차게 무시하는 자도 있었으며, 짜증을 내며 거절하는 자도 있었지만, 그는 끊임없이, 끈질기게 결투신청을 했다.
 결투가 성립될 경우, 허무하게도 그는 대개 패하는 쪽이었다. 그의 실력으로 질 리가 없는 상대에게도 그는 이기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그는 결투와 패배를 반복해나갔다.
 그가 결투 상대에게서 이기는 경우는 단 두 가지였다. 그가 생각하기에 배울 것이 없어 보이는 상대일 때. 그리고 상대의 방식으로 상대를 꺾을 때뿐.
 그가 괴짜 싸움꾼으로 소문이 날 때쯤, 그곳에서 그가 이기지 못한 상대가 없는 상태였다. 그렇게 되자 그는 다시 발이 닿는 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도착하는 곳마다 그런 방식으로 결투를 계속해나갔다. 그것을 반복하면서 그는 조금씩 변해갔다. 정확히는 그의 창술이 조금씩 변해갔다.
 그가 직접 맞고 사용해가며 습득한 타인의 기술들을 자신의 방식대로 갈고 닦아 온전한 그의 것으로 만들어갔다. 새로운 것을 익히면 다시 갈고 닦았다. 필요한 것은 남기고 필요하지 않은 것은 쳐냈다. 부족한 점은 보완하고 좋은 점은 향상시켰다.
 갈고 닦는 과정과 끊임없는 결투. 패배와 관찰. 습득과 흡수. 그리고 승리. 그는 계속해서 이처럼 행동하고 또 행동했다.

 그런 괴짜 싸움꾼의 소문은 흐르고 흘러 제법 멀리까지 퍼졌는지 이젠 그의 발이 닿는 곳마다 그를 알아보는 이가 제법 있었다. 먼저 그에게 결투를 신청해오는 자도 있었다. 친해지자며 다가오는 이도 있었다.
 그렇게나 그에게 향하는 반응이 달라져 있었지만, 그의 반응도, 하는 행동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는 오로지 자신이 쌓아올린 기술을 연마하는 것과 새로운 기술을 경험해보는 것에만 관심을 보일 뿐이었다.

 어느 날, 청년이 결투대상을 물색하던 중이었다. 그는 어느 창을 든 사내를 발견했다. 곧장 그 앞을 가로막기 위해 달려나가던 중 그는 무언가 알 수 없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 보는 사내의 깊은 곳에서부터 느껴지는 익숙한 기운. 그자는 청년과 같은 처지에 놓여있던 자였다.
 그 사실을 느끼자마자 그는 발걸음을 다시 돌리려 했다. 창끝을 보며 잠시 생각하던 그는 다시 달려나가 사내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예와 같은 결투신청이 그 뒤를 이었다.

 결투가 끝난 뒤 청년은 결투 중 느꼈던 기이한 느낌을 되새겼다. 여태껏 겨뤄보았던 이들과는 전혀 다른 무언가. 그자가 휘두르던 창은 익숙하기 그지없는 것이었지만, 또 낯설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그자가 창을 다루던 방식은 청년이 다루던 방식과 비슷했다. 기술의 흡수, 손질, 연마.
 자신과 같은 자가 있다는 사실에 청년은 어딘가 즐거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청년은 찾아야 할 결투 상대의 목록을 새롭게 되새기며 창을 어깨에 짊어지고는 결투 상대를 찾아 다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창내미 이야기


아아, 내 아라드 월드에 정신병자가 가득해...

솔직히 그런 취급을 받아가며 살아남았는데 정신이 멀쩡할리가 없잖아요...


안녕하세요. 흔한 아라드의 글쟁이입니다.

마창사가 나오고 조금 지나서 쓴 글입니다.

...마창사도 많이 애낍니다


그럼, 오늘도 즐겁게 읽으셨길 빌면서

오늘도 어김없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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