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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壞
게시물ID : dungeon_62759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Fathance
추천 : 2
조회수 : 190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6/07/21 00: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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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壞(무너질 괴)



# 1


 제국의 귀족들에 의해 길러지는 전투 노예들은 감정을 철저히 억누르고 배제시키고 살육만을 생각하도록 길러진다. 세뇌에 가까운 교육은 정신을 망가뜨렸고, 적은 배식은 어린아이들 사이에서 광기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같은 처지에 놓인 아이의 식량을 빼앗으면, 조금 더 배불리 먹을 수 있다. 죽이면, 더 많은 식량을 얻을 수 있다. 이 비인간적인 도식을 놓고 어린아이들은 거리낌 없이 약한 아이의 것을 빼앗고 죽였다. 더 많은 식량을 위해서. 살기 위해서.

 이런 미치광이 같은 공간 속이라도 끝까지 살아남아 자유를 얻는 자도 있고, 제국을 위해 일하는 자도 있다. 이 이야기는 자유를 얻은 마창사들의 이야기다. 


 한 명은 그곳에서 살아남기를 바랐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짓밟았다. 빼앗았다. 죽였다. 아무것도 믿지 않고 그저 살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 전투 노예가 원한 것은 단 한 가지뿐. 그 강한 열망만으로 전투 노예가 아닌 마창사라고 불릴 때까지 그는 꾸역꾸역 살아남았다.

 귀족의 전투 노예가 마창사로 불릴 쯤 되면 대우는 달라진다. 어쩌면 투기장에서 우승해 자신의 가문에 영광을 줄지도 모르는 이들을 계속 노예라고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다.

 그런 이유로 살아남는다는 것은 더 이상 그를 지탱해줄 동기가 될 수 없었다. 그 시점에서 그를 지탱하는 것은 바로 자유였다. 투기장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자유를 얻는다. 그것을 위해 그는 다시 한 번 짓밟았다. 죽였다. 살아남고, 이겼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그리도 바라 마지않던 자유를 얻게 되었다.

 단순히 여기까지라면 그의 상태는 다른 마창사와 비슷했을 것이다.


 자유를 얻은 그가 겪은 일들은 예전과는 다른 지옥이었다. 예전과는 다른 고통이었으며, 예전과는 다른 불신이었고, 예전과는 다른 공포였다.

 그가 아는 세상은 옛날도 지금도 다를 것이 없었다. 죽지 않는다는 것만 제외하면 잔혹하기 그지없는 그런 세상. 그렇게 아는 것으로 그는 타인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잃고 말았다. 그 자리엔 타인에 대한 경계만이 자리하여 공포로 가득 차게 되었다. 더 깊이 무너지고 만 것이다.

 그는 공포에서부터 눈을 돌리기 위해, 심신의 위안을 찾기 위해 힘을 추구하는 것을 선택했다. 조금이라도 더 안전하기 위해서 말이다.


 다른 한 명은 그곳에서 견디는 것을 포기했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아무것도 듣지 않고,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을 택한 것이다. 이것은 그가 전투 노예로 불리던 시절부터 무너지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그의 '견디는 걸 포기한다.'는 삶을 포기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주변에서 가해지는 거의 모든 자극에 대해 반응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런 상태에서 자신의 식량을 뺏어가려는 아이의 얼굴을 맨손과 식기만으로 반 정도 으깨버렸으니 말이다.

 그의 그런 상태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가 전투 노예가 아닌 마창사라고 불리고, 투기장에서 승리할 때까지 그는 쭉 그런 상태로 있었다.

 정신이 무너지다 못해 더 무너질 것조차 남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망가진 상황에서 그에게 두 가지 선택이 주어졌다. 큰 물질적인 포상과 자유. 그 선택 앞에서 그는 짧게 말했다.

 '나, 그만둘래.' 그가 그런 상태가 된 이후 입 밖으로 낸 첫 번째 말이었다. 그의 말은 자유를 선택한 것으로 인정되었고, 그는 자유로 향하는 마차에 몸을 실었다.


 이 이야기의 두 마창사는 각기 다른 방법으로 지옥에서 살아남았고, 각기 다른 방법으로 무너져 내렸다. 한쪽은 깊은 불신으로, 다른 한쪽은 생각을 그만두는 것으로, 돌이키는 것이 힘들 정도로 무너지고 말았다.

 사실 마창사라는 것을 육성해내는 방식은 필연적으로 사람을 망가뜨리게 된다. 단지 그들은 거기서 조금 더 망가졌을 뿐이다.



# 2 


 사람이 정상에서 벗어나는 경우는 둘로 나뉜다. 처음 날 때부터 그러하거나, 과거의 불운이거나. 그녀는 후자의 경우에 속한다.

 갑작스러운 사고, 낯선 에너지, 낯선 곳, 가혹한 훈련, 그 외 기타 등등. 애석하게도 그때의 그녀는 그것을 온전히 견뎌내기엔 너무나 나약했다. 그녀가 그런 곳에서 기회를 보고 탈출을 했을 땐, 이미 정신이 망가져버린 뒤였다.


 그 결과일까, 그녀는 일반적인 시각에서 조금 벗어난 듯한 특징을 보이곤 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을 말이다.


 1. 그녀는 항상 웃고 다닌다. 그리고 그 웃음이 얼굴에서 사라지는 일이 거의 없다.

 그녀는 항상 즐거운 것을 생각하는 듯 늘 샐쭉하게 웃지만, 그건 즐거워서 웃는 것과는 느낌이 다르다. 못된 짓을 생각해내고 웃는 악동의 웃음. 그녀가 짓는 웃음과 가장 가까운 건은 아마 이런 웃음일 것이다.


 2. 그녀는 종종 제 주변에 말을 건다.

 혹시 귀수를 가져 귀신과 말이라도 나누는 게 아닌가 할 수 있겠지만, 다르다. 그녀가 가진 것은 귀수가 아닌 마수. 즉, 그녀가 말을 거는 대상은 귀신이 아니다.

 마수를 지녔으니 혹시 마인과 대화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역시 다르다. 떠도는 귀신과는 달리 마인은 일반인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말을 할 때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는데도 그녀는 대화를 한다.


 3. 그녀는 순수하다. 하지만 그 순수하다는 말이 결코 착하다거나 순진하다는 말로 이어지진 않는다. 말 그대로 순수할 뿐이다. 순수하게 좋아하고, 순수하게 즐기고, 순수하게 악의로 가득한 장난을 친다.

 이 중 눈여겨볼 만한 것은 순수한 악의로 채워진 장난이다. 그녀의 그런 행동은 2번의 그 대화 이후에 나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녀만이 볼 수 있는 것들과의 대화와 악의적 장난 사이의 관계는 오로지 그녀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최종적으로 그녀가 대체 누구에게 말을 거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녀는 자신이 무너졌음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상태를 마치 즐기듯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본인이 만족한다면, 무너진 상태를 돌보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일까? 그것은 분명히 확실하게 결론지을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 3 


 그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메카닉이다. 다만, 괴짜 기질과 외톨이 기질이 조금 심하다 싶을 정도일 뿐이다. 그런 기질은 그가 아라드로 떨어지기 전부터 그래왔다. 천계에서의 그는 그의 작업실 겸 집에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절대 나오지 않는 그런 괴짜였다.

 그런 그가 눈에 띄게 이상해진 시점은 카르텔의 침공이 심해졌을 무렵이다. 그는 겐트 주거지역의 외곽 지구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그 것은 곧 그가 살았던 곳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외곽 중에서도 외곽에 있던 그는 몇 없는 친구의 손에 이끌려 거의 반강제로 안전히 피난하는데 성공했다. 그때의 그는 많이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정신은 멀쩡한 상태였다.

 그런 그는 피난민 대피지역에서 단 하루 만에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그의 친구가 그의 행방을 찾아 피난민 대피지역을 돌아다녔지만, 어디에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며칠 뒤, 황도군에게 구출되어 돌아온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부품을 찾으러 가게 해줘.' 그가 기절하기 전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


 그때를 시작으로 그는 계속 전에 살던 집으로 돌아가려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그의 시도는 번번이 황도군에게 가로막혀 이뤄질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가 계속해서 나가려는 이유는 단 하나, '부품'. '부품'을 찾으러 가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매일같이 위험한 곳으로 향하려는 것이었다.

 그가 말하는 '부품'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 '부품'이라는 것들이 천계의 기술력도 아득히 뛰어넘은 성능을 지닌 것들이었기에 정말로 그런 것이 있는지나 의문을 품을 만한 것들뿐이었다.


 그렇게 '부품'을 찾지 못하는 날이 길어지고, 시종일관 불안한 모습을 보이던 그는 결국, 작은 사고를 일으키고 말았다.

 그것을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그의 친구였다. 그의 친구는 아주 오랜만에 밝은 얼굴을 지어 보이며, 양손에 피를 묻힌 채 즐거워하는 그를 보며 생각했을 것이다. '그가 더 큰 사고를 일으키기 전에 어디론가 가야 한다.

 그날 이후, 황도 그 어느 곳에서도 그도 그의 친구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알려지지 않은 커다란 충격으로 무너져내린 남자와 정신적인 치료보다 도망을 선택함으로써 무너지기 시작한 친구의 이야기였다.


 무너져내린 남자는 자신과 친한 사람 이외의 사람을 전부 '기계'로 인식하게 되었다.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는 대부분의 사람을 기계로 인식한다.

 그는 자신의 이해를 뛰어넘은 기계를 앞에 두고 강한 욕구를 보였다. 분해하고 싶다는 욕구. 분석하고 싶다는 욕구. 최종적으로는 그것으로 자신의 지식을 키우고 싶다는 욕구.

 이런 욕구 앞에서 남자가 무슨 일을 벌일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남자의 친구는 갑작스레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 앞에서 망설였을 것이다. 누가 봐도 비정상적인 자신의 친구와 이후 벌어질지도 모르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아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악의 상상을 끝낸 친구가 선택한 것은, 최악의 방법이었다.

 다양한 선택 앞에서 친구가 선택한 것은 도피였다. 이 선택은 자신에게도, 망가진 친구에게도 좋지 못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걸 알지 못했기에 망설임 없이 상황을 나쁜 쪽으로 돌려버렸다.

 결과를 예측하지 못한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친구도 구원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마저도 망가뜨릴 수 있는 길을 택했음을 안타깝게 여길 뿐이다.



# 4 


 그녀는 황녀의 정원 소속 레인저였다. 그 말은 황녀에 대한 무구한 충성심을 지녔다는 것이다. 거기에 걸맞게 황녀가 극악무도한 카르텔의 손에 납치당하자 주저 없이 무법지대로 향할 정도였다. 그녀가 택한 방법은 그들 사이에 숨어들어 황녀의 구출을 꾀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황녀의 구출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낼 자신이 있었다. 그것을 위해 평생을 쌓아온 예법도, 사격술도, 인연도 버린 채 무법자들의 행동거지와 사격술을 익혔다. 그들 사이에 위화감 없이 섞이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것이었다.

 절도 있는 사격, 격식을 갖춘 행동, 모든 것을 철저한 허술함 아래에 숨기고 그녀는 하루하루 황녀를 구할 틈을 노렸다. 볼 것, 못 볼 것 전부 봐가며, 견딜만한 날들도, 견디기 힘든 날들도 전부 황녀를 구한다는 생각 하나로 버티면서 말이다.


 그런 그녀는 단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것을 잃었다. 그들이 꺼낸 과격한 언사들이, 그녀가 참을 수 있는 한계를 넘어버리고 만 것이었다.

 여태 해온 굳은 다짐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상상을 넘어 실제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들이, 황녀에 대한 죄책감이 한꺼번에 그녀의 뇌리를 스쳤을 것이다.

 그 무수한 생각의 끝에 그녀가 선택한 것은 도망치는 것이었다.


 그녀는 지금 아라드에 있다. 계속 달린 끝에 천계의 바다에 빠진 그녀는 미들오션을 지나 아라드에 도달했다. 이전까지의 기억을 전부 잃은 채로 말이다.

 그녀의 기억상실이 단순한 외부의 충격으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과도한 스트레스의 영향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만약, 후자가 원인이라면 그녀가 천계에서 선택한 도피의 연장선일지도 모른다.

 막대한 책임감, 실패의 좌절감, 공포, 슬픔, 자괴, 그 외 여러 감정들에게서 도망친 것이라고 본다면 그녀의 마음이 한계 끝에서 무너진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 5 


 이 이야기는 위의 경우들과는 전혀 다르다. 사람이 정상에서 멀어지는 두 가지 경우 중, 그는 선천적으로 그런 경우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는 웨펀마스터들의 도법을 사용하는 검사다. 귀수는 없지만, 아라드에서 검술의 대가들을 가리켜 웨펀마스터로 칭하니 그 역시 웨펀마스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그에게는 자기 자신마저도 잠시 잊어버린 끔찍한 과거가 있다.


 어린 시절의 그는 얌전한 편에 속했다. 다만 ██에 대한 관심은 어릴 적부터 지대했다. 자그마한 가학성. 자신보다 작고 하찮고 나약한 미물에 대한 폭력성에서 어쩌면 그의 미래를 추측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에 대한 관심은 생물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를 가진 것이라면 무엇이든 지대한 관심을 쏟았다. 그리고 그 잔혹함은 자라면서 조금씩 사그라드는 듯이 보였다.


 그가 성인이 될 쯤 검술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 그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그의 검법은 무엇보다 예리하고 무엇보다 빠르게 베어내는 것을 지향했다. 그런 검술을 제대로 익혀갔을 쯤, 그는 모험가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가 모험가가 되어 2~3년쯤 지났을 때, 그는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여기서 그의 █ ███ █████. █ ███는 ████, 그의 █████. 이것을 기점으로 그는 짧으면 █일, 길면 █개월에 한 번씩 █████ ███ ████.

 그리고 이때부터 그는 자신을 숨기기 위한 성격을 만들어냈다. 자기 자신을 3인칭으로 부르며, 여자를 좀 밝힌다는 것을 빼면 전혀 위험하지 않은 안전한 사람을.

 그렇게 그는 █년 간 ███ ██해왔고, 어느 순간 돌연 사라졌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에 지대한 관심을 품은 것은 그가 얼마나 위험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성인이 될 쯤에 검법을 배우고, 그것을 넘어 웨펀마스터들의 도법마저 배운 것, 모험가가 된 것. 그것은 단지 ███ ██하기 위한 모종의 준비과정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현재 그는 그의 과거를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고, 위험하지 않은 자신이 진짜 자신이라 생각하며, 살고 있다.



안녕하세요. 흔한 아라드의 글쟁이입니다.


제 아라드 월드는 참...

정신병원이 매일 호황을 이룰법한 세상이네요..


전지적 주인 시점으로 쓴 든자캐소설 2호기입니다.


그럼, 오늘도 즐겁게 읽으셨길 빌면서

오늘도 어김없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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