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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싸움의 끝에
게시물ID : dungeon_62780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Fathance
추천 : 3
조회수 : 16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7/22 00: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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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승리하는 자는 누구인가



 마창사와 마창사가 만나면 싸움이 시작된다. 상대의 힘을 취하기 위한 싸움이. 물론 무조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 한 쪽이 싸울 의지가 없다면 성사되지 않으니까. 아직 상대의 의사를 존중하기 때문에.

 하지만 힘에 취해, 싸움에 취해, 전투를 제 삶으로 생각하는 자끼리 만난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두말할 필요 없이 싸움이 시작된다. 상대의 힘을 잡아 뜯어내기 위한 치열한 싸움이.


 레이는 뱅가드다. 날카롭다 못해 사납고 난폭하게까지 느껴지는 그 기운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그는 다른 뱅가드와는 조금 달랐다. 그는 그저 강한 힘을 원했기에 마창의 힘을 취했을 뿐, 전투를 갈구하지는 않았다.

 물론 전투를 앞에 두고 피가 끓는 듯한 기분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었다. 투쟁심이 피어오르는 것은 사실이었다. 다만 정 피하기 힘들 때나, 상대의 힘을 잡아 뜯어내 강해지고 싶을 때에만 본격적으로 임할 뿐이었다.

 그렇기에 그가 가장 피하고 싶어 하는 상황이 바로 같은 뱅가드를 만나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레이의 상황은 정말 운이 나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미처 낫지 않은 상처가 꾸준히 그를 괴롭히고 있었고, 숲을 방황하며 쌓인 피로가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또 다른 뱅가드와 마주하고 있었다. 물론 상대방은 싸울 의지가 충만한 상태였다.

 '지금 당장 너의 힘을 뽑아내주마.'라고 눈으로 말하는 듯한 상대를 앞에 두고 그가 고를 수 있는 것은 몇 개 없었다. 전투에 응하거나, 순순히 죽어주거나, 도망가거나. 레이가 택한 방법은 도망치는 것이었다,


 길에서 벗어나 나무와 나무 사이로 들어간다. 어떻게든 떨쳐낼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나무에서 나무로, 수풀에서 수풀로, 숲 속에서 숲 속으로, 더욱 깊은 곳으로, 발을 옮기고 있었다.

 뒤쪽에서 뱅가드가 용암괴충마냥 미친 듯이 레이를 쫓아 돌진하고 있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멈췄다간 분명 싸우게 될 것이 분명했으니까. 아니, 멈췄다간 분명 나무고 뭐고 다 부숴대는 상대의 미늘창에 그가 반동강이 날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를 향해 겁쟁이라 외치는 소리가 들린 듯했지만, 그래도 그는 달리고 또 달렸다. 아직은 끓어오르는 투쟁심보단 싸우기 귀찮다는 마음이 더 컸으니까.


 그 공포의 추격전은 제법 어이없게 끝을 맞이했다. 열심히 도망 다니던 레이가 그만 나무뿌리에 발이 걸려 넘어져버린 것이었다. 몸을 일으키려던 그는 순간 빠르게 옆으로 몸을 굴렸다. 그와 동시에 땅을 내리찍는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잠깐 새 벌써 따라잡힌 것이었다.

 그는 레이를 흘깃 보고는 창대의 끝을 강하게 쥐어 레이를 향해 휘둘렀다. 하늘로 향하던 창날은 아슬아슬하게 그의 면상 앞을 스쳐 지나갔다.

 이것이 바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쯤 되면 더 이상 도망 다닐 수도 없는 노릇임을 알고 있었다. 이젠 아픔이고 귀찮음이고 뭐고 별 수 없었기에, 레이는 창을 강하게 쥐었다.


 그는 높이 쳐들었던 창을 곧장 강하게 내리쳤다. 큰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그는 창을 휘둘러 흙먼지를 걷어냈지만, 반으로 갈라져 있는 레이의 모습 같은 것을 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모습을 놓친 것은 아니었다. 모습이 보이지 않더라고 뱅가드 특유의 사납기 그지없는 기운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뱅가드는 창을 고쳐 쥐고 곧바로 뒤쪽으로 휘둘렀다. 철과 철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창이 부딪히자마자 곧장 단단히 붙잡은 뒤 그대로 밀어 올려쳤다. 힘이 모자랐는지 레이는 그대로 뒤로 밀려났다. 하지만 비틀거릴 틈 따윈 없었다.

 곧장 땅을 박차고 달려나가 크게 휘둘렀다. 베는 반경이 커 자칫 잘못하면 반격당할지도 몰랐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레이에게는 힘이 모자랐으니. 휘둘러진 창은 창대에 가로막혔다. 이대로 힘으로 밀어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니,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상대였다. 그대로 밀어 레이를 밀쳐낸 뒤, 밀려나는 레이를 쫓아 창을 휘둘렀다. 창끼리 부딪히는 족족 레이의 창이 밀려나는 아주 당연한 상황. 아직 완전히 낫지 않는 상처. 추격 끝에 제법 지친 몸뚱이. 그에 반해 멀쩡한 상대. 모든 상황이 불리했다.

 하지만 그것이 레이의 패배를 가리키지는 않았다.



 뱅가드와 뱅가드의 싸움은 간단하고 치열하다. 이기기 위한 싸움이 아닌 살아남기 위한 싸움. 상대의 힘을 잡아뜯기 위한 싸움. 아무리 불리한 상황이라도 싸움의 끝의 끝까지 살아남으면 이기는 그런 싸움이다. 이긴 자가 강한 것이 아닌,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

 그러니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었다.



 균형을 잃고 넘어지는 레이를 쫓아 뱅가드가 달려들었다. 그런 그를 향해 흙이 날아들었다. 미세한 흙먼지가, 그 사이에 섞인 작은 돌들이, 그의 얼굴에 명중했다. 그로 인해 머뭇거린 그 잠깐 동안 그의 배에 묵직한 발차기가 날아들었다.

 물론 그 정도로 넘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비틀거리는 그 순간은 치명적이었다. 레이의 창끝이 그를 향해 쏘아졌다.

 짧은 비명이 울려 퍼졌다. 간발의 차로 창이 그의 어깻죽지에 꽂혔다. 레이는 그대로 창을 비틀려 했지만, 그가 먼저 창을 강하게 붙들어 놓아주질 않았다.

 실수였다. 좋은 시도였지만, 명백한 실수였다. 당장 레이를 향해 창이 날아들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상황을 보면 당장 손을 놓고 도망가야 했다. 하지만 레이는 그럴 수 없었다. 놔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도저히 손을 놓을 수 없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레이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의 걱정대로 창이 날아드는 대신 날아온 것은 매서운 발차기였다. 왼쪽 뺨에서 느껴지는 격통에 짧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입안이 터졌는지 입안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레이는 놀랐다는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평범하게 짜증이 쌓인 듯한 표정. 레이는 그의 표정보다는 그가 자신의 창을 놓아주었다는 것을, 반대편 손에 힘을 들어가 있다는 것을 먼저 봐야 했다.


 갑작스레 쏘아진 창 끝이 레이의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갔다. 소름 끼쳐할 새도 없이 레이는 몸을 날려 그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그리고 그 뒤를 쫓아 응축된 기운이 회오리치며 날아왔다.

 갈려나가는 듯한 고통이 엄습해왔다. 상상 이상의 고통에 레이는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고통을 참아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었다. 간신히 땅을 기어 몸을 움직이는 그의 뒤에 사나운 기운이 다가왔다. 죽이기 위해 다가왔다.

 일어나야 한다. 죽고 싶지 않다면 일어나야 한다. 일어나 맞서야 한다. 맞서서 죽여야 한다. 죽고 싶지 않다면 죽여야 한다.


 상대가 창을 내리친 순간, 레이는 몸을 굴려 빠져나왔다. 창을 다시 고쳐 쥐고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방금까지 고통에 허우적대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거친 숨을 내뱉으며, 새빨간 눈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서로 창을 굳게 쥔 뒤,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레이는 두 손으로 창을 굳게 쥔 뒤 크게 휘둘렀다. 창 끝이 아슬아슬하게 그의 몸통 앞을 지나갔다. 그는 창을 비틀어 쥔 뒤 두 번 베어냈다. 창대로 막아냈지만, 강한 떨림으로 레이는 두 손이 저릿해지는 듯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대로 가볍게 뛰어 내리쳤다. 그 충격으로 일어난 흙먼지 사이로 창날이 날아들었다. 그대로 찔리는가 했지만, 창날은 몸통과 팔 사이로 스쳐 지나갔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는 그대로 레이의 옷깃을 잡은 뒤 바닥에 내리꽂았다. 하지만 그대로 당할 수는 없었기에 레이 역시 그의 옷깃을 단단히 붙잡아 냈다. 그 결과 둘 모두 넘어진 상황, 먼저 일어나는 쪽이 유리한 상황이었다.

 급하게 일어나려는 그의 발목을 향해 레이의 창이 달려들었다. 아쉽게도 그 공격이 발목을 끊어놓지는 못했지만, 예상치 못한 공격이었는지 그는 잠시 비틀거렸다.


 그 틈에 몸을 일으킨 레이는 비틀거리는 그를 빠르게 베고 또 베었다. 십수 번을 벤 뒤에야 난무는 끝이 났고, 순식간에 너덜너덜해진 그는 비틀거렸다. 비틀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쓰러질 듯 휘청이던 그는 창대의 끝을 단단히 붙잡고 크게 돌렸다. 사정거리 안에 있는 것을 전부 베어내기 위해서. 만만찮게 넓은 사정거리에 레이는 꼼짝없이 그 공격을 받아내야만 했다.

 한 바퀴, 두 바퀴…마지막 강한 올려베기에 레이는 뒤로 크게 밀려났다. 그는 곧장 그걸 쫓아 달려들었다.



 누구 하나가 쓰러지기 전까진 결코 끝나지 않는 전투. 아니, 쓰러져도 끝나지 않는 전투. 한 명의 숨이 멎을 때까지, 상대의 창에서 서슬 퍼런 기운이 빠져나올 때까지 절대 끝나지 않았다.

 한 합, 한 합. 강해지기 위해, 죽지 않기 위해, 결코 밀리지 않는다. 땅이 갈라지고, 뒤엎어진다. 발밑이 불안정해져도 멈추지 않았다. 서로의 창 끝이 집요하게 서로의 목숨을 노렸다.



 어느 순간 누구 하나의 창이 눈에 보일 만큼 강대한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 기운은 창을 뒤덮고도 계속 뻗어나가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지켜보는 이를 압도할 정도의 기운에 상대는 온몸이 오싹거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 기운에 질 수는 없었다.

 상대는 자신이 낼 수 있는 전부를 내어, 자신과 함께 땅마저 갈라버릴 듯한 기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속 빈 강정이 된 창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붉은 머리의 사내는 텅 빈 창을 땅에 묻어주려 했지만, 곧 제 몸 상태가 그런 자비를 베풀기엔 영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창을 나무에 기대듯 앉혀준 뒤 비척비척 발걸음이 가는 대로 움직였다.



살아남는 자는 누구인가


──


Ray Viskos 워로드



안녕하세요. 흔한 아라드의 글쟁이입니다.


전투씬만 이만큼 쓰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부디 자연스럽게 잘 읽혔으면 좋겠네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글이 어땠는지, 의견을 여쭙는 바입니다.


이번의 아라드월드는, 치고 받고 싸우는 이야기였습니다.

오늘은 이것으로 글 옮기기를 마치겠습니다.


그럼, 오늘도 즐겁게 읽으셨길 빌면서

오늘도 어김없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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